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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7.09.10.주일예배<막5:25-43(36).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by 설렘심목 2017. 9. 10.

2017.09.10.주일<5:25-43(36).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가난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과연 풍요일까? 아니다. 사랑과 정의와 신뢰이다. 이 세 가지가 없어서 가난이 다가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위협하는 것은 이기심과 끝 모르는 욕심이다.]

 

예수님당시 거리에서 중풍병자, 귀신들린 자, 나병환자 등을 보는 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많은 난치병환자들이나 회복이 없는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존재자체가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만 만난다면 저주의 사슬이 풀리고 깨끗이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세례요한에게 눈먼 자가 눈을 뜨며 걷지 못하는 자가 일어나 걸으며 문둥병이 낫고 못 듣는 자가 듣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말하라 하셨습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자 그 비보를 하인들이 야이로에게 전하는 안타까운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야이로는 억누를 수 없는 슬픔과 절망 그리고 다시는 사랑하는 딸을 볼 수 없다는 낙심과 슬픔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주님은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믿기만 하면 되는 이 믿음이 오늘 말씀을 들을 때 저와 여러분 안에 채워질 줄 믿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 믿기만 하라는 믿음은,

 

1. 하나님이 영원히 살아계시는 것을 믿어드리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절 말씀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이 기독교신앙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모든 것을 통해서 말씀하고 또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음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분명하게 보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원초적인 믿음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가 한시적이 아니요,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지극하고 당연한 이 믿음이 뿌리를 잘 내리지 않으면 후에 모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나 어떠함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어드리는 믿음보다 훨씬 뒤의 일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 곧 하나님이 계시다는 존재의 믿음은 오직 성경에서 말씀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 그 중에 최우선의 이유이고 다음이 위로부터 주시는 계시에 의해 믿는 것이요, 끝으로는 살면서 핑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증거를 보면서 믿는 것입니다. 1:20절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최소한의 지각과 상식이 있는 자라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어쩐 일인지 대단한 사고력에 추리력이 풍부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믿음이 사람의 능력이나 어떠함에서 오는 게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선물이라는 증거입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인생 중 최고의 능력인 줄 믿으시고 오늘 이 능력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믿기만 하라는 믿음 두 번째,

 

2. 하나님은 사랑이신 것을 믿어드리는 믿음입니다.

 

, 나의 생명. 나의 사랑. 나의 작은 아기야. 차라리 네 대신 내가 죽었더라면..”언젠가 소개했던 3천년된 아기미라 앞에 적혀있던 수메르어의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의 죽음은 부모에게 더 이상 없는 고통입니다. 야이로에게 주님이 믿기만 하라.”는 것은 믿으라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믿으라는 것은 믿음에 따른 행위도 포함하지만 믿기만 한다는 것은 단순히 주님을 신뢰하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믿어드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음 앞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열두 살 사랑하는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생명 같은 딸의 죽음 앞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부모로서 참기 힘든 아픔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말씀하십니다.“믿기만 하라.”아마 딸이 죽기 전에 회당장 야이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책을 다 해봤을 겁니다. 회당장은 마을의 유지입니다. 유복해서 하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는 세상의 부귀영화권세가 아무 힘을 쓰지 못합니다. 야이로는 딸이 가엽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야이로는 순간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주님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후에 야이로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그가 두려워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서 두려움의 의미는 염려, 낙심, 절망 등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 요일4:18절에 보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야이로에게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이 없음을 주님은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신뢰하고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알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야이로에게 두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나 재앙이나 불행과 고통을 두려워합니다. 본성적으로 생존을 위해 느끼는 이 두려움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만 약화되며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음과 무관한 영원한 사랑이시며 영생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그래도 문제는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영생을 소망해도 여전히 불행과 고통은 계속 다가오고 죽음같은 날들 한가운데서 죽을 수도 없을 때 사람들은 말합니다. “, 함정이다. 덫이다.”그렇습니다. 인생이 끝이 없는 문제요, 함정이라면 그리스도께선 답 그 자체요, 복음이 교과서입니다. 인생이 바르지 않은 답, 죄엔 익숙하지만 의에는 매우 서툴러서 늘 하는 짓이 죄나 죄의 뿌리가 되는 것들입니다. 인생이 고달픈 것은 언제나 바른 답을 찾지 못할 때입니다. 그리고 바른 답을 찾았을 때엔 이미 답 아닌 것이 인간을 이미 죄의 노예로 잡아 꼼짝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저와 여러분 앞에 다가온 일 가운데 우리의 힘이 못 미치고 아무 방법 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 말씀이 기억나기 바랍니다. 불행과 고통의 현장을 보면 어김없이 이미 저질러진 일의 결과이기 때문에 사실 손을 쓸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럴 때야말로 야이로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 외엔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함께 하시는 주님이 중요한 결론은 이미 갖고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널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2천년전 야이로의 곁에 서 계시던 주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 곁에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까? 억울해도 아파도 초조해도 불안해도 주님지신 십자가는 우리들의 마지막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여기가 종착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시 지나는 간이역에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종점에서 기다리시는 주님의 빛나는 얼굴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우리가 타고 온 구원열차에서 영생열차로 갈아타고 다시는 두려움이 없고 눈물도 없고 아픔과 서름과 외로움과 어리석음과 실패가 없는 곳, 모함과 미움과 시기가 없는 아름다운 아버지의 집을 향해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을 오해하며 힘들어하다가 불평하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13:14절에선 우리가 찾는 영구한 도성은 여기 없고 장차 올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임을 말합니다. 이번엔 히 10:33-35절을 함께 읽기로 합니다.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흘리는 눈물과 당하는 고통을 주님은 다 아십니다. 보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신뢰하며 경배하며 찬양하는지를 또한 기다리십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것은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배가 좌로 가든 우로 가든 중요한 것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결국 끝까지 보살피신다는 것입니다. 이번엔 본문 막5:39절입니다.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주님말씀에 의하면 야이로의 딸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자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딸은 살아났습니다. 성경에서는 죽은 자를 종종 자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성도에게 죽음은 전혀 다른 의미의 영원한 삶으로의 출발을 말합니다. 험한 세상 끝내고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출발은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11:2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이제 주님이 왜 죽은 딸앞에서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는지 그 깊으신 뜻을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와 영생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생만사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시기 축복합니다. 그분의 선하신 다스림도 믿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성도들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잠시 자고 있다는 것을 또한 믿기를 바랍니다. 생사를 뛰어넘는 이 믿음만 우리가 소유한다면 두려움도, 고통도, 가난도, 수치도, 억울함도 잠시 지나는 것이요, 영원한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평강의 그 날에 이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풍요와 평강의 주님을 증거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풍요의 시대, 오늘 날 우리에게 없는 게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주변의 관계울타리를 만들고 그만하면 쓸만한 건강과 물질과 필요가 다 있습니다. 없는 것은 단 하나, 믿음뿐입니다. 이 믿음하나 없어서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갑니다. 가진 것 다 드리고라도 믿음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에 아멘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만 우리 안에 제대로 있다면 그 모든 것 다 주시되 흔들어 차고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참혹한 핵전쟁의 공포가 한반도 위에 있습니다. 이때야말로 주님이 절실한 때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믿음 붙잡기 바랍니다. 다 잃어도 믿음 잃지 않는다면 모든 것 다 붙잡은 것인 줄 믿고 근심과 두려움대신 찬미예수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순결한 믿음의 분량위에 가득 채우실 주님을 오늘 이 말씀가운데 만나신 줄 믿습니다. 주님이 다 하십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믿은 대로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풍성하고 복된 감사의 삶이되시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