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04월29일 주일설교<잠24:16-18. 일곱 번 넘어져도>
[60대 초반에 “이 담에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눈물겨운 내 소원은 내 것이 아니다. 내게 소원을 두신 하나님의 것임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이룰 수 없으나 주께서 반드시 이뤄 주실 것을 믿는다. 나는 성전 된 몸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보전해야한다. 무릇 채찍은 자신을 향해서 들 때 때려주고 싶은 내 대적들은 주께서 그 채찍을 잡으셔서 정리해 주실 것이다.]
우리의 속 깊은 모든 것, 우리자신보다 더 분명하게 알고계신 분은 우릴 지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황당한 일은 나보다 남이 나를 더 정확히 지적해줄 때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어떤 환상과 착각에 사로잡혀 정확한 분별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 환상은 대부분 간절한 소망이나 욕구로 인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할 때 나타납니다. 본문을 보면 의인도 일곱 번 넘어질 수 있고 악인은 재앙으로 엎어진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곤경은 의인이나 악인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러나 의인의 고난에는 의미와 목적과 희망이 있지만 악인의 고난은 죄악의 심판과 고통일 뿐, 아무런 의미도 희망도 결론도 없습니다. 오늘 설교제목,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입니다. 시34:15절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 일곱 번 넘어져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소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성도의 다시 일어남은 첫째.
1. 하나님의 눈과 귀가 우릴 보고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4:13절에 우리들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가 어딜 가도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다 못해 아내 사라의 권유로 애급출신 여종 하갈은 씨받이로 드립니다. 젊은 하갈은 배가 불러오자 안방마님이라도 된 듯 본처 사라를 멸시하고 아브람은 하갈을 쫓아냅니다. 사막으로 쫓겨난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라에게 다시 돌아갈 것을 지시합니다. (창16:11b절)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하나님이 들으심)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철없어 함부로 주인을 멸시한 하갈의 고통에도 귀를 기울이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고통에 귀 기울이신다는 것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을 때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여러 책망을 듣습니다. 그리고 순종으로 받을 많은 약속의 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 사41:10절과 13절에 각각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손은 활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성도는 다시 일어섭니다. 그 소망의 이유 두 번째,
2.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서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놀란 제자들의 모습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물위를 걸어 주님께 향하다가 풍랑에 놀라 물에 빠지는 베드로가 소개됩니다. 마14:31절 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사41:10b절에서도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며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시며 하나님이 믿음의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이고 굳세게 하실 것을 약속합니다. 시139:7-10절입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십니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당신의 자녀를 한 번도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손은 살리시는 손입니다. 일으키시는 손입니다. 채우시는 손입니다. 24시간 항상 저와 여러분 곁에 계신 구원의 그 손에 붙잡히시기 바랍니다. 요일5:4-5절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일곱 번 넘어져도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성도의 소망 그 세 번 째,
3. 하나님의 의로운 승리는 성도의 믿음을 통해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시어 자녀 삼으시고 각양 구원의 복과 영생의 능력이 어떠한가를 보이시는데 우리를 증거자 삼으신 주님께 한없는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어쩌다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높여 의지하게 하셨는지 하나님은 한없는 사랑이시란 것 외에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사랑하시되 하나님을 등진 세상 모든 것과 싸워 성도가 이기기를 바라십니다. 성도의 승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방금 요한일서와 히브리서에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어떤 믿음이라고 합니까? ➀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➁하나님을 찾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반듯하게 잘 믿을 때 우리는 그 믿음가운데 찾아오신 주님이 우릴 사용하셔서 이기게 하시고 증인이 되는데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의인은 다시 일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와 능력자체입니다. 말씀의 선포가 그 말씀을 믿는 자에게 그대로 권세요, 능력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반드시 일으키실 것이며 악인은 재앙으로 엎어진다고 했습니다. 또 잠3:33절에는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벧전2:9절에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소유품은 소유자가 책임집니다. 맡기시지 않은 귀중품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목욕탕의 경고문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 맡긴 삶은 하나님이 끝까지 보존하고 채우십니다.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선포된 당신의 말씀, 성경은 우리를 어떻게 하셔서 다시 일으킨다고 합니까? 렘29:13절에선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하십니다. 먼저 1) 온 마음으로 찾는 자에게 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일곱 번 넘어져 도무지 희망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당신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우리를 일으키시는 증거로 2) 찾아주신 주님이 동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1:23절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고 하심으로 주님의 이름이 임마누엘 예수이신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즉 믿는 자와 늘 동행하심을 자신의 이름에 걸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이 저와 여러분의 주님이십니다.
본문 17-18절입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어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일곱 번 넘어져도 성도가 다시 일어났을 때 원수를 미워하지 않아야 할 것은,
3.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악에 물 드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극진히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책망도 진노도 사랑이시며 그 징벌조차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불행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고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깊은 믿음이 아니라 정상적인 믿음입니다. 한평생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무너집니까? 본문이 말하는 일곱 번의 넘어짐은 넘어질 만큼 넘어져서 더 이상 일어날 기력이 없는 그야말로 완전 퍼져버린 모습으로 재기불능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 그 정도면 원망하며 고개를 돌려 극단의 길이나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의인에게 다시 일어난다는 소망의 메시지를 주심으로 약속을 보게 합니다. 이때 17절은 소망으로 일어선 성도와 교회에게 결코 악에 물들지 말 것을 충고합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어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즉 성도에게 악인의 멸망을 기뻐할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악한 자가 망하는 걸 보면 행복합니다. 심지어는 선한 경쟁관계에서도 상대의 흔들림은 적잖은 위로입니다. 이는 분명 악입니다. 단호하게 꾸짖어야 합니다.
빌딩 한 채를 달라며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렇게 미워하는 그 인간에게 뭐든 갑절로 동시에 주는 조건이라도 너는 받겠느냐?”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는 “하나님, 제 한 쪽 눈을 못 보게 해주셔요. 한쪽 코도 막아주셔요.” 이게 인간의 근본 육체입니다.
롬12:20절에서도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우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했고 눅6장은 원수를 사랑하면 그 사랑그대로 주님이 놀랍게 넘치도록 갚아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본문말씀대로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는 의인이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주님은 거기 계셔서 결코 다시 일어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원수가 넘어지든 일어서든 상관없이 우리가 주님의 은혜가운데 영생과 구원이 있다면 아무도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더 이상 소생할 기미가 없이 비참하게 넘어질 때 그때에도 우리가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서 그 눈과 귀로 현장에서 함께 하셨고 그 손을 들어 잡아 주심으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그리고 아팠던 날들을 주의 영광가운데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멸망을 기뻐하지 말며, ‘뽑힌 풀’처럼 곧 사라질 그들의 형통도 일체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믿어 힘을 내시고 반듯하게 서있기를 바랍니다. 악인의 형통은 곧 사라질 검불입니다. 그가 망했단 소식을 들으면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거저 주시는 은혜와 받은 구원 앞에 감사와 찬미예수로 산제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주시는 놀라운 열매와 상급이 여러분과 각 가정에 풍성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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