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8. 주일설교<히11:13-16. 우리가 사모하는 더 나은 본향>
[동현. 동신이 두 아들을 죽인 안재현을 양자로 맞아들인 손양원목사님의 9가지 감사기도 중 여섯 번 째 기도는 “미국 갈 준비하던 두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더욱 감사뿐”]
본문의 본향과 어린 시절 우리의 고향은 그 근본의미가 다릅니다. 우리들이 기억 속에서 찾아가는 과거의 시간, 공간에서 추억하는 것이 고향이라면 본향이란 말은 보다 근본적인 단어로서 존재의 근원에서 그 본질을 찾습니다. 즉 태어난 후의 기억들이 모여 고향의 추억과 향기를 만들어간다면 본향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며 원초적인 생명의 근원을 밝히면서 찾게 되는 영혼의 원적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인간의 존재와 생명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를 밝힐 때 비로소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이 본향입니다. 그러므로 본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찰은 영혼이 창조주를 만나지 못하면 결코 풀리지 않는 난해하면서도 신비한 영역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 성도들은 심한 곤경에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재산을 약탈당하고 숨고 쫓겨 다녀야 했습니다. 교회교육은 부족하고 예배와 기도가 소홀해지자 그릇된 교리가 들어왔습니다. 교회는 늘 불안하고 술렁거렸습니다. 믿음이 부족하니 배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좌절하는 중에 본문이 전해집니다. 오늘은 말씀을 통해 믿음의 선지들이 어떻게 본향을 그리며 험악한 세월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었는지를 살피면서 함께 주의 음성으로 큰 힘을 얻어 남은 세월을 깊은 헌신으로 주께 드리는 복된 시간이기 바랍니다. 오늘 주제는 나그네, 본향, 동행, 예비된 천성입니다.
1. 우리는 약속을 붙잡고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입니다.
첫째, 우리가 붙잡은 약속입니다. 민 14:28절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히6장에서도 “맹세는 모든 다툼의 마지막선포이고 하나님은 더 높은 자가 없어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맹세까지 하신 약속을 우리가 붙잡고 그 약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우리의 본향을 향해 가는 무리가 성도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어려서 헤어져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부친이 일본에 가서 처를 잘 만나 거부가 된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술 따르는 생모가 부끄러워 소년시절부터 빗나갔습니다. 뭐든 훔쳐다 팔아먹는 도벽으로부터 음주, 대마초흡연에 문란한 이성관계로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늙어 어떤 암자에 몸을 의탁했고 그의 나이 40이 넘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일본인 부인과 함께 거부가 된 부친이 나타났고 그의 환경은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풍족한 물질로 그는 더 많이 방탕했습니다. 물질의 풍요가 그의 타락된 삶을 돌이키지는 못했습니다. 넉넉한 용돈으로 더 많은 술을 마셨고 음주운전으로 비싼 승용차를 망가뜨렸습니다. 결국 부친은 그를 정신병원으로 강제 입원시켰고 그는 얼마 후 길거리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가 생전에 술에 취해 하던 말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아버지가 나 어렸을 때 한번만이라도 내게 연락을 주어 내가 일본에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곧 간다고 약속했다면 나는 그 약속 하나로 성실히 살았을 거야. 너무 늦었어.”
여러분. 약속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비록 현실이 힘들어도 약속이 분명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잠시 지나는 고통에 크게 눌리지 않습니다. 믿음의 선지들이 붙잡았던 약속,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붙잡고 있는 이 약속이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그 위력을 지니고 있을까? 약속은 믿는 만큼 능력으로 기쁨으로 자리 잡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언약가운데 살면서 늘 불행의 쓴 뿌리를 손에 꼭 쥐고 놓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언약신앙의 깊이와 부활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세요. 건강한 믿음가운데 분명한 약속이 있는 사람들은 그가 지닌 기쁨의 약속 때문에 늘 가슴 벅찬 포만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음, 우린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정착민이 아니라 잠시 지나는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방황(彷徨)하는 방랑자가 아닙니다. 나그네란 여행하는 사람이고 여행자에겐 행선지와 목적지가 분명합니다. 즉 떠나온 고향이 있고 다시 그곳으로 가야할 사람들입니다. 즉 삶의 출발과 과정과 목표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정은 무엇이며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함께 기억해보기 원합니다. “목적으로서의 예수그리스도, 방법으로서의 삶”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목적지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행선지 어디쯤에 있습니까? 길 위 즉 복음 안에 있고 현재 전방을 향해 행진중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빌3:13절에서 사도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함으로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진행 중인 미완성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린 나그네들입니다. 나그네가 가장 나그네다운 때는 어떤 때입니까? 짐이 간단할 때입니다. “사막으로 돌아가자. 배낭에 하나 가득 희망을 담고, 걷기 편한 신발과 목을 축이기에 적당한 물만으로도, 우리 삶은 충분하리니, 돌아가자 사막으로, 일상의 푸른 산맥 건너저편, 사막으로 돌아가자.” 제가 좋아하는 헤르만 헷세의 작은 보헤미안의 노래라는 시입니다. 소유가 많으면 살림살이가 무거워 앞으로 나가기 힘듭니다. 갈 곳이 멀게 느껴집니다. 벽돌집을 짓지 않고 천막집으로 만족했던 아브라함은 평생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널(이걸) 두고 내가 어떻게 가니?” 많은 소유와 관계는 주의 명령 앞에 늘 무거운 짐이 되어 나그네인 우리 삶과 영혼을 누릅니다.
2. 나그네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목적지와 목적의식과 나침반입니다.
인생은 잠시와 영원을 양손에 잡고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들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주테마는 “인생이 헛되고 헛되나니 헛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헛된 인생가운데 단 하나만이 헛되지 않다고 밝히는 전도서의 선포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관계, 소유, 명예, 철학과 예술과 도덕을 하나로 묶어서 침묵하게 합니다. 인생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리스도의 구원진리를 뺀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시편110:10절, 잠9:10절과 전도서12:13절에서 지혜의 근본과 사람의 본분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 본분의 원 의미는 전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와 존재가치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 길을 가는 저와 여러분은 바른 삶의 정확한 목적 외의 것들은 뒷 순서에 놓을 수 있는 거룩 곧 의를 향한 할례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절에서 바울은 성도의 푯대, 목표가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예수그리스도시며 그 분을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나침반은 성경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를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안다면 더 이상 우리들의 삶은 복잡하지 않게 됩니다. 13절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아브라함과 야곱과 사라는 약속, 즉 메시아의 강림에 대한 예언을 못 받았어도 믿음으로 그것을 기쁨으로 품고 살아서 척박한 현실의 고통가운데서 결코 낙담치 않았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결코 이 땅의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을 주셔서 가나안땅에 들어가 풍요롭고 복된 삶을 시작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저들의 한 평생은 창47:9절 야곱의 진술처럼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고 내 나이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헷족속에게 사라의 묘지를 살 때에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잠시 머무는 자”라고 자신이 나그네임을 밝혔습니다.
14절입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본향 찾는 자 임을 나타냄이라.” 그렇습니다. 이처럼 나그네임을 자처하는 것은 곧 “본향을 찾는 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언제어디서나 늘 나그네임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험악하고 외로운 나그네 길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많은 소유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그리스도 한분이시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선포처럼 길과 진리와 생명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주님만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분은 진리를 따라 생명의 길을 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보다 더 먼저 우리 안에 채우실 줄 우리가 확신합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3. 본향을 찾는 자들의 하나님이 기쁨으로 준비하신 천성입니다.
육신으로 살아있는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이는 잠시 머무는 나그네 길이요, 진정 우리가 영원히 머물 우리들의 본향은 하나님이 한 성을 예비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임을 믿습니까?
본문의 말씀처럼 본향을 찾는다는 것은 본향을 그리워하며 본향의 삶에 모든 소망이 걸려있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내 하나님, 내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고백할 때 그 고백을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 묻혀 세속에 취해 사는 게 아니라 본향을 사모하는 경건한 삶일 때 더욱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향을 사모하며 진정한 기쁨이 그 본향을 그리며 거기에서 이뤄질 구원의 완성된 삶에 모든 초점이 맞춰지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은 이미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변할 수 없는 이 사실은 고달픈 인생길에서 가장 큰 힘이 되는 복된 소식입니다. 거기서 기다리는 분을 지금 여기서 만나 경배할 수 있는 있는 사람들, 돌아갈 곳이 있는 우리들은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소망으로 인해 결코 끝내 좌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나보니 십년이 하루같이 왔는데 우리의 마지막 꿈도 순식간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1-4절에 늙은 사도요한이 선명하게 본 하나님나라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은 거기 한 성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성도여러분, 우리가 지금 사는 집들은 늘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 한 성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늘 기쁜 찬송이 그치지 않습니다. 생명수 강가에 열두 나무가 때를 따라 과실을 맺고 다툼과 눈물이 없는 곳 거기 우리들의 집이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이 땅에서 그 집의 마감재와 건축수준을 어찌 할 것인가를 믿음으로 결정해가고 있는 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사람 시리즈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①열심히 뛰면서 어딜 가는지 모르는 사람. ②날 저물어 갈 곳 없는 사람. ③죽어서 갈 곳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중 세 번째 죽어 갈 곳을 모르는 사람이 가장 비참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지금 비록 힘들어도 기다리시는 주님과 아름다운 하늘궁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긴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머물며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예배자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지경을 확장하는 곳입니다. 교회운동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갈 때 여전히 우리는 미약하고 주님은 강하고 선하신 것을 뼈저리게 깨달아 주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 되신다고 소리쳐 찬송함이 우리들의 본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천성을 선물로 받은 저와 여러분 믿음으로 약속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도 승리하며 살 줄 믿습니다. 아멘. 믿은 대로 될지어다. 믿은 대로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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