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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8년03월18일 주일설교<레1:3-9.번제와 화제>

by 설렘심목 2018. 3. 18.

20180318일 주일설교<1:3-9.번제와 화제>

[아담에게 하나님이 입혀주신 인류최초의 옷은 가죽옷이었고 그것은 죄 없는 짐승 하나가 아담의 죄로 대신 죽어 희생제물의 피를 흘렸다는 증거이다. 이후로 인간의 태생적 죄를 씻는 유일한 방법으로 짐승을 잡아 올리는 희생제사가 하나님을 만나는 조건이 됐다. 그 짐승은 어린 양으로도 기억되는 죄용서의 십자가은총은 물론 이제 인간 내면에서 아직도 주님을 만나지 못해 변화되지 않은 죽은 영, 곧 짐승과 다름없는 육성, 옛 자아도 포함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러 태어나고 짐승은 본래 잡혀죽기 위해(벧후2:12) 태어나는데 그래서 인간의 최대영광은 예배하는 것이며 짐승의 최대영광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제물이 돼 번제(燔祭)단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영은 예배로 닦여지고 육체는 화목제물로 태워짐이 가장 바른 복의 길이다.]

 

레위기는 죄인된 인간과 인간을 구원하시고 자녀삼으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사라는 단계를 거쳐 화목하게 되는 배경과 과정과 절차를 비롯한 백성들의 성결에 관해 집중적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건과 성결을 유지하려면 피할 수 없는 죄청산의 문제가 항상 걸림돌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제사라는 한 방식에는 마땅히 죄용서의 대가로 피흘림이 따라야 했습니다. 9:22b절에서도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번제로 소를 드릴 경우의 제사법입니다. 1-7장은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등 5개의 제사에 관한 상세한 내용인데 번제는 가장 기초적인 제사로서 본문에 제물의 종류는 달라도 거듭되는 같은 내용은 제단에 뿌리는 제물의 피와 태울 때 올라가는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제물을 올려놓은 제단이 있고 그 제단에서 올리는 제물의 타는 냄새, 그리고 제단 사방에 뿌려져 고약하게 풍겨오는 피비린내가 곤고한 인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3-4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하나님이 명하신 번제물의 모습 그 첫째,

 

1.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흠 없는 수컷입니다.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입니다. 제사자, 곧 예배자는 제사가 의례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주일이면 늘 습관처럼 교회를 향하고 교회출석하면 의례히 순서에 따라 일어섰다 앉고 반주에 맞춰 노래하고 기도하라면 머리숙이는 그러한 타성에 젖은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익숙한 요4:23-24절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당시 유대율법과 전통에 따라 장소나 형식을 중시하던 때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의 원형을 제시합니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과 치장보다는 내면 깊은 곳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말씀이 지배하는 성경적인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예배는 예배하는 자신이 제물이 돼 주님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과 그 기쁨이 체험되는 벅찬 회복의 시간입니다.

2) 흠 없는 수컷을 제물로 드립니다. 번제단의 제물뿐 아니라 모든 예물은 흠과 티가 없는 초태생을 말함으로 가장 깨끗하고 출중한 생명을 희생으로 드리게 됩니다. 이는 드리는 중심의 최선과 성실을 원하신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실한 것으로 제물삼아 예배자의 심중에 아낌없는 헌신이 일어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은 결국 최고의 것을 되돌려주시기 위한 사랑 그것입니다.

3) 머리에 안수한 제물입니다. 제물이 될 짐승의 머리위에 제사하는 이가 안수를 하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희생제물의 머리위에 모두 전가시킵니다. 아무 죄 없이 영문 모르고 제물이 될 소나 양, 염소는 죄를 뒤집어 쓴 채, 제단에서 희생됩니다. 희생은 산채로 제단에 올리는 짐승을 말하는 것인데 이 희생의 죽음과 저주는 희생을 바친 이에게 생명과 축복의 근거가 됩니다. 모든 죄를 그에게 옮겨 죄 없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주님이 죄 없이 십자가에서 모진 고문과 조롱과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죽으실 때 받으신 모든 저주는, 그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과 각양 만복의 근거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희생죽음과 저주로 만민의 생명과 만복의 근원이 되신 겁니다. 그러므로 골고다언덕은 죄로 인해 죽어있던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백성, 믿음의 의인들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온 인류의 자궁, 영생의 태였습니다. 한 생명을 출산하기 위해 엄마는 말할 수없는 심한 통증을 견딥니다. 주님은 인류를 당신의 십자가에서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산고를 겪으시고 죽음을 이기신 후 부활하심으로 에덴 이후 사망의 노예 됐던 모든 인류에게 인류역사상 전무후무 유일한 가장 복된 소식, 복음이 되신 것입니다.

본문 5-6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하나님이 명하신 번제물의 모습 그 두 번째,

 

2. 제단 사방에 뿌려지는 피와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 제물입니다.

 

희생의 목적은 대신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목적은 그 죽음을 통한 죄의 용서이고 용서의 결과는 화목입니다. 그리고 생명입니다. 죄로 죽을 자가 죽지 않고 용서받아 용서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희생제물의 죽음이 확실하면 확실할수록 확실한 죄용서가 보장됩니다. 제단에서 치르는 희생의 모습은 죄의 값을 청산하는 과정이므로 처절할수록 좋습니다.

피가 사방에 뿌려지면 그 고약한 피비린내는 흔히 경험할 수 없는 괴로움입니다. 아무리 비위가 좋은 자라 하여도 피의 비린내만큼은 역겨워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그만큼 죄의 냄새는 고통 그 자체입니다. 성경에서 일컫는 피는 생명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혈기도 생명력에서 나옵니다. 젊으면 혈기가 극에 달합니다. 혈기는 피의 힘입니다. 핏대 올라 통제 못한 행동 그 뒷감당은 실로 몇십 갑절을 지불해야 간신히 조용합니다. 죄에 물든 피는 속히 빼내어 제단사방에 뿌려져야 합니다. 생명과 모든 것을 주신 주님을 기억한다면 우리들의 혈기는 상당부분 맥을 놓게 됩니다. 주님이 날 어찌 사랑하셨는데 나는 이 작은 일에 이렇게 펄펄 뛰는가? 이는 마치 수십억을 유산으로 받은 자가 이웃에게 꿔준 돈 만원 늦게 갚는다고 멱살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 중 자신의 혈기핏발이 거룩한 개척정신과 교회를 향한 열정으로 거듭나기를 울며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은 가죽을 벗기는 일입니다. 죄의 옷을 벗는 이 과정은 의의 갑옷을 입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새 옷을 입히는 엄마가 때 묻은 헌옷 위에 그대로 껴입히진 않습니다.

 

반드시 벗어야 할 죄악과 허물. 벗은 것만큼 새로워지는 그리스도의 임재.

여기 각을 떠서 나무위에 벌여놓는 완전한 죄의 해체는 우리로 하여금 그 통증이 결국 영원한 주님나라로 가는 가장 분명한 과정이라는 것을 본문의 제사법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밀착된 죄성은 서로 모여 일체가 돼있습니다. 그것들도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더 잘 지켜 일심으로 우리들을 공격합니다. 그것들은 각을 떠서 십자가아래 벌여놔야 합니다. 자신 안에 있는 허물과 죄를 보면 지극히 작은 것들이 모여서 자신의 인생을 크게 흔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번에 해결 못합니다. 하나하나 악하고 더러운 기질과 습관을 해체해서 떼어내야 합니다. 비방하고 수군대고 헐뜯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과 이기심으로 인한 악한 생각과 행위들은 하나하나 떼어 내어 십자가아래 내려놔야 합니다. 거기 흐르는 희생의 보혈에 적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절실하게 느끼는 구원의 감격은 모든 허물과 분노와 혈기를 잠잠케 할 것입니다. 8-9절을 함께 읽습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하나님이 명하신 번제물의 모습 그 세 번째,

 

3. 물로 씻어 정결하게 되고 불로 태워 여호와께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어야 합니다. 내장 속에 있는 내용물은 모두 빼내고 여기저기 다녀서 오염된 정강이와 함께 물로 씻은 뒤 번제단에서 불살라 화제로 드립니다. 그때에 타오르는 냄새가 하나님 앞에 향기롭다고 본문은 증거합니다.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놓인 번제물은 결국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죄를 양도받아 죄의 육체가 물로 씻긴 뒤 다시 불에 태워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 올라가고 죄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번제의 절차를 통해 우리들의 예배를 살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번제물은 마지막에 불사르는 제사, 화제(火祭)가 되어 하나님 앞에 향기롭습니다. 우리들의 예배는 아시다시피 우리자신이 예물이요, 번제물입니다. 우리는 형식이나 외형보다는 성령의 인도하심가운데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가운데 한평생 주님께 맡겨져야 합니다. 예배자적 삶을 살기를 원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가 서 있는 거기가 제단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죄의 옷을 벗고 의의 거룩한 믿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144천이 입은 믿음의 흰 두루마기를 말씀과 언약가운데 입기를 원합니다. 각을 떠서 나무위에 올려놓은 제물, 죄와 허물은 산산조각이 나 성령의 불로 태워져야 비로소 우리는 거듭난 생명이 됩니다. 확실하게 죽어 태워지고 다시 받는 새 생명의 잔치, 번제단에서 태워지는 제물의 냄새, 성도의 삶은 복음의 불로 태워지는 아픔이자 주님의 한없는 영광이기도 합니다.

 

내 죄성을 아파하고 그것이 주님의 불과 말씀으로 태워질 때 칼로 베는 아픔과 절규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손해보고 예수 믿는다는 한 가지 사실로 여러 가지 모함당하고 낙심할 때 그 타는 듯한 통증을 주님은 향기로 받으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으로 채우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자체입니다. 예배는 번제단입니다. 예배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예배에는 거듭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죽음과 삶을 동시에 경험하는 부활의 체험이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백사람이 예배를 같이 드려도 백사람 모두 다른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주신 말씀 따라 확실하게 눈물로 씻은 손과 발, 속마음 내장과 온전히 성령의 불로 태워지는 신앙양심과 옛사람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기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무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절히 원할 때 이미 계획하신 귀한 일들을 주님이 하십니다. 번제단의 귀한 제물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마다 놀라운 주의 은총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