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강단

2017.10.01. 추석주일설교<고후6:14-18. 함께 있으나 함께 멜 수없는 멍에>

by 설렘심목 2017. 10. 1.

2017.10.01. 추석주일설교<고후6:14-18. 함께 있으나 함께 멜 수없는 멍에>

본문에 나오는 멍에란 어깨 위에 올려진 부담을 말합니다. 이 부담은 물질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이 될 수도 있고 관계가 될 수도 있으며 명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감당해야 할 것들을 말하는데 언제나 멍에는 환영하기 어려운 부담입니다.

 

핵가족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일가친지가 모두 모이는 날이 많지 않습니다. 오래 떨어져 살다가 잠시 만나는 친지들은 그 짧은 모습을 다음 볼 때까지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는 구별된 자들입니다. 같은 육체를 소유해도 육체가 영혼 앞에 꿇어 복종하도록 하려는 영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혹 불신가족들을 만나면 많은 갈등과 갈등이 안보이게 생깁니다. 심하면 좋은 연휴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시간에 긴장하여 우리가 섬기는 주님을 잘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랜만에 집안이 모이는 가운데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귀한 능력될 줄 믿습니다. 본문에서 밝히는 그리스도와 벨리알, 의와 불법, 빛과 어두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겠는가 라는 말씀은,

 

* 결코 멍에를 같이 할 수 없는 관계를 말합니다.

 

불행하게도 드물게는 끝까지 함께 멜 수없는 멍에를 메고 평생을 가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운 부모형제라도 찬미예수의 감동을 함께 안고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멍에가 다를 수 있고 함께 멍에를 메어도 그 수준이 달라 늘 삐걱거릴 수 있습니다. 노력을 해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본문은 그러나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여기서 같이 메지 말아야 할 멍에란 어떤 것을 말합니까?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할지라도 결코 함께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말하는데 들어 순종해서 복이 되길 바랍니다.

 

중심사상의 멍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2:11)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삼상 16:7절에서도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않으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습니다. 친지들은 오랜만에 만나 여러 가지 화제로 꽃을 피우게 됩니다. 남자들은 술 마시고 화투놀이나 윷놀이도 하면서 어린 자손들을 보고 기뻐합니다. 드러난 걱정거리가 있으면 함께 염려하고 위로합니다. 좋은 일은 축하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화제에서도 우리는 겸손하게 그리스도중심사상을 하나님 앞에서 잘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 전도하겠다는 강한 의욕이 엉뚱한 이야기에도 고개를 끄덕여주는 일은 실로 중심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실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의 실수는 사람 앞에서도 결국 부끄럽게 됩니다. 나누는 화제가운데는 현안으로 드러난 정치, 경제, 사회, 가정문제, 그 외 많은 것이 있을 겁니다. 크고 작은 많은 사건에는 반드시 우리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든 또는 입을 열어 참여해 인정하든 부인하든 우리들의 소견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때 기억할 것은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함께 할 수 있느냐는 주님의 음성을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공손하고 부드러운 자세를 유지하여 상대방이 흥분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중심은 하나님중심사상과 성경적 해석방법을 잃지 않기 바랍니다. 상대방의 뜻도 아니고 자신의 뜻도 아닌 냉정한 객관의 눈을 가질 때 그 눈은 하나님이 성경으로 말씀하신 관점이어야 합니다. 객관성을 유지하는 냉철함은 반드시 선한 승리와 존경을 얻을 것입니다. 17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은 중심사상의 멍에를 함께 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들 중에서 나와 따로 있고 부정한 멍에를 함께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의 헬라어원문 에클레시아를 말합니다. 에클레시아는 밖이라는 에크와 불러내다 의 클레시아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밖으로 나와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는 것은 성도로서 지극히 마땅한 이름값의 기본이 됩니다. 구약에서는 부정한 것으로 여러 가지를 말하는데 부정한 것 중 항상 먼저 나오는 것은 시체입니다. 그리고 문둥병자입니다. 유출병자와 접촉한 것입니다. 즉 영혼이 죽은 자와 영혼의 감각이 둔해서 같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지 못할 자와 항상 생명을 땅바닥에 흘리고 다니는 이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불신자의 영혼이 죽어 있는 것은 알 수 있는데 유출병자에 대한 적용은 좀 더 세밀해야 합니다. 유출병은 몸에서 피가 흐르는 모든 증세를 말합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생명을 흘리는 일은 생명 같은 성도의 삶을 아껴쓰지 못하고 함부로 낭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간과 물질과 중심을 하나님과 무관한 것에 낭비하는 것, 유출증세에 속합니다. 비록 경중에는 차이가 있어도 모두 하나님주신 한번 밖에 없는 생명 같은 것들입니다.

 

이어서 성경은 따로 나와 있어 그들 무리가운데 있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 지금 만지고 즐기는 것을 함께 만지지 말라고 본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호흡은 있어도 하늘의 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 영혼이 죽은 자입니다. 우리의 과거 그렇게 죽었던 것처럼 그들은 아직 그리스도를 감각하지 못하는 영혼의 문둥병에 걸려있으며 그것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즐기는 것을 함께 만지지 않기 바랍니다. 화투, , 담배, 음담패설과 수군거리며 흉보고 부풀려 말하는 것과 자랑하는 것 등 많은 것이 바로 눈앞에 만져질만한 거리에 있어 약한 믿음을 흔듭니다. 제사상 앞에서 잠시 고개한번 숙이고 무릎 좀 꿇어주면 모든 게 평화인데 믿음의 절개로 모처럼 가까운 혈육들을 만나서 물위에 기름처럼 함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은 실제로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 부담을 최소화하려면 성도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아무 것도 막지 못하는 한 법을 소개하는데 그것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 드러나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이 성령의 열매 우리는 다 맺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최선을 다 할뿐입니다. 기도로 무장하고 연휴에 들어가기 바랍니다. 성령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민속 중에는 언제나 무속이 숨어 있습니다. 민속은 우리를 무속으로 인도하는 마귀의 길잡이며 무속은 100% 미신으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 십계명 중 앞 네 개를 어기는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들의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조상들과 친지들을 불쌍히 여긴다면 우리는 친지가족이 모인 가운데서도 여전히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면서 선한 싸움을 이겨야 합니다. 그렇게 함께 하시는 주님을 모시고 성실을 다하면 성경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선물이 주어진다고 위로합니까? 16절 뒤입니다.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진 자는 임마누엘의 형통을 누립니다.

 

11:29-30절에서 주님은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그리스도를 섬기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기로 귀한 결단을 해야 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의 멍에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그 멍에를 어찌 메야 하는지를 배우라고 하십니다. 두 마리의 소가 한 짝을 이뤄 한 멍에를 지고 밭을 가는 당시 농사현장에 빗대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과 함께 메는 멍에는 주님의 영광도 약속돼 있습니다. 그 약속이 지금 읽은 본문처럼 나는 저들의 하나님이 되어 저희 가운데 두루 행하신다는 것이며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놀라운 자녀의 신분부여와 동행의 복된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된 연휴이시기 바랍니다.

꽃을 피우는 것은 어렵지 않아도 꽃이 아름답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꽃이 향기를 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 시작됐는지 우리들은 어느 새 예수믿고 예배하는 자가 됐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모습을 갖춰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크리스챤의 향내를 내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 안에 아무 능력 없지만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면 만나는 모임마다 겸손으로 화목할 줄 믿습니다. 우리 안에 담대함 없어도 주님 함께 하시면 이번 연휴엔 주님을 공손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전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우리 아버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임을 기쁨으로 확인하며 영광 돌리는 귀한 시간들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