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04월22일 주일설교<왕하19:1-7. 갑옷대신 베옷을 입은 히스기야>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나라완성”이라는 데 동의해야 한다.
이는 보이는 집보다 더 중요한 보이지 않는 집으로 먼저 자신 안에 이뤄져가는 하나님의 통치이고 다음엔 보이는 교회에 헌신하는 일이다. 서까래가 되고 벽돌 한 장이 되는 일은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주께서 원하시는 어떤 것이 되어도 감사로 기뻐하기까지 성화되고 무너져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집이 완성되는 것을 목표로 사모하고 노력하면 주님은 우리의 집을 친히 지어주신다는(삼하7:1-12) 약속대로 놀라운 일을 우리에게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 타락한 이스라엘과 유다는 각각 이웃강국에 의해 모두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가 비참한 지경에 놓입니다. 먼저는 북쪽 이스라엘이 호세아왕을 끝으로 막을 내리고 남쪽의 유다는 제법 버티다가 결국 시드기야왕의 비극으로 끝납니다.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 왕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약 40명에 이르는 왕들 가운데 믿음이 뛰어난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려운 환경에 부딪쳐 몇 번의 실패를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인도로 유다의 가장 선한 왕으로 기록됩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후에도 유다는 히스기야이후 여섯 왕이 더 등장합니다. 이처럼 유다가 이스라엘보다 138년이나 그 수명을 더했던 건 히스기야 같은 믿음의 왕들이 더러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마리아 성을 초토화시킨 앗수르의 산헤립은 랍사게를 내세워 히스기야왕이 있는 예루살렘 성을 포위합니다. 18만5천의 군사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해 성내에 모든 유다인을 굶겨 죽이는 고사전략에 들어갑니다. 부족한 물과 식량으로 점점 심각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언자 이사야는 동맹의 힘으로 유다의 안전을 꾀하려는 모든 노력을 꾸짖습니다. 앗수르왕 산헤립이 파견한 랍사게는 계속 하나님을 멸시하는 말로 히스기야를 조롱하고 백성들을 현혹합니다. 그러나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건 하나님을 등진 채 우상숭배로 타락한 자신들에게 그 이유가 있다는 겸허한 생각으로 히스기야는 마침내 왕복을 찢고 대신 베옷을 입었습니다. 1-2절입니다. “히스기야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갑옷대신 베옷을 입고 엎드려 나라를 구한 히스기야, 그 첫 출발은,..
1. 왕복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른 뒤 하나님의 전에 들어갑니다.
히스기야는 다른 왕들처럼 주변강국이나 다른 나라의 원조를 청하지 않습니다. 다가온 파국이 하나님을 멀리해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난국타개를 눈에 뵈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온전히 매달리기로 한 히스기야의 눈에는 앗수르의 랍사게군대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과 그 백성간의 관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왕복을 찢고 죄인이 입는 굵은 베를 두르고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함으로서 나라를 구하겠다는 결단을 뜻합니다. 성도란 작고 큰 어떤 일에도 정황 뒤에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과 그 뜻을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사방을 에워싸고 항복을 기다리는 앗수르의 18만5천 군사와 랍사게의 조롱, 유다는 어딜 봐도 절망적입니다. 바른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변의 다른 나라에 원조를 청하든지 백기를 들고 왕이 나가 무릎을 꿇든지 둘 중 하나를 속히 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왕 히스기야는 랍사게의 협박을 듣고 분노하여 왕복을 찢었습니다. 왕복대신 굵은 베를 몸에 두르고 성전에 올라가 엎드렸습니다. 엡6: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아멘. 우리들의 모든 싸움은 곧 사라질 연약한 육체의 인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실체를 열어보면 세상권세를 잡은 악한 영과 그 졸개들과의 씨름입니다. 히스기야는 랍사게와 18만5천의 군사를 한손에 처리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상복을 입고 엎드립니다. 2절입니다.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러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갑옷대신 베옷을 입고 엎드려 나라를 구한 히스기야, 그 두 번째 조치는,
2. 기도한 후 하나님의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슬픔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왕복을 찢고 갑옷대신 죄인이 입는 굵은 베를 몸에 두른 채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사생결단하고 엎드려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궁정에 있는 중요한 자들에게도 굵은 베옷을 입혀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냅니다. 생사의 기로 앞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그 급한 것이 하나님을 제외시킬 만큼 급한 일은 못됩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급하거나 급하지 않거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계속 뭔가 웅얼댑니다. 그것을 생각이라고 해도 좋고 사색이라 해도 좋습니다. 수많은 허상과 또는 실제상황과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습니다. 특별한 결론도 없이 말하고 있는 자신의 음성은 핑계와 우쭐댐과 삐침과 두려움과 시기와 분노와 기쁨과 보람과 만족함이 수도 없이 교차하는 가운데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가도록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마음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들로 얼마나 분주한지 모릅니다. 무상무념, 아무 생각 없는 순간이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분주한 생각들과 신념과 결과가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거의 그것들은 아무 쓸모없고 대부분 신뢰할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묵상과 기도의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많은 생각의 뿌리들을 모아 하나님께 연결시켜서 생명이 되게 하고 승리의 기쁨이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한 권세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풀어놓아 기르는 토종닭의 계란은 맛과 품질이 다릅니다. 그러나 끝내 생명이 되어 병아리로 나오는 것은 유정란이지 무정란이 아닙니다. 씨가 있어야 생명이 되듯 자신을 근거로 한 모든 계획과 생각과 판단은 씨없는 무정란과 같아서 결국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것을 목표로 나가게 됩니다. 자신을 부각시키고 알아줄 때 기뻐하는 자존심의 만족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육신의 자아가 죽기 싫어서 마지막 힘을 쓰는 것입니다. 롬8:7절에선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단언합니다. 히스기야는 나라의 위기를 영의 눈으로 보았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지침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선지자에게 충신들을 보냅니다. 굵은 베를 입혀 자신과 함께 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여쭈도록 한 것입니다.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다.”고 이사야에게 심경을 전달합니다. 유다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환난과 징벌과 모욕으로 거듭나는 날, 심한 고통, 해산의 고통을 이길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듯하니 이 남아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하나님의 사람에게 뜻을 묻고 기도를 당부합니다. 그리고 그는 엎드렸습니다. 히스기야의 탁월한 신앙이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러한 신앙의 능력과 영의 안목과 결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6-7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그에게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갑옷대신 베옷을 입고 엎드려 나라를 구한 히스기야, 세 번째 그가 받은 하나님의 응답은...
3. 한 영을 보내셔서 구원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상주나 죄인이 입는 굵은 베를 두르고 엎드린 히스기야에게 드디어 구원의 복음이 이사야를 만나고 온 이들로부터 전달됩니다. 출6:5절에서는 애굽에서 노예로 고통하던 당신의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신음조차 기억하시고 찾아주시는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말씀을 끝까지 책임지시고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20절입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1) 기도를 들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음 21-28절까지는 하나님과 히스기야를 조롱하는 앗수르왕 산헤립에게 꾸짖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2절을 함께 읽습니다.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이번엔 25절입니다.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산헤립이 누군데 감히 하나님을 조롱하여 함부로 입을 놀렸냐는 것이고 지금 유다가 네 손에 있는 것은 내 징계의 계획 속에 이뤄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28절까지 읽습니다.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2) 사랑하는 백성은 징계하시되 교만한 자를 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앗수르가 하나님의 채찍이 되어 유다를 포위한 것까지는 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랍사게를 통해 하나님을 조롱하고 히스기야에게 모욕적인 말로 한 범죄는 하나님 앞에 큰 실수였습니다. 진밖에 있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18만5천의 대군들이 모두 죽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산헤립이 니느웨로 퇴각했지만 결국 이사야의 예언대로 자신의 두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칼날에 죽게 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십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조롱하고 방해하는 자들은 목회자와 성도가 흘린 눈물 그 이상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시는 주님앞에 우리는 모든 삶의 행위와 생각과 계획과 소망을 오직 주님께만 두고 억울한 분노는 십자가아래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위하여 살기로 확정하고 견고한 결단과 헌신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려분. 히스기야왕은 적군의 포위를 창이나 칼로 막지 않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엎드림으로 해결했습니다. 한평생 살면서 은혜로 수많은 고비를 넘겨 한숨을 돌려도 세계적인 불황과 전쟁의 공포와 초강력 바이러스와 괴질들, 기후재난은 멈추지 않습니다. 거기따라 과학적 대처도 꾸준하게 발전을 합니다. 세상은 좋아지지 않고 약아지고 편리해질 뿐, 죄는 그대로입니다. 못가진 자는 여전히 빈민촌에서 살아갈 것이고 가진 자는 없는 자의 등을 쳐서라도 더욱 부를 축재할 것입니다. 항생제를 잡아먹고 사는 초강력변종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듯 더 무서운 쓰나미가 세상을 위협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세월이 험해질수록 우리는 주님오실 그 때가 가까워진다는 소망을 굳게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발이 비록 이 땅을 딛고 서 있다 해도 우리는 땅에서 영원히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머잖아 여기서 우리가 주님께 손들어 찬송하고 기도했듯이 거기 손들어 환영해주시는 주님과 영원히 기쁜 노래 부르며 온갖 것을 누리며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삶이 고단합니까? 죽음 같은 통증이 옵니까? 베옷을 입고 엎드려 주님을 간절히 소망하고 그의 구원만을 믿고 기다립시다. 신실하신 주님의 응답하심과 갚아주심이 우리 모두에게 풍성히 넘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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