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6. <민14:18(11-19). 백성을 위한 모세의 기도>
[롬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고통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들고 사색과 고찰, 사고(思考)는 인간을 현명하게 만들며 지혜는 인생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지혜와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본문,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말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실 수밖에 없도록 강청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본심과 모세의 온유에 대하여 교훈과 도전을 받습니다.
먼저 13절을 먼저 읽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이어서 16절입니다.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씀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명예, 그렇습니다.
1. 하나님의 명예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그간 많은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본심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그 이름은 사랑과 거룩하심과 지존의 대명사입니다. 하나님이란 이름 자체가 명예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 항상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로 시작하는 것은 자신의 명예로운 이름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확정에 근거한 것입니다. 모세의 항변은 적중했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살려주신 하나님이신데 이제 저들을 용서 안하시고 죽이신다면 모든 이방열국과 애급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신다고 한 땅에 인도하실 능력이 없어서 결국 죽였다고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뭐가 되겠냐는 강력한 모세의 항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들먹이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십니다.
18절입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지금 모세는 용서를 구하면서 형벌과 징계를 들추고 있습니다. 형벌을 결단코 용서치 않으시고 삼사대 자식에게라도 갚으신다는 하나님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무서운 진노와 징벌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어도 지금까지 도우시고 구하지 않으셨냐 하는 겁니다. 19절을 함께 읽습니다.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급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시옵소서.”이 말을 연결합니다. “형벌 받을 일은 자식의 삼사 대까지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하나님께서 그러나 그 인자하심이 끝이 없으시니 애급에서 지금까지 다 용서하시고 도우시고 살려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번에도 그 인자하심으로 이 백성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명예를 거론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두 죽이시면 애급에서 말하길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 죽었다고 조롱하지 않겠나이까?”
야곱에게 져주신 것처럼 결국 모세에게도 하나님이 져주셨습니다. 2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그런데 21-24절을 보면 용서는 하시되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2절은 애급과 광야에서 행한 하나님의 이적을 보고도 순종치 않은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23절은 그래서 그들은 결단코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24절은 하나님을 신뢰하여 그 말씀을 따른 여호수아와 갈렙 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린 어떤 하나님을 봅니까?
2. 용서하시되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은 고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백성들은 애급과 광야에서 거듭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평하며 반기를 들고 모세와 하나님의 종들을 돌로 치려합니다. 사람의 생각이라면 다 쓸어버려도 시원치 않은 괘씸하기 짝이 없는 자들을 용서하십니다. 한편 이러한 자들을 위하여 간절히 애원하는 모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온유한 자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라는 한쪽을 끝내 붙들고 있습니다. 즉 사랑하는 자녀의 바르고 온전한 삶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주께서는 잘못한 일에 반드시 대가로 청산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오류와 범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심으로서 사랑하는 자녀가 다시는 어리석음과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데스바네아에서 실패한 열 명의 수령들과 그들의 말을 믿고 밤새 통곡하며 좌절하고 불평했던 자들은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며칠이면 갈 곳을 40년이 걸려 들어가게 하십니다. 25절의 끝을 제가 읽습니다.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드디어 허허벌판 광야 길로 접어드는 백성들입니다. 여기서 광야의 훈련제목이 기억나야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과 명예에 합당한 일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범해 당신의 이름이 이방에 더럽혀지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그 범죄로 당신의 백성들이 징계를 받아 열방 앞에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더욱더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을 위해서 그리고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은 이미 백성들을 용서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이때 누군가 엎드려야 합니다. 모세가 엎드립니다. 하나님을 불평하며 자신을 돌로 치려했던 자들을 위해서 간곡히 탄원하는 모세의 겸손, 하나님 앞에 참으로 귀한 예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이야기하는 자”라고 12:8절에서 밝히십니다. 인간으로서 하나님과 대면하여 명백히 대화했다 함은 피조물이 결코 취할 수 없는 최대의 영광입니다.
모세의 간구로 백성들을 용서하셨던 하나님은 이제와 이후에도 우리의 실수와 범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우리가 무릎 꿇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범죄와 실수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적절한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땅히 치러야 할 죄와 허물의 대가를 기도의 눈물로 치를 수 있게 하신 분이 있습니다. 오! 참 아름다운 예수시여, 대속구주 예수그리스도를 끝없이 찬양합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향해 분노와 상처가 깊은 사람입니다.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은 불신앙의 결과였고 그런 백성들의 무지와 이기적인 죄로 하나님이 진노하실 때 모세인들 어찌 화가 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말씀대로 싹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감정적인 충동대신 철부지 백성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이 백성들을 구하시려고 모세에게 당신의 마음을 가득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늘 넘치게 부어주시는 줄 믿기 축복합니다.
부부가 다투면 누가 이깁니까? 옳은 사람이 이겨야 합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이가 집니다. 성숙한 다툼은 잘잘못의 문제가 아닙니다. 큰 자가 작은 자에게 지는 것을 믿으면 아멘하십니다.
복습합니다. 괘씸한 자가 괘씸하게 보입니까? 아직 나는 더 익고 삭아야 할 땡감입니다. 괘씸한 자가 가엽게 여겨집니까? 주의 영이 함께 하시니 성숙한 영이요, 멋진 승리자입니다. 익고 삭아야 맛이 납니다. 땡감 날탱이는 힘차고 야무지고 늘 이기지만 상처뿐입니다. 정녕 중요한 일에 불러주지 않습니다. 잘잘못에 관계없이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무릎꿇은 모세는 우리 주님처럼 위대한 승리자,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주님 닮은 이런 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반드시 만날 줄 확신합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신 우리주님, 불평하는 현장에서 모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을 위해 대신 회개한 모세, 우리는 누구를 위해 어찌해야 합니까? 마귀를 쫓고 이겨도 자신을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허물입니다. 성장성숙의 첫걸음은 지금 내가 많이 모르고 또 형편없다고 인정하는 정직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확실하게 속는 방법, 즉 바보가 되는 방법은 자신이 매우 영리하다고 굳세게 믿는 거라고 합니다. 여기선 겸손이 종종 멸시 당하지만 거기서는 겸손이 왕노릇 합니다. 거긴 물론이요, 우리 여기서 그 나라를 사모하는 가운데 차츰 힘 있게 이루어가기 원합니다.
무슨 나라입니까? 겸손이 왕노릇하는 주님나라 우리 각자 안에서 인내로 이뤄가는 것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나 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대속의 이름을 붙잡기 바랍니다. 그 분의 이름이 우리에게 있는 한, 우리들의 허물과 죄는 덮여집니다. 골고다의 보혈은 우리 사모함의 보상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태어나서 흙으로 몸을 반납할 때까지 은혜 아닌 게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입니다.
비전동에서 이런 말 하나를 여러분에게 핸드폰문자로 전했던 게 기억납니다.
“내 과거는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고 내 미래는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다.” 예물은 예배의 가장 중요한 표증입니다. 몸과 함께 오직 예배로 인생의 기초를 확고히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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