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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7.02.12.<빌2:13-14.성도 안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소원>

by 설렘심목 2017. 2. 12.

2017.02.12.<2:13-14.성도 안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소원>

[성도의 영성, 즉 제자도의 깊이를 가늠하는 단순한 방법이 있는데 이것으로 자신을 종종 점검한다면 상당한 자율적인 도전으로 인해 놀라운 영적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이 무엇으로 가장 기뻐하는가를 보면 간단합니다. 나는 과연 무엇으로 가장 많이 기뻐하는가? 힘들다가도 괴롭고 슬프다가도 이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온화해지고 힘이 솟는 그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가장 실질적이고도 우선돼야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깊이 살피시기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마지막 날 사람을 만드신 후 심히 기뻐하셨습니다.-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게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1:6 하나님의 기쁨은 자기를 믿어드리는 저와 여러분 우리들입니다.]

 

본서는 옥에 갇힌 바울사도가 힘들어 하는 빌립보교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고 힘을 얻어 잘 견디라는 권면과 위로를 전하는 성령의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에 하나님의 능력이 넘쳐서 듣는 모든 심령 안에서 하나님의 소원이 이뤄지는 놀라운 복이 임하기 주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한 단씩 끊어서 말씀을 살피기로 합니다.

 

1.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이 말씀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전제로 시작합니다. 즉 우리의 믿음과 그로인한 행위는 우리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사라는 것으로서 우리 믿음과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10,11)을 다시 일러두는 말씀입니다.

 

2.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우리가 알기 전 벌써 하나님께서 이미 기뻐하시고 원하셨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은 사랑과 불쌍히 여기심과 자비이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건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이 충족되고 자비가 넘쳐나서 그 뜻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전히 성취돼야하고 거기엔 진정한 기쁨과 평강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인간의 기쁨은 그 뿌리가 죄악에 박혀있어서 끝내 이기적이어서 선하지 못해 허망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은 절대적 선과 의이시며 또한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3.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것에 소원을 갖게 하시는 주님의 계획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마음의 소원을 주님이 주장하셔서 이루시는 구원입니다. 단번에 이루신 구원 위에 지속적으로 이루시는 구원, 이 말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활동을 통해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께서 작정하시고 우리 내면을 주장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을 소원하도록 계도하신다는 것입니다. 10-11절을 함께 읽기로 합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생명 주셔서 태어난 인생들입니다. 아무도 자신의 생명과 존재에 대하여 밝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평가하거나 비판할 수는 더욱 없습니다. 결코 홀로 설 수없는 나약한 인생들, 우리는 늘 어딘가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때로는 돈 앞에, 때로는 명예 앞에, 때로는 사랑 앞에, 때로는 육체 앞에 우리는 무릎을 꿇습니다. 어차피 받은 몸과 영혼, 어디를 향하여 먼저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입니다. 먼저 어디에 무릎 꿇는 것이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인가?

 

거룩하신 주님이름으로 부족한 종 권면합니다. 진실 앞에 무릎 꿇기 바랍니다. 사랑 앞에 무릎 꿇기 바랍니다. 진실한 사랑 앞에 무릎꿇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꺼이 무릎 꿇어야 할 진실한 사랑은 예수그리스도십니다. 간혹 사람 안에서 진정된 의미의 사랑이 보인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서 사람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본문은 그 진실한 사랑 곧 구원과 구원에 따른 성결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의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를 통해 가능한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육신의 부모를 거쳤지만 그 죄인의 몸에 새 영이 부어짐으로 또 다른 생명,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받은 두 번째의 태어남을 통해 저와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 백성이 됐으니 할렐루야 아멘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모든 것은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내려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설정이 됐고 그 기뻐하신 뜻을 다시 기뻐하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녀 된 믿는 우리들은 그분이 우리 안에서 이루기를 원하고 계신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당연히 최고의 삶인 것을 믿고 확정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그런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가 기뻐할 때 우리의 삶은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저와 여러분의 소원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소원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최고의 삶이요, 능력과 영광과 기쁨입니다.

 

4.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

지금까지 밝힌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기뻐하시는 소원에 의해 이뤄진 우리들의 구원, 또 거듭나는 성화의 과정이 그리스도의 충만까지 나아간다면 우리는 받은 구원과 은혜 앞에 어찌해야 할 것인가?

 

본문은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하라고 합니다. 원망과 시비는 불만족과 그로인한 불평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을 바르게만 깨달으면 원망과 시비의 상당부분은 사라집니다. 받은 구원의 감격에 따라 다를 것이고 그 구원의 감동은 영혼의 상태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일 것입니다.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씀을 받고 같은 찬송을 불러도, 어떤 이는 원망과 시비가 그치지 않고 또 어떤 이는 늘 밝은 얼굴로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원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무리 안에도 여전히 갈등과 불만족은 사라지지 않고 종종 얼굴을 붉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에 우리의 소원을 맞춰 기뻐하려고 해도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옛 육체의 성향이 우리 안에서 구원받은 새 영과 마찰하기 때문입니다. 원망은 아직 성화되지 못한 옛사람의 근성입니다. 원망은 다분히 자기위주의 해석에서 나오는 불만족입니다. 사물을 보는 기준점이 자기중심적이면 이기적 좁은 소견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원망하려는 사람은 이미 어떤 모양이든 원망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자신은 할 만큼 했고 문제는 언제나 타인에게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문제는 언제나 골고다언덕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은 골고다에서 원망과 불평대신 겸손하셨습니다. 용서하셨습니다. 사랑하셨습니다. 인내함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즉 완전한 겸손과 완전한 용서와 완전한 사랑을 인내와 죽음으로 완성하신 것입니다.

 

2) 시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시비는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는 것입니다. 철저히 선악과에 속합니다.

생명과에 속한 자들은 따지지 않습니다. 따지고 계산해보아 플러스인가 마이너스인가를 헤아리는 것은 선악과먄 먹고 생명과를 먹지 못한 세상이 하는 일입니다. 생명열매, 복음 앞에 서 있는 믿음의 백성들은 시비대신 권면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는 일들이 기도 후에 겸손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본문은 빈틈없는 하나님 절대주권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든 믿음의 역사가운데 용서받은 죄인이라 해도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절대하신 하나님의 기쁨과 그 뜻은 우리의 바램조차 친히 간섭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들을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참여시키시기를 원하시며 원하신 대로 성취해 가십니다. 이는 구원받은 자가 그 구원의 감격과 믿음을 갖고 주님 원하시는 교회운동에 쓰임 받을 때 과연 그 일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명확히 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구원은 한번 받은 천국시민권의 획득인 단번의 구원과, 몸을 벗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져 가는 성화의 구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화의 계속되는 구원을 원망과 시비 없이 이뤄가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뒤에서부터 정리하며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이 택해주시고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라면 이제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어야겠습니다. 감사와 평강으로 우리 주변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 됐으면 좋겠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상대방의 부족과 허약과 아픔을 먼저 헤아려 살피는 어진 마음이 가득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본문은 명령합니다. “인생은 할 수 없어도 우리 안에 소원을 두신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있으니 이제는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를 없게 하라.” 그리고 12절 하단에서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겸손의 왕이신 우리들의 기쁨소망! 우리들의 마지막 노래,.. 예수그리스도의 기뻐하시는 소원이 우리가운데 그분의 능력과 사랑으로 행해질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대신 감사와 찬송과 주를 고백하고 선포하는 담대함과 겸손 온유함으로 주의 뜻을 우리 안에서 이뤄가야 할 때입니다.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이루는 의, 깊은 중심과 진심과 겸손으로 이뤄가는 구원이 저와 여러분 안에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