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19 주일예배설교<시66:9-14. 시련을 통해 이루시는 약속>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경건의 끊임없는 연습이다. 경건의 끊임없는 연습은 자신을 끊임없이 치는 것이다. 그 채찍이 비록 아파도 아픈 그대로가 행복임을 알아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깊은 행복. “자기성숙을 꾀하는 자, 끊임없이 고뇌한다.”라는 말이 60년이 지나 복음화한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에 필요한 영혼의 양식일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갖춰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실질적 삶에 절실한 것을 제공함으로 성도들이 험하고 악한 이 땅을 지나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일러주는 가장 정확한 지침서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온갖 선한 지혜로 미래를 보게 하는 예지와 바르게 함과 온전하게 함과 책망과 위로하심과 약속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환난 끝에 하나님께 예물을 갖고 경배하는 승리의 찬송입니다. 인생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본문의 고백가운데 우릴 찾아 힘을 더하실지 함께 기대합니다. 시27:10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인간부모는 거의 자녀교육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 인정하시면 아멘, 하나님은 실패가 없는 분입니다. 설교제목, “시련을 통해 이루시는 약속”입니다. 우리를 때로는 매섭게 단련하시는 하나님,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본문 첫절 서두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아멘.
1. 우리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어떤 과정을 거쳐서라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영혼을 살려 내시고 사랑하시기를 그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어떤 경우에도 영혼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한 백성들은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당신께 경배하며 당신과 깊은 교제가운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가능한 한 하나님을 멀리하려고 자신도 모르는 중에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들을 즐기고 가까이합니다. 택한 백성들을 이리 저리 돌리셔서 며칠이면 갈 길을 40년이 걸렸다는 것 출애굽기의 이야기입니다. 이른 바, 광야 훈련학교를 거치며 하나님 앞에서 어찌 살아가는지를 가르치신 겁니다.
인간이 최상의 행복과 고품격 삶을 살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많은 소견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우린 성경말씀과 인류의 지난 역사를 보면서 간단한 원리를 구합니다. 먼저 요3서 1:2절을 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오늘 본문 시편에서는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주시라.”고 노래합니다. 실족하는 것을 결코 방치하지 않으시는 주님은 우리들의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시듯 범사에 함께 하시기 원합니다. 영혼을 사랑한다함은 우리의 모든 것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렘32:27절에서도 여호와는 모든 육체의 하나님, 전능하신 주라고 선포합니다.
피조물사랑, 그 중에도 인간 사랑이 특별하신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이십니다. 사랑하시기에 바르고 풍성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잘 아시는 애3:33절입니다. 함께 암송합시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32절엔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설교본문인 시66편의 저자로 보통 다윗이나 히스기야를 추정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왕이나 중요한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본받아야 할 그 마음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10절 함께 읽습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으며”즉 시험과 단련은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자기백성사랑의 또 다른 한 방법인 것을 우리는 이제 믿습니다.
2. 우리들의 풍성과 강건함과 안전을 원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그렇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우리들의 복된 삶을 우리보다 더 간곡히 원하시고 도우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여전히 불행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무능한 삶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풍성한 인생, 영육간 건강한 인생, 위태롭지 않은 안전한 인생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복된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풍성하고 강건하고 안전한 인생을 위해서 주님은 단호하게 당신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단련하시되 은을 단련함같이 하신다고 하십니다. 무엇을 위한 어떤 단련입니까? 11절을 함께 읽습니다.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 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1) 풍성을 위한 궁핍함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불편하고 풍족하지 못합니까? 주님을 찬양하기 바랍니다. 살림살이가 힘들어진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실수하고 잘못 운영한 경제로 인해 또는 과소비나 판단착오로 인해 집안이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하시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어떤 때는 “어려운 짐을 우리의 허리에 매어”두시기도 합니다. 약1:13-14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치 않으시고 오직 각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지 않지만 우리를 보다나은 곳으로 이끌어 올리시기 위해 본문 말씀처럼 강도높은 훈련을 허락하기도 합니다. 그물에 걸려 힘겨운 싸움을 허락하시고 지난날을 아파하게도 하시고 어려운 짐이 허리에 걸리게 하심은 고달픈 인생가운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불과 물을 지나게 하셔서 결국 어디로 인도하십니까? 풍부한 곳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곤고한 삶이 우리로 하여금 뭔가 깨닫게 하고 결단하게 하며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축복합니다. 힘든 살림살이를 하면서 편한 마음으로 아무 것도 깨닫지 않다면 그는 죽은 자입니다.
그렇게 힘든 환경은 보다나은 미래를 향한 몸부림 속에 하나님주신 약속을 붙잡게 할 것입니다.
2) 강건함을 위한 연약을 종종 체험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선 건강에 대한 절실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려서 병치레를 많이 한 사람들은 그래서 평생 대부분 건강합니다. 무리한 생활환경을 가능한 한 피하려 삶의 폭을 단순화합니다. 지나친 의욕, 무리한 계획은 아예 생각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연약함이 훗날 탄탄한 인생을 준비하는 귀한 단계가 될 줄 믿습니다. 건강뿐 아니라 관계에서도 건강한 체질로 강화시키는 시발점은 본문말씀처럼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되는”아픈 경험입니다. 배신을 당해본 사람, 무참히 멸시당하고 조롱당해본 사람, 억울하게 빼앗긴 사람, 어떤 모임도 거부하게 된 사람은 속으로 무서운 결심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다시는 내가 다시는”
3) 위기를 통해 안전을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게 하십니다. 많은 위기가 인생가운데 있지만 생명이 위협당하는 위기만큼 심각한 위기는 없습니다. 이미 우리가 알듯 인생은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모두 5분 후도 모르는 지뢰밭에서 그냥 이왕 디딘 발 되돌아가나 앞으로 가나 거기가 거기니까 죽든 살든 앞으로 가는 인생들, 늘 위기 앞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무지막지한 직진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왜 영원히 살기 원합니까? 우리는 반드시 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같은 값이면 뭔가를 기여한 소중한 자로 기억되기 원합니다. 그런데 이 죽음이란 필연적 두려움으로 인간들은 종교심을 갖고 나름대로 절대자를 찾아 끊임없이 헤맵니다. 이는 죽음이란 위기감이 영원이란 안전을 찾게 하는데 존재본능을 자극해 일어난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잠언서의 증거처럼 “헛되고 헛되나니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됩니다. 인류의 역사가운데 부귀영화와 권세를 도구로 삼아 차지하려는 모든 안전은 하나같이 다 허망한 물거품이었음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한 채 인간이 찾은 안전은 모두 다 그렇게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인간내면에는 거의 본능적으로 신을 찾는 DNA가 있습니다. 생명의 위기,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우릴 구하신 예수님을 함께 찬송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에게 이제는 육신의 짧은 날들이 비록 살얼음판이요, 지뢰밭이라 해도 위로부터 주신 신령한 은사, 믿음을 해칠 수 없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그런즉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영원한 안전을 보장하는 안전한 항구입니다. 등대하나 없는 망망대해에서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는 나약한 인생방주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서 안전한 항만이 절실한 존재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항상 위기 앞에 노출된 우리들에게 절대적인 안전입니다. 그 크신 팔로 안아주셔서 모든 환난과 위험 속에서도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으로 오늘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요11:25-26절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아멘.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할렐루야. 본문 시66:12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결국 우리의 욕심과 실수로 일어난 시련을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풍성입니다. 궁핍함을 통해 풍성을 향한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연약과 수치를 통하여 결단하고 깨닫게 하심으로 유익한 자가 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모든 정황과 생명의 위기를 통과함으로 영원하신 주님을 사모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원한 안식처, 즉 복음만이 우리의 영원한 안전한 포구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최선을 다하려는 열정은 곧 위기의 인생이 최고의 안전을 찾는 노력이며 지름길입니다. 13절입니다.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3.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궁극적으로 인생들에게 많은 환난과 물과 불의 시험과 무거운 짐으로 단련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버거운 씨름으로 단련하여 결국 풍부해진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을 골라가지고 번제단에 들어가 서원을 갚겠노라고 시편기자는 노래합니다. 시편기록자는 기쁨으로 서원을 갚으러 번제물을 들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많은 단련으로 이루신 풍요가 하나님의 은총과 배려였음을 기쁨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고 있는 현장에서 축가를 지금 노래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둬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5-6입니다. 욥은 해석되지 않은 자신의 엄청난 불행 앞에서 함부로 말을 한 자신의 무지함을 회개합니다. 뭘 회개했습니까? 하나님을 너무 작게 봤다는 것입니다. 욥42:2절입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우리 주님은 혹독하고 찬바람 부는 광야에서 절기를 잘 지키는 자, 곧 그럼에도 불구한(이런저런 사정을 무릅쓰고 예배당으로 달려온) 예배승리자에게 약속하신 풍부와 서원을 끝내 지키게 하시는 분임을 믿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한결같이 다 야곱같은 자들입니다. 창28:20-22절엔 그 유명한 야곱의 서원기도, 함께 하셔서 형통하면 십일조와 헌신을 이루겠다고 했습니다. 야곱다운 계산적인 서원이었지만 그 약속을 지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20년의 강훈련 속에서 야곱은 거부가 되어 편안히 본가의 형 에서에게로 돌아옵니다. 야곱과 에서의 기적같은 만남이 우리 모두에게도 이뤄질 줄 압니다. 본문을 우리들의 고백으로 제가 다시 주님 앞에 읽어 올리고 기도함으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언제나 살리시는 분이시며 결코 넘어져 다치게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넘어지지 않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셔서 훈련하십니다. 은을 불에 녹여 격을 높이듯이 우리의 시련은 더욱 정결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거듭나게 할 줄 믿습니다. 어떤 때는 깊은 함정에 빠지는 것을 버려두시기도 합니다. 또 무거운 짐을 지게도 하십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머리를 밟을 때에도 모른 척 하십니다. 불과 물의 무서운 시험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마침내는 편안하고 풍성하게 하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제 그 질식할 것 같은 때 하나님 앞에 야곱처럼 올린 서원기도를 기억하여 주의 전에 예물을 드려 예배합니다. 그토록 힘들 때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는 주님께 기꺼이 드리나이다. 언제나 힘들 때 가졌던 초심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이젠 야곱의 기도가 아니라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라는 하바크의 기도를 하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허락하시는 풍성과 기쁨을 주의 제단에 올리고 고통당하는 이웃들과 교회 앞에서 그리고 복음이 없어서 신음하는 세상을 향하여 후덕하시어 기쁨으로 나누게 하옵소서. 이제 제단에 우리의 예물과 우리 몸과 자녀와 꿈과 미래를 올려 드립니다. 우리를 받으소서. 받으셔서 주님나라에 귀히 사용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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