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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12.25.화요11시 성탄예배설교<마2:9-11.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

by 설렘심목 2019. 1. 1.

2018.12.25.화요11시 성탄예배설교<2:9-11.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온 인류에 전무후무한 최대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죄인의 신분으로 태어난 인간들은 결국 죄와 사망에 눌려 한탄과 눈물로 비통한 생애를 마무리하고 떠납니다. 장례식장에서 그 사연은 달라 서운하든, 불쌍하든, 억울하든 사망자의 이웃친지가족은 다 슬퍼합니다. 사망이란 이렇게 누구나 물리칠 수 없는 어두움의 절대권세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이 어둠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빛의 출현이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1:2-5절 말씀입니다. 온 세상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때, 맨 처음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본문에 나오는 동방박사들과 눅2:8-20절에 소개되는 베들레헴 지역의 목자들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서 먼 동쪽에서 온 이방인들이요, 베들레헴의 목자들은 낮고 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히브리인의 왕으로 오신 주님은 소외당한 이방인과 천한 신분의 목자들에게 영광으로 그 임재를 알리시고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동방박사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예수 앞에 예물로 바칩니다. 오늘은 그들이 드린 경배와 예물을 살피며 귀한 결단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본문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 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 별을 불러 밝히신 메시야탄생입니다.

 

30:19절입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기 위해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시며 엄위하게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선포에 하늘과 땅, 곧 천지까지 불러 세워 증거자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지를 불러 증거자로 세우고 백성들에게 분명히 사망과 저주대신 생명과 복을 택하라 말씀하신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강림 앞에 별을 움직여서 말씀하신 것을 믿으시면 모두 아멘입니다. 온 인류구원에 별조차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혹자는 그 별이 하늘의 행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으로 보인 빛이 아니었을까 말합니다. 별이었건 영광의 빛이었건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시려는 하나님의 능력이었고 기쁨의 빛이었습니다. 천지를 불러 증거자를 삼으시고 별을 불러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제는 우리들 주변 어떠한 것들도 영광과 말씀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귀가 막혀있고 눈이 닫혀있을 뿐, 하나님은 어떤 것을 불러서도 우리를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또 말씀하십니다. 10절입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2. 매우 크게 기뻐해야 할 메시야탄생입니다.

 

본문은 별의 인도를 받아 멀고 험한 길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를 발견하자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다.”고 밝힙니다. 수식어가 두 개씩 사용됨으로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하게 합니다. 박사들은 점성술이나 천문학에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학식과 덕망이 높았습니다. 존경받는 고을의 어른들입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그들이 이방의 왕들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들은 온 인류에게 화평과 꿈을 가져다 줄 인류의 메시야가 유대 땅에서 나온다는 것을 해박한 견문을 통해 일찍이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수준 있고 내면세계가 깊은 사람들은 이방에서도 유대 땅으로 나타날 세상의 구원자, 절대자 그 어떤 한분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이 평생 학문을 연구하고 살면서 한 가지 가장 큰 소망이 있다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즉, 지상천국을 이룰 절대통치자, 절대권세자 한 분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그의 나심을 보고 죽는 것이었습니다. 2장에서는 성령충만하고 경건한 시므온과 84세의 기도하는 할머니 안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의로운 시므온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고 결국 늙어 어느 날 아기예수의 할례현장에서 아직은 요셉과 마리아의 팔에 안긴 아기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군요.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이토록 메시아의 강림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오신 겁니다. 평생의 꿈을 드디어 이룬 박사들, 하나님의 별이 자신들에게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황홀할 지경인데 기어코 메시야의 탄생현장에 머물러 섰다는 것은 참으로 큰 감동입니다. 그리고 만민 중에 선택받은 이방의 경배자가 됐다는 것과 이제 저 세상에서도 이 세상에서도 자신들은 구원받았다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기예수위에서 머문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한 이유는,

첫째, 메시야의 임재 앞에 경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 앞에 엎드려 절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엔 자기들의 소원이 이뤄졌고 무엇보다 온 인류에게 최고의 복된 소식이 드디어 시작되었다는 감동입니다. 이는 과연 동방의 순례자들로 하여금 매우 크게 기뻐하고 또 기뻐하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는 우리들이 받은 구원이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를 실감치 못하고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삶의 장애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이천년 전 동방박사들이 얻은 구원이나 오늘 여기 우리가 받은 구원은 전혀 다를 바 없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매우 크게 기뻐했다고 하는 구원의 감동, 메시아를 본 감동이 지금 우리들에게서는 결코 동일한 분량으로 다가서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왜 그럴까? 저들은 최소 수백km이상을 힘들게 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나시기 여러 달 전에 이미 하나님은 별을 움직여 이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기예수를 보고 경배하기 위하여 실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바쳐야 했습니까? 사막이 70%를 넘는 여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온 세상을 평화와 공평과 진실과 정의로 다스릴 한 왕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다는 데에 큰 기대와 소망으로 몇 달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기예수로 오신 메시야를 알현하는 데에 그 무엇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겐 그들의 평생에 그만한 감격적 사건이 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라.-살전5:16”고 했고 빌4:4절에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며 눈에 뵈는 정황에 관계없이 항상 기뻐할 것을 권합니다. 뭘 기뻐합니까? 복음입니다.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우리에게 복음과 구원에 대한 감격이 특별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복음에 우리가 기여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인류 앞에 나타나신 복음을 눈으로 보기위해 많은 것을 드림으로 드린 만큼 감격이 컸습니다. 도리어 우리들은 복음 앞에 아무 것도 드린 것이 없는데 이런 큰 구원을 받았다는 것으로 감격해야 하는 게 구원의 감동입니다. 구원은 이렇게 받으나 저렇게 받으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사망권세와 지옥 불에서 자유롭게 했다는 것으로 그 감격에 끝이 없음을 인정하시면 아멘입니다. 11절입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3. 최고의 예물로 경배해야 할 메시야탄생입니다.

 

박사들은 마리아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아기예수께 엎드려 절했습니다. 마리아는 정결했지만 인간이었기에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경배와 찬양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뿐입니다. 그리고 그 경배의 예물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먼저 황금입니다.

 

황금은 변질변색이 거의 없어서 소장가치와 현금성이 뛰어난 예물로 손꼽힙니다. 보통 변치 않아야하는 것들, 곧 약속이나 맹세를 대신하여 몸에 지니는 예물로 주로 쓰입니다. 성경에서는 왕의 권위, 불변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 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황금은 주님께 있어서는 불변하는 진리와 왕권이신데 비하여 우리들에게는 우리의 가장 아끼는 소유나, 변함없는 약속을 위하여 오직 주님께만 묶여 바쳐지기 원하는 것들 곧 시간과 중심일 것입니다. 황금같은 시간을 주님께 바치기 바랍니다. 신앙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모든 소중한 것이 다 주님의 소유가 된 삶을 말합니다.

 

다음, 유향은 무엇입니까? 유향은 당시 주로 스바에서 수입했는데 고가의 향료로서 제사용 희생제에 몰약과 섞어서 쓰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유향은 주로 제사에서 죄를 용서받을 때 인간의 정성을 나타내는데 쓰였고 제사장의 직분위임제에 권위를 인정할 때도 몰약과 함께 썼습니다.

유향하면 먼저 향기로운 제사와 기도가 떠오릅니다. 제사에는 주님의 제사장적인 권위와 거룩하심의 임재가 향유입니다. 반면, 우리가 드려야 할 향유는 향기로운 중심, 진실로 바치는 기도와 결단입니다. 그것으로 주님은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와 화목하십니다. 그 화목은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삶의 향기요, 천국의 향내입니다. 거듭난 성도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세상에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눈에 뵈는 대로 제 뜻대로 살아갑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띄는 성도와 교회의 모습은 유일하게 하나님을 알리게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이제 단순히 우리들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궁금해 하고 그래도 마지막으로 가냘픈 소망을 찾고자 하는 하나님의 흔적들이요, 하나님의 그림자들입니다. 저들은 우리를 보고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평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지 않으면 필경 우리는 그리스도의 악취가 되어 저들로 하여금 주님께 등을 돌리게 할 것입니다. 실로 부담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심이나 염려할 것이 아니라 거룩한 영께 전적으로 의뢰함으로 이 고민을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데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요, 자력으로는 결코 구원받지 못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께 우리의 무능력과 부조리와 죄성을 낱낱이 고백하고 오직 믿음으로 의뢰해야 합니다. 감당할 분량의 헌신을 허락하시고 또 받으실 줄 믿습니다.

이제 끝으로 몰(:mor)약입니다.

몰약은 황갈색덩이로 굳어진 향료인데 쓴맛을 내고 미라용 방부제로도 쓰였습니다. 때론 여인들의 화장품 향료원료가 되고 머릿기름 원료로 쓰였습니다. 값이 비싸서 서민층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았는데 동방의 귀인들이 아기예수 메시야께 바치려고 그 먼 곳에서 그 긴 날을 여행했습니다.

몰약은 입에는 쓰지만 향기가 진하고 여러 곳에 방부제역할과 향신료 또는 향수의 원료가 되는 매우 귀한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의 장차 받을 수난과 대속사랑과 극복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부패한 세상에 방부제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포도주에 몰약을 탄 쓴 물로 조롱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죄를 끌어안은 그리스도의 고통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과 영생의 기쁨을 얻은 자라면 그리스도의 고난에도 동참함이 마땅한 것이라고 성경은 거듭 밝힙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받는 고통은 비록 몸에는 쓰지만 결국 썩어가는 이웃과 세상을 더 이상 썩지 않도록 하는 방부제, 명약이 되어 주님나라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손해를 그러므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남들은 적당히 넘어가도 성도들은 끝내 정직해야 합니다. 누가 보지 않아도 스스로 끝까지 정직하게 해서 억울하다고 느꼈다면 차라리 기뻐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게 드린 작은 몰약 한 덩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상급과 향기요, 이 썩은 땅에선 방부제 곧 소금이 되는 줄 믿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신 말씀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선물하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된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신 말씀에 반응하여 새로운 헌신과 그 결단으로 다시 저들이 드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우리들 신앙고백가운데 삶으로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그래서 남은 생애 온 몸을 불살라 열정적인 헌신을 이루기만 한다면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것이 아닌 것처럼 여러분의 고통과 아픔도 더 이상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황금같은 모든 소유와 시간과 중심을 드리세요. 그렇게 드린 우리들의 삶은 유향과도 같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취요, 몰약같은 쓰디쓴 결단과 의지로 주님의 면류관과 기쁨입니다. 믿은 그대로 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