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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7.03.05. 주일예배설교<엡2:20-22. 함께 지어져가는 성전>

by 설렘심목 2017. 3. 5.

2017.03.05. 주일예배설교<2:20-22. 함께 지어져가는 성전>

[사람들이 그대를 악평할 때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도록 살라.(플라톤)

그래요. 그 분이 그렇게 살았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분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그가 전한 진리대로 살고자 최선을 다 합니다.” 이 한마디 듣고 죽는다면 더 무엇을 원하리요?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경건훈련이다.]

 

한때 영국은 대영제국당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이름을 가질 정도로 대단한 강국이었습니다. 국가경영 최고의 CEO로 평가되는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을 반역으로 몰아 처형하려던 메리여왕의 측근들을 모두 용서하고 품어 25세로 등극한 이후 부도직전의 영국을 경제대국으로 일으켰습니다. 스페인무적함대를 무찔러서 군사적으로도 강국이 됩니다. 열강들과 함께 시작한 식민지개척은 전세계 곳곳에 영국의 깃발이 날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한동안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신교회들의 신앙이 식어지자 국력도 전과 같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진정 해가지지 않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뿐, 사람이 일으킨 사람의 나라는 어떤 부귀강성도 다 한때라는 것을 역사가 말합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세계 4대문명. 그 외에도 잉카문명, 마야문명 등 불가사의한 인류의 화려했던 역사현장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인류의 거대했던 문화는 모두 꼭 같이 지금 침묵으로 하나님 없는 인생을 대변하듯 그 허망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오늘 설교제목,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입니다. 이슬같이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인생에게 실로 가장 심각한 고민은 우리가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전3:11절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화려해도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라면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의 문명과 생명이 그렇게 허탄한 것이지만 영원하신 주님을 만나면 그 영원한 생명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성소는 모든 인류역사를 다 품을 수 있는 가장 방대하고 위대하고 진실한 어머니의 품입니다. 본문에서는 이 성소,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밝힙니다. 인간의 작품이 아무리 위대해 보여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하나만 못합니다. 인류의 4대문명과 찬란한 문화역사도 성전하나만 못합니다. ? 인생은 사라져 흙이 되어 안 보이는 그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고전3장에서 거듭 밝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은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아직은 불완전하고 미숙한 성전입니다. 아직도 지어져 가는 건물이라면 성전된 우리는 완공을 향한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전은 어떻게 지어져 가야 하는지 말씀을 살피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20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1. 예수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큰 건축물을 보면 초석이라 불리는 모퉁이돌이 있고 거기 건물의 이름이나 준공일자 등을 적어놓게 됩니다. 전체 건물의 기초요, 기준점으로 건축이 시작된 머릿돌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거룩한 처소는 예수님이 기초석이 됩니다. 건축물의 모든 부속자재는 한결같이 이 기초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짐승은 죽어서 제물 되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고 인간은 살아서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 최고의 영광입니다. 즉 육성을 버리지 못한 옛사람은 어서 죽어 제물 됨이 마땅한 영광이요, 거듭난 새사람은 주님모시는 성전 됨이 영광입니다. 그리고 그런 성전들이 모여 교회라는 택자의 모임, 새 생명 공동체가 되고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땅 끝까지 번져가게 됩니다. 15: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과 연결되지 않은 어느 누구도 결코 하나님의 전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연결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까?

 

2. 그리스도께 공급받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1)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의 공급입니다. 그리스도는 복음입니다. 복음의 새롭게 하심과 채우심과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1:3> 하나님의 전이 되고자 하는 성도라면 반드시 복음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생명줄입니다. 그렇게 실체적인 복음을 만난 사람들에겐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2) 주님께 붙어있는 이에게 예배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화목제물로 타락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의 목적은 하나님과 죄인의 화해입니다. 본문 위 14절을 읽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예배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과 화목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바쳐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죄인과 하나님의 만남이 예수님으로 인해 이뤄진 겁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모두에게 구원을 베푸셨고 지체 간 화해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주의 이름은 화목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모든 예배활동은 하나님을 향한 화목의 잔치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예배의 삶이 시작되면 매 순간마다 하나님과 교통하게 됩니다. 일대일로 인격적 만남을 경험하면 교회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사교클럽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 영적인 체험을 통해 천국의 실체를 알게 되는 천국체험실습현장이 됩니다. 놀라운 변화가 전 인격과 삶을 통해 일어납니다. 지속적인 거듭남의 경험들입니다. 예배는 그렇게 주님과 연결되어 생명을 공급받고 예배하며 찬송하는 일들을 기뻐하게 합니다. 64:10절에선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라고 하나님이 성도의 기쁨과 자랑이 됨을 노래합니다. 또 시66:1-4절입니다.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그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하나님께 아뢰기를 주의 큰 권능으로 말미암아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셀라).” 그렇습니다. 예배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3)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입니다. 노래는 즐거워야 가능한 복된 증표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며 가락에 고백을 얹어 올려드리는 찬송은 하나님이 본래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라고 사43:21절에서 밝혔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찬미예수로 가득하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예배를 통하여 화목하기로 작정하신 후에 예배에 가장 중요한 예물, 즉 죄사함의 제물과 기쁜 감사의 예물로 아들 예수님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조건없이 믿어드리는 자마다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용서받은 자마다 남은 생애를 노래하며 살게 하셨음을 믿기 바랍니다. 죄와 허물가운데 신음하는 인생이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신분이 바뀌었고 죄와 허물이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됐다는 유력한 증거입니다. 주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찬송하기를 멈추지 않기 바랍니다. 하박국선지자의 고백처럼 그리하지 않으실지라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쁘고 즐거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그렇게만 한다면.. 찬송을 받으신 주님이 감동하셔서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바꾸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찬송하는 기쁜 예배자의 삶에서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지어져가는 성전, 현재진행형의 본문인 것을 기억하기바랍니다.

 

3. 찬송하는 우리는 아직도 지어져 가는 성전입니다.

 

교회는 천상의 완성된 교회, 완전한 교회가 있는가 하면 땅위에서 아직도 지어져 가는 공사 중인 불완전한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하늘나라 천국은 구원이 완성된 교회, 완전무흠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죄로 가득한 이 땅의 교회들은 죄의 침투와 전쟁으로 인하여 늘 불안합니다. 조금만 예배를 멀리해도 대번에 흔들리는 우리들은 불완전한 교회들입니다. 그러나 지상에 있는 모든 불완전한 작고 큰 모든 교회와 개인으로서의 성전은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탓에 여전히 소망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른 바, 공사 중인 건물입니다. 아직 준공이 나지 않아서 본격적인 사용이 힘든 미숙한 건물, 더 고쳐가야 할 건축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개선할 기회가 있습니다. 설계변경입니다. 보다 아름답고 견실한 성전, 신령과 진정으로 복된 예배가 가능하게 고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누굴 찾아 오셨습니까? 히브리인들입니다. 주님의 3대 사역은 아시다시피 가르치고 고치시고 전파하신 일입니다. 주님은 채우시고 고치셔서 온전케 하시며 잘 보존되도록 늘 함께 하시는 우리들의 치료자, 우리들의 보혜사십니다. 공사 중인 우리에게는 때마다 고쳐주시는 설계변경의 기회와 소망이 아직 있습니다.

어떤 소망입니까?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1) 우리는 더 진실해질 수 있습니다. 아멘.

2) 우리는 더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아멘.

3) 우리는 더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아멘.

4) 우리는 더 능력된 삶으로 풍성할 수 있습니다. 아멘.

5) 우리는 더 힘 있게 이웃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아멘.

6) 우리는 더 기쁜 노래를 불러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아멘.

7) 우리는 더 깊은 영력으로 세상과 자신과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아멘.

어떻게 자신있게 아멘입니까? 아직도 공사 중인 우리를 쉬지 않고 고치시는 주님이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경제와 건강과 환경과 관계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영적소망의 결과물인줄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우리에게 귀한 성전을 소원하신 주님의 뜻이 지금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