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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03.04. 주일설교<계1:9-20. 교회를 향한 예수그리스도의 계시실존>

by 설렘심목 2018. 3. 4.

2018.03.04. 주일설교<1:9-20. 교회를 향한 예수그리스도의 계시실존>

[러시아 당대 유명한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1818)는 대선배이자 존경하는 시인 푸쉬킨(1799)을 문안하려고 찾아갔다. 들어가려는데 남루한 한 사람이 나가는 게 보였다. 너무 초라해보여서 이반은 생각했다. “위대한 작가의 집에 저런 누추한 하인을 고용하다니 쯧쯧그러나 바로 그 초라한 행색을 한 사람이 푸쉬킨이란 사실을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인은 그러므로 사람보기에 무흠한 자가 아니라 흠투성이어도 늘 자신의 허물을 아파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

 

성경 66권중 마지막 책이며 마지막 예언서인 본 계시록은 다른 모든 예언서의 결정판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언을 원하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서를 대하면서 인류에게 더 이상의 예언은 사실상의 함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말씀으로 충분한 우리들의 영혼이고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는 말씀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실존과 지금하시는 일을 보면서 우리 교회와 가정들이 나아갈 길을 인도받기 원합니다. 밧모섬에서 노구에 간신히 생명을 의지하며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던 사도 요한에게 주님은 무심치 않으셨습니다. 주께서 나타나신 목적은 고통받는 아시아의 일곱교회에게 장차 반드시 일어날 일을 보여주심으로 위로와 확신을 주고 믿음으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살아계신 증거이며 동시에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이 신비한 증거는 오늘날 믿는 모든 이에게 여전히 동일한 것이며 힘찬 소망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다같이 요한의 자리에서 또 아시아 일곱 교회의 자리에서 받는 말씀으로 힘겨운 세상 넉넉히 이길 줄 압니다. 10절입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주의 음성은 36524시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가 그 음성을 발하고 있고 만물이 그 음성을 발하며 우리 가슴에 그의 음성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본문처럼 친히 찾아주셔서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로하십니다. 그 음성의 권세는 세상을 창조하신 권세입니다. 그 음성은 부드럽고 세미한 사랑의 음성이고 그 음성은 천하를 호령하는 재판장의 두려운 음성입니다. 사람을 일으키시는 생명의 음성, 교회를 세우시는 건축자의 음성, 그 음성을 들으면 막힌 것들이 통하고 각종 질병이 떠나갑니다. 우리는 그 음성듣기를 원해야 합니다. 15절은 이 음성을 많은 물소리와 같았다고 합니다. 사막 같은 세상에 시원한 한줄기 물처럼 생명을 살리는 물, 이 음성, 말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우리 모두이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2-16절입니다.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 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사도요한이 본 주님의 모습은 한마디로,

 

2. 세상을 통치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1) 일곱 금촛대 사이에 두루 다니시고 있습니다. 일곱 금촛대에는 항상 불이 켜 있습니다. 구원의 등불입니다. 말씀의 권능입니다. 세상을 비추는 진리의 빛이요, 치료의 빛입니다. 선악을 분별하시는 심판의 불이요, 빛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그리스도의 변함없는 약속, 진리등불이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특별히 금촛대는 불변하는 언약을 상징합니다. 일곱교회는 당시 실제 교회숫자지만 오늘날 주님이 운영하고 다스리시는 교회들의 만족한 수를 말합니다. 교회는 많건 적건 주님의 기뻐하시는 수에 들어갑니다. 금촛대 사이 즉 영원한 당신의 몸 된 교회가운데 두루 살피시면서 다니시는 주님이 오늘 여기 말씀을 주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늘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부족을 사용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실지언정 결코 교회를 버리지 않으시고 일으키시는 주님이 저와 여러분의 모든 것 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몸된 성전과 당신의 백성들 사이에서 성령으로 오늘도 변함없이 운행하십니다. 그가 벌이는 교회운동은 오늘도 순종하는 한사람을 찾습니다. 촛대사이를 거니시는 주님 앞에 무릎으로 나아가 그리스도의 요긴한 한 사람으로 인도받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대제사장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의 활동이십니다. 발에 끌리는 옷과 가슴에 띤 금띠와 양털같이 희게 빛나는 머리털과 불꽃같은 눈, 그리고 주석 같은 발은 대제사장의 옷 속에 빛나고 있는 신성을 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만이 지닐 수 있는 신성의 거룩함을 요한은 어찌 적을 길 없어 그가 평생 본 것 중에 하나로 설명합니다. 금색의 가슴 띠와 끌리는 옷은 온 인류의 대제사장직을 말하지만 머리털과 눈과 음성은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뜻합니다. 양털보다 흰 머리털은 주님의 의와 순결이고 불꽃같은 눈은 쉬지 않고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입니다. 금색 가슴띠는 사람의 중심을 묶어 사로잡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나는 주석 같았습니다. 주님의 행보와 진행은 무엇으로도 막지 못하는 후회없는 발길입니다. 한번 시작한 구원의 역사는 무엇으로도 막지 못합니다. 그 주님이 우리의 구원주시고 우리들의 아버지요, 우리들의 생명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유일한 마지막 자존심과 자랑입니다. 16절을 읽습니다. “그의 오른 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3) 말씀으로 교회를 인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의로우신 오른 손에 택하신 교회가 들려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친히 주장하십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손발이 되고 가슴이 돼 그 사랑을 나눠주는 일에 쓰임 받게 됩니다. 그 손에 들린 교회들을 통해 세상을 바꿔 가십니다. 시간은 걸려도 주님은 주석같은 발로 거침없이 한발씩 내딛으며 나아가십니다. 아시아의 일곱교회를 의미하는 일곱별은 각기 다양한 교회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결국 하나님은 일곱교회들을 통해 만족한 일을 하실 것입니다. 일곱교회 안에 들어있는 지구상의 모든 교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태어났고 지금도 주님 손에 붙잡혀 구원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물론 주님이시오, 주님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교회의 핵은 구원받은 영혼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십니다. 그 영혼이 잘되기 위하여 필요한 세상의 여러 가지는 주님이 먼저 아십니다. 그러므로 부르짖어 구하는 이에게 주님은 당신의 뜻을 따라 베풀어 주십니다. 16절에서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라고 했습니다. 4:12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3. 주의 말씀은 죽은 영을 살려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십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마지막 승리입니다. 불법과 악행과 무법이 가득해 가증한 무리들이 높은 데 오르고 선한 하나님의 무리가 애매히 고통가운데 있을지라도 진리는 끝내 승리합니다. 우리들의 육체는 곧 시들어 썩어 흔적조차 없어지겠으나 하나님나라 그 영광은 무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의 소망이 어디 있습니까? 요한이 본 주님의 모습가운데 호흡을 봅니다. 주님의 입에서 양날이 시퍼런 칼이 나옵니다. 세상과 영혼을 주님 뜻대로 재단하고 심판하시고 버릴 자를 버리고 새롭게 할 자를 새롭게 하실 겁니다. 그 얼굴은 해처럼 밝게 세상을 항상 비추는데 불꽃같은 눈은 악하고 부패한 모든 것을 파헤칠 것입니다. 억울한 자를 자유롭게 하시고 교만한 자가 반드시 심판받을 것입니다. 17절 붉은 글씨부터 18절까지 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4. 영원히 살아계셔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주변에 우리가 볼 수 있는 만물 중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한분만이 영원불변하는 존재요, 사랑이십니다. 세세토록 살아계시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쥐신 주님은 처음과 마지막이십니다. 우리의 처음과 끝이 주님 손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망은 주님 안에서 사라졌습니다. 고전15:55절입니다. “사망아 네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에게서 죄를 제하셨으니 죄로 인한 심판과 사망이 무관한 우리에게 사망은 아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사망이 공격할 대상은 구원받은 우리가 아니라 세상에 취해 그리스도를 영접치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노예가 아닙니다. 아무 것도 겁내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이 크고 놀라운 일 앞에 엎드려 죽은 자처럼 됐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실로 놀랍고 두려운 일입니다. 떨리는 일입니다. 평생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사건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그러므로 한 인생을 변화시키고 가정과 민족을 바꿔놓게 됩니다. 요한이 놀라 떠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님이 지금 두려워말라고 한 것은 막6:50절 부활 후 닫힌 문으로 들어오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내니 두려 말라.” 죽어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셔서 다신 못 뵙는 분이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찾아오시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요한의 놀람은 공포감이 아닙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 앞에 어찌할 바를 몰라 놀라고 있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 영원과 순간, 지옥과 천국을 한손에 쥐신 권능의 하나님. 그 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더욱 확고히 믿는 믿음이 우리 살아생전 최고의 능력이며 기쁨의 출발입니다. 요한사도가 당시에 본 우리주님의 생생한 모습을 오늘 우리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요한에게 나타나신 주님 오늘 우리마음에 계십니다. 그분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거룩한 영이십니다. 더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십시오.

바쁜 중에도 잠시 짬을 내어 그분의 임재를 원하시고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원하기 전에 선물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나를 가까이하기보다는 내가 주는 선물에 더 관심을 갖는 아들을 보면 아버지의 마음은 허탈합니다. 철없는 아들이 언젠가는 철이 들어 자신의 아픔을 알기 원할 것입니다. 그 아들은 자라서 자신의 아들에게 꼭 같은 일을 당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보통 자녀를 키우면서 다소 하나님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너무 멀리 두시지 않기 원합니다. 지금 여기 바로 저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기껏 모셔놓고 방문한번 열어보지 않는 성도가 없기 바랍니다. 그분은 업고 다닐만한 작고 가벼운 노인이 아닙니다. 그분의 등에 업히세요. 기뻐하면서 노래만 부르세요. 그분의 따스함이 느껴질 것입니다. 내인생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것이 아니라 내 인생 주님의 것이라 하는 순간부터 내 인생은 주님이 책임지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분의 등에 업히세요.

옳은 길, 평강의 길, 기쁨의 길, 풍성의 길, 영생의 길, 나누는 복된 길로 우리들을 인도하십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