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28.
죄에 대한 대안은 정직이고 부족에 대한 대안은 성실뿐이다.
주님의 징계는 죄에 대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것이었고
능력없음에 대한 나무람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않음에 대한 것이었고
그것은 언제나 게으름에 대한 것이었다.
1만원짜리 상품을 팔고도 만족여부를 묻는 세상에서
성도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그리스도 주 앞에
자신의 모습이 세상 앞에 과연 불만제로의 삶인가를 늘 짚어 여쭤야 한다.
최선의 목사가 되기 위하여 먼저 최선의 성도가 돼야 하며
좋은 성도가 되려면 무엇보다 바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 담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던 소년시절의 꿈이
아직도 우리에겐 진행 중인 숙제이다.
나면서부터 절름발이인 사람이 있고 나면서부터 앞을 못보는 이가 있다.
그렇게 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나서
배냇병을 끝까지 달고 살아야 하는 인생 중에
나도 있고 너도 있다.
알고보면 모두가 한결같이 환자 아닌가?
정신분석학의 석학 지그문트 후로이드박사도
모든 인간을 일단의 정신병환자로 보았다.
꿈결같은 젊은 날들인가?
이제 피차 환자를 보양하고 돌보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 장애를 비관하지 말라. 고치려 노력했고 거기 최선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지금 그대의 모습은 그대로 최고이다. 최선은 최고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몸과 정신 어느 한구석에 장애는 있고
그래서 환자아닌 자가 없는 게 세상이니
장애와 질환이 모이고 얽혀 굴러가는 부조리, 그게 인생이다.
잠시 스쳐가는 안개처럼, 해뜨면 사라지는 이슬처럼,
인생이 허탄하고 부조리해도 순간에서 영원으로,
그리고 부조리의 거북함에서 충분한 납득과 감동이 있는 곳,
또 노래가 있는 데라면 그야말로 생명을 걸어볼만 하지 않은가?
예수위해 죽고 예수 안에 다시 사는 신앙만이 참인생의 참된 길이다. 아멘.
2014.07.27.
끊임없이 귓가에 속삭이는 열등감의 마귀,
부족한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좌절했던 어린 날들,
비교하면서 시작되는 열등감과 우월의식,
그러나 이것이 없었다면
오늘의 개화되고 진보된 화려한 인류의 역사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목회현장에서 몸과 마음이 지칠 때 나는 언제나
젊은 날 한밤중 깡통을 걷어차며 시간을 보내야 했던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위로를 받고 또 좌절한다.
내 본디 그렇게 못난 존재가 아닌가?
명암을 오가는 생각이 시이소오를 탄다.
감사와 수치, 안도와 불안감,
그리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가슴 한편이 메어져 오는 것을 느낀다.
괜찮은 이웃들이 퍽 많았다.
문제는 언제나 나자신이었다는 사실 그건 참 늘 버거운 주제이다.
열정에 감정이 들어가면 혈기되고 신중함이 지나치면 우유부단이 되듯
겸양지덕에 치우치면 어김없이 자학과 비굴함으로 괴롭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