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1. 주일설교<갈6:7-8. 심고 가꾼 그대로>
[나의 과거(어제까지)는 神으로부터 받은 선물이고 나의 미래(내일부터)는 신께 드릴 제물이다.]
[성경-받을만한 사람-열린 만큼 앎-믿음은 알고 깨달은 것 행하기까지를 포함]
심
은 대로 거두리라는 본문말씀은 교회나 세상이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철칙(鐵則)으로 세상만사가 그것을 이미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제가 아는 몇몇 가정의 가훈이기도 합니다. 내가 던진 돌이 내게 돌아오고 내가 행한 선이 내게 복이 된다는 이른 바, 부메랑의 원리는 성경 여러 곳에서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포를 세계사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 범죄가 카인으로 이어져 아벨의 피로 드러난 것처럼 유대인이 메시야를 거부한 죄가 그들의 말대로 그들 자손에게 돌아와 110만명이라는 세계사 최대의 학살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미국은 또 성경을 읽으면서 노예를 부린 죄가 남북전쟁이라는 부메랑으로 가정마다 곡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과거 러시아 니에프제 고르스크에 큰 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건물 등이 땅속으로 매몰됐는데 어느 초등학교는 11학년 졸업식장 전체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15일 주기로 교대하는 직장의 아내들이 가정마다 두 남편을 두고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던 그 마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성윤리증발이 한 마을의 증발이란 부메랑이 돼 돌아 온 것입니다.
한편 성경 시편 126:5-6절에선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해 어려움을 잘 참고 뿌린 눈물이 반드시 기쁨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욥4:7-8절에서도 “생각해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라고 합니다. 선이건 악이건 심고 가꾼 그대로 거두는 부메랑의 법칙은 세상 어디서도 보게 됩니다. 본문 7절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
1. 하나님 앞에서 파종하는 인생입니다.
먼저 1) 하나님 앞입니다. 무엇을 파종하고 경작하든 하나님 앞이라는 분명한 인식이 믿음으로 체질화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ram deo! 신전사상이 체질화된 성도라면 무슨 일을 하든지 조심스럽지만 늘 편안합니다. 분하거나 억울하지 않습니다. 손해를 보거나 알아주지 않아도 그의 평화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주님 앞에 있으니 주님이 보고 계셔서 알아주시고 지켜주신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지금도 날 보고 계시고 이미 아셨고 함께 하신다는 것만 제대로 감각하고 있어도 우리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뀔 줄 믿습니다.
다음은 2) 파종하는 인생이라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모두 씨를 뿌리고 경작하고 마침내 거둬들이는 농부들입니다. 농부들은 자신의 농토를 갖고 그 땅에서 열심히 땀 흘려 농사를 집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겁니다. 분주한 사람들은 종종 보이는 것을 따라 허겁지겁 뛰다가 하나님계신 것을 깜박 잊고 삽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일상화되면 어느새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활동하게 됩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세월이 지나 하나님을 멸시하는 범죄로 발전합니다. 업신여긴다함은 없다고 보는 것, 즉 무시한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은 눈에 뵈는 것에만 집착하고 열심히 뛸 때 흔히 생길 수 있는 함정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사귀려 할 때, 취업을 준비할 때, 결혼을 준비할 때, 물건을 사려할 때, 뭔가를 배워야할 때 그는 자신이 매우 중요한 또 한 개의 씨를 심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작은 자신의 생애를 상당부분 바꿔놓기 때문입니다. 8절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아멘.
2. 썩어질 것을 위해 육체를 심지 말고 영생을 위해 성령을 심어야 합니다.
1) 육체를 위해 심지 않아야 합니다. 본서 5:19-21a절을 함께 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반드시 되돌아올 육체의 부메랑을 하나씩 살피며 함께 경계하는 시간이길 원합니다.
(1)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을 피해야 합니다. 주로 구약에서 타락한 성문제를 다루는 단어인데 음행이 단순한 외면상의 성문제를 말한다면 본문의 “더러운 것”이라 함은 마음속의 불결한 범죄까지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아 하나님이 안 보일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2) 우상숭배와 주술입니다. 우상숭배와 하나님경외의 큰 차이점은 그 행위의 목적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분명한 의와 악이 구별됩니다. 우상숭배와 주술 등은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빕니다. 그러나 하나님경외는 그 목적이 경배자 자신에게 있지 않고 예배를 받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는 자신의 행복보다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경외함으로 그 거룩하신 엄위 앞에 자신의 몸을 낮춰 절함으로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드러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내 사랑이시라 그 경외를 보시고 예배자를 풍성한 복으로 감싸주십니다.
(3)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입니다. 이것들은 사단마귀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도구들입니다. 마귀는 무엇에나 하나님과 반대입니다. 하나되라고 하신 명령 앞에 갈라서라고 합니다. 용서하고 품어주라는 사랑의 명령 앞에 “넌 피해자야, 너만 바보된 거야.”라고 합니다. 축복해주고 함께 기뻐하라는 말씀 앞에 시기심을 주어 분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이런 마음이 올라올 때 즉시 주님의 이름으로 결박하고 쫓아내시기 바랍니다.
(4) 당짓는 것과 분열과 이단과 투기입니다. 당짓는 것과 분열은 결국 바른 진리의 무리를 갈라놓아 복음을 방해하는 사단의 책동입니다. 이는 썩어질 것을 거두는 육체의 추구요, 열매입니다.
(5) 술취함과 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엡5:18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술취함과 성령의 충만이 정반대의 위치에서 인생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술은 인간을 멸망하게 하는 육체의 도구요. 성령님은 인생을 회복시키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생명길이 되십니다.
또 본절은 끝에 “그와 같은 것들”이란 말을 삽입함으로 술이 아닐지라도 술과 같이 인간을 방탕하게 하는 다른 것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술보다 더 위험하고 악한 것들이 그런 방탕한 것들 안에 가득 담겨있어서 많은 인생들로 하여금 육체를 위해 씨를 심고 성령을 위해 씨를 심지 못하게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자신의 이름이라는 술이 있고 명예, 재물, 애정, 특이한 취미활동, 영웅심, 희귀욕구 등 이루 셀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술보다 더 심하게 사람을 혼미한 상태로 마비시켜갑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희귀욕구는 그 피해가 심한 것입니다. 기인(奇人)이 되어 희귀한 사람, 희귀종이 되고 싶은 것인데 결국 이는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애정결핍이 성장하면서 강한 개성과 만나 생기는 돌출적인 인격장애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 것입니다. 진실하지 못하고 의젓한 척, 위해주는 척 하지만 속으로 시기하고 미워하면 육체를 위해 심는 것입니다. 자기육체를 위해 심는 자들은 모두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얻게 될 것이며 이렇게 육체로 심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21절에서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22-23절에서 제시하는 성령으로 심어 영생을 거두는 일을 살피고자 합니다. 22-23절을 함께 읽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법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 성령의 열매를 소망하며 그 씨를 심어야 합니다. 지금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읽었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그리고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듣고만 있어도 뭔가 편안해지기 시작하는 단어들입니다. 이미 우리들의 본성이 그런 말 자체가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 것인지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내안에서 신앙인격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실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고통과 희생과 눈물을 요구하는지 모릅니다. 주지할 것은 본절이 성령의 열매이지 본문이 말하는 성령의 씨를 심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성령의 열매를 구하기 위해 먼저 성령의 씨를 심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육체를 심어 더럽고 부끄러운 열매를 구하지 말고 성령의 씨 곧 성령을 심어 본절이 이르는 성령의 열매를 우리 삶에서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령이 우리 안에 심겨져야 합니다. 성령을 심는다는 건 우리 심령가운데 성령을 초청해서 그의 역할아래 우리가 주장돼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씨가 점진적인 영향력을 전인격에 걸쳐 확장, 즉 주의 통치가 확고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설교 중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 성령의 손에 잡히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씨를 심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성령의 씨는 물론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행사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에게 성령을 위하여 심으라고 합니다. 즉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도록 우리는 선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늘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령의 열매가 드러나도록 의지적인 노력을 통해 내 삶이라는 밭에 성령의 씨가 잘 경작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피땀 흘려 노력합니까? 거둘 때의 기쁨을 알기 때문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린 자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즉 심을 때 수고는 거둘 때의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매사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일렀지만 망한 자를 살펴보면 망할 짓만 골라했고 성공한 사람보면 기특한 일만 골라합니다. 성령의 씨 뿐 아니라 힘있는 선교와 전도를 위해서도 우린 낭비로 가난의 씨를 심지 말고 근검절약으로 부요의 씨를 심어갑시다. 시간이 지나면 꽃이 피고 향기를 낼 것이고 반드시 가꾼만큼 복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립니다. 인내의 씨를 심고, 겸손과 죽음이라는 아픔의 씨를 심으세요. 반드시 주변을 감동시킬 것이고 새 인격과 새로운 인생이 열립니다. 결단하고 절제와 할례의 씨를 심으시면 주님은 풍성이라는 열매로 갚으십니다. 순간을 피하기 위해 속이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그 시간에 이미 육체를 위해 악한 씨를 심은 것입니다. 그것은 곧 썩어질 것 냄새나는 것으로 다가오는데 피할 길이 없습니다. 힘들어도 정직으로 씨를 심는다면 평화와 화목과 기쁨의 선한 열매가 풍성히 맺힐 것입니다.
3) 추수는 반드시 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아기가 세상을 보려면 엄마 배안에서 열달을 기다려야 하듯 곡식도 영글어 거둬들이려면 일정기간 익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은 심은 뒤 성장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기대하고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행위도 뭔가 열매를 기대합니다. 악한 행위는 악한대로 쾌락을 기대하게 해서 사람을 유혹하고 정직하고 의로운 행위는 비록 당시는 쉽지 않아도 선한 열매로 모두가 기뻐하는 결과를 기대하게 합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악과 의는 뭔가를 기대하고 씨를 심고 기대한대로 받게 됩니다. 본문은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본서 5:16절에서 밝힙니다. 그리고 꾸준히 성령을 따라 행하면서 성장의 기간이 경과하면 반드시 이룰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누가 뭐래도 사람 앞에서 하지 말고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는 주님 앞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끝까지 정직하십시다. 정직의 씨는 생각보다 매우 긴 시간이라는 퇴비를 먹고 난 후에야 비로소 열매를 서서히 맺습니다. 잘 참고 기다려야하는 이유는 그 참고 기다리는 시간이, 뿌린 씨앗이 제대로 열매가 되는데 필요한 비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퇴비가 오래 썩어서 되는 것처럼 한동안 많은 오해와 억울함으로 속이 썩어 무너져도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얻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씨를 뿌리며 가고 있는 농부들입니다. 정원을 만들어 놓고 가꾸지 않으면 잡초 밭 됩니다. 흉한 잡초가 예쁜 꽃들을 덮어 숨도 못 쉬게 할 것입니다. 악한 것은 비료도 없이 저절로 잘 크고 선한 것은 끊임없이 가꿔야만 합니다. 심고 가꾼 그대로 거두는 이 진리는 오늘도 우리가 뿌린 우리 삶의 씨앗과 인격의 씨앗과 믿음의 씨앗들로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에서는 여러분의 자녀와 아내, 남편에게 어떤 씨를 심었고 직장에서는 어떤 씨를 심고 귀가했습니까?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앞에 어떤 모습으로 복음의 씨를 심었습니까? 소망과 용기의 씨를 주고 왔습니까? 오늘 우리는 말씀에서 어떤 씨를 받았습니까? 그리고 그 말씀의 씨를 어떻게 심어 어떻게 가꾸고 경작할 것입니까?
우리는 반드시 심고 가꾼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심으신 복음의 씨가 믿는 자 모두에게 새 생명의 열매가 된 것처럼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리고 참된 헌신으로 가꾼다면 머지않아 살아계신 주님께서 그 눈물 큰 기쁨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고통스러웠고 억울했던 날들은 낱낱이 벅찬 감동의 날들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성령의 전이 되어 성령으로 심겨지고 양질의 씨를 심고 최선을 다해 가꾸기로 결단하는 믿음의 개척동지 여러분, 주께서 심히 사랑하시는 저와 여러분 앞에 머지않아서 놀라운 열매들이 드러나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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