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02. 주일.
생각과 입장의 차이에서 삶의 향방이 바뀐다.
개는 사람들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예뻐하는 걸 알고 인간을 향한 최고의 충성심을 갖고 주인을 신쯤으로 생각한다.
고양이도 보호받고 사랑받으며 인간을 따르나 좀 다른 생각을 했다. 이들은 자신이 신쯤되는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컵에 반정도 담긴 물을 보며 한사람은 "물이 반밖에 없다."고 하는데 한사람은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말한다.
아슬아슬하게 열차에 오른 사람이 좀 지나자 말한다. "왜 이리 출발이 더딘 거야."
아슬아슬하게 열차를 놓친 사람이 발을 구르며 말한다. "기관사 성격 정말 급하네. 3초의 여유도 없냐?ㅉㅉ"
객관은 지나는 나그네가 보는 소견이니 사심(私心)이 없지만 주관은 팔이 안으로 굽는 생각이다.
객관의 잣대로 자신을 보는 이는 모든 이에게 기쁨과 존경을 얻는다.
인간은 한결같이 자기라는 울타리에 갇혀 진정한 의미의 객관자가 되기 어렵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완벽한 객관이시고 또 주관이시다.
철저하게 인간의 내면에 들어와 살피시니 여타의 인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공평하시고 눈물이시며 인간의 마지막 노래가 되신다.
그러나 그 깊은 생각을 알 수 없는 인간의 불만은 그 이유가 전적으로 인간의 짧은 생각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해
공연한 분노에 묶여 산다.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은혜의 전 생애를 깨닫기 전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울부짖고 가슴을 찢을 것인가?
하나님의 영을 감각하여 전율하듯 느끼며 감동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우리는...
사람을 기뻐하고 사람에게 분노하고 사람 앞에서 구걸하듯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할 것인가?
정녕 주님의 실존 앞에 떨며 감동하기까지 우리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걸고 달려왔다.
때로 사람이 감동을 줄 때 그 사람 뒤에 계신 주님의 숨결을 깜빡 잊고 사람에게 빠져 취했다.
얼마나 허탄한 일이었는지 그 세월을 한탄할 것도 없이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울부짖듯 뜨겁고 절실한 교제를 통해서 사람으로부터 자유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하여
진정 진리로 인한 자유가 넘치길 소원한다.(2014.02.02. 주일낮설교문중 일부발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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