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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12.23.주일설교<시22:26~31. 여호와를 찾는 자>

by 설렘심목 2018. 12. 23.

2018.12.23.주일설교<22:26~31. 여호와를 찾는 자>

[2018.12.14.화요. 인간에게 성욕이 없으면 후손이 끊기고 식욕이 없다면 육체가 무너지며 명예욕이 없으면 아직도 인류는 야만과 원시시대로 살아갈 것이다. 건강한 욕구는 삶을 지탱한다. 그러나 욕구에는 반드시 인내와 적시성이 요구된다. 적절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적절한 때 취해야 한다. 그 인내와 적시성이 무시될 때 그것을 범죄라고 부르며 법이 태어났다. 율법은 육체가 있어서 생긴 것이니 늙어 죽게 마련한 하나님의 섭리는 실로 감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육체를 떠나면 율법도 정죄도 사라진다. 천국은 그래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행복과 기쁨이 기다리는 곳이다. 우리의 기쁨은 지금까지 육체를 떠나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몸 없이도 기쁜 나라를 사모하면서도 우리는 육체에 묶여 있는 것을 종종 잊고 살며 결국 육체를 떠난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는 말씀 안에 너무 놀라운 것이 담겨있다. 언제나 땅의 문제가 하늘에서 답이 내려와 해결된다고 나는 믿는다. 오늘 하루도 그 나라를 향해 한 발 다가섰다. 쇠락하는 몸을 서러할 게 아니라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꾸 꺼져가는 몸을 보면서 한편 아쉬운 것은 해야 할 일에 속도가 나질 않는 것인데 그것도 욕심이니 내려놔야 한다. 편한 마음, 격한 감사로 모든 것 다 베풀어주신 좋으신 주님만 바라보자.]

 

다윗이 사방으로 힘든 일을 당하면서 심한 고통 중에 부르짖는 본문의 시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영광과 재림을 사모하며 사는 이 땅의 성도와 교회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과 소망이 됩니다. 다윗의 절규 끝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고난 중에 있는 다윗과 살아있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선포되는 희망의 메시지, 한절씩 살피면서 은혜를 나눌 때 우리의 몸과 환경과 영혼에 주의 영이 임하시기 축원합니다.

 

26절입니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겸손의 원어가 온순함, 가난, 가엾다 등의 뜻으로 가난한 백성들이 제사 후에 제물을 함께 먹고 배부른 장면을 배경으로 한 시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모습인데 하나님의 자비가운데 들어온 사람은 이미 그분의 계획가운데 들어간 것이고 그 계획안에는 풍요로 인한 기쁨이 넘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풍요가 보이는 풍요에 앞선 마음의 풍요와 영혼에 가득한 즐거움입니다. 즉 제사를 드리는 자가 배부를 거라고 한 것은 예배가 일단 육신과 영혼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것을 말한 겁니다. 고통을 면하려 제사를 드리게 되고 예배 중에 먼저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 만족하고 찬송하면 그의 육체마저 구원받아 영생의 감동으로 이 땅을 힘 있게 살게 된다는 선포와 고백입니다. 시를 읊조리는 다윗은 지금 극심한 고통 속에 있습니다.

 

27절입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 앞에 예배하리니결국 언젠가는 세계와 인류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계획과 결정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영원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땅의 모든 끝, 즉 육신이 가는 길의 마지막은 사망과 허망함이고 그 허망함 가운데 복음을 접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며 모든 인생들은 그 끝 날에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날들을 평가받습니다. 도덕과 윤리의 심판보다 앞선 신앙의 심판이 열립니다. 착하게 살아도 예수 없이 떠났다면 천국에 들지 못합니다. 그날 거기선 어떻게 예수를 의지하며 순종했는가를 볼 것입니다. 12:13절에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택한 온 백성이 다 돌아와 주께 예배하기까지 쉬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28절입니다.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하나님의 작은 나라는 저와 여러분이고 큰 나라는 열방과 민족들이며 나아가 하늘과 땅의 만유가 다 하나님의 나라들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든 안 뵈든 모든 존재의 주권은 다 그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이 만유의 존재원리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언제 어디서든지 기탄없이 선포할 수 있습니다. 만유의 주재되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일은 우리 개인의 뜻과 능력이나 권세가 아니라 우리를 불러 왕 같은 제사장, 증인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과 권세와 능력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한 하나님의 권세는 이미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넉넉하게 하셨으니 이는 우리에게 예수이름으로 허락하신 최고의 영광입니다. 그 선포를 보장하시는 주께서 우리의 보장이 되시고 우리 주는 평강과 풍성이요, 끝 날까지 부를 우리들의 노래십니다.

 

29절입니다.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본문에 나오는 세 부류의 인생들, 즉 풍성한 자와 죽어가는 자와 영혼을 주께 의탁할 수밖에 없는 모든 자들까지도 하나님을 경배함이 마땅합니다. 이는 호흡 있는 자마다 주를 찬송할지라.”는 시150 마지막 절 말씀과 같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인간이라면 어떤 사람도 결국 하나님 앞을 피하지 못한다는 엄중한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있는 모든 인생들은 자신의 존재근원이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온 인류의 구원주로 오신 예수님을 경배와 찬송으로 높여야 합니다. 인생의 행불행과 영생천국의 문제는 그래서 예수님과의 관계에 따라 결정됩니다. 다른 데선 다 양보하고 무너져도 신앙문제는 결단코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우리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예수 믿으라고 권유하는 것 이상의 사랑은 세상에 아직 없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그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이며 최고의 고백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인생의 본분인데 본분을 망각한 사람과 동지나 혈맹되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 우리 안에 주님 주신 마음인 줄 믿습니다.

 

본문 29절 다시 봅니다.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누구든지 그 앞에 절하게 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 생명의 근원되신 유일하신 창조주, 만물의 주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앞에 절하는 것, 곧 경외하여 허리를 굽히는 예배만한 귀하고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최상의 예배가 곧 최상의 인생이라는 것이 바른 결론입니다. 진정 품격있는 삶은 예배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4:23절에는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하는 예배라고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모든 풍성한 자나 영혼과 몸을 진토가운데 묻는 자나 결국 하나님 앞에 절을 한다고 했듯이 하나님을 피해서는 살 길이 없는 게 인생이라는 것인데 주님은 참된 예배의 기본을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즉 성령의 인도하심과 오직 성경에 근거한 예배만이 진정한 예배라고 하셨습니다.

 

끝으로 30~31절입니다.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다윗이 극심한 곤경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와 원망으로 탄원할 때 주의 영이 감동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간구와 탄원 끝에 본문과 같은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노래하게 하신 겁니다. 오늘 우리가 받는 이 말씀이 어느 때고 위로와 평강과 능력이 될 줄 압니다. 마지막 두 구절은 그러므로 힘든 중에도 주를 신뢰하면서 경배를 멈추지 않는 성실한 예배자가 받을 믿음의 열매를 보여 줍니다. 본문말씀처럼 대대로 이어 주님을 섬기고 또 복음을 전파할 것이며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보다 나은 믿음과 신앙인격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집과 세상에서 주의 영광에 힘입어 영향력있게 살아갈 줄 믿습니다. 특별히 귀한 진리, 생명의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겸손과 풍성의 은사가 있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후진들이 풍성하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음하듯 토해내는 다윗의 간구 끝에 결국 인자하신 하나님은 위로의 예언을 본문과 같이 소망으로 노래하게 하셨습니다. 한치 앞의 생사를 모르는 위태롭고 불안하고 먹고 눕고 입는 육신이 고달픈 순간에 이런 찬양을 하게 하신 분을 지금 우리가 여기서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인생의 힘든 능선을 넘을 때 살아계셔서 말할 수 없이 우릴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남은 인생 최선을 다하고 또 힘든 것 다 토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다윗에게 주신 이 말씀 오늘 듣고 우리의 생명이 된 말씀이 기억나게 하셔서 그대로 우리에게 큰 능력과 믿음이 될 것입니다. 어떤 능력인가? 어떤 믿음의 권세인가? 정리하며 말씀을 마칩니다.

 

겸손한 자의 풍성입니다. 겸손은 단순히 공손한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 떨며 서 있는 자를 겸손한 자라고 부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 즉 언제 어디서도 하나님이 내 안에 그리고 내 곁에 계시다는 것을 인정해드리고 아는 믿음의 사람들은 주께서 풍족함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우릴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계획 그대로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변과 환경에 무관하게 주님을 노래해야 합니다. 세상풍조와 문화는 바뀌어도 교회는 영원불변 하나님을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며 노래하기를 세상 끝 날까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믿음의 권세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믿은 대로 되는 주님의 능력이십니다. 선포대로 믿는 중 주님의 명예를 따라 다 이뤄질 줄 믿는다면 믿은 그대로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는 우리가 믿고 구하지 않아 주시지 못하는 것들로 넘치고 있다고 일러드렸습니다.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먼저 부지런히 일할 마음과 기술 배울 마음을 주실 것이고 좋은 사람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먼저 자신의 내면을 아파하는 마음을 주셔서 인격과 소양을 쌓게 하실 겁니다. 간곡한 마음으로 일러드립니다. 짧은 한평생 참으로 복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주님은 늘 복되게 가는 길로 인도하시는데 그 길은 예수님께 예배하러 가는 길입니다. 다른 모든 복은 예배드리는 복 뒤에 줄줄이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