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2. 주일예배설교<스2:59-63. 계보의 기쁨>
[주님의 소원도, 우리의 소원도 십자가를 관통하며 이뤄졌다. 주님은 우릴 통하여 우린 주님으로 인해 그것은 반드시 작고 큰 현실에서 남김없이 증거 된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소원은 십자가를 지나 사람에게서 구원과 영생으로 이뤄지는 증거이고 사람의 모든 바람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고난, 십자가를 통과함으로 남김없이 이 땅과 저 하늘에서 이뤄진다. 여기서 사람의 소원이 십자가를 통과한다 함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육체, 즉 삶으로 동참한다는 것을 말하며 이는 성숙과 경건의 완성을 위한 자기채찍을 의미한다.] - 결코 추상적이지 않은 현실.
주전 539년 페르샤의 고레스는 바벨론을 함락시키고 포로살이를 하던 현지거민들에게 자치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어 칙령을 선포하여 유다인들이 고향을 돌아가도록 허용했는데 그 때 5만 명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첫 포로귀환이 이뤄집니다. 이때 귀환자 중에 자신을 유대백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족보를 말할 때 불분명한 사람들이나 족보에 등재가 안 돼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본문은 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제사장들도 있었고 이방민족과 결혼한 가정의 후손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유대인의 자부감으로 귀환하는 군중사이에서 900km가 넘는 험한 길을 열심히 동행합니다. 그러나 족보에 없는 사람들은 어떤 직분도 맡을 수 없었고 늘 선민의 언저리에서 맴돌기 일쑤입니다. 반면 정통계보에 속한 이들에겐 길이 험해도 귀환자체가 감동이었고 뭐든지 신나고 행복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린 우리가 몸을 담은 소속은 어디이고 어떤 의미와 감동이 있는지를 살펴보며 구원받은 자의 바른 소속감과 감격이 넘치기 원합니다. 본문 2:59절입니다.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더라.”
1. 이스라엘에 소속되지 않은 자들입니다.
59절에는 델멜라 등 다섯 개 지명이 나오는데 거기서 온 이들은 소속지파가 불분명했습니다. 어느 지파에 속했냐고 물어보면 딱 떨어지게 어디라고 말하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족보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귀하고 값이 좀 나가는 것일수록 족보를 따지게 됩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예술품도, 악기나 물건도, 하다못해 강아지도 그 족보를 중요하게 봅니다. 어떤 이가 설날 부모님 찾아뵙고 집사 됐다고 했더니 부모님 왈, 메이커교회냐? 교회는 모두 유명메이커입니다. 창조주하나님이 메이커, “Made in jejus”입니다. “그 교회 이상해, 교단이 어딘가?” “그 제품 쓸 만하던데 어디 제품이야?” 이 질문들, 메이커와 족보가 그것을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어느 계보의 사람인가? 어느 가문 출신인가를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이 택할 수 없었던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900여Km, 서울-부산왕복거리를 희망에 들떠 피곤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본문 에스라 2장은 바벨론에 붙잡혀 갔던 자들 중에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놓임을 받고 돌아오는 자들의 내역과 수가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마치 쉰들러리스트를 보는 듯합니다. 포로에서 풀려난 이들, 사형장의 길목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들의 명단, 우리에겐 아무 감동과 놀라움이 없어도 그 현장에서 거기 기록된 이름은 생명을 얻은 감격이 서려있는 이름들입니다. 얼마 전 유한양행 홈페이지에 직원채용 합격자발표가 났는데 49번, 75번, 101번, 최소한 30:1은 족히 되리란 짐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그 명단의 주인공들은 얼마나 감격하고 기뻐할까? 합격자 명단에서 자기 번호를 보는 순간 얼마나 놀라고 흥분했을까? 요즘은 아무나 따는 운전면허 시험도 합격명단에 자신의 번호가 없으면 기운이 빠집니다. 그런데 델멜라. 델하르사 등 이스라엘지파 명단에 없는 사람들 그 심정이 어땠을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살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어딘가에 명단이 올라 소속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태어나면서부터 이스라엘이 아니었습니다. 죄로 죽은 상태에서 태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기껏 공교육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은 한반도 조선민족 우리에겐 단군이 시조요, 예수는 이스라엘의 성자라는 것 정도였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미국 뉴욕 항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의 여신인줄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무지한 가운데 우리는 엉뚱한 줄에 태어나 어른에게 충효하다가 어른이 죽으면 조상에게 제사로 못 다한 효도를 해야 했습니다. 줄을 잘못선 자들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철저히 죽은 자 가운데 본문에 나오는 족보에 들지 못한 자로 세상을 떠돌아 헤매든 자들이었습니다. 59-60절 함께 읽습니다. “델 멜라와 델 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더라.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 652명이요.”652명의 소속불분명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시 64-65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온 회중의 합계가 4만2천360명이요, 그 외 남종과 여종이 7천337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200명이요.” 신분이 확실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위 59-60절의 족보 없는 자 652명과 64~5절의 정통계보의 백성들의 숫자 5만 명을 소개하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652명에게는 희망이 없습니까? 61-63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즉 제사장들 중에도 소속과 신분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은 제사장직의 엄위성과 순수정통을 유지하기 위해 계보가 불분명한 자들에게는 성직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림과 둠밈, 곧 영적권세로 판결권을 지닌 제사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성물도 먹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신약 벧전2: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 소속과 신분의 변화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로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 하나님나라계보에 들지 못해서 족보에도 없던 자들입니다. 그렇게 죽은 영혼들에게 주님이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생명을 주셨습니다. 전혀 새로운 신분과 소속을 주셨습니다. 엡2:1-3절은 우리들의 과거신분과 소속, 그리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변화된 신분과 소속을 잘 일러주고 있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하나님과는 무관하게 살던 죽은 영혼들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천국시민의 신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비록 제사장의 신분으로 바벨론에서 제사직무를 수행하던 자들도 본토에 돌아와서는 그 신분을 엄밀하게 검증받아야 했습니다. 족보 책에 그들을 보증할만한 아무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제사임무에서 손을 떼게 했습니다. 지성물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임명돼 우림과 둠밈으로 그들이 진정 제사장 계열의 사람인지를 판결하기 전에는 그렇게 하라는 것이 방백의 명령입니다. 그들은 그래서 정통성있는 제사장이 나타나 그들을 인정해주기 전에는 모든 공적지위를 박탈당하고 암울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답답하고 울적하고 수치스런 세월은 우림과 둠밈을 지닌 제사장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돼야 했던 시절, 이제 우리에겐 우림과 둠밈 뿐 아니라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모든 판결권을 쥐고 계신 우리들의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에게 하나님나라의 왕같은 제사장 족보요, 거룩한 나라를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롬6:6절과 갈5:1절에서 “우리의 옛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로워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소속과 신분이 바뀐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신 주님이 본문63절에서 금지된 지성물의 먹음을 허락하셔서 말씀의 떡과 각양 예배와 삶의 필요를 넉넉히 채워주신 줄 믿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제 델멜라와 델하르사 같은 곳에서 올라온 제사장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처럼 족보가 없어 곤란하고 부끄러운 자들이 아닙니다. 메이커없는 짝퉁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증하시고 예수님이 함께하셔서 어디에 내놔도, 명품인생이 시작된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비록 종종 넘어지고 다쳐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우리의 신분과 소속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수표는 구겨져도 여전히 은행에 가면 현금으로 바꿔줍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번지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실패해도 갈 곳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넘어져 신음해도 다리 뻗고 누울 자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버지 기다리시는 본향 집, 거기 따듯한 아랫 묵이 예약 된 사람들입니다. 눈부시게 찬란한 궁정 하나님의 집에서 날마다 기쁜 노래 부르고 다시는 눈물 없는 그곳이 우리들이 거할 영원한 처소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는 바뀐 신분과 소속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숙제가 있습니다. 숙제를 잘 할 수 있도록 이미 모범 답안을 손에 쥐고 기다리시는 주님 앞에 날마다 나아가기 바랍니다. 어떤 일보다 주님과 가까이 사귀는 일이 우리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 줄 믿기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날마다 기다리십니다. 확실한 소속과 신분을 주신 주님이 우릴 통해 귀한 일을 이미 계획하셨습니다. 머지않아 귀한 일을 감당하실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주일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04.23. 주일예배설교<욥 2:1-10. 천상조회(天上朝會)> (0) | 2017.04.28 |
---|---|
2017.04.16. 부활주일예배<마27:50-54.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0) | 2017.04.16 |
2017.03.26. <민14:18(11-19). 백성을 위한 모세의 기도 (0) | 2017.03.27 |
2017.03.19 주일예배설교<시66:9-14. 시련을 통해 이루시는 약속> (0) | 2017.03.20 |
2017.03.12. 주일예배<약2:14-26. 실천하는 신앙, 살아있는 믿음> (0) | 2017.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