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25일 주일설교<히12:14-17. 화평과 거룩함의 문을 지나 만나는 그리스도>
[뚝배기를 꾸미려고 힘을 다 기울이니 그 안에 채울 장맛을 내는 데에는 여력이 없는 세상 사람들, 아무리 얼굴이 좋고 몸이 건강해도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그 외모는 다만 악한 도구에 불과한 것, 그래서 사람들은 외모로 취할 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삼상16:7)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우리도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그 중심을 보아야 한다. 얼굴이 아니라 표정이란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타고난 얼굴이 서로 달라 분명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으니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보기에는 좀 그래도 지내보면 썩 좋은 “뚝배기보다 장맛”인 사람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은 장맛을 내는데 사용돼야 한다. 풀무에 달궈져 많이 두들겨 맞은 쇠는 색상도 좋고 단단해서 양질의 연장을 만들 수 있다. 꽃도 찬바람을 맞아야 향과 색이 아름답다. 노년이 다가온다. 썩지 말고 잘 삭기 위해 내가 지금 뭐부터 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지나고 보면 늘 놓치고 후회하는 아쉬움이 많은데 아버지 하나님, 지각을 주옵소서. 아멘.]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그리스도와 그의 놀라운 사역, 그리고 그리스도중심적인 성도의 삶에 대해 본서는 좀 더 깊은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보믿음을 벗어나 말씀의 깊이를 사모한다면 상당히 끌리는 책입니다. 반면 자칫 잘못 보면 그만큼 위험하기도 한 책이 본 히브리서입니다. 본서는 저자와 저작연대가 미상입니다. 그러나 그 뛰어난 영력의 문체가 성령이 친히 쓰신 것이 분명해 성경에 채택되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11장은 믿음의 장으로 믿음에 관한 깊은 말씀이 이어지고 12장은 실천적 믿음에 대해 논합니다. 징계가 주는 유익이 13절까지 언급되고 14절에서 17절까지는 화평과 거룩함에 대한 권면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화평과 거룩함의 문을 지나 만나는 그리스도”입니다. 성도의 인생이란 결국 모든 삶의 조각 속에서 그리스도의 의미를 찾아 거기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의 삶을 최고의 것으로 보장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을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인도하기 원합니다. 14절을 함께 읽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 첫째,
1.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며 거룩함에 이르려는 노력입니다.
1) 화평입니다.
화평하려면 화평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화평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화평에 필요한 여건을 만족시켜야 하고 그 만족감이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안전하다는 안정적 보장을 받을 때 비로소 인간은 화평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을 이루려면 먼저 불만과 불안요인을 없애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준만큼 돌려받지 못했다는 불만족, 불만은 상당부분 자신의 욕구와 연결돼 있습니다. 같은 여건에서도 마음을 비우면 만족할뿐더러 감사할 수 있지만 더 큰 것을 바랄 때 그 사람은 불만족에 싸여 화평하지 못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보이는 것을 소망하게 갑니다. 본문은 모든 사람과 화평하며 거룩함을 따르라고 했고 롬12:18절에서도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과 화평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 화평을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이 아무리 많다 해도 화평은 그것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유지해야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궁극적인 하나님나라완성에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평은 관계에서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모든 관계의 완성은 결국 사랑의 완성입니다. 즉 화평 때문에 포기했던 것들은 화평으로 인하여 다시 돌아오고 그것이 사랑으로 채워지면서 더욱 풍성해지는 것을 우린 믿습니다.
2) 거룩함입니다.
화평하되 거룩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본문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아무하고나 좋은 사이가 되면 곤란합니다. 고후 6:14-16a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화평은 반드시 거룩함을 품은 화평이어야 합니다. 화평을 위하여 악한 자와 친목하고 기뻐한다면 그는 신속하게 그들과 함께 부패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문자대로 보면 이미 주께서 이루신 화평함과 거룩함에 그대로 순종하여 그것들이 망가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주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그 험한 십자가를 우리대신 지시고 죄값을 치르셔서 죄인과 하나님사이를 희생으로 화목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피로 값주고 사들이신 죄인들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기 시작했습니다. 계7:14절에선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 큰 환난을 이기고 나온다고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평화나 풍성이나 기쁨에도 그리스도의 이름이 제외된 것에는 현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 재림하실 그날 거기서 그 얼굴을 바로 뵈려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되 거룩함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고 살펴야 합니다. 15-16절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본문이 말하는 주님가까이 나아가는 길, 두 번째..
2. 이웃의 영혼들을 살펴 도와주는 일입니다.
본서 히10:24절에서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남을 행복하게 함으로 더불어 더욱 기뻐하며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본성이 있습니다. 주님을 닮아 관계적인 존재요, 그 기쁨은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두 구절엔 주변에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와 쓴뿌리가 되어 많은 이들을 괴롭게 할 자, 그리고 음행하는 자와 장자권을 한그릇 음식에 팔아치우는 자가 있는지 살피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돌아보아 살펴주는 일은 결국 주의 나라와 자신을 위하여 꼭 해야 할 일들입니다. 본문에서 드러난 살펴줘야 할 영혼과 삼가야 할 대상은 누구인지 말씀을 짚어가며 알아봅니다.
1)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를 살펴야 합니다.
은혜는 기쁘라고 주시는 거저 받는 것들입니다. 우리안팎에는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게 하나도 없음에 아멘입니까? 그 모두 때에 따라 절실한 것을 주님이 먼저 아시고 채우십니다. 은혜에는 눈에 뵈는 것보다 안 뵈는 것 중에 더 중차대하고 귀한 것이 많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에서 은혜란 하나님께 값없이 받은 구원을 말합니다. 만 가지가 다 풍성해도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면 다른 모든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들인지 속히 알게 됩니다. 주님의 구원은 생명에 관한 것이며 또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감동이 무너지는 것은 뵈는 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집착이 예배를 비롯한 영적인 것을 앞설 때 흔히 일어나는 불행입니다. 이웃의 믿음을 북돋고 함께 기도하며 도울 때 더 큰 은혜를 받는 사람은 먼저 품는 자요. 먼저 위로하는 자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2) 쓴 뿌리로 인한 교회의 오염을 막아야 합니다.
돌아보아 살피는 것 가운데 교회의 건강을 유지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방해자가 생기는 것을 찾아내 신속히 대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 안에는 심심챦게 교회를 어지럽히고 힘들게 하는 쓴 뿌리들이 흔합니다. 본래부터 쓴 뿌리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악하고 힘겨운 환경 속에서 나약한 심령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자신을 포기한 채 올라오는 감정 그대로 말하고 행동함으로 어느 곳에 가도 그는 가엾게도 쓴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기 위하여 이런 쓴 뿌리들로부터 교회를 보호해야 합니다. 냉철한 분별력과 지혜로 살펴 대하되 끝까지 온유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해야 합니다. 극소수의 쓴 뿌리가 온 교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실로 놀랍습니다. 순박한 성도들을 미혹해서 한 번에 교회와 가정들을 무너뜨립니다.
쓴 뿌리는 물질의 문제보다 영적인 폐해가 더 훨씬 더 심각합니다. 악한 무리들이 감쪽같이 따로따로 들어와 교인들 마음을 친절과 물질로 사로잡고 계획에 따라 당회와 제직회를 점령하여 목회자를 내쫓고 이단의 교리로 교회를 차지하는 일은 신천지의 산 옮기기 사명입니다. 외부에서 계획하고 들어왔든 내부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이 뭉쳐서 쓴 뿌리가 되든 그 해악은 큽니다. 주님이 처리해주시지 않으면 교회는 삽시간에 흔들립니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이 보호하시는 한 안전한 것이며 우리는 부단히 기도하며 말씀을 따라 살펴보고 도울 자를 돕고 품을 자를 품고 경계할 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3) 음행하는 자와 장자권을 소홀히 하는 자를 책망하고 살펴야 합니다.
음행은 영적인 문제로서 개인은 물론 가정과 교회에 쓴맛을 안겨줍니다. 사단이 주장하는 일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더 깊은 영적양식을 간절히 구할 때 언제나 낯선 곳의 낯선 떡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끝없는 영적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칫 실수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는 언제나 소속된 교회에 알리고 그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어디 좋은 곳이 있다고 찾아가는 사람마다 결국 힘든 일을 만나게 됩니다. 가난하고 시원챦아 보여도 내 집에서 먹는 된장국이 좋습니다. 엄마의 정성과 아빠의 땀이 밴 무공해 곡식과 열매가 좋은 양식입니다. 장자권은 유업권입니다. 내 집에서 기업을 유산으로 받을 장자가 그 장자권인 하늘시민권을 세상의 명예나 물질에 팔아치우는 일은 진정 어리석은 일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갈림길은 하나님의 유업과 세상을 향하는 타락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고난 끝에 영광이요, 하나는 배부른 끝에 오는 수치였습니다.
장자권가운데 최고의 영광은 제사장권입니다. 세상 어떤 좋은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최대의 기쁨과 풍성과 감동은 역시 예배의 권세입니다. 그것은 권세이자 막중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예배에 충성된 자, 예배에 헌신된 자는 결코 음행하지 못합니다. 주님 앞에 화평과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주님이 그날 거기서 다 이를 수 없는 기쁨과 평강과 안식으로 반겨 맞으실 것입니다. 여기선 다 밝혀지지 않아도 거기선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주님 앞에 마음과 정성과 몸과 뜻을 다하여 예배자의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며 살았는지 극명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칭찬받는 자의 감격과 찬송이 하늘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천사들은 박수치며 부럽고 기뻐하며 축복의 노래를 불러줄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살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를 때 주님은 우리를 살펴주십니다. 그리고 시온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로 충만케 하시고 당신의 풍성한 사랑을 증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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