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05.27. 주일설교<출34:5-9. 인자와 진실의 하나님>
모세의 첫 돌판은 아론의 금송아지숭배로 내던져 부서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깎아 만든 돌판을 통해 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들의 초심을 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식전이라는 시간과 혼자 올라오라는 말씀에서 예배를 준비하는 경건의 마음과 하나님과의 일대일관계, 예배라는 시공간의 모든 정결한 현장을 보게 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구름가운데 내려오실 때 그 구름의 의미를 기억합니다. 구름은 비를 가득품고 비는 온갖 생명을 준비시킵니다. 그래서 인생에 구름이 끼면 그 근심걱정 뒤에는 반드시 새로운 복된 소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 잠은 죽음과 한가지이며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잉태를 예비하는 밀알 하나의 여정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비가 주는 풍요는 언제나 때에 따라 필요한 그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맑은 날만 있지 않고 흐린 날과 비를 주시고 사막과 습지, 가뭄과 장마, 추위와 더위를 골고루 주시는 주님을 찬송합니다.
본문 5절을 보면 모세의 손에는 돌판 두개가 들려 있는데 구름가운데서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그 거룩하신 이름을 선포하고 계신 장면으로 들어갑니다. 선포한다는 것은 낭송하며 선언하는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사의 집행입니다. 거듭 일러드리기는 하나님의 선포는 창조주의 일방적 주권행사기 때문에 피조세계의 어느 누구와도 타협하거나 상의하지 않습니다. 선포자체로서 영원한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6-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오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친히 밝히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 자비하시며 은혜가 풍성하고 노하기를 미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자비와 은혜가 언제나 넘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그분은 사랑하심으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이 부분에 특별히 개인적인 깊은 묵상이 있기 바랍니다. 이 묵상이 풍성한 자마다 성령이 충만하심과 땅이 기름질 것입니다. 사랑하심으로 존재하시는 분, 사랑하심으로 살아계신 분,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 앞에 수백 번 강조해도 부족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뭔가를 자꾸 더욱 더욱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넉넉히 주어서 자녀가 기쁘면 결국 누구의 행복입니까? 부모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주님의 공급으로 다른데 손 내밀지 않고도 충족하고 즐겁게 살아가며 하나님을 공경하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2) 노하기를 미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 진폭이 깊고 커서 그 앞에 견딜 자가 없고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길게 참는 분입니다. 그리고 계속해 말씀으로 권고하시고 상황으로 타이르십니다. 마음을 돌이키고 징계가운데 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오래 참으심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오래 참으실 때 어리석고 생각이 짧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거나 일하지 않는다고 착각합니다. 죄로 타락한 자들이 영적으로 죽어있으니 하나님의 실존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신 분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없는 듯 오래 참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정체성 그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2.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십니다.
인자는 천대까지 베풀고 아버지의 악은 3-4대까지 보응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선언의 진의를 우리는 압니다. 1000과 3-4 대의 비율을 무엇을 말합니까?
1,000 對 3∼4, 결코 비교를 해서는 안 될 중요한 선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인자하심이 죄를 용서하심에 있어서는 거의 무한대이지만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치 않되 아비의 죄를 지극히 짧게 끝내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1) 죄는 용서하십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천대에 이르도록 인자를 베푸신다는 것은 그 인자하심이 무한대임을 의미하고 있어서 어지심이 끝이 없으신 하나님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 인자하심으로 죄악과 과실을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뒤에 나타난 말씀은 형벌 받을 자가 치를 죄의 대가는 결단코 어물쩍 넘어가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떤 것이 용서받을 죄이며 어떤 것이 결단코 면죄 받지 못하고 보응 받아야 할 죄인지 우린 성경을 통하여 잘 배워야 합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죄 자체보다 죄를 알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교만의 죄입니다.
“이 죄는 용서받을 수 없어. 난 죄로 죽을 수밖에 없어. 이 죄는 하나님도 용서하지 못하시지.” 죄를 오해하는 무지입니다. 겸손한 것 같은데 실은 무한대적인 용서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죄임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죄용서는 구원의 하나님이 갖는 본질적인 사랑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심으로 죄에는 희생제물이 필수임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진리를 다시 십자가에서 완성하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그리스도로 끝내셨습니다. 이제 죄 용서를 위해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는 것보다 큰 죄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2)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평소 늘 듣던 교훈을 우리는 여기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히12:11절입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우리를 확실하게 키우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용서는 하시되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하심으로 죄로부터 확실하게 구별하시기를 원하시는 자비하시나 엄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공의와 사랑을 함께 쥐고 계시되 사랑으로 시작하고 사랑으로 결론을 맺는 분이십니다. 징계를 받을 땐 비록 싫고 힘들지만 그 결과는 역시 하나님의 의도가 선하시고 신앙의 진보를 비롯 많은 성장을 이룹니다.
3) 진실하십니다. 진실함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진실하시니 진실하지 못한 것과 마주하지 않습니다. 거짓과 하나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는 거짓된 자가 설 수 없습니다. 진실하고 그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진실한 이치, 곧 진리가 항상 넘치는 하나님의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리이신 예수께서 길이 되고 빛이 되셔서 우리 눈이 죄에 가려 길을 몰라 방황할 때 시온의 대로가 돼 하나님 앞에 서게 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황금불빛입니다. 자비하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 용서하시되 받을 형벌을 면하지 않는 하나님은 교회와 어떤 관계입니까?
3. 임마누엘은 교회의 소망입니다.
8~9절을 함께 읽습니다.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모세의 이 고백과 간구에 따르면 주께 은총받은 자라면 마땅히 주의 길을 따라 동행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복된 길이라는 것입니다. 목이 곧은 교만한 백성이니 주께서 친히 주장하시고 기업을 삼으신다면 이를 큰 은총을 입은 증거로 삼겠다고 모세는 말합니다.
목이 곧아 결코 고개 숙일 줄 모르니 이 악과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기업을 삼아달라고 탄원하는 모세의 심경을 우리는 헤아려야 합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눈으로 보고 생명을 구원받고 노예에서 해방돼 기쁨과 감격하던 일은 어느 새 까맣게 잊고 조금만 불편하면 원망하며 돌을 던지는 백성들입니다. 이들을 위해 모세가 생명을 건 각오로 하나님께 맹렬히 기도하고 중재하던 일을 백성들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잘 아십니다. 우리 그리 살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목이 곧은 사람은 왜 그렇게 목이 곧아 순종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곧은 자신의 목이 하나님 앞에서 실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목이 곧은 실수로 많은 고통과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것을 모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어 단 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다면 결코 그런 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백성들이 교만할 때마다 그대로 지나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먼저 선지자를 통하여 꾸준히 말씀하십니다. 백성들은 듣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고 태연합니다. 돌이킬 줄 모릅니다. 목이 곧아 잘못한 일에 불편하지 않고 그래서 고개 숙여 죄송한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이웃 강대국이 쳐들어와서 산산조각이 납니다. 그제야 깨닫고 곧은 목이 꺾이게 됩니다. 허리를 잘 구부려 경배하고 머리가 잘 숙여 늘 기도에 힘쓰고 눈에서 회개의 눈물과 감격감사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이 말씀 이후에는 예배로 인생승리를 이루는 복을 받기 바랍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우리 모두 묻기 바랍니다. 나는 책망하는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가 아니면 칭찬하고 쓰다듬는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가? 사실 우리는 칭찬받든 책망받든 하나님을 자주 뵈야 합니다. 그게 복입니다. 책망은 잠시지만 돌이켜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조아리고 허리 굽히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교회와 사람 앞에서 체질화돼 모두들 복 받은 신앙인격의 본이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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