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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년05월20일 주일설교<대상 28:8-10. 성전건축과 성도의 성숙>

by 설렘심목 2018. 5. 22.

20180520일 주일설교<대상 28:8-10. 성전건축과 성도의 성숙>

[인생은 모두 사람 때문에, 사람으로 인하여 슬프고 불행하다. 그러나 한 가지 소망, 모든 회복과 치유는 하늘로부터인 것을 믿고 알기에 힘겨워도 우리는 노래할 수 있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이 말년에 아들 솔로몬을 비롯, 모든 문무백관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소원, 성전건축에 대한 지시를 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28장을 보면 성전건축에 대한 지시라기보다는 모세의 신명기를 축약한 듯 그 내용이 건축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을 향한 충성된 신앙촉구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성전의 건축이 단순히 외형적인 건물만을 목적하지 않고 건물 이전에 이스라엘의 순종과 바른 섬김이 내면적 하나님나라 완성이라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성전을 중심으로 한 성도의 신앙은 성전건축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우리도 경험했지만 성전건축과 성도양육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람의 염려가 헛되고 우리 내면의 성전은 지금도 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말씀을 들을 때 더 나은 성전이 지어져가기를 원합입니다. 8절입니다. “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이 보는 데에서와 우리 하나님이 들으시는 데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성전건축을 통한 성도의 바람직한 믿음의 길 그 첫 번째.

 

1. 계명을 지킬 때 비로소 정복되는 아름다운 땅과 영원한 기업입니다.

 

계명은 단순명령과는 조금 달라 주로 조심하라 일러줌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들의 금기사항을 낱낱이 열거하고 불순종시 당할 징계를 덧붙입니다. 그리고 계명은 매우 엄격한 벌칙사항까지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만큼 잘 지켜 행하면 받을 복이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 강한 징계의 선언은 인간이 계명들을 지키기엔 너무나 악하고 교만하다는 것의 반증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복된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순종의 언덕이 있는데 이는 주님이 오르신 골고다십자가처럼 우리도 아름다운 땅과 영원한 기업을 위하여 올라가야 할 언덕과 이겨야 할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용서와 영생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주어진 언덕과 십자가, 피하고 싶으나 상급을 위해 주어진 특혜인 것 믿고 아멘입니다. “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과 우리 하나님이 들으시는 데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모든 국정운영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계명에 대한 순종의 결단으로 고백하고 확정하라는 것입니다. 뒷부분입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사도바울도 롬8:18절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면서 현재의 고난을 믿음으로 이길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 8절은 계명을 잘 지켜야만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후대에 영원한 기업이 될 것을 말함으로 십자가에 부활의 영광이 따르듯 힘겹게 지킨 계명에는 대단한 상급이 있음을 다시 일깨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어려운 계명의 능선은 왜 지켜가기가 어려운까? 잠언16:32절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계명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 바로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환경도 아니요, 남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 것,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언제나 내가 내게 딴지를 걸어 넘어뜨려왔습니다.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후대에 이어질 복을 가로막는 것은 항상 자신이었음을 아파하는 이 시간이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나 자신에 관한 묵상은 아픔을 통한 환희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좋으신 인도자요, 동행의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34:18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내가 나를 방해하고 내 자손을 가로막는데 그것을 제거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통회하는 일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날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도와 주셔야 합니다. 스스로도 내가 너무 싫어 화가 치밀어 참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생각이 깊고 사려가 있는 사람은 그래서 언제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임을 압니다.

 

다윗왕은 곧 시작될 성전건축에 앞서 계명을 지키라고 합니다. 보이는 건물보다 더 중요한 계명 순종을 강조한 오늘 말씀은 우리가 평생 살면서 예배당보다 더 중요한 우리들 자신의 내면을 말합니다. 잘 가꿔 주님이 편히 계시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중에 그 능력이 임하여 우리 자신을 쳐서 주님 앞에 드리는 통회의 복을 받기 원합니다. 9-10절입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전의 건물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하니라." 성도의 바람직한 믿음의 길 그 두 번째.

 

2. 기쁨으로 여호와만 섬기며 의지하여 힘써 성전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1)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온전과 완전이 다르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잘 압니다. 완전은 부족이 없는 상태지만 온전함은 본바탕 그 모습 그대로 간직된 상태 또는 변질됨이 없어 본래 그대로인 것(original)을 말합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일을 완전히 끝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은 완벽함이 아니라 반듯하고 옳은 것 즉 올곧은 정직함이 순전에 가까워 에덴동산을 떠오르게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원어의 의미는 제사에 올릴 제물의 반듯한 상태를 뜻입니다. 즉 우리가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기쁜 뜻이 있어야 한다고 본문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완전할 수는 없어도 기도하면서 성실하게 노력하면 온전에 가깝게 갈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본문이 명하는 바, 기쁜 뜻을 바탕에 두고 시작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기쁨 없이도 일할 수 있습니다. 약속을 믿고 주를 의지하면서도 여전히 기쁨 없이 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쁜 뜻을 품고 하는 일과 의무적으로 하는 일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본문은 기쁨이라하지 않고 기쁜 뜻이라고 했습니다. 기쁨은 일 자체가 기쁜 것이지만 기쁜 뜻으로 섬기라는 것은 현재의 정황은 기쁘지 않으나 이 일을 통하여 기쁜 일이 이뤄져 간다는 소신으로 희망차게 일한다는 것입니다. 아들 솔로몬에게 다윗이 당부하고 명령하는 성전건축은 이제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써의 성화와 경건의 진보가 어찌 나아가야 할지를 잘 말해 줍니다.

라는 하나님의 집을 지을 때 온전한 마음과 더불어 그 건축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목표로 나아가야 하는데, 많은 거침돌이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것, 그러나 이것이 결코 낙심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이기는 것은 내가 아니라 위로부터 주시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9절 셋째 줄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기쁨으로 여호와만 섬기며 의지하여 힘써 성전을 이뤄가는 것, 두 번째는,

 

2) 하나님을 소망하며 찾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성전은 성전의 주인이신 주님이 계획하고 지도하신다는 사실부터 새기시기 바랍니다. 마치 짜다가 맞추듯 모든 일정과 재정과 그리고 돌맹이 하나에서부터 모든 자재, 짜투리도 하나버리지 않고 알뜰살뜰 맨손으로 아담하고 예쁜 예배당을 짓게 하신 것을 추억하며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본문은 모든 마음을 살피셔서 그 의도를 정확히 아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만나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내안에 있던 악하고 추한 것들이 달아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건축자, 우리 생명의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우리 내면의 성전은 물론, 눈에 뵈는 교회건물도 마련하신다는 것 믿습니다. 10절 끝부분입니다. “힘써 행할지니라.”기쁨으로 여호와만 섬기며 의지하여 힘써 성전을 이뤄가는 것 세 번째.

 

3) 교회를 힘써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면 가정이 바로 섭니다. 교회가 건강하면 가정도 건강합니다. 교회가 제 위치에서 제 기능을 다하면 사회가 바르게 되며 온 인류가 번영합니다. 힘을 다해서 교회를 반듯하게 세우는 노력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앞서가는 최선, 최우선인 것을 믿기 바랍니다. 교회를 힘 있게 세워가는 일은 곧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것을 감찰하셔서 그 의도를 명확하게 아십니다.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정성과 진실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냉수한잔이라도 목마른 자에게 주며 위로하는 것입니다. 거저받은 구원과 각종 은혜를 견디지 못해 예수님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은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전도와 구제와 선행과 돕는 기도와 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하는 것 모두가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악한 일에 끝까지 저항하고 믿음의 절개를 지켜 유혹을 물리치는 것,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어느 교회 바자회에 안 입는 깨끗한 옷과 살림도구나 가전제품을 가져오라했더니 버리기 직전 것을 가져와 젊은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바자회가 무슨 분리수거잔치냐고 책망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자들은 교회를 세우는 게 아니라 교회의 직분과 출석이 자신을 꾸미는 장식품 정도입니다. 헌금자명단에 자기 이름이 혹 누락되면 재정부를 발깍 뒤집어 놓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교회를 세워 거기서 찬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살기 바랍니다. 교회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그렇게 살 때 주님은 그 크신 손과 사랑으로 저와 여러분만을 위해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만끽하며 다시 주님만 위해 살겠다는 결단과 서원을 기쁨으로 올리게 될 것입니다. 즉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일은 자신과 가정과 후손을 세우는 귀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아직도 공사 중.”이라는 말씀을 잊지 마시고 변함없는 적극적인 신앙 활동으로 주님 앞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