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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7.03.12. 주일예배<약2:14-26. 실천하는 신앙, 살아있는 믿음>

by 설렘심목 2017. 3. 12.

2017.03.12. 주일예배<2:14-26. 실천하는 신앙, 살아있는 믿음>

[1626년 원주민 인디언추장에게 양주 한 병으로 사들인 맨하탄의 현재 가치와 장차 그리스도의 가치]

 

의인은 믿음으로 인하여 살리라는 합2:4절의 말씀으로 바울사도는 거저 받은 구원 앞에 우리가 뭘 해서 갚아보려는 인간의 알량한 교만을 지적합니다. 한편 의로운 삶은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말씀에 종종 오해가 생겨서 꼼짝 안하고 믿기만 하면 다 된다는 게으르고 불성실한 자들에게 야고보사도는 본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명하게 믿음과 행함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보통 신약의 황금률을 말할 때 로마서의 믿음으로 얻은 구원과 야고보서의 행함으로 완성되는 믿음”, 요한일서 4장의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추려냅니다.

 

성도의 능력은 성도의 믿음을 말하고 성도의 믿음은 순결과 거룩으로 측정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행하지 않는 죽은 믿음을 지적하면서 믿음의 진정한 힘이 어디서 오는가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성도의 힘 있는 믿음,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본문 14-17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 능력있는 믿음은 행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본문은 우리들의 생활가운데 보다 실질적인 믿음을 단적으로 예를 들어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굶고 헐벗은 자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베풀지 않으면서 잘 가서 편히 지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이 상대방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말뿐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옷을 입히고 뭘 좀 먹이는 것입니다. 즉 필요를 채워주는 게 사랑이고 그것은 구원받은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신앙고백입니다. 본문에서 이르는 행함으로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성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약속 안에 살면서 예수님의 귀하고 거룩한 제자가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이 세상과 오는 저 천국에서 받을 유업을, 빠짐없이 잘 받아 복되고 가치 있게 사는 것입니다. 땅에서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이요, 저 하늘에서는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성도의 복, 그것은 첫 시작을 믿음으로 출발합니다. 고전2:4-5절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있는 자혜의 말로 하지 않고 다만 성령의 나타내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믿음은 하늘에서 시작된 영적인 일입니다. 믿음은 열어주신 만큼 믿게 되고 한편 성령께서는 인간이 믿는 만큼 하늘의 비밀과 성경을 열어주십니다. 즉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믿음과 믿으려 애를 쓰는 의지적인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반응이 알곡같은 신앙으로 익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세상의 지식이나 학력이나 재산, 명예와 무관합니다. 천국 가는데 필요한 것은 그런 세상적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자기백성으로 삼으실 때 먼저 믿음을 허락하십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사건을 의심 없이 성경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믿음의 바른 이해를 위해 성도의 믿음이란, 들은 대로 믿고 배우고 행하는 데까지라는 것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중 이 말씀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단지 행함에 있어서 늘 한계에 부딪치는 자신을 보면서 절망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잦은 절망감에 차라리 포기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을 상대로 여러 가지 힘겨운 씨름을 합니다. 이 씨름은 인생이라면 누구나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요, 죽기 직전까지 해야 하는 싸움이요, 악을 선으로 이겨야 하는 영적싸움입니다. 이 영적전투의 대상이 첫째는 세상환경이요, 둘째는 늘 만나야 하는 관계배경 곧 사람들이요, 셋째는 가장 힘든 적,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2 살아있는 믿음은 멈출 때 멈출 수 있는 믿음입니다.

 

유혹이 두렵습니까? 유혹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물리쳐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찍어 말한다면 나무라고 물리쳐야 할 것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자신이지 환경이 아닙니다. 인류의 환경은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 에덴으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래왔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 범죄가 안 될 게 없습니다. 잠언 6장에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탐내지 말고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합니다. 그리고 이어 27-28절입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명예와 삶)이 타지 않겠으며 사람이 숯불(火戰地)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않겠느냐.” 불과 숯불은 사방천지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고 항상 보이는 것이고 또 절실한 필수에너지입니다. 우리 주변은 이와 같이 손만 내밀면 쉽게 잡히는 유혹거리로 가득합니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멋진 분위기,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말하자면 목욕하는 밧세바는 굳이 옥상에 올라가지 않아도 사면에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눈과 마음과 결단입니다. 거듭 일러 환경이 아니라 자신입니다.

 

여러분. 살아있는 능력의 믿음은 행하는 믿음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행하는 믿음이란 살아 움직이는 믿음이요, 자신의 의지를 충분히 반영해서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는 실질적 믿음을 말합니다. 이런 행함의 믿음은 먼저 냉철한 분별력을 요구합니다. 해야 할 때 서슴없이 밀고 나가고 멈춰야 할 때는 냉혹하게 잘라내는 결단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유혹처럼 멀리해야 할 것도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 앞에, 꾸준하게 게으른 것도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19:24절입니다.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3 생명력있는 믿음은 믿은 대로 결단하고 움직이는 믿음입니다.

 

멈출 때 멈추고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는 것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음식그릇에 손을 넣고도 입에 넣기가 성가 싫다면 누가 도울 수 있겠습니까?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줘도 바퀴 축에 녹이 나서 돌지 않으면 타이어가 탑니다. 17절에서 지적하는 죽은 믿음은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서 26절 말씀처럼 이는 마치 영혼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본문은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예로 믿음의 실체를 잘 보여줍니다. 21-24절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여기서 잠시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본문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1) 하나님이 인정하신 믿음입니다. 2) 누구나 따라야 할 최상의 믿음입니다. 모리아산까지 가서 칼을 높이 치켜든 아브라함의 믿음은 3) 행함으로서 온전해진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24절처럼 믿음은 믿음 하나로만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믿은 대로 행할 때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 받는 것임을 아브라함을 통해 증거합니다. 25절은 라합을 소개합니다.

라합은 여호수아가 보낸 두 정탐꾼을 숨겨 살려줍니다. 이스라엘이 가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이들과 함께 하시니 이 땅도 이미 저들에게 주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두 정탐꾼을 숨겨서 살려줬습니다. 생명을 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믿은 그대로 행동했습니다. 2:4-5절을 보면 정탐군을 잡으러 온 군사들에게 라합은 거짓말을 합니다. 어디서 왔는진 모르나 어떤 두 사람이 왔다 갔는데 얼른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둘러댑니다. 옳다고 여기는 일에 거침없이 나가는 라합은 그렇게 믿음으로 위기를 넘김으로서 마침내 온 가족이 죽음을 면하고 살아납니다. 살아날 뿐 아니라 후에 라합은 살몬과 결혼해 다윗의 고조모가 돼 메시야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본문에서 소개하는 아브라함과 라합의 공통점은 믿기만 하고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믿은 그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을 뛰어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신뢰할 수 있습니다. 요일4: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 쫓는다고 했습니다. 진정 여러분이 살아계신 주님을 신뢰한다면 이제 두려움은 사라져야 합니다. 두려움대신 믿은 대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미 성경에서 약속하셨고 성령님이 마음속에 감동주시는 것은 믿어 행동하면 주님이 친히 함께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오늘 말씀대로 주님은 우리들의 행하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통치를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원한 나라, 천국의 시민이 된 사람들입니다. 잠시 지나는 이 육체의 호흡이 끊어지면 그 때에 시작되는 영원한 삶의 주인공들입니다. 주님은 찾아오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늘 계셔서 동행하는 분입니다. 확실하게 믿습니까? 그렇다면 믿은 대로 행하며 살아야할 줄 압니다. 그렇게 천국인은 천국의 법도를 이 땅에서도 지켜야 합니다. 천국의 법도를 지키면 주의 다스림이 온전하게 되는데 거기가 천국입니다. 천국은 평화의 나라입니다. 천국은 갈등이 없고 미움과 시기질투가 없습니다. 부조리가 없고 모순이 없습니다. 착한 자의 가난과 서름과 억울함과 분노가 없고 악한 자의 형통이 없습니다. 정녕 아름다운 나라, 세상에서 거머쥔 돈이나 권력이나 수단으로 가지 않고 행동하여 살아있는 믿음으로 가는 나라, 거기서 주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집이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신뢰한다면 여기 이 땅에서 낙심하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진정한 지성은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했지만 진정한 천국의 소유자, 성도들은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으로 전도하고 행동하는 사랑과 믿음으로 모두를 품어주고 다가서서 기도한대로 몸을 움직여서 주의 간곡한 소원을 이뤄드리는 아름다운 성전들이 다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