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07월08일 주일예배설교<행 2:42-47.초대교회 신앙공동체>
[병원과 약국이 없어서 아픈 게 아니라 이미 관리가 안 되고 불필요한 낭비로 지친 내 몸에서 아프기로 결정된 여러 요인으로 백약과 명의가 소용이 없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지 말고 네 마음을 살피라”고 하셨다. 더 이상 문제는 환경이나 여건이 아니라 내 시각과 생각과 결단이다.]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24:49) 오순절의 성령임재와 폭발은 제자들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드디어 이름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베드로의 증언을 들은 사람들은 성령충만한 베드로의 힘 있는 설교로 인해 모두 진지한 얼굴로 마주보며 어찌할 줄 모릅니다. 이날 세례를 받고 구원받은 사람의 수가 삼천명이나 되었습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베드로의 설교로 거듭난 새생명공동체의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오늘날 교회의 원형인 초대교회에서 우리는 시대를 초월한 성령의 역사를 보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바람직한 교회상과 성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42절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초대교회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는,
1. 교회지도자의 교훈을 잘 받으며 화목으로 하나 돼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1) 사도의 가르침아래 있는 성도들을 봅니다. 교회교육은 세상교육과 다릅니다. 성령의 인도로 영혼의 생명과 양식을 공급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부모교육이나 제도권교육과 또래집단에서 배운 것은 대부분 교회에서 바르게 수정되고 개선돼야 합니다. 교회에서 놓치면 평생 교육의 기회는 거의 못 만나게 됩니다. 혹 있다면 쓰라린 경험을 통하여 세상에서 배워야 합니다. 잘 배우는 사람은 결국 잘 가르치게 됩니다. 교회의 본질은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는(마4:23)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3대사역중 처음 나오는 것이 가르침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가르침이 왕성해야 합니다. 잘 가르치고 잘 배우되 그 목표가 지식에 있지 않고 교회가 하나되는 연합과 사랑에 있는데 우린 나이를 아무리 많아도 스승이 필요하고 또 스승이 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돌을 던져도 금으로 받는 귀한 깨달음은 누가 받는 귀한 복입니까? 그건 기도한 자의 몫입니다.
2)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에 힘을 다했습니다. 성도는 세상 끝 날까지 외롭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선 비록 아픔과 외로움이 있어도 교회에서는 위로 주님으로 인하여 그리고 옆으로는 지체간의 진실하고 화목한 교제를 통하여 풍성한 나눔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혼자가는 길은 힘들고 지쳐도 함께 하는 삶은 힘이 납니다. 인간은 다분히 사회적이라 관계에서 모든 삶의 근거를 찾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릴 만드실 때 이미 부어주신 사랑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삶의 근원적인 능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교제와 관계의 행복이 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제는 자기개혁과 희생이 따라야 비로소 행복을 느낄 자격을 얻습니다.
본문에서는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합니다. 영적인 성도의 교제에는 떡뿐 아니라 함께 기도함이 기본입니다.
식탁을 나누는 식탁교제와 기도를 함께 하는 기도공동체는 그 연합과 일치에 있어서 사람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그 이상의 능력과 기쁨을 갖습니다. 여기에 떡을 뗀다는 말은 상당히 많은 것을 품고 있습니다. 단순히 식사를 같이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우리는 성찬과 소유의 나눔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사이에서 화목과 평화가 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몫이 자기에게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손실감입니다. 행불행의 격차는 바로 이런 자기 몫에 대한 시각의 문제인 것입니다. 잠언에서 말씀한 자기 손의 열매가 자기 손에 돌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대단한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서로 주안에서 교제하면서 떡을 뗀다는 것은 열개의 수고에 열개의 내 몫을 정확히 따져 소유해야 행복을 느끼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주안에서 떼는 떡은 성찬식에서 그 근본사상을 봐야 합니다. 주님이 떼어주신 떡과 포도주는 죄로 죽어야 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주님의 몸과 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도간 교제의 떡은 상대방을 위해 희생과 수고와 삶의 한쪽을 떼어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때로 죽음과도 같은 억울함일 수도 있고 일방적인 손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하셨듯이 그것은 주안에서 반드시 생명의 능력과 영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3) 오로지 기도에 힘썼던 초대교회입니다. 성도의 교제에 기도가 깔리지 않으면 그것은 세상의 만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도없는 대화는 결국 죄를 다스리지 못해 수근거림과 비방과 흉보는 재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래서 오직 기도에 힘썼습니다. 43절입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2. 기도에 힘쓴 결과 주님의 기적과 역사가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성령의 역사로 기사와 표적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물론 뜨거운 기도의 결과입니다. 기도 없는 곳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일도 없고 부흥도 없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움직이셔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놀라운 일들이 증거되기 시작합니다. 44-45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선 일어날 수 없는 유무상통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성도들이 다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거주공동체부터 이뤄집니다. 다음엔 물건을 통용합니다. 공동체 안에 의식주를 한데 묶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 소유에 대한 공동개념으로 네 것 내 것을 가리지 않습니다. 특별히 모든 물질을 함께 나누기 시작했는데 이는 오직 성령의 감동만이 이뤄내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과거 제정러시아시대에 러시아정교회가 지나친 풍요로 타락하자 마르크스와 레닌에 의한 공산주의가 바로 이 사도행전2장 44-45절의 공동체모습에서 착안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기엔 성령이 안계시고 인간의 설계와 의지만 있었고 인간의 의지는 그 결국이 언제나처럼 탐욕으로 점철되는 것을 역사가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자도 없고 거지도 없는 지상낙원을 꿈꾸던 공산주의는 결국 70년 만에 무너지고 나라전체가 노숙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91년 4월에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바 있는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재건.쇄신)는 하나님없는 평등분배가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거한 일입니다. 각 민족으로 분리독립된 국가들은 가난에 쫓겨서 귀한 딸아들들이 멀리 타국에 나와 몸을 던져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46절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 모이기에 힘을 쓰는데 그 마음이 통해 날마다 행복합니다.
한 밥상에 둘러앉아 식탁공동체를 이룹니다. 식구라는 우리나라 말은 가족을 식탁공동체로 표현함으로 극히 성경적입니다.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는 인생이 그 먹음의 현장에서 하나되는 정감을 깊게 하는 것이 식구란 단어입니다. 47절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5.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그 입술에 찬미예수가 끊이지 않는 자들에게 세상의 칭송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바른 믿음은 주위의 선망이 됩니다. 오늘 날 우리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찬양과 고백이 현실적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는데 대한 아픔이 이 땅 모든 교회에 있습니다. 신행일치만 된다면 세상의 진정한 마지막소망은 예수그리스도임을 세상이 먼저 고백할 것을 확신합니다. 예수를 전달해야하는 성도들이 예수전도의 가장 큰 걸림돌인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부족한 지상교회의 현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늘 고백하는 주기도문에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정녕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뤄지는 한곳을 주님께선 교회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십자가에서 피로 값주고 사신 것입니다. 이제 피값으로 사들인 저와 여러분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소유입니다. 이제 우리가운데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이기에 힘쓰고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과 하니님의 교회를 잘 섬기고 있는지 한번 자문해 봐야 합니다. 그것은 본문말씀처럼 교회의 설교와 가르침을 잘 들어 순종하고 모이기에 힘쓰며 기도에 온전히 헌신하고 소유보다는 관계에 마음을 다함으로 가능한 일들입니다.
성도여러분. 내가 내 일을 하면 인생은 항상 피곤합니다. 그러나 내가 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음에서 살리신 주님의 일을 힘써 하고 주님이 대신 내 일을 한다면 피곤한 인생 변하여 구원의 감동을 노래하는 참으로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절망가운데에서 혹은 환락가운데 허탈한 미소가운데 처절한 눈물과 회한(悔恨) 가운데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여나 지푸라기하나라도 잡을까 싶어 안보는 척 우리를 눈여겨서 봅니다. 그러다가 대개는 이내 실망하고 돌아섭니다. 마지막, 이 세상이 기대하던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가운데 찾고 싶어 지친 눈을 주시하다가 이내 실망하고 주저앉는 저 세상의 많은 가여운 영혼들 앞에 우리들은 얼마나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가? 우리 모두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마땅히 갚아야 할 복음의 빚은 세상에서 죄에 찌든 과거의 우리와 같은 저들에게 이제는 갚아야 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저들 심판의 피 값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저들에게는 멸망을 위한 심판이요, 우리에겐 직무유기로 인한 부끄럼이 있을 것입니다. 기쁨으로 그 일을 함으로 맡겨진 소임을 다할 때 주님이 우리 삶에 크고 작은 것들과 자녀들을 반듯하게 챙겨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아버지하나님. 초대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기도했고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행사가 아니라 주의 영이 충만한 결과였습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까지 한영혼, 한가정 전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주님 앞에 기도의 잔을 채우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주의 음성을 구별하여 능력있는 전도활동, 기쁨과 칭찬이 넘치는 전도활동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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