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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7.10.29. 주일설교 <창3:1-7. 죄의 기원(Ⅰ)

by 설렘심목 2017. 10. 30.

2017.10.29. 주일설교 <3:1-7. 죄의 기원()


육체를 지닌 인간에게 죄란 피할 수 없는 필연인 경우가 흔합니다. 육체가 있어서 피하기 어렵고 또 이기기도 쉽지 않은 죄, 모든 불행의 기원이 되는 죄와 무관할 수 없다면 죄에 대한 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먼저 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죄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오늘 죄를 바로 알게 될 줄 믿습니다. 바로 알면 답이 보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죄, 인류의 불행이 된 죄, 그 죄는 먼저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출발합니다. 명령은 순종함으로 명령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충성되고 정직한 자는 명령을 분석하려 들지 않습니다. 명령을 따져보는 일은 명령권자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명령권자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일 경우엔 그야말로 따져보거나 확인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검토할 것이 못 됩니다. 명령을 검토한다면 이미 그에겐 명령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억압,(갑질)입니다. 기독교역사상 모든 불행은 신학적으로나 예배 실천적으로나 하나님이 하신 명령이나 율법을 분석하는데서 시작한 것입니다. 1절 뒤쪽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1. 교만은 하나님의 명령을 검토하고 분석하고 왜곡합니다.

 

1절에선 하나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다고 했고 간교한 뱀이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묻습니다. 사단이 하는 질문의 목적이 분명합니다. “꼭 지켜야만 하나? 안 지키면 뭐 큰일이라도 난다는 거냐?”는 겁니다.

간교한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 중 모든 나무라는 말로 질문하여 하와로부터 명령을 살짝 비껴가게 유혹합니다. 유혹은 언제나 받는 쪽에서 마음의 빗장을 끌러놓고 기다릴 때 강력합니다. 위험한 호기심으로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합니다. 3절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2:17.먹지 말라) 말라. 너희가 죽을까(2:17.반드시 죽으리라) 하노라 하셨느니라.” 유혹을 바라고 있는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고 변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잘 전해야겠단 사람의 생각으로 꾸미거나 치장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물론 시대배경과 역사적사실성의 부각을 위해 사실적 접근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좋지만 내용을 변형시키는 일은 전하는 자나 받는 자 모두를 함정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를 통해 주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세우신 종을 통하여 교회에 명령합니다. 이때에 명령을 받은 목자는 더하거나 덜하지 말고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섞어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이 명령전달자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지나친 열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함께 섞는 일은 명령의 내용을 깎아내는 것만큼 잘못된 일입니다. 명령을 받는 성도들 역시 주님의 절대권위와 교회의 질서를 존중하여 성실한 자세로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때로는 힘겨운 방침으로 가야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침이 힘들 때는 차라리 있는 힘만큼만 하겠노라고 고백하면 됩니다. 믿음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단순히 믿으라고 하면 믿으면 됩니다. 그렇게 신뢰함으로 간단하게 복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순종은 내세와 금세에 모든 복을 받는 기초조건이며 순종은 언제나 제자리를 겸손한 마음으로 지켜 화평하게 하는 길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질서가 깨져 생기고 이 질서가 깨어진 곳은 늘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은 어둠이 지배하게 됩니다. 부모가 부모위치에서 벗어나면 가정이 고통을 당하고 경찰이 자리를 비우면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보초가 제 위치를 벗어나면 전투에 패합니다. 원상복구와 위치회복은 본래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5-6절 앞부분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 주매 그도 먹은지라.”

 

2. 교만은 제 위치에 만족치 않고 분깃을 지나쳐 원합니다.

 

사단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봅니다. 하와의 속을 알아차린 사단이 하와의 위치를 하나님의 자리로 끌어올리겠다고 합니다.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달콤합니까? 지금 사단으로 묘사되는 뱀과 하와는 뜻이 신속하게 하나가 됐습니다. 선악과를 보니 너무 탐스러웠습니다. 금방 읽은 6절 뒷부분에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었다.”고 합니다.

 

3. 교만이란 죄성은 속히 다른 죄와 연합합니다.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말합니다. 물은 물끼리 기름은 기름끼리 속히 연합하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입니다. 아담은 졸지에 아내의 범죄에 동조하고 온 인류가 죄악으로 접어드는 첫 문을 열게 됩니다. 따라서 아담이후 모든 인류는 죄인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이 후 모든 인간은 죄로 향할 땐 노력이 필요없게 됐고 바른 길로 가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쉽지 않게 됐습니다.

사랑과 화목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새 계명입니다. 계명은 자기를 강제하여 쳐야 지킬 수 있으나 악한 일, 하나님과 무관한 일에 하나 되는 일은 신속하되, 그 결과가 비참할 뿐입니다. 우리의 전투는 제일먼저 자신 안에서 두 법으로 시작합니다. 바울도 고뇌하고 갈등한 우리안의 이 두 법이 거룩한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편에서 하나 되면 그것은 세상이 알 수 없는 평강이지만 인간의 세속적 생각이 이겨서 육신적으로 하나 되면 거기는 달콤한 유혹과 영원한 멸망과 저주가 기다리는 형벌의 수렁이 됩니다. 내안에서 종종 싸우는 두 법 가운데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거기서 이긴다 해도 바로 옆에 누군가와 또 다시 우리는 의견조정을 해야만 합니다. 주변을 잘 살펴보세요. 주님편입니까? 친구 잘 사귀어야 합니다. 분별이 잘 안되면 무조건 성경의 소견을 따르세요. 낭패가 없습니다. 좀 부족한 듯해도 하나님 쪽에서 늘 생각하는 사람을 사귀기 바랍니다. 그는 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활동하는 것이 체질화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전해주는 사람이 됩니다. 7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4. 교만이라는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피해 멀리 떠나게 합니다.

 

요일 3:21절입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사단이 말한 대로, 밝아진 눈으로 기껏 보게 된 것은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결과, 벗었다는 부끄러움과 공연한 두려움으로 숨게 된 것 뿐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뭔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숨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숨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잎으로 자신을 감추고 장식했습니다.

 

받은 말씀을 정리해봅니다.

1. 교만은 하나님의 명령을 검토, 분석, 왜곡합니다.

2. 교만은 제 위치에 만족치 않고 항상 지나쳐 요구해 제 것 외에 더 많은 것을 탐닉하게 합니다.

3. 교만은 속히 다른 교만을 찾아 연합합니다.

4. 교만이란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피해 멀리 떠나 숨게 합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살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복된 아름답고 선한 삶을 살고자한다면 성경과 교회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돼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에나 필요 외 많은 것을 탐하는 욕심을 떨쳐내 절제해야 합니다. 다음, 내안에서 두 법의 싸움이 선한 승리가 돼야겠습니다. 가까운 이들과 교제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주장하도록 의도적으로 자신을 내드려야 합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듣고 행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죄의 사슬이 풀려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 열려 복음이 여러분의 것이 될 터인데 이제부터 그 일은 저와 여러분 각자의 몫으로 남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부디 생명의 길을 택하셔서 복된 길을 가시는 우리 모두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0:14-15절 붙잡고 기도합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