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2. 주일예배<요4:28-30. 물동이를 버려두고 전한 소식>
[세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해서 학교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미국 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은 긍정의 달인, 10살에 양복점에 들어가 성실하게 일했고 결혼 후에야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후 존슨은 주지사, 상원의원이 된 후에 16대 미대통령 링컨을 보좌하는 부통령이 된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후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지만 상대편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당한다.
"한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다니 말이 됩니까?"
그러자 존슨은 언제나처럼 침착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상황을 역전 시켜버린 이 한마디,.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유대인이 볼 때에 사마리아 땅은 저주의 땅이었습니다. 본문의 사마리아여인은 저주의 땅에서 사는 불행한 인생입니다. 남편이 다섯이었으나 지금 집에 있는 남자도 결국 그녀의 남편이 아니라는 게 주님의 지적입니다. 인적이 멈추는 뜨거운 한낮을 이용해 아무도 없는 우물에 나와 물을 긷는 대인기피증의 이 여인 과거를 주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가능하다면 사람들을 피하며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거나 관심을 갖는 일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와 실패의 상처로 마음과 관계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살아가는 외롭고 슬픈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고 본문은 드라마틱한 이 여인의 인생반전을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죽어있던 한 여인의 영혼을 방문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복음이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방문하십니다. 사마리아여인을 찾아온 복음,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신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1. 모든 것을 뒤로하고 전해야 할 생명의 능력입니다.
생명은 모든 것보다 우선돼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이나 역사나 논리도, 연관된 생명이 살아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사망을 뛰어넘는 생명입니다. 본문 28절입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갔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사람만나는 게 두렵고 싫어서 뜨거운 한낮에 물을 길러 나온 여인이 복음에 부딪치자 달라진 것입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뒤집어 놓았는가? 무엇이 숨어있던 자를 밖으로 끌어내 사람들에게 달려가 소리치게 했는가? 그것은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없는 희소식의 힘이었습니다. 가슴이 뛰어 참을 수 없는 것은 이 기쁜 소식으로 인해 내 인생이 근본부터 달라졌고 앞으로도 더욱 변해서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되리란 확신과 그 기쁨입니다. 이 소식은 구주 예수를 알리는 복음입니다. 나를 어둠에서 구하실 메시야가 여기 이 땅에 오셨고 이제 날 찾아오셨으니 더 뭘 바라겠냐 하는 흥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인간의 흥분보다는 살아 활동하는 복음의 능력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놀랍게도 그녀에겐 살아서 활동하는 복음이 들어왔고 그 복음의 활동으로 인해 전할 소식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갑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우선적으로 붙잡고 전해야 하는 생명입니다. 인간에게 물이 없으면 죽습니다. 물을 구하는 일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절대적 수단입니다. 물을 구하러 온 여인에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봅니다. 본문 4:13-1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잠시 백년안팎의 육체를 유지하는 물이 아니라 영생을 보장하는 영혼의 생수인 예수그리스도를 구하고 전하는 것은 우리 인생에 가장 시급하고 중차대한 일인 것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한평생 절실한 많은 것들이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다가오고 또 취해야 하는 모든 것 중 우리는 최선의 것을 붙잡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하며 자녀도 잘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느냐보다 한발 앞서가야 하는 문제가 바로 영혼의 문제임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내 영혼의 주소지는 어디인가.
모든 인생의 문제가 영혼의 상태와 직관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증거되기 전까지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생의 난제입니다. 이는 마치 건강이 무너져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이 육체와 결코 무관치 않음에 놀라며 깨닫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알아둘 일은 보이는 일이 꼬일 때 보이지 않는 주님을 먼저 찾고 자신을 살피는 영적활동이 버릇이 되면 좋지만 늘 영과 육을 직결시켜 정죄로 삶을 마비시키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다만 돌아보아 살피는 영적습관은 평생 유익하다는 걸 분명히 일러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먼저 깊은 영 한 가운데서 메시아를 만나세요. 그래서 전해야 할 기쁜 그 소식 때문에 달려가 만나고 싶은 관계가 되길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리스도를 먼저 붙잡은 뒤 그 소식을 전하면 물동이를 두고 동네로 달려간 여인처럼 이제부터 우리의 인생은 전혀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믿기를 바랍니다.
29절입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이 여인뿐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찾아주신 복음의 능력 그 두 번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겁니다.
2. 모든 것을 알고계신 분, 전지전능의 메시야십니다.
본서 4:16-9절을 살핍니다. 남편을 불러오라는 말씀에 남편이 없다고 하는 여인의 대답에 이어 “남편이 없다하는 네 말이 맞다.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맞다.”고 하십니다. 과거가 부끄러워 이웃과 사귀지도 않고 외출도 안하고 물도 남들이 안 나오는 정오에 뜨러 나온 여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과거를 정확히 드러내자 놀라며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대화가운데 주님이 메시야이신 것을 밝히자 그는 놀라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소리치게 됩니다. “내 과거 모두를 알고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천지를 지으신 우리 주님 앞에 비밀은 없습니다. 인간의 과거와 미래 모두를 다 알고 계십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 히4:13”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 발견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차마 말 못할 부끄럽고 아픈 일들, 사람들은 몰라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사마리아여인의 과거와 수치는 복음을 접하는 순간 수치로 덮어둘 비밀이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귀한 것이 됐습니다.
“내가 행한 과거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이 분을 와서 보라. 이는 메시아가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인생을 알고 계신 그리스도십니다. 인생은 언제나 문제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 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는 유일한 답이요, 길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생의 답이 열리는 길, 길 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저세상에서도 최고의 통치자로서 천국의 열쇠(마16:19)와 사망과 음부의 열쇠(계1:18)를 손에 쥐고 계십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주신 복음의 능력은 우리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정확히 보고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간사회는 들려오는 소식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복음은 어떠한 것보다 먼저 듣고 전해야 할 소식입니다. 복음으로 우리가 먼저 선한 충격을 받는다면 주변은 모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 어느 것보다 먼저 전해야 할 기쁜 소식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은 활력이 넘치고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이 땅에 오셔서 죽음으로 향하던 인생들이 새 삶을 얻게 된 복된 소식을 전파하는데 헌신되기 바랍니다. 버려둔 여인의 물동이와도 같은 우리들 옛사람, 과거에 익혔던 유치한 생각과 습관과 가치관들은 속히 쫓겨나가고 부서져서 영생하도록 샘솟는 생명수,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슴에 담고 머리에 이고 발길 닿는 곳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치는 증인, 새사람이 되시기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증인된 삶은 더 이상 사람이 두려워 어두운 골목길로 숨지 않습니다.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시온의 대로에서 소리치면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예수 앞에 함께 경배하고 찬미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능력있는 삶이란 말씀 따라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비전있는 삶이란 예수를 소망하는 삶입니다. 말씀과 멀어질 때 우리들의 삶은 무기력해집니다. 탄력을 잃고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오늘 받은 말씀으로 저와 여러분 안에 복음의 능력이 임하면 우리도 힘을 얻어 이미 받은 구원의 복된 소식 전하기를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물동이 두고 달려가면 샘을 파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쁨으로 전하고자만 한다면 우리들의 물동이는 더 이상 심각한 게 아닙니다. 버려두고 달려갈 정도로 기쁜 그 소식이 우리들 남은 생애에 모든 것을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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