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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窓가에서

2014.12.13.그리스도의 승천은 사단에게 있어서 절망이었다.

by 설렘심목 2018. 1. 18.

2014.12.13.토요. 그리스도예수의 승천은 사단에게 있어서 절망이었다.

사단은 자신들에게 끝이 있다는 걸 알았다.

육신이 끝나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불신세상의 사람들은 그래서 죽음이 두려운 것이고

그래서 죽기 전에 다 차지하고 싶어 한다. 이 세상이 복잡한 쟁투인 이유이다. 어찌 더 기적을 보기 원하는가? 어찌 더 신비를 보려는가? 돌아보아 신비요, 기적인 것을... 세상이 온통 기적과 신비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깨닫는 복이 최고의 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신비와 기적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모든 게 문제이다.

육체가 있는 한, 아픔과 불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영이 회복돼 깨어나면 의를 알게 돼 비로소 실질적 불행은 사라지고 불행의 흔적만 남게 된다.
    이 불행의 자국은 뱀의 허물과도 같아서 비록 실체는 아니지만 여간 역겹고 흉한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순간마다 말씀의 힘으로 거듭나도 허물은 거듭남의 증거로 파도처럼 그침없이 다가와 눈에 보여 피부를 찌른다.
    그래서 아직 여기가 천국이 아닌 세상이고 우리 몸이 천사가 아닌 육체라는 사실을 깨워주게 된다.
    잊지 않아야 할 일은 머리를 짓뭉개어 죽은 뱀의 몸처럼 징그러운 죄가 우리를 죽음이란 히든카드로 위협해도
    그것은 이미 생명을 잃은 허상이고 그 허상은 반드시 머지않아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이다.(히11:1) 그렇다면 실상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시고 그를 믿는 믿음뿐이다. 그
    리스도는 그 허물과 연약과 죄악을 한 몸에 안으시고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성육화하신 신비이시다. 그 분은 말씀하나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제도 우리 안에서 말씀으로 재창조작업 중이시다. 아멘. 2014.12.31.수요. 섬길만해서 섬기는 것 아니고 사랑할만해서 사랑하는 것 아니다.
    주님이 인생들을 사랑하실 때 내 모습을 보고 섬기신 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으로 사랑하신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결단하여 강제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인간 안에 그게 없기 때문에 위로부터 채우시는 사랑이 가득해야 비로소 아가페는 가능하다. 내 안에 진정한 사랑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함으로 그리스도의 자비를 입을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히브리인의 하나님, 히브리인의 주여! 보이는 것들과 히브리인들을 통해 주를 섬기겠나이다.
    히브리인 중에 아내가 있고 나라가 있고 후손이 있고 또 내 육체가 있나이다. 임신한 뒤 사라에게 감히 덤빈 하갈,
    그의 아들 이스마엘은 15살 때 이삭이 태어나자 조롱했다.
    그는 활쏘는 자로 살았으나 이삭은 모리아산에서 25세에 아버지의 칼 앞에 머리를 내놔 하나님 앞에 순종한 후에
    언약의 자녀로 우물파는 인생이었다.
    이스마엘과 이삭, 그들의 인생과 후손은 그래서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마엘에게도 창대한 복을 약속하셨다.
    믿음강화를 위한 가라지의 양육과 그 사랑, 누가 이 오묘하고 위대한 사랑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