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1.주일예배<전11:1-2. 네 떡을 물위에 던지라.>
2018.03.11.주일예배<전11:1-2. 네 떡을 물위에 던지라.>
[기독교가 로마에서 천년태평시대를 맞자 사제들이 타락했고 교회가 부패하니 로마가 망했습니다. 러시아교회가 타락하자 공산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영국교회가 시들자 영국은 무슬림으로 가득해 무늬만 선진국인 불행한 나라가 됐습니다. 교회가 나라를 지탱합니다. 교회는 사이즈가 아니라 중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나라의 버팀목이란 사실을 잠시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지혜의 총서”하면 잠언이 떠오를 것이고 “지혜의 왕”하면 솔로몬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린 결과라는 것도 압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경배할 때 하늘 문을 열어 부어주신 것이 솔로몬의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주변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강대한 부국을 이룹니다. 결국 솔로몬의 부강한 나라는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의한 신앙고백의 열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청년기에 아가서를, 중년기에 잠언서를, 그리고 인생황혼기 원숙한 노년의 눈으로 본 전도서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전도서는 그러므로 젊은 시절 온갖 풍요로움과 사랑과 지혜와 위로부터 주신 모든 것을 충분히 경험한 후 젊은 날, 치마폭에 싸여 순결한 신앙에 금이 가고 탕진했던 많은 일들을 돌아보면서 회고록처럼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것이 전도서입니다. 전도서에는 그래서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전도서를 세 개로 구분해보면 모든 것이 헛되다는 대전제가 있고 다음, 인생도 헛되다는 증거가 나온 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권면의 말씀으로 결론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중 인간의 소유욕에 대한 귀한 하나님의 말씀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일생 살면서 물질에 대한 애착은 정상입니다. 물질은 현실적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물질의 여하에 따라 사람이 평가되기도 하고 인생의 질이 결정되는가 하면 길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 물질에 마음이 실려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질의 관리나 물질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본문이 가르치는 성도의 물질관은 어떤 것인가? 본문 1절입니다. “너는 네 떡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1. 베풀 때는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물질관은 부지런하게 성실히 일하며 아껴쓰고 절약하되 허락받은 물질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소비란 어떤 것입니까? 눅14:12-14절을 읽습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하시더라.” 성도의 물질관은 성실히 벌어서 주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나보다 힘든 이웃이 생각보다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문에 의하면 우리가 실현해야 할 주님의 사랑은 돌아올 대가를 기대하는 그런 계산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것은 생명이 회복될 물에 던지회 그것이 돌아오리란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어서 그 떡을 여러 날 후에 도로 찾게 된다고 합니다. 주님이 누가복음에서 주신 말씀은 밥 한그릇을 대접해도 다시 갚을 사람에게 하지 말고 가난하고 가여운 이들에게 해서 갚지 못하면 그날 거기서 영원한 상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 때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주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갚아주시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잠11:25절에서도 “구제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해지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랑, 그것은.
2. 하나님께 쌓아두는 보화요, 가장 보장성이 높은 저축입니다.
“너는 네 떡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는 살면서 비상시를 대비하여 비상금을 준비해 두고 보험도 듭니다. 병원한번 안가고 건강보험 꼬박꼬박 내면서 억울하단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흐르는 물에 떡을 던지고 그것을 가능한 한 도로 찾지 않는 것이 큰 복인 것은 건강보험의 경우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내가 지불하고 나는 한번 써먹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사용하면 나는 그들을 돕는 것입니다. 반면 내가 내는 보험료보다 더 많이 사용해서 거저 치료받으면 나는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누가 복된 자입니까? 보험료만 계속 내고 한 번도 병원 가지 않았으면 그는 많은 사람들을 돕고 병원비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은 평강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흐르는 물 위에 떡을 던지면 여러 날 후에 도로 찾는다고 합니다. 그 여러 날을 우리는 살아생전으로도 볼 수 있고 또는 주님 재림시 우리가 새 몸으로 부활할 때로 보아도 됩니다. 그때가 언젠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느 때라도 상관없이 우리들의 상급은 분명히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보상을 땅에서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들의 짧은 생각과 욕심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베풀고 난 뒤 그들이 도로 갚지 못하면 비로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그 열매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물위에 던진 떡은 하늘에 쌓아두는 보화요, 보장성이 확실한 저축입니다. 그것은 땅위에 쌓아 도둑이 들거나 화재가 나거나 물이 쓸어가지 못합니다. 가장 안전한 곳에 가장 확실하게 보관돼 있는 우리들의 보배인 것입니다. 물위에 던진 우리들의 떡,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 같은 베풂이 이렇듯이 미래에 관한 최고의 자산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 앞에 쌓아두는 최고자산에는 단순히 물질에만 국한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랑, 그것은 하나님께 쌓아두는 최고의 보화요, 가장 보장성 높은 저축이며 그것은 물질뿐 아니라,
3. 베푸는 사랑과 그 관계에 온전히 헌신하는 것입니다.
관계라면 우리는 먼저 거저받은 구원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 근본으로 삼아 나아가게 됩니다. 관계의 헌신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복음을 전하며 복음으로 살아가는 관계의 헌신입니다. 관계에서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취약한 것은 언제나 흐르는 물에 떡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던지는 부매랑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그렇게 자기 시야 안에 자신이 던진 떡이 최소한 몇배로 돌아와야 족한 마음으로 관계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관계에서 많이 베푼 사람일수록 그 배신감을 견디지 못해 힘들어합니다. 보상받지 못한 관계좌절은 다름 아닌 기대치였다는 것을 우린 압니다. 베푼 사랑과 정성에 자신도 모르는 기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잘 키워놓고 효도 받을 때쯤 다른 이의 품에 안기는 것을 이기지 못합니다. 사랑은 결코 일방적이지 못하기 때문인데 그 대표적인 예로 고부간의 갈등입니다. 고부갈등은 거의 관계에 잘못 헌신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입니다. 전혀 돌아올 가망이 없는 관계 앞에 열심히 가르치고 사랑하고 베풀어 그 상급이 하늘에 쌓인 것만으로 기뻐할 수 있을까? 성경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허상을 말하지 않습니다.
갈6: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관계에 헌신하여 돌아오지 않는 사랑을 베푼 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맡아 보관하신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 저와 여러분이시기 축복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맡으신 것 중에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혹시 우리에게 영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결코 낙심치 않는 것은 그것이 더없는 우리생애 최고의 저축이 된다는 것을 성경이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사라질 많은 것 가운데 미련을 버리지 못하지만 그것들을 하늘에 쌓아두는 데에는 서툴기 짝이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헌신을 세상이 다 몰라도 주님은 아십니다. 그리고 오른 손에 받으시고 한 방울도 새지 않는 금향로에 담아 하늘나라에 잘 보관하십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랑, 반응하지 않는 사랑에 목말라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미 하늘곳간에 주님이 잘 보관하고 계십니다. 지금 배가 좀 고파도 곧 큰 적금을 타게 되는 사람의 풍성과 기쁨이 믿는 자의 것입니다. 우릴 보셨고 지키셨고 또 지켜주실 주님을 믿어 오히려 서운할수록 더욱 뿌듯하게 채워져 가는 하늘의 곳간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좋으신 주님이 받으신 헌신의 열매들은 주님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실 때 기꺼이 내어주셔서 귀하게 쓰실 것을 확신합니다.
19세기말 하와이근처 나환자촌 몰라카이에서 헌신한 벨지움출신 다미안선교사, 그는 1873년 자신을 멀리하는 나환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기 위해 나병에 감염되기를 간절히 원하여 기도하고 그들에게 접근하면서 더욱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어느 날 주님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저들처럼 될 수 있겠나?”그는 관계에서 헌신하고 순교를 각오했습니다. 끌어안고 곁에 누우며 함께 기거했으나 전염되지 않아 애가 탔습니다. 그들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쯤 다미안의 몸에 반점이 생기면서 드디어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뛸 듯 기뻐하며 더욱 힘 있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는 나병환자로 그들과 함께 살면서 죽는 날까지 그리스도를 전하며 그들의 영혼을 모두 주께 인도했습니다. 관계에 자신의 몸을 던져 위대한 주님의 승리를 이룬 것입니다.
갈6:8-10절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에 생명조차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베푼 관계의 헌신과 사랑은 비록 돌아오지 않더라도 끝내 주님의 손에 있어 영원한 하나님의 갚아주심이 됩니다. 받은 말씀 능력되어 흐르는 물에 떡을 던지는 말씀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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