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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02.18. 주일설교<잠22:4. 천국의 부자성도.>

by 설렘심목 2018. 2. 20.

2018.02.18. 주일설교<22:4. 천국의 부자성도.>

[무녀(문열)리는 초태생이고 항상 비실거리며 태어난 히브리인과도 같지만 장자권자임에 분명하다. 자신을 가리켜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창조주 여호와는 무녀리를 키워 제사장으로 세우신다.]

어찌보면 길고 어찌보면 짧은 한평생, 행복하고 기쁜 일들보다는 정녕 피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많은 날들,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 길에 우리들의 절망과 소망은 단 하나, 반드시 죽는다는 겁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엔 심판이 있으리니받은 복을 손에 움켜쥐고 정든 이들과 어찌 헤어질까? 절망합니다. 두렵습니다. 그런가하면 뒤돌아보기조차 싫어 몸이 떨리는 아픔들, 한 많은 한평생, 눈물없는 그 나라 언제나 가려나? 죽음은 차라리 소망인 것입니다. 건강한 영혼에게 천국은 여기가 싫어서 달아나는 데가 아닙니다. 다른 이들처럼 세상이 좋아서 붙잡는 생명도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는 잘 알려진 잠22:4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안전고리를 걸어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19:23-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면 반드시 부자가 되는데 부자는 천국가기가 마치 바늘귀로 낙타가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니 앞뒤가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엔 오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가난을 물리치고 부요해집니다. 그런데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부자는 어떤 부자입니까? 오늘 설교제목은 <천국의 부자성도>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부자성도, 준비할 그 첫째는,

 

1. 모든 것에 부요하신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6:33)

 

잠언과 시편 곳곳에서도 부와 귀와 영광이 주께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들이 마19장의 부자가 결코 천국에 들지 못한다는 말씀과 부딪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자의 개념과 구약에서 말하는 재물은 서로 같은 물질에서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가난에서 속히 벗어나기 위해 재물을 원하게 됩니다. 왜 부자를 원합니까? 잘살기 위해서입니다. 왜 잘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보편적인 바램입니다. 그러나 잘 산다는 것은 결코 물질의 풍요에서 온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 행복의 한편을 돕고 있지만 행복 전체를 대표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이 행복의 전체인양 거드름을 떨면 행복은 사라지고 물질의 노예로 전락해서 가난보다 못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의 원천이 결코 눈에 보이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대한 보상 중 먼저 재물을 꼽고 있는데 그 재물이 겸손과 하나님경외에서 시작합니다. 즉 관계가 물질을 이끌어갑니다. 그렇습니다. 물질로 관계를 열어가는 경우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돈보고 결혼하거나 돈으로 맺은 인연은 셈이 맞지 않을 때 속히 멀어지고 오히려 원수지간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계산없이 다만 사랑하고 희생하며 존경하기에 맺어진 관계는 모든 것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부자든 가난하든 너라면 내 생명도 아깝지 않다는 사랑은 모든 물질과 조건을 뛰어넘습니다. 우리주님의 사랑이 그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활입니까? 그것은 결과적인 사건이었지 첫째 목표는 아닙니다. 첫째 이유는 죄인구원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 원동력이 사랑인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딛고 있는 죄에 물든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세상사랑은 결국 거기 고통받는 당신의 자녀들로 인한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십자가에 오르신 주님께서 부자가 되면 결코 천국에 들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제목은 천국의 부자성도입니다. 곧 부자성도의 자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려면 부자이기 전에 먼저 모든 것에 풍부하게 넘치시는 하나님을 찾기 바랍니다. 모든 것에 풍부하시다는 말씀으로 자칫 물질에만 우리의 관심이 가지 않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 풍성하신 것 중 가장 큰 것은 사랑입니다. 풍성하신 많은 것 중 최고의 선물이 십자가에 오르신 사랑입니다. 우릴 위해 죽어주실 만큼 크고 풍성하신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이면 무엇에도 넉넉한 풍성이 사랑으로 인하여 베풀어집니다. 그러므로 부자를 원하기 전에 모든 것에 꾸짖지 않으시고 후히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찾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야 합니다. 다음, 천국의 부자성도가 되기 위해 준비할 두 번째,

 

2. 받은 복을 기억하며 감격하는 것입니다.

 

복 받을 사람은 복된 생각에 젖어 있습니다. 부자가 된 사람을 보면 부자가 될 만한 생각과 부자될만한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매우 복된 부자라고 늘 겸손하게 인정하면서 복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높이는 일에 열렬합니다. 실제로 그들 중엔 그렇게 세상이 말하는 부자의 증표가 많지 않습니다. 그저 남에게 빌리지 않을 정도의 살림살이를 꾸려갈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누가 뭐래도 자신을 부자라고 확신합니다. 그의 부요는 세상이 주는 부요와 다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부요의 사람, 이미 받은 복들을 기억하며 수시로 감격하는 부자성도입니다. 100:4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라고 노래합니다. 받은 복을 헤아려 새삼스럽게 감격, 감사하는 일은 복 받을 만한 심령입니다. 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사라입니다. 방금 읽은 시편에서도 하나님의 문은 감사로 들어가 그의 궁정을 찬송으로 통과한다고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힘든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감사해야 할 이유는 그 고통 안에 주께서 도우신 흔적이 곳곳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거기까지 인도하셔서 도우신 것을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시편기자는 자신의 고난 앞에 이렇게 감사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조차 감사함으로, 여러분은 열린 천국 문에 드는 부자성도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 부자성도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3. 주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청지기로 사는 것입니다.

 

복을 받기 전에 복을 전하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화목함이 좋은데 성숙한 성도는 화목하게 하는 중재자가 되는 것을 더욱 사모합니다. 승리하는 것보다 승리하게 하는 것이 더 기쁩니다. 사랑은 가만히 앉아 받기보다는 활발하게 활동하며 베풀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희생은 무엇입니까? 희생은 아픈 것이 아니라 가슴가득한 감동입니다. 희생은 주는 것 중 가장 큰 것을 줄 때 쓰는 말입니다. 희생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냈다는 영적포만감은 귀한 하늘의 선물입니다. 미숙한 자의 기쁨은 받는데 있고 성숙한 자의 기쁨은 주면서 나타납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그 부자는 청지기사상이 없는 부자입니다.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까맣게 잊고 마치 모두 자기 것인 양 자기 맘대로 사용해 스스로 자랑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맘대로 사용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과 그의 교회를 위하여 가난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물질을 사용하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부자가 된 동기와 이유가 모두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그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욕심쟁이 이기적인 세상 부자가 아닙니다. 그의 소유는 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니 그는 하나님보시기에 청지기일 뿐 소유가 없는 무소유자입니다. 물론 사람들 보기엔 부자이지만 그는 정직하고 가난한 히브리인일 뿐입니다. 나는 이 말씀 받는 중 우리 모두에게 청지기사상이 뿌리깊이 새겨져 결국 천국에 들어가는 정직한 부자들이 될 줄 믿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부자들 가운데 기부자는 극소수에 불과한 귀한 분들입니다. 록펠러, 카네기, 빌게이츠 등 세계부호들이 상당한 액수를 사회에 기부해서 도서관, 장학재단, 학교, 장애자시설, 복지재단 등을 설립합니다. 그들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을 잘 믿고 특별히 십일조를 생명처럼 알고 드린 사람들입니다. 3:10절을 가장 명확하게 증거한 부자들입니다.

아옹다옹 다투다가 결국 모두 빈손으로 떠나는 것을 보면 인간이 하나님 앞에 갈 때는 믿음하나 갖고 가는 걸 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소유란 결국 하나님이 보시에 선한 청지기를 찾아 잠시 맡겨주시는 물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통 세상의 재물은 대부분 양심 비양심을 가리지 않고 굴러다니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겸손하여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받은 재물은 영광과 생명을 보장하면서 다가온,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잠시 맡아 성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할 때 그는 진정한 히브리인의 자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언제나 가난한 자의 마음과 자세로 살아갑니다. 자기소유가 없으니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자기 것이 아니라 잠시 맡아둔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함부로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밥알 하나가 설거지통에서 하수로 내려갈 때 농부들의 피와 땀이 보여야 합니다. 대충 먹고 남은 생선토막에서 어부들의 찌든 얼굴과 생명을 건 파도와의 싸움이 보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들, 우리 손에 오기까지 무수한 수고와 눈물과 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천국에 기쁨으로 들어가는 부자들 되기 바랍니다.

세상에 내 것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 것입니다. 잠시 맡았습니다. 자녀도 물질도 인격도 관계도 믿음도 모두 주의 나라 영화롭게 하라고 부족한 우리지만 믿고 다 맡겨 주셨습니다. 바로 쓰는 자에게 더욱 채워 맡겨주실 주님이 늘 지켜보고 계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부자는 세속적 부자가 아닙니다. 모든 소유 하나님의 것임을 절실히 깨닫고 늘 맡은 자의 사명을 기억하여 모든 소비를 주의 뜻을 따라 바르게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맡기십니다.

그는 늘 겸손함으로 주신 작은 것 하나에도 크게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겸손한 소비가 청지기사상으로 무장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부자가 됩니다. 그런 부자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사용하게 됩니다. 늪에 빠진 자를 돕고 구원의 손을 기다리는 절실한 자에게 복음과 함께 찾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는 지독한 구두쇠입니다. 끝으로 주안에서 부자가 되는 사람들은 항상 물질보고 달려가지 않고 하나님이 모든 삶의 목표가 됩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였습니다. 특별히 겸손함으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날마다 감사하고 주신 모든 것 맡은 자의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채우시고 바르게 사용하게 하실 주님이 여러분을 기뻐하실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늘 부어줄 자를 찾습니다. 채워주시려고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원하셔서 채워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