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5. 주일예배<마26:69-75. 새벽녘 베드로의 붕괴>
[다시전합니다. 어머니는 3층 노동현장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고 알콜중독자아버지의 폭행과 주정 속에 두형제가 자랐는데 커서 형은 알콜중독자보호소에서 의사인 동생을 만납니다. 이유는 한 가지!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생각과 결단입니다.
본문은 주님이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의 수치를 보여주는 동시 그리스도의 구세주 되심과 인간의 인간됨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등장하는 베드로는 자신의 천박한 모습에 통곡을 했지만 그나마 먼발치서라도 주님을 따른 것은 베드로뿐이었습니다.
본문의 닭이 우는 소리는 성경 외에서도 흔히 새벽을 깨우는 소리로 표현됩니다. 제자들은 메시아라고 확신했던 스승이 군사들에게 체포되자 드러난 현실에 절망하고 놀라 모두 도망갑니다. 특히 베드로는 바로 몇 시간 전 마지막 만찬 후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는 예수님 말씀에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단언했던 사람입니다. 그 말에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에도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는 않겠나이다.” 제자들과 함께 말합니다. 그러나 그날 밤, 주님의 말씀처럼 닭이 울기 전, 베드로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인함으로 생명을 부지하게 됩니다.
닭의 울음소리, 그것은,
1.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소리입니다.
호언장담하던 베드로의 배신을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다른 제자들보다 언제나 한발 앞서서 충성을 보이고 적극적이며 급하고 혈기 많은 베드로를 주님은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진실로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베드로의 영은 구원받았으나 육체에 남겨진 옛사람을 주님은 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도래로서 인간의 근본 죄 문제로 인해 잠시 육신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베드로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육신베드로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시고 품으신 뒤 그 신앙고백 위에 당신의 나라가 세워진다고 최상의 축복을 합니다.
아직은 우리가 미숙하지만 우리의 신앙고백을 통해 주님 나라는 꾸준하게 확장돼 갈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형편없는 베드로지만 얼마나 소중한 사림인지 얼마나 귀한 일을 할 일꾼인지 주님만은 아셨고 인정하셨습니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일러두세요. “나만큼 소중한 일꾼은 없어. 비록 지금은 볼품없지만 반드시 나는 주님의 거룩한 처소가 될 거야. 어떤 일에도 말씀이 나를 제압하소서. 내 부끄러운 신앙인격이 새벽을 알리는 닭의 소리를 듣게 하소서. 강대상의 선포에 부족한 / 잠자던 / 철없는 / 염치없는 제가 깨어날 줄 믿나이다.” 특별히 본문은 닭의 소리로 지적하는 베드로의 붕괴를 통해 우리들에게 강력하게 말씀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 인생의 허약함을 알고 계십니다. 바로 직전에 대제사장의 종 말고를 향해 칼을 내리쳐 귀를 떨어뜨린 베드로였지만 불리해진 상황으로 위태롭게 되자 “난 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님을 배반하고 맙니다. “함께 죽을망정 모른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의를 맹세하던 그가 불과 몇 시간 안 돼 세 번씩이나 난 그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펄쩍 뛰며 비굴해집니다. 그런데 본문을 살펴보면 베드로 외에 다른 제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요한과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집까지 따라왔고 본격 체포가 이뤄지는 순간에는 마가로 추정되는 청년이 잠시 따라오다가 놀라서 세마포 비싼 홑이불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달아납니다. 당시 상황의 긴박성을 막14:50절에는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증거하는데 그래도 베드로만은 예수님 주변을 서성댔으나 위기를 당하자 무너집니다.
기억하세요.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우리의 나약함과 치졸함을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 예언이 닭의 울음소리로 인하여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베드로와 그리고 언제든지 주님을 배신할 수 있는 모든 인간들을 향해 선포하는 외침이었습니다. 새벽녘 무너져버린 베드로에게 닭의 소리는 뭐였습니까? “베드로 넌 기억하는가?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는 말을, 베드로. 기억하는가? 날이 밝기 전에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할거란 주님음성을, 베드로. 베드로.” 새벽녘 닭의 외침은 베드로의 신앙양심을 깨우며 가슴에 박혀 방금 전 주님 말씀을 떠올려 미칠 듯 통곡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현재 우리가 듣는 이 광경에서 가장 큰 힘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극형, 죽음입니다.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지도자의 비참한 패배 앞에 제자들은 죽음의 덫이 자신들에게도 덮이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모든 공포의 결론을 살피면 거긴 죽음이 기다립니다. 왜 무섭고 떨릴까? 왜 불안하고 왜 초조한가? 그리고 그 끝은 뭔가?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존본능으로 인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모든 생명체가 불가항력 앞에 몸을 움츠리고 공포에 떠는 것은 죽기 싫어서입니다. 강아지는 꼬리를 안으로 바짝 사리고 거북이는 머리, 다리, 꼬리를 등판 안으로 웅크려 넣습니다. 사람은 엎드려 빕니다. 죽음의 공포 앞에 당신의 종이라도 될 테니 목숨만이라도 살려달라는 겁니다.
육체는 그래서 죄의 종이 돼 사망에 이르는(롬6:16) 옛사람을 품고 있고 롬5:17절에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사람을 통해 왕 노릇하게 된다고 증거 합니다. 제자들의 배신과 도피 앞에 우린 그들을 책망하기 전에 인간의 나약함을 분명히 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이와 같이 도망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석제자 베드로는 세련되진 않았어도 열정적이고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배신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베드로 역시 아직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임을, 그러나 훗날 주의 영이 함께 하실 때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릴 순교자라는 것까지도 아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신 주님은 그가 세 번에 거쳐 당할 수치를 말씀하신 겁니다. “네가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 주님보시기에, 또 우리가 보기에도 인생은 신뢰할만한 존재가 못됩니다. 인생들은 너나없이 모두 수렁에 빠진 채 나부터 먼저 건져달라고,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좀 먼저보라고 소리치며 날좀 건져주세요., 날좀 품어주세요., 내가 제일 가여워요,. 내가 제일 외로워요., 내가 제일 아파요. 난 아무 것도 없어요, 밑 빠진 독처럼 부어도 부어도 계속 채워달라며 아우성치는 그런 끝없는 욕망의 존재들입니다. 우리를 채워줄 존재가 인간과 세상 안에 있습니까?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주님 외에 누가 우리들을 너그러이 품고 땅의 더러운 욕심을 선한 하늘의 소망으로 채우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이미 가득 채워진 풍성, 또 채워질 소망은 단 한 분, 예수그리스도십니다. 항상 우리를 찾아주시고 우릴 원하셔서 채우시는 예수님한분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합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베푸시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예수님자신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기억이 납니까?
youre my song! youre my best! youre my heaven! youre my Life! youre my everything!
닭의 울음소리 그것은,
2. 신앙양심을 깨우는 외침입니다.
74-75절입니다.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이 울기 전에 내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의 비천함을 고발한 닭의 울음소리, 베드로는 무너진 자신의 형편없는 실체를 보고 소리쳐 울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보면서 주님 앞에 진실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통곡하는 베드로, 곧 십자가에서 모진 형벌을 당할 사랑하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서럽게 통곡합니다.
눈물은 양심을 닦는 세척수입니다. 순결의 잔을 채우는 생수입니다. 그렇게 눈물은 벅차고 격한 감정을 가장 잘 순화하는 최고의 명약입니다. 닭의 울음소리로 이제 베드로의 비굴함과 때 묻은 신앙양심은 눈물로 닦여지고 깨어나 새아침을 맞습니다. 본문은 심한 통곡으로 베드로가 울었다고 합니다. 그 통곡은 베드로에게 놀라운 변화와 새 출발의 선언이었습니다. 닭의 울음소리, 그것은,
3. 나약한 인생들의 새 출발을 알리는 나팔입니다.
본문의 사건, 베드로의 붕괴는 훗날 베드로가 사도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그 저녁 참으로 아팠던 기억이 후에 주님의 치유하심으로 회복되는 일은 부활 후에 일어납니다.
세 번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부활 후 세 번의 질문을 통해 “나를 사랑하느냐.”고 확인합니다. 그리고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말하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세 번 말씀하심으로서 베드로의 상처를 완전히 치료해 주셨습니다. 후로 베드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체험을 한 뒤 본격 목양사역을 시작함으로 주님이 말씀하신 양을 치고 먹이는 목자가 돼 수많은 영혼을 구합니다. 배신했던 베드로에게 신뢰와 사랑으로 자신의 어린 양들을 맡겨 주심으로 그날 아픈 기억으로 눌리던 베드로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부끄러운 베드로에게 새 출발, 영광의 순교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존귀한 길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즉 겟세마네 저녁 그 날의 수치는 영광의 교회운동으로 이어져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기까지 베드로의 찬란한 출발이었습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실패와 수치로 어두운 밤이 있습니까? 주님 이름으로 거룩한 성숙을 선포하시고 주님 열어주시는 새 출발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동지여러분, 모세는 풍요로운 궁궐을 떠나 미다안 광야에서 부름 받았고 다윗은 영토가 계속 확장될 때 밧세바를 범했으며 엘리야는 바짝 타들어가는 그릿시냇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바울은 당시 모든 문화 정치 경제 철학의 중심지인 로마에 가서 설교하기를 고대했는데 결국 감옥에 갇혀 설교합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바울경비병들과 장교들은 사실상 로마의 미래지도자들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닭이 우는 소리에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던 그 날, 베드로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형편없는 인간, 넌 실패자야. 넌 배신자야. 네가 뭘 할 텐가? 천하에 무식한 것이” 조롱하는 소리, 칠흙같은 어둠의 저녁, 베드로가 땅을 치며 통곡할 때 이미 깊은 믿음의 새벽이 시작됐다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을 고발하는 닭의 울음소리가 혹시 들린다면 절망대신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닭의 소리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의 잠들어 있는 신앙양심을 깨우고 통한의 새벽을 지나 새아침의 밝은 빛을 알리는 기쁜 소리인줄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믿은 대로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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