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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9.05.12.주일예배<딤전3:8-13. 직분의 의미, 집사의 표준>

by 설렘심목 2019. 5. 13.

2019.05.12.주일예배<딤전3:8-13. 직분의 의미, 집사의 표준>

[아침 일어나 예배당에 올라가면 절망과 감사의 고백이 교차한다. 절망하는 나를 만나 위로하고 아담하고 예쁘게 꾸민 예배당을 둘러보며 몇 안 되는 수의 어여쁜 성도와 함께 동화 속과도 같은 우리교회를 생각하면 가슴 먹먹히 올라오는 감사를 주께 올려드리며 이제 곧 시작될 목회 제 2, 인생 후반 아름다운 결정체, 보석 같은 작품, 노년 로멘스그레이를 향해 눈을 돌린다.]

 

-돈은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돈은 버는 것 보다 더 힘든 게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입니다. 돈을 쓸 때 그 사람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명 받아 인간이 되기 위해 한 일이 없는데 어느 때 보니 짐승도 아닌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받은 생명보다 그 생명 지키면서 인간답게 사는 게 또 힘듭니다. 예수 믿고 세례 받으면 구원은 단번에 이뤄지지만 그 받은 구원을 지켜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교회출석하고 봉사하고 온전한 십일조에 세월 지나 경륜이 되면 직분을 받습니다. 직분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게 지켜가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존재조차 없던 우리에게 생명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생명이 우리 안에 시작되면서부터 이제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 앞에 늘 숙제처럼 와 있는 걸 봅니다. 하나님 우릴 구원하시고 교회로 부르셨을 때 여러 직분으로 충성하게 하십니다. 집사. 권사. 장로. 각부서장. 전도사. 목사. 간사. 여러 이름으로 우릴 부르십니다. 받기보다 지켜가기가 더 어려운 구원처럼 받은 직분을 잘 감당하는 이에게 주님 뭐라고 하십니까? “잘했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했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19:7

 

오늘 본문은 집사의 표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집사는 집사교육을 통해 알고 있듯이 교회의 재정을 담당하고 거기 따른 교회행정을 보조하기 위해 초대교회에서 만든 직분입니다. 물론 스데반 집사 같은 경우는 생명을 건 순교의 설교도 거침없었던 충성과 헌신을 보였습니다. 그는 순교하기 직전에 분명한 환상을 통해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보좌에서 일어나 자신을 향하여 서 계신 것을 보고 증거합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하늘의 증거는 죄로 얼룩진 땅이 가장 미워하는 소리입니다. 가장 절실한 것을 가장 멀리합니다.

집사의 기준을 어디까지 보아야 할 것인가? 8절입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않고(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않고 더러운 이(利益)를 탐하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직분자의 귀감, 첫째

1. 정중합니다.

 

헬라어로 정중이란 말은 예의바르게 행함, 자기제어를 잘하는, 또는 규모있게 행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예의는 규모(規模), 곧 규범과 본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규모와 예의가 갖춰진 사람이 어찌 술을 가까이 하고 추한 돈을 탐냅니까? 9절입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직분자의 귀감 두 번째,

2.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은 깨끗한 양심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한 비밀입니다. 오염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은 열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양심은 깨달은 것을 행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회개하는 양심입니다. 즉 양심과 믿음은 항상 묶여있어 행동하는 신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령의 임재는 필수적입니다. 성령은 양심을 가장 활발하게 살려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비밀을 살펴봅니다.

비밀은 왜 태어납니까? 지켜지기 위해서 태어납니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비밀은 공개될 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태어난다고 봅니다. 보세요. 비밀만큼 소리치고 싶어서 몸살이 나는 것도 세상에 없습니다. 비밀은 가지몸값이 제법된다는 것을 압니다. 눈길을 모으고 싶은 것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잘 아시는 얘기입니다.

 

죽순따러 왔던 처녀들의 노래가 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경주 온 서라벌에 이 노래가 유행하자 대나무밭을 모두 파헤치고 거기 산수유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서라벌아가씨들은 변함없는 바람결에 또 이 노래를 배워 따라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 임금님은 산수유나무를 그냥 둡니다. 산수유를 캐어도 비밀은 계속 땅속에서 올라와 나무와 풀과 돌멩이를 통해서라도 소리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이 돌들이 소리치리라.”

 

영원한 비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종종 공개된 비밀이란 말이 있는데 세상의 그 말엔 음모와 해학이 있습니다. 정치와 재벌, 경찰과 조폭 사이에는 이미 오래된 불문율로 게와 고동의 수칙이 있습니다. 이걸 모르고 순진하게 교과서대로 입문하면 사업의 ABC에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게 됩니다. 이 악의 먹이사슬이 이세상공생의 원리입니다. 세상의 공개된 비밀이 그렇다면 하늘나라의 공개된 비밀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법을 맞은편에서 보면 하늘의 법과 답이 나옵니다. 3:9에서는 비밀을 이렇게 전합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 외에도 신약성경에서 비밀이란 단어는 꾸준히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을 위해 예비하신 복음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제 그 경륜의 깊으신 뜻을 따라서 하늘과 땅의 복된 소식 복음은 분명 공개돼 있습니다. 그러나 듣는 자와 못 듣는 자가 구별돼 있다는 겁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8:26” 그러나 성령의 인도로 영이 열린 자에게 복음은 실로 놀라운 비밀이요, 큰 감격과 환희이며 영원한 생명의 근거가 됩니다. 여기에 각양 영적 체험의 주관적인 비밀들도 있습니다. 본문이 다루는 비밀은 개인적인 비밀이 아니지만 주관적 영적체험은 구원의 감격을 부축하며 평생 조심스럽게 다뤄지게 됩니다. 자칫 한 인생을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비밀이 끝내 성경 안에서 풀리고 검증되기를 바라야합니다. 공개된 구원의 감격과 공개하기 쉽지 않은 개인적 영의 체험들이 육체를 마치는 날까지 성령께 반듯하게 잘 묶여 있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다시 집사라는 직분으로 갑니다.

 

교회에서 가장 흔한 이름 같아도 가장 귀한 직분-집사. 장로를 보조하는 헌신과 사역의 중산층, 집사직분은 이렇게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안에 전하지 못해 안타까운 기쁨의 비밀이 날마다 순간마다 샘솟아 몸부림을 치게 되기 축복합니다. 우린 대나무밭까지 가서 비밀구덩이를 파지 않아도 됩니다. 만천하에 마음 놓고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살아계신 단 한분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마음껏 소리칠 때 안에 모든 울증의 이이가 되는 각종 질병들, 내안에 진상과 수치, 열등감, 가난들이 다 떠나갈 줄 믿습니다.

 

직분자의 귀감 세 번째,

3. 스스로 책망합니다.

 

10절에는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라고 돼 있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흠과 티가 없는 존재는 예수님 한분뿐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을 따라 집사를 뽑지 않아야 옳은가? 아닙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123심이 있습니다. 지방법원에서 해결이 안 되면 고등법원으로 상소합니다. 거기서도 안 되면 대법원으로 갑니다. 그러나 1심인 지방법원에서 해결되어 피고원고 이의 없이 합의되면 그걸로 끝입니다.

1심은 자기내면에서 벌어지는 재판이요, 2심은 제직회나 당회에서 열리는 심사이고 3심은 하나님 앞에서 받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책망없이 집사기준을 충족시키려면 남에게 책망 듣기 전에 먼저 내가 나를 책망해야 합니다. 본문은 그러한 자를 집사로 뽑으라고 합니다. 내가 나를 책망한다는 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아파하며 회개한다는 뜻입니다. 세상고민 중에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자신임을 인정하시면 크게 아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며 울부짖는 자에게 누가 돌을 들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청산하지 못한 것이 언제나 사람 앞에서 수치요, 지적(指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아들 일로 학교교무실에 불려간 아빠가 선생님 앞에서 자신의 아들을 무섭게 나무라며 뺨을 치는 것은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보호하려는 자구책입니다. 피해자 부모와 담임선생님이 미안해서 안절부절할 때까지 야단치고 혼을 내는 건 징계의 채찍을 부족한 이 아빠가 먼저 드니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면서 아들 아팠니?” 아버지의 진심은 뭡니까? 스스로 책망함이 피차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1심에서 끝내면 모두 편해집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집사를 주께서 부르십니까? 아니요, 책망할 것이 많지만 날마다 순간마다 주 앞에 눈물로 고백하는 자를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늘 정중하고 반듯하고자 애쓰는 자, 필경 하나님의 풍성을 맛볼 것입니다. 아울러 믿음의 비밀로 가슴이 설레는 자, 그 비밀의 능력이 주변과 그 자신을 사로잡아 복음의 능력과 평안함이 그를 보호할 것입니다. 끝으로 누가 말하기 전에 주 앞에 꿇어 엎드려 스스로를 책망하며 받은 구원 앞에 늘 염치가 없어 눈물 흘리는 자는 아무도 그를 책망치 않을 것입니다. 1심에서 끝난 겁니다.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안에 이러한 복음의 능력이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하늘이여, 해와 달을 불러와 말씀을 비춰 드러낼지어다. 구름은 온 땅 이 끝과 저 끝을 덮어 단비로 생명을 움돋게 할지며 땅들은 씨를 품어 온갖 기쁨을 일으킬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