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07월01일 주일설교 <고전 10:1-4. 반석에서 온 신령한 음료와 음식>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인간은 어려서 보고 들은 대로 형성돼 가는데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져가나 보니 생각과 주변의 인격들과 음식이 상당한 영향을 준다. 음식은 오장육부를 덮어 몸을 주장하고 주변의 인격들은 보고 들은 대로 생각하게 한다. 누구나 자신의 모습에 만족치 못할 때 더 나은 후대를 위해 어떻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뇌하는 것이 한 인간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사도 바울은 3차전도 여행길에서 고린도교회의 여러 가지 소식을 듣습니다. 철없는 자녀를 향한 애틋한 마음으로 에베소에 머물며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 목양서신을 보낸 것이 고린도서입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적어 내려간 바울사도의 서신은 구구절절 주님 사랑 그 아픈 마음이 가득합니다. 교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도 많은 주요지침이 담겨있어서 한마디도 놓칠 수 없는 귀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반석에서 온 신령한 음료와 음식”입니다. 바울사도는 과거 모세가 광야에서 백성들을 인도할 때 반석에서 물을 내어 신령한 물을 먹었던 일과 하늘에서 내린 신령한 음식, 만나를 상기하면서 그리스도의 실존과 그 의미를 깨우고 있습니다. 오늘말씀이 성찬 때마다 기억되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멕시코 어느 큰 시장 한구석에 인디언 노인이 양파 스무줄을 놓고 앉아있습니다.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한 줄에 얼마요?” “10센트요.” “세 줄엔 얼마요?” “30센트지요.” “많이 사도 그 값이네. 스무 줄 다 사면 얼마에 해 주시겠소?” “스무 줄을 한사람에게 다 팔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물건을 파는 일보다 더 중요한 시간을 보냅니다.” “더 중요?“ “이 시장을 사랑하고 북적대는 사람들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햇빛과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하고 있는 중이요, 이 물건이 다 팔리면 내 하루는 그걸로 끝입니다. 내 삶이 짧아지는 건 싫소.” 인디언노인은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값비싼 치장과 보석이 멋진 게 아니라 이런 마음이 멋진 것입니다.
삶은 희비쌍곡선의 시이소 게임입니다. 한번 올라오면 반드시 한번 내려오고 내려오면 다시 올라갑니다. 내려갈 때마다 올라갈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십니까? 고통은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살아있기에 당할 수 있는 삶의 애환들은 사랑하기에 당하는 문제들입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저와 여러분은 아직 사랑할 대상과 사랑할 자격과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가운데 살아계신 그리스도 우리주의 영이 여러분 안에 깊은 감동과 삶의 요체요, 주제로 다가오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4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애급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여 황량한 광야로 나왔습니다. 사방천지를 둘러봐도 200만 명을 입히고 먹이면서 사막 길을 간다는 것은 사막길이 아니라 사망길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불러내신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허허벌판 사막 같은 인생길에서 영원히 기념돼야 하는 하나님의 구원증표입니다. 주님 재림하는 순간, 그 전까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여전히 우리를 외롭고 서러운 나그네 길에서 하나님의 동행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믿음의 조상들이 광야를 지날 때 신령한 음료와 음식을 취하는데 이는 그들을 따르는 반석으로부터 마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4절 뒤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반석, 곧 우리를 따라다니시며 보호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마신 신령한 음식과 음료는?
1. 바위를 쪼갠 샘물과 아침마다 내린 만나였습니다.
1) 바위를 가르고 솟아오른 생수입니다. 모세는 바위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어 백성들을 먹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으로 인해 화가 났습니다. 바위를 쳐서 분과 혈기를 드러내고 맙니다. 바위가 갈라지면서 맑은 생수가 솟았는데 본문은 그때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변함없이 그들을 따라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인해 결정적인 순간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요1장 서두는 그리스도의 실존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증거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생명이며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인데 빛이 어둠을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존재는 시작도 끝이 없는 만유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항상 백성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신 광야길 40년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이렇게 생명의 말씀, 단비로 마른 가슴을 적셔주십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누울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 둘 곳이 없어서 메마른 심령들 왜 허전합니까? 주님의 영원한 생명과 몸을 버리고 가게 될 영원한 그 나라의 확신이 부족하니 배불리 먹어도 따듯하게 누워도 언제나 허전한 것입니다.
믿음 없이 모세를 규탄하는 백성들의 철없는 아우성이 반석을 때리게 했습니다. 맑은 물이 치솟았습니다. 우리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백성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 그 피를 우리와 우리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27:25) 반석이신 그리스도, 백성들의 조롱과 헬레니즘의 채찍으로 십자가에 올라 그 몸과 휘장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생수의 강이 되셨습니다.
본문은 반석되신 그리스도의 동행을 증거합니다. 다섯의 남편을 거쳐 가여운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겠으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의 영생을 위하여 지팡이에 맞아 쪼개진 반석이 되셨습니다. 갈라지고 부서져 그 안에서 샘솟은 영생수는 하나님의 눈물이고 사랑입니다. 영원한 생명이요, 빛이요,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2)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입니다. 정착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막여정에서 하나님은 아침마다 새벽이슬처럼 내린 쌀보다 조금 큰 만나를 수북이 쌓아주셨습니다. 신령한 음식입니다. 그 땅에 들어가 땅을 파고 씨를 심어 수확하자 만나는 그쳤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나라 들어가 천년왕국에서 왕노릇할 때 성경은 더 이상 설교되지 않습니다. 환상도 폐하고 예언도 폐하고 각종 은사도 폐할 것이지만 사랑은 영원합니다. 찬송도 영원합니다. 생명도 기쁨도 영원합니다.
음식은 몸을 위하여 있고 말씀은 영혼을 위하여 먹어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성찬식 때마다 듣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성찬식의 떡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몸이란 삶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유기체입니다. 그분의 몸, 즉 그리스도의 삶을 먹어 취한다는 것은 성도의 삶에 그분의 생명과 사상과 사랑과 권세와 힘, 그리고 분노와 향기가 침투돼 그분의 정체가 드러남을 말합니다.
신령한 음료와 음식, 그것은 생수와 만나로 증거된, 1)진리의 말씀과 2)행동하는 신앙을 일컫는 성도의 길,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의 실현입니다.
본문 3-4절 끝으로 한 번 더 읽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성도가 늘 마시고 먹어야 하는 신령한 양식을 반석으로부터 취해야 한다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어떻게 먹어야 함을 말합니까?
2. 그리스도로부터 먹고 마셔야하는 영적 생명의 풍성입니다.
본문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 그리스도이고 또 하나는 그렇게 늘 밀착, 동행하시는 주님 그리스도로부터 취하는 양식입니다.
1) 그들을 따라는 신령한 반석입니다. 문자대로 본다면 믿음의 백성들을 보호하시되 엄마처럼 가까이 따라다니시는 그리스도는 성령의 충만으로 성도의 든든한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반석 그리스도위에 뿌리를 내린 사람은 큰비와 큰바람이 불어도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반석 안에 끊임없이 흐르는 생수를 잊지 않을 때 늘 든든한 마음, 평강을 유지합니다.
2)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취하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영적인 공급이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삽니다. 하루라도 영적공급이 멈춘다면 영혼의 삶과 건강에 보이는 손상을 입게 됩니다. 잠시 한순간도 주님의 말씀과 사랑과 그 은혜가 없인 버틸 수가 없는 것이 성도의 삶이고 그것을 느낀다면 그는 지극히 건강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를 조금도 떠나지 않으시는 보혜사, 예수의 영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가장 분명하고 든든한 반석이십니다. 주님의 손을 잠시도 놓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잡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릴 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먹고 마심, 즉 생존의 여하는 반석으로부터 흘러내리는 하늘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열어주신 이 귀한 몸과 삶과 영혼의 길에 최선을 다함으로서 주님께 반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 반응은 먼저 내가 주님의 구원으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고백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찬송과 기도로, 순종과 행함으로 올려지는 신앙고백적 삶은 생명부터 관계와 자손과 믿음에 이르기까지 내 것은 하나도 없다는 청지기의 정신으로부터 아름답게 드러납니다. 우리를 떠나본 적이 없으신 신령한 우리의 반석,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되는 모든 삶의 양식이 다시 그 분 앞에 드려지는 헌신, 이는 생명의 순리적인 순환고리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의 주제와 작은 줄기를 정리합니다.
성도는 바위를 갈라 솟아오르는 생수와 이슬 같은 만나로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바위를 때릴 때 백성들을 향해 모세는 분노했지만 그는 징계를 받아 가나안목전에서 죽었습니다. 태초로부터 그리스도께선 믿는 자의 신령한 반석으로 계셨습니다. 오늘 그리고 이후 영원에 이르기까지 주님은 우릴 떠나지 않으시고 그의 손을 통해 우리의 필요한 영과 육의 모든 필요를 흔들어 넘치도록 베풀어 채우십니다. 반석을 거치지 않고 공급받은 풍성은 반드시 부패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끝없는 은혜, 거저주시는 채우심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스도로 인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 그의 향기가 막을 수 없게 나타나 삶으로 온몸을 불살라 번제로 드리는 산제사, 이젠 우리의 몫입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아시는 주님이시오니 주여. 우리가 아직 천지를 분변치 못할 때 하늘 문을 여시고 신령한 만나와 생수로 찾아주셔서 우리로 주님의 기쁨을 삼으신 우리주님 그리스도예수만이 우리의 모든 것 되시나이다. 우릴 받으시고 기쁨과 영광의 지성소삼아 주옵소서. 아멘.
'주일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07.15. 주일예배<시85:8-13. 끊임없는 구원과 화평이 넘치리라.> (0) | 2018.07.15 |
---|---|
2018년07월08일 주일예배설교<행 2:42-47.초대교회 신앙공동체 (0) | 2018.07.09 |
2018. 06.24.주일예배<눅2:25-35>. 구세주를 갈망하는 인생들> (0) | 2018.06.24 |
2018.06.17. 주일설교<겔37:11-14.너희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리라.> (0) | 2018.06.17 |
2018.06.10. 주일예배<시107:23-32.고난의 바다. 소망의 항구> (0) | 2018.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