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2. 주일예배<행10:38-43. 베드로의 증거, 그리스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40일간 이 땅에 계시다가 500여 명이 보는데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신 것 우리는 마치 본 듯이 믿는 복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1:4) 그리고 약속대로 주님은 영으로 찾아오셔서 기다리는 제자들에게 성령의 임재가 충만했는데 마치 갈라지는 불의 혀처럼 나타나 각 지방 방언으로 복음을 담대히 전파하게 하셨습니다.(2:3-4) 이후로 복음은 불처럼 번져 대단한 폭발력을 갖고 힘 있는 교회운동이 일어납니다. 가룟유다대신 제비뽑아 맛디아를 세우고(1:28) 제자들이 변해 사도가 되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설교할 때 3천이나 믿게 됐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를 고친 것은 이때쯤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가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벌떡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없는 자나 가진 자가 하나가 돼 초대교회는 부흥합니다. 성도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왔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일부를 감추었다가 하나님의 징벌로 사도 앞에서 죽습니다. 사도들이 기적을 일으키고 일곱집사의 선출에 이어 스데반은 공회에서 거침없이 설교를 한 후 돌에 맞아 순교합니다. 한편 교회를 핍박하는 유대교에 헌신된 청년사울은 예수신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다메섹을 가던 중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획기적인 구원을 받습니다. 길 위에 쓰러졌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눈을 뜬 사울청년은 눈뜬 맹인이 되어 사흘간 먹지도 못한 채 사람들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갑니다. 그때 주님이 환상 중 제자 아니니아에게 나타나셔서 직가라는 곳에 가면 기도하고 있는 청년이 있는데 그에게 안수해 눈을 뜨게 하라고 하십니다. 눈을 뜬 사울은 자신을 부르신 주님께 생명을 건 종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사울청년을 죽이려고 하지만 사울의 회심으로 예루살렘의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세워져가는 초대교회 이야기가 본문과 사도행전을 여는 내용입니다.
사도행전은 일명 성령행전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예수의 영, 성령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임하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의 나라확산을 위해 일하신 증거를 기록한 책입니다. 오늘 설교본문은 경건한 군인 백부장 고넬료의 신앙이 바탕으로 깔립니다. 당시 선민 이스라엘사람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께 택한 거룩한 민족이요, 다른 민족들은 모두 이방인으로서 매우 천박하게 보아 사람으로 여기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고넬료는 이방인입니다. 베드로를 청해 말씀을 듣게 하신 예수의 영을 경험한 고넬교와 베드로는 성경에서 최초로 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된다는 것을 증거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가 드디어 바울처럼 이방인의 사도로 그 첫 설교를 기탄없이 선포하는 장면이 본 설교의 주제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아주 단순합니다. 38절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1. 성령이 충만하면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하며 마귀를 쫓아냅니다.
주님의 3대 사역은 가르치고 전하시고 고치신 것입니다. 선한 일과 마귀에 눌린 자를 고치신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임을 본문은 주님 사역을 소개하며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되기를 소원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냐고 물어본 바울의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입니다. 에베소제자들은 성령이 계신 줄도 몰랐다고 대답합니다.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다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영, 보혜사이십니다. 즉 예수님이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을 기뻐하고 그분의 능력에 붙잡히게 됩니다. 택한 백성에게 구원이후 최대의 기쁨은 다름아닌 성령충만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가득하면 드디어 주님이 하신 일들을 대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우리주님이 하신 사역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한 대목으로 우리가 성령을 받은 후에 일어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선교요, 전도입니다. 선한 일 가운데는 하나님의 선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여러 사역이 포함됩니다. 진리를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면서 각종 악하고 추한 것들을 바로 고쳐 정상적인 몸과 영혼으로 선한 사람,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조선 땅에 복음이 들어온 후 병원과 학교와 고아원이 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 전에는 의원다운 의원도, 학교다운 학교도, 고아원도 없었습니다. 사회복지가 전무했던 시절에 여자는 천한 노예였고 상식조차 통하지 않던 암흑의 시절 빛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둔 곳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자, 눌린 자, 병에 걸려 신음하던 자, 배우지 못해 사람취급 받지 못한 자에게 복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선물이었습니다. 2천 년 전 예루살렘거리도 같았습니다. 문둥병이라는 나병환자들이 흔했고 과부, 고아, 거지들과 눈먼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을 비롯해 많은 불치병환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이 거리에 흔했습니다. 주님이 두루 다니신 곳은 주로 그늘진 어둠의 현장이었습니다.
누군가 주님께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니까 하나님 외엔 선한 자가 없다고 하신 주님은 진정 선하신 분이셨습니다. 여기 쓰인 선이란 말은 창세기에 창조 후 “하나님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좋았다는 것인데 모든 악한 것의 반대의미로 하나님의 만족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영어의 good, 원어적의미로는 도덕적 완전성, 성경적으로는 하나님나라 시민으로 적합한 것과 구원의 완전성,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로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만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하신 일, 두루 다녀 행하신 선한 일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두운 세상에 드러내어 구원의 손을 움직이신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39-41절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2.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할 택함받은 주의 증인들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선포는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확신에 넘치고 있습니다. 그는 두 눈으로 분명히 본 사실을 증거하는 일에 몇 가지 정황적인 근거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하신 일을 본대로 증인의 입장에서 사실그대로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부활의 그 증거가 아무에게나 보인 것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베드로의 증거로는 그 기적의 사건을 보게 된 증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 함께 주님을 모시고 음식까지 먹은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음식까지 함께 먹은 제자들에겐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증거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있다는 사실에 아멘으로 동의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이 밝히는 증인의 특징은 미리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이미 피할 수 없는 증거가 확보됐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제자들에겐 다른 증거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신앙과 불신의 차이가 결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만물이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증거가 없어서 예수그리스도를 못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택자가 아니라는 것은 주님만 아시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이란 결국 예수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입니다. 42절입니다.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3. 증거의 내용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크리스쳔의 평생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란 사실을 몸이라는 그릇과 총체적인 인격과 삶에 담고 그 사실이 잘 드러나게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도로서 최고의 생애는 복음을 그렇게 몸으로 노래하며 증거하는 삶입니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나사렛청년 예수가 그들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야신줄 꿈엔들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정녕 당시 유대인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당시 그곳에 태어났다면 우리도 별수 없이 주님을 향하여 돌을 던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거룩하신 구세주를 기다리던 그들의 환상과 기대 속에 그려온 찬란하고 화려한 구세주의 초상화는 한낱 비천한 목수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가난한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눈부신 광채로 신묘한 베일에 가려져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위대한 황제의 모습으로 압도적인 권세자의 인물이었습니다. 목수의 아들, 누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겠습니까? 택한 자가 아니면 결단코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으며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같은 경우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특별히 택한 자에게 주신 믿음만이 그 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어 주님 안에서 주시는 모든 복락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신기한 것은 주 앞에 귀히 여김을 받는 것이 윤리나 도덕보다, 공로나 열심보다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평생을 바칩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을 믿어드리고 신뢰하여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갚으셨습니다. 그리고 영생과 천국의 시민권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까지 하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의 신부라고까지 하셨습니다. 또 친구라고도 불러 주십니다. 최고의 이름은 다 불러주셨습니다. 다만 믿어 의심치 않고 주님이라 부른다는 한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베드로의 살아있는 증거, 그 증거는 베드로의 능력이 아닌 오직 성령의 충만으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두루 다니며 가장 선한 증거,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그 도를 가르치며 택한 자의 능력으로 기적을 베풀 수 있습니다. 주님을 고백하고 선포하고 증거하고 노래할 때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며 그때야말로 우리들 인생에 최고의 시절, 절정을 이룰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들 가운데 저와 여러분과 우리들의 후손이 중요한 자리를 지키게 되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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