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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7.01.29. 주일예배<약1:9-11.낮거나 높거나 우리의 자랑은 그리스도>

by 설렘심목 2017. 1. 30.

2017.01.29. 주일예배<1:9-11.낮거나 높거나 우리의 자랑은 그리스도>

[인간의 감정과 마음은 천국을 담을 수도 있고 지옥을 품을 수도 있다. 자신의 내면을 잘 조절하면 최고의 인생자산을 취하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 뵈지 않는 것에 무관심하여 패배, 뵈는 것에 집중해 노예가 된다. 이것만 바뀐다면 모든 선한 승리는 이미 보장된 것이다.]

 

인간 백이면 백 모두가 남의 자랑을 기쁜 마음으로 듣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자랑에 진실로 칭찬해주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부모님뿐일지도 모릅니다. 한 형제도 가정을 꾸리면 그 집 칭찬을 힘들어 합니다. 그만큼 자랑이란 것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랑거리가 자신이나 자신의 가정과 소유가 아니라 다른 존재이고 그 존재가 특별히 사람이 아닌 창조주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시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입니다. 하나님을 높여 칭송하고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낮고 천한 자를 찾아오신 히브리인의 왕, 영생의 소망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본서의 저자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입니다. 야고보는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주를 영접했습니다. 그 후에 본서 첫 시작에 하나님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낮은 자의 자랑과 높은 자의 자랑입니다. 주제는 우리들의 자랑이 되시는 그리스도십니다. 자랑이란 말은 남보다 뛰어난 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특별한 경우를 빼고 자랑은 자랑을 듣는 자에게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환영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경쟁심과 시기심이 있는 인간에게 다른 사람의 뛰어난 점과 우수한 경쟁력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낮은 자나 높은 자나 자랑거리가 있음을 밝힙니다. 누구에게나 있어야 하는 자랑거리가 먼저 낮은 자에게는 어떻게 드러나야 합니까? 본문 9절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 낮은 자 안에 계신 높으신 그리스도를 자랑입니다.

 

본문에서 낮은 자는 당시 사회적 신분이나 재력 등 변변치 않은 비교적 하위계층 사람들이고 높은 자는 그 반대로 사회지도층인 유력자를 말합니다. 본문은 낮은 자에게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세상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낮은 자의 높음은 그 높다는 말도 세상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세상에서 높다는 것은 낮은 것을 이겨서 누르고 올라가 있는 것들을 말합니다. 즉 세상의 높음은 그 높은 만큼 낮은 것들의 아픔과 눈물을 딛고 서있게 됩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그리스도의 높으심은 그런 상대적 눌림이 전혀 없는 권위, 즉 자신의 욕망으로 취한 권위가 아니라 따르는 자들에 의해서 올라간 권위요, 하늘로서 내려온 권위입니다. 그 권세의 높음을 낮은 히브리인은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높음은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가장 높은 최고로서 만물이 우러러 보는 높음입니다. 생명과 사망과 의로움과 죄악을 밝힐 때 높이 치켜든 진리의 등불이요, 판결봉입니다.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절대주권의 주재권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최상이십니다.

최고의 하나님이 최고의 사랑으로 우리 안에 함께 계신 것을 믿기 바랍니다. 이 믿음은 대단한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 우리를 주장하십니다.

9:23-2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지금 읽은 예레미야서는 인간의 지혜도, 용맹도, 부함도 자랑치 말고 오직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분이심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본서 약2:5절을 함께 읽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 어떤 자랑보다 하나님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가 우리가 받을 상속재산입니다. 너무 크고 귀해서 실감이 나지 않아도 우리들의 영원한 자랑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은 눈에 뵈는 것을 자랑하고 교회와 성도는 눈에는 안 뵈는 영원한 나라와 그 나라를 다스리시는 한분 왕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의 허황된 말처럼 약자의 도피처나 노예도덕과 비겁한 합리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을 뿐 실존하는 실체요, 머지않아 기어이 증거될 믿음의 귀한 결론입니다.

 

2. 높은 자안에 계신 겸손의 왕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낮고 천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히브리인의 왕으로 오신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좀 살만한 성도는 뭘 자랑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높은 하나님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잠시 오셔서 참사랑의 본을 보이신 겸손의 왕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짐은 세상에서 힘 있다고 하는 모든 사람 안에서 낮아지는 겸손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랑이 되게 하십니다. 자신 안에서 낮아지신 주님을 자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지혜나 부요함이나 강대함을 결코 자랑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 안에 찾아오신 주님이 이미 겸손을 몸으로 보이셨고 또 사람에게도 겸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겸손의 왕으로 자신 안에 오신 주님을 선포하고 자랑하고 목표를 삼아 모든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면 많은 허물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겸손의 왕 그리스도를 내안에 모셔 주인으로 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그것은 나를 높여 채워주신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께 다시 바쳐서 그분이 사용하시도록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내 명예, 지식, 재산, 관계, 건강, 인격을 이제 더 이상 내 것이라 하지 않고 그것들을 주신 그리스도 앞에 올려드리고 나는 그의 종으로만 살기를 작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낮은 자는 자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높음을 한껏 자랑할 수 있어야 하고 세상에서 제법 유능하다는 소릴 듣는다면 그들은 자신을 높여주신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먼저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낮아지심을 그대로 본받아 자신도 낮아지고 그 겸손으로 낮아지신 주님을 자랑하면 주님은 모든 만유 앞에서 높아지십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심으로 우리가 이땅과 저세상에서 죄를 미워해 영광의 나라를 소망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천국입주권이 확정된 것을 어찌 선전하고 자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걸 자랑하지 못한다면 결국 자기자신을 자랑하게 됩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일만큼 부끄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의 자랑은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자랑은 세상의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전도하는 일은 공개적으로 그를 자랑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자랑하려고만 한다면 그 내용과 분량은 실로 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경험한 자랑거리 셋만 살피면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그리스도를 자랑하려 할 때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 6:22-23절입니다.“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한절 더 봅니다. 5: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1)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1973년 월남에 파병된 대령 한 분이 전사해 그 아내가 보훈퇴직금을 받아 버스를 타고 오던 중 그만 소매치기 당했습니다. 피를 토하는 슬픔에 돈마저 잃고 망연자실한 부인의 소식이 보도되자 그 소매치기는 돈을 도로 부쳐줬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가장 절실한 것을 돌려주고 채워주는 것입니다. 반드시 죽게 되는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일 것입니다. 언젠간 반드시 한번 죽을 인생에게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 이상의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남편이 죽어 받은 돈을 잃은 부인에게 그 돈이 돌아왔다는 것이 복음이라면 여러분에게는 어떤 소식이 복음입니까? 당장 빚을 갚아야 합니까? 1년을 설계하면 그는 1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30년을 설계하면 그는 30년을 살고 있지만 사후 영원을 계획한다면 그의 삶은 영원을 향한 영원한 삶인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즉 영혼이 깨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후세계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니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제 각자 모두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에겐 무엇이 복음인가? 물론 변함없는 답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진정 복음으로 기뻐하고 있고 감동하며 자랑하고 있는가? 진정 복음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럴 수 있는가?

영혼을 구원하고 영생을 선물하신 그리스도, 잠시 후에 만나 뵙고 그 곁에서 영원히 찬송부르며 함께 하실 예수그리스도. 우리들의 영원한 기쁜 소식이 정녕코 내 자랑이 되어야하지 않는가?

 

2)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의 신분으로 옮겨주신 신분변화입니다. 늘 어두운 길로만 골라 다니며 숨어 지내던 죄인이 환한 시온의 대로를 활보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셔서 이제는 값없이 무죄판결을 받아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소속된 자녀가 되어 의롭다는 신분과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성도라는 이름,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소리쳐 자랑하게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잘 아시는 잠22:4절을 암송합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순서를 거꾸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영광-재물입니다.

 

3) 빈궁한 삶을 풍요롭게, 수치가 변하여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그 교회를 잘 섬기고 희생하는 겸손한 자는 반드시 말씀대로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 보상으로 주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믿음은 믿고 행하는 데까지가 믿음이고 기도의 능력은 기도한 후 기도한대로 노력하는 데까지가 기도라고 우리는 분명히 배웠습니다.

믿고 기도했다면 주를 성실히 섬기는 자로서 근검절약하고 겸손한 자세로 바르게 살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재물과 영광가운데 영생의 기쁨으로 영혼이 잘될 줄 믿습니다. 옆에 지체들을 축복하세요. “우리들의 영원한 복음, 기쁜 소식과 자랑은 예수님이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