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0. 주일예배<시107:23-32.고난의 바다. 소망의 항구>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3대명제를 성경 밖에서 찾을 때 거기가 함정인 것을 알기까지 우리는 무수한 것들을 허비하면서 달려왔다. 이제는 길 되신 예수께서 우리의 진리와 복음이신 것을 알게 하셨으니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아도 주를 위해..아멘.]
바벨론에 끌려가 70년 동안 심한 학대를 받으며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저지른 범죄를 깨달아갑니다. 70년 포로기간 중에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위로하면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사1:21-22)” 통탄합니다.
한편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며 속히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듣고 받아 영혼의 양식으로 삼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정확무오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 글짜 한 획, 토씨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먹어 영혼과 삶에 큰 능력이 되길 바랍니다. 성경에 실린 모든 사건 안에는 우리들이 듣고 새겨야 할 귀한 진리들로 가득합니다. 이스라엘역사와 당시 선지자들의 음성이 오늘 우리들과 무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70년 포로생활과 그 원인결과는 곧 우리들의 신앙여정과 그 신앙을 통한 인생전체를 정확하게 조명하는 빛이요, 가늠하는 정확한 잣대가 됩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고난의 바다, 소망의 항구입니다.
70년 암흑기 고난을 끝내고 바벨론에서 돌아와 자유를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본 찬송시는 인생길을 바닷길로 말하고 있습니다. 망망대해를 떠가는 한 척의 작은 인생 한척을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협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본문이 말하는 인생,
1. 인생은 고통의 바다를 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일가 70명을 이끌고 요셉이 다스리는 애급에 도착했을 때 바로왕이 나이를 묻습니다. 그때 야곱의 대답은 인생이라는 것을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입니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들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늙은 야곱이 말한 인생은 나그네길이요, 그 길은 험악한 세월입니다. 인생을 바다 뱃길로 노래한 본문을 더 세밀하게 보려면 우리는 바울사도의 로마행 뱃길을 살펴봐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직접 큰 풍랑을 겪으면서 여러 가지 정황으로 우리 가는 길을 말해 줍니다. 행27:14-15절입니다.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에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야곱과 바울이 말한 험한 나그네길,
1) 밀려오는 광풍이라는 난제, 불행에 쫓기는 인생입니다. 본문시편27절은 “인생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면서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배 멀미에 취해본 사람들은 쉽게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인생의 심한 풍랑, 불행과 고난은 판단력과 살아야 할 의미조차 잃고 버티기만 해도 승리입니다. 혼돈 속에 빠짐으로 인해 자살도 서슴치 않는 것은 죽어 고통의 현장에서 사라지는 길 외 어떤 다른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간신히 피해 도망쳐도 진정한 고민은 길이 안보여 달아날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살할 권리조차 빼앗긴 사람들, 죽고 싶어도 처자식 걸리고 늙은 부모로 죽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겪어야 하는 고통과 수치는 배멀미처럼 태어나지 않은 자가 부럽다는 욥의 고백을 하게 합니니다. 중국시인 고은은 인생을 그래서 고해, 고통의 바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일지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간”다고 함으로 모세도 인생을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했습니다. 반가운 소식보다는 어두운 소식이 더 많은 세상입니다. 종종 전화벨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인생들. 또 뭐야?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협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쉬쟎고 파도처럼 다가오는 사사건건, 우리를 편하게 놔두질 않습니다.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인생은 그야말로 어지러운 시이소 타기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으로 고생하게 함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애3:33절 말씀은 어찌된 것인가? 인생은 하나님의 실패작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시107:28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본문, 본 구절이 말하는 고통,
2. 고통은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고 부르짖으매 하나님께 구원받습니다.
그 부르짖음으로 고통에서 구해내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울부짖게 한 고통이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계기가 되게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고통이라는 풀무불에 던져진 인격마다 전혀 새롭게 변화받고 새로운 삶을 추구하게 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이스라엘은 70년간의 극심한 민족적 고난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더욱 부패하여 방탕한 음란으로 추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택한 백성이 갈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셨기에 징계하셨고 부르짖으니 구하신 것입니다. 에덴에서 타락한 후 인간은 끊임없는 부조리와 오류 속을 헤매며 인류의 역사를 피로 물들여 가고 있습니다. 에덴의 범죄는 그러므로 인생을 고통의 바다로 몰아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죄 속에 죽어가는 가여운 인생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결국 제사를 드리게 하심으로 용서하기로 하셨습니다. 제사는 다른 말로 “부르짖음의 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시81:7a). 본서 시107편 6절에서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다”고 했고 12절에서는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다”고도 했습니다. 즉 성경이 밝히는 고통이란, 교만한 백성을 부르짖게 함으로서 고통에서 구할 때 바른 길로 가게 하시며 마음을 겸손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인생들의 문제는 하나님 없이도 너무 강하고 자신만만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고통으로 부르짖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음조차 들으시고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신 이유는 다름 아닌 그분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고통에서 구하실 뿐 아니라 찬송자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 찬송은 영원을 향한 노래입니다. 받은 구원의 감격을 누르지 못해 터져 나오는 환호입니다. 30-31절입니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고통스러운 항해,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3. 고통의 부르짖음이 변하여 기쁨의 찬송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목적으로 존재하시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됐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가 하나님을 높여 찬송하도록 만드셨고 그 창조본래의 목적에서 멀어진 것을 죄라고 성경은 정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잘라내고 하나님께 돌아와 주신 복을 다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주님 손에 잡히면 주님의 목적에 이르는 과정일 뿐 결코 파멸의 시작이 아닌 것입니다. 32절은 “백성의 모임에서 그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그를 찬송할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태어난 후에는 최상의 복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고 다음엔 그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 최선은 멤버쉽을 잘 지도하는 리더쉽, 장로, 집사, 권사가 되는 일입니다. 본문은 고통 중에 부르짖어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을 어떻게 찬송하게 하신다고 합니까? 백성의 모임에서 하나님을 높인다고 했습니다. 장로들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9-30절입니다.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가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부르짖게 하셔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그들이 인도되는 곳은 어디입니까?
4. 소원의 항구, 평온함과 기쁨이 넘치는 곳입니다.
기쁨의 찬송은 부르는 곳마다 평강을 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평과 권세가 선포되는 곳 그리로 고통에 부르짖던 백성들을 하나님이 인도해 내십니다. 70년간 바벨론에 잡혀가 짐승처럼 울부짖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디어 그 고통을 통하여 회개했고 회개한 자 주님이 기뻐하셔서 평강의 항구, 찬송의 항구, 기쁨의 항구, 그 소원의 항구로 인생이라 부르는 우리들의 배를 인도해주십니다. 깜깜한 바다 한가운데 죄로 눈이 가려 헤매던 영혼들, 그리스도께서 밝은 등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소망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70년의 포로생활을 이제 더 이상 징벌과 재난이라는 이름아래 묶어 두지 않아야 합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불순종하고 부패하면 사흘 길을 40년 사막길로 바꿔 훈련하시고 70년의 포로로 이웃나라에 팔아서라도 바른 하나님의 나라와 자녀 삼으시는 우리 아버지십니다.
그 앞에 한없는 찬송과 영광과 감사의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범죄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이 고통하게 하셨고 그들이 회개로 부르짖을 때 구원하셔서 소원의 항구 기쁜 노래의 항구로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 이제는 하나님 외에 어떠한 것에도 다시는 노예로 사로잡혀가지 않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르짖어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가 세상과 육체와 죄악으로부터 풀려나 영생과 천국을 보장받은 소원의 항구 예수그리스도의 품에 안긴 것입니다.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 소원의 항구에 방주의 닻을 단단히 내리고 주를 향한 노래가 개인마다 가정마다 직장마다 그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기도합니다. 소망의 항구에 내린 닻줄, 영원한 생명의 닻줄 되신 그리스도를 찬송하나이다. 구원받은 너희는 영생의 닻줄 그리스도를 찬양할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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