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6.24.주일예배<눅2:25-35>. 구세주를 갈망하는 인생들>
[나는 성탄절에 동의하지만 그날만 성탄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분을 기리고 사모하며 간절히 원하는 순간마다 우리 안에서 늘 새롭게 일어나시고 활동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365일 눈 뜰때마다 성탄의 감격을 누구든지 맛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그날입니다. 설교가운데 성탄의 기쁨으로 새로운 날의 시작, 시온의 새날이 시작될지어다.]
누구나 믿는 이에겐 그 내면에 예수님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다른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이는 아기예수님 방금 태어나셨고 어떤 이는 한창 활동 중인 예수님이시고 어떤 이는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십자가에서 내려와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찾아오신 다시사신 예수님, 천국과 음부의 열쇠를 쥐신 예수님이신 줄 믿습니다.
배가 고프고 가진 게 없어서 쓰러지는 게 아닙니다. 꿈과 희망이 없어서 쓰러지는 겁니다. 우리 안에 어떤 모습이시든 주님 이 땅에 오심을 인하여 온 인류에게 소망의 빛이 비췄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분명한 희망, 이뤄질 소망과 꿈이 기다린다면 결코 지쳐 쓰러지지 않을 것이고 설령 힘겨워 무릎을 꿇더라도 속히 일어설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꿈입니다. 인간들의 모든 다른 꿈은 죽으면 끝나는 허망한 것들이지만 주님을 향한 꿈은 살아생전에도 우리들의 희망이고 죽어 저 천국에선 더욱 큰 희망입니다.
예루살렘에 경건하고 의로운 한 노인이 있었는데 시므온이라는 이 분의 꿈은 이스라엘이 품은 민족적 메시아대망의 전형적 희망이었습니다. 남다른 꿈을 갖고 늙어 노인이 돼도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 특별해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었다고 본문이 밝힙니다. 그러면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구원의 기쁨과 은혜가 내리는지 살피며 주의 음성 듣기 원합니다. 26절 함께 읽습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구세주를 갈망하는 인생들, 즉 택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1. 경건하여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유대민족은 메시아대망사상 하나로 버티는 민족입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갖은 핍박과 고통 속에 살아도 그들을 건재하게 했고 하나로 뭉친 구심점은 언젠간 반드시 약속을 따라 민족의 큰 구원주가 나타난다는 믿음입니다. 시므온은 특별히 성령 충만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남과 다른 경건한 시므온에게 성령이 항상 그 위에 계셨고 성령께서 그 마음을 살피셔서 간곡한 기도를 들어 주셔서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성령의 고지를 받은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갔습니다.(26-27)
종교는 인생을 밝혀보지만 창조주를 만나지 못하고 기독교신앙은 모든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를 만나게 합니다.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시므온의 소원은 땅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꿈과 연결돼 그 꿈에 이끌림을 받은 결과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꿈꾸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간절히 주님을 구하고 만나려는 자에게 주님은 속히 찾아오셔서 당신의 자비로운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시므온에게 함께 한 성령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신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 즉 암울한 이스라엘의 당시와 미래 그리고 성전의 부패함을 평생 보면서 희망이라곤 옛적 선지자에게 약속하신 구세주가 오신다는 것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위해 날마다 기도로 믿음의 공을 쌓던 늙은 시므온, 그에게 성령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경건한 노인 시므온은 죽기 전에 반드시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는 성령의 고지, 그는 최고의 복된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이제 시므온은 죽기 전에 메시아의 탄생을 봄으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죽음과 무관한 영생의 삶을 시작한 줄 믿으시면 아멘입니다.<부활신앙> 저와 여러분. 오늘 말씀이후에 그리스도에 관한 한, 하나님의 구원 앞에서 그리고 세상과 교회 앞에서 자손 앞에서 특별히 헌신과 사역 앞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는 생애가 지금 시작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아멘.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어코 눈으로 본 시므온의 경건과 기도의 능력, 오늘 우리가운데 임할 줄 믿습니다. 30-32절입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시므온의 축복은 어떤 선포였습니까?
2. 예수탄생은 하나님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구원은 이방의 빛과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1) 아기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됐다는 뜻입니다. 시므온은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아가 태어나 지금 성전에 헌신례를 드리러 강보에 쌓인 채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그 아기를 안고 축복합니다. 그 축복의 내용인즉 자신이 안고 있는 아기예수는 구원의 임재요,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만민이라 함은 믿는 모든 자들을 말합니다. 구원의 보편성, 즉 믿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아기예수로 인하여 이미 시작된 것을 시므온은 기뻐 축복기도를 감사로 올립니다.
2) 하나님의 구원은 이방의 빛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방의 빛이요,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한없는 영광입니다. 예수로 인하여 믿음의 백성이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말씀대로 반드시 주의 영광으로 증거될 줄 믿기 바랍니다. 과정은 조금씩 달라도 결론은 주의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시는 주님을 찬송합니다. 34-35절 함께 읽습니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예수의 구원사역은,
3. 비방의 표적이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주장합니다.
1) 세상은 예수그리스도를 미워합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생사권과 흥망권세를 한손에 쥐신 예수님과 그의 몸된 교회를 어떤 이유로든 미워하고 비방, 핍박합니다. 그들에게 교회만은 좌와 무관해야 하고 교회만은 순결해야 하고 교회만은 시대에 물들지 않아 지고지순, 고품격의 행위와 선포와 양심의 발현이 있어야 한다는 본능적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생과 진리를 선포한 구원의 메시지가 아직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결국 교회로 오게 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럼에도 죄악과 세상을 주장하는 악한 영은 영안이 닫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도구로 삼아 교회를 비방하고 조롱하고 대적합니다. 시므온을 통한 축복과 예언은 오늘 모든 교회가 갈 길을 성령께서 이미 알려준 것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의 청년시절 사울은 다메섹을 가던 길에서 예수님의 영을 만납니다. 그때 주님 말씀은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교회핍박은 예수핍박입니다. 예수께서 비방의 표적이 되는 것은 곧 교회가 장차 비방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잘해도 비방을 하니 교회들이 본이 되지 못하면 그 비방과 조롱은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비록 비방의 표적이지만 비방받지 않도록 극히 조심하고 낮아져 주의 사랑으로 믿음의 덕을 더해 갈 때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2) 비방의 표적이 되신 주님이 인간의 흥망성쇠를 손에 쥐셨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요1:5절에서 말합니다.
깨닫지 못하고 대적하는 인생들의 생사여부가 사실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은 이제 상식입니다. 살고 죽고 흥하고 망하고 병들고 낫고 하는 모든 이 끝과 저 끝이 다 주님의 손안에 있는 것 믿습니다. 끝으로 35절입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위대한 헌신자, 예수를 몸으로 낳은 마리아의 찌르는 듯한 장차 닥칠 고통은 무엇을 위함이었습니까?
4. 마리아의 아픔은 십자가의 고난을 함께 하는 성도의 고통입니다.
마리아는 메시아가 자신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시는 영광을 한 몸에 입었으나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수반하는 것인지 알지 못 했습니다. 골고다 십자가의 크고 놀라운 대속사역을 알았다면 그는 아마 사양했을 것입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십자가아래에서 그 누구보다 아픈 마음으로 오열했으나 그 십자가고난이 인류를 구원하는 역사적 과정인 것도 역시 알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알든 모르든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지금도 변함없이 진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떤 고통도 구원에 필요하시면 기꺼이 사용하십니다.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주셨습니다. 마리아의 고통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자기가 낳은 아들이 바로 눈앞에서 극심한 고통 중에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그 어머니 마리아는 인류의 대속사역에 슬픔으로 동참하는 영광을 입었습니다. 마리아처럼 우리도 주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영적감각입니다. 그 아픔은 주님이 심판권을 받기 전 거치는 십자가의 통증에 성도가 동참하는 갸륵하고 귀한 일입니다. 세상 힘든 일을 만날 때 항상 주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매우 큰 힘이 되고 유익할 줄 압니다.
오늘 성탄절에나 듣는 주님의 탄생에 대해 들었습니다. 우리 자신이 받았고 우리도 시므온처럼 죽어도 여한이 없는 가장 복된 소식을 눈으로 보았으니 오직감사 찬양 아멘, 인류에게는 거듭난 새 생명을 향한 출발의 기회요, 교회에는 사망을 이긴 영생의 확고한 선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매일 매일이 성탄절이기 원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선물은 복음입니다. 크고 놀라운 소식 예수 다시 사셨네. 부활의 기쁨은 죽음을 전제한 아픔으로 시작되었고 죽음은 오늘 우리 안에 예수님 오신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수탄생을 기뻐하십시다. 골고다 죽음의 통증에 참여합시다. 비록 찢어지는 고통이라도 그것은 영광의 부활로 가는 거룩한 길목인 것입니다. 오늘 성탄설교로 인해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기뻐하고 그 기쁨 변하여 구원의 감동되어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힘든 세상을 넉넉히 이기게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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