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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12.16.주일설교 <행4:23-31 뜻을 같이 한 기도의 응답>

by 설렘심목 2018. 12. 23.

2018.12.16.주일설교 <4:23-31 뜻을 같이 한 기도의 응답>

[Korea, 高麗는 곧 소망사항이고 조선(朝鮮)은 신앙고백. 십자가로 하루를 열고 십자가로 하루를 닫는데 물고기 곧 성도가 모두 선한 양이 돼 다시 양을 잉태하여 확산돼가는 예수그리스도의 나라.]

곱다. 우아하다. 짝짓다. 통과. 곱다. 또렷하다. 깨끗하다. 예쁜 것과 고운 것은 다르다.

관원들이 사도들을 놓아주자 사도들은 근심 중에 있는 일행에게 돌아와 그간의 일들은 알립니다. 소식을 들은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가운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감동하기 시작합니다. 그 감동은 성령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맛보는 전율이었고 그 감격으로 매우 힘 있는 기도를 시작합니다.

먼저 한절씩 요약설명해 드린 후 말씀을 정리합니다.

24절 하나와 27절을 보면 하나님 찬미에 이어 그리스도대적에 대한 탄원이 나옵니다. 세상의 마지막 소원도 예수님이시고 세상의 거친 돌도 예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즉 세상을 구원하실 유일한 소망 예수님을 세상이 가장 미워하고 배척한다는 사실은 인류역사의 보편적이며 멈추지 않는 흐름입니다.

 

28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7절에 나열된 헤롯과 빌라도와 이방인과 이스라엘백성이 합세해 예수를 몰아부쳐 해치는 것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구원의 과정임을 밝힙니다.

29절과 30절을 봅니다. 손을 내밀면 병이 낫고 표적과 기사가 예수님이름으로 일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사도들은 대적들 앞에서 주님의 권능이 자신들을 통해 드러나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신들은 그 제자라는 사실과 그를 믿어 누구든 구원받기를 간곡하게 기도합니다.

31절입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를 했더니 모인 곳이 진동합니다. 모인 모든 이들에게 충격을 주는 장면입니다. 사도들도 또 저들도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사도들에게는 확실한 증거와 힘과 위로요, 저들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지진은 하나님의 Signal 신호였습니다.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만큼 주시는 하나님의 표적은 우리가 깨닫지 못해 모를 뿐 오늘도 모두에게 풍성한 것을 믿기 바랍니다.

 

저들의 기도는

? 찬양으로 시작했습니다.

사람 사이에도 대화가 잘 풀리려면 먼저 상대방이 마음을 열도록 칭찬이나 좋은 화두로 만납니다. 인간이 태어난 목적 중 가장 중요한 하나는 하나님을 높여 경외하는 일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본래 높으시고 하나님보다 더 높은 어떤 것,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높으신 하나님을 더욱 높이 찬미하는 것이 하나님께도 우리에게도 기쁨이라는 것을 압니다. 모든 만유의 근원을 하나님께로부터 찾아 하나님의 높으심을 찬양함으로 우리의 기도가 더욱 하나님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게 됩니다. 저들은 대주재요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이시라며 창조주 하나님을 높이며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우리 인생들의 기도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봅니다. 또한 사도와 그 일행들은 출애굽 당시 그들의 조상이 이미 하나님께 올려드린 찬양으로 다시 하나님을 높임으로 오래전 언약으로 자기 백성 삼으신 하나님의 기억을 붙잡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셔서 당신이 하신 약속 앞에 철저하십니다.

 

저들의 기도는..

?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들어갑니다. 기본적으로 기도는 내 소원을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언약을 붙잡고 그 언약을 이루실 때 부족하나마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교회나 가정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사용하셔서 주의 영광을 드러내길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일 이상 행복하고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인생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좀 더 성숙한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자신을 구겨 넣는 일입니다. 왜 구겨서 넣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해서 종종 자신의 체질이나 취향과 처지에 맞춰보고 순종하려 합니다. 어찌 보면 실제 어울리지 않는 일이나 환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은 빈틈없으시고 신실하십니다. 어느 환자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제가 주님께 구한 것은 받지 못했으나 주님이 제게 원하신 것들은 다 주셨고 주님의 꿈을 제 안에서 이뤄가고 계시나이다. 감사합니다.” 왜 하나님을 우리가 오해합니까? 인간의 좁은 식견이나 지능으로 분석하려고 해서 오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의 계획은 우리가 다 납득하지 못하고 소화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과 몸과 생각과 모든 계획을 강제로 그 안에 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순종하고자 하는 성도는 일단 구겨지게 됩니다. 199699일 제가 헤르만 헷세의 기도라는 시를 보고 감동받아 제 기도문으로 편집한 것을 잠시 봅니다.

[하나님, 저로 절망케 하소서. 날마다 죽어가게 하옵소서. 미칠 듯 모든 서러움 맛보게 하시더니,

온갖 고뇌의 불꽃이 나를 핥을 때.. 갖은 치욕도 알게 하신 아버지. 이제도 내가 버티며 번져 나아감을 용납치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기어코 나의 모든 것 으스러질 때에는 귀 열어 듣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들아. 죽음에서 너를 건져낸 나 야훼의 손길이 정녕히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이루나니. 아멘 주여. 그렇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내 평생 주만 바라니이다. 할렐루야]

 

일행들은 성경에 이미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내용을 들먹임으로 하나님의 기억을 자극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셔서 숱한 언약과 교훈을 베풀어 놓으셨습니다. 다윗의 입을 빌려서 하신 말씀을 붙들고 현재 자신들이 당한 처지를 설명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간곡하게 구합니다. 저들의 탄원은 열방이 아무 소용없는 악한 계획을 꾸며 공연히 분노해 하나님이 기름 부은 거룩한 종 예수그리스도를 방해하려고 저렇게 혈안이 되어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주께서 정하신 계획가운데 과정이라는 것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무지한 자들로부터의 위협을 줄이시고 자신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주십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특별히 믿는 무리들이 기도하며 손을 들면 병이 낫게 해 달라고 간곡히 기도합니다.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촉구한 것이며 아울러 주 예수의 권능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들의 기도는,

? 믿음으로 응답받았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습니다. 믿고 모인 곳을 진동하게 하신 그 때 그 하나님은 시간 공간과 무관하셔서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 우리가 믿습니다. 지진보다 더 뚜렷한 증거로 우리의 마음 밭을 구원의 감동으로 흔들어 새 맘과 새 결단을 주실 줄 믿습니다. 지진은 분명한 응답의 신호였고 응답은 능력으로 즉시 나타나서 모두 성령이 충만해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의 특성은 공개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한 크고 놀랍고 복된 일을 어찌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복음은 생령,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시라 폭발력과 생명력이 막강합니다. 덮어두지 못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한낱 미물도 활동구역과 관계를 통해 종족과 지경을 넓혀 갑니다. 이런 생명체의 공통된 특징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 곧 사랑함으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생명주신 하나님 앞에서 사랑으로 생명을 누리는 것은 물론 생명을 주신 그 분을 찬미하며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는 믿음의 기도는 이미 응답받은 기도입니다. 금방 일렀듯이 내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을 구하고 그 소원과 뜻 안에 나를 강제해 들어가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 안에 재대로 들어가면 그 불이 우릴 태워 옛사람 확실하게 사라집니다. 그리고 거긴 주의 뜻만 환하게 밝히는 진리의 등대, 예수만 보일 줄 믿습니다. “국민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편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865년 노예해방을 승리로 이끈 남북전쟁의 영웅, 에이브라함 링컨의 당부였습니다.

 

사랑하는 개척동지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함께 특별히 전도에 관한 한 먼저 현재 우리들을 비롯한 믿음가족 여러분이 모두 성령충만 가운데 들기 바랍니다. 온전한 개인 신앙의 성숙이 전도에 앞서야 한다고 보기에 우리교회 설교는 항상 휴거와 같은 은혜보다는 우리자신의 내적성장에 관련된 할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양적성장은 내면의 성숙 뒤에 일어나야 합니다. 숫자부터 불리는 일은 우선은 좋은 것 같아도 필경 시험드는 일들이 많아집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이 땅의 삶, 잠시 지나는 육신의 순간, 약속대로 부활주님을 따라 영원히 죽지 않는 성도의 삶이기에 결코 아무렇게나 살 수 없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저와 여러분은 무엇보다 끊임없는 신앙성숙을 끝날까지 이뤄가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처럼 누구라도 잘 섬길 인내와 겸양의 덕을 길러야 합니다. 영적인 무장도 기도의 깊이와 함께 더욱 성숙해야 합니다. 주님께선 일손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 우리 교회의 앞길을 열어 가실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