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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6.07.31. 주일설교<마7:13-14. 좁은 길, 어려운 길, 생명 길.>

by 설렘심목 2016. 8. 1.

2016.7.31. 주일설교<7:13-14. 좁은 길, 어려운 길, 생명 길>

 

사람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선택하며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몸으로 안고 살아갑니다. 그게 만족한 것이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게 됩니다. 문제는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지도하시는 분은 한분,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따라 저와 여러분. 남은 육신의 세월을 주님 기뻐하시는 선택으로 귀한 결단 이루어 주님나라 요긴한 일꾼들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먼저 본문에서 말하는 좁은 문과 넓은 문, 두 가지의 길은 어떤 길인가?

 

1. 넓은 문과 좁은 문입니다.

 

1) 넓은 문은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누구나 쉽게 선택하고 가고 있는 이 넓은 길은 의의 길과 헌신의 길에 관심도 없고 죄를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습니다. 예수를 부인하진 않지만 경우에 따라선 죄와 타협해야 할 때 타협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넓은 길을 가는 이들은 그래서 예수를 믿는 일에 반대도 안하고 죄를 짓는 일에 대하여 관대합니다. 즉 죄와 의를 다 인정합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폭넓은 인격이라고 좋아합니다. 보통 교인들 중에도 넓은 길을 가는 신앙인들은 얼핏 보면 사람이 좋아 보입니다. 지독하지도 않고, 책망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적당히 넘기며 타협적인 말로 위로하여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잘못된 교리도 너그럽게 받아들여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단교리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믿든 저렇게 믿든 오직 주께 영광이라는 함정으로 빠져갑니다. WCC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런 넓은 길의 교인은 기독교가 다른 많은 종교 중에 하나일 뿐 생명이 예수께만 있다는 진리에 회의적입니다. 넓은 길에 들어선 교인은 생각합니다. “기독교역시 유한한 인생이 무한하고 능력되는 어떤 절대자에게 의지하려는 노력을 함으로서 최고최선의 윤리와 인격과 선을 이루어 인간의 궁극적 행복을 창출하는 종교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그 생각이 멸망의 넓은 문인 줄 모릅니다.

 

2) 좁은 문, 의로운 길입니다.

이 길은 죄에 대하여 철저하며 용납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은 죄에 대하여도 민감하여 울며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좁은 길을 가는 생명의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신의 인생 중 가장 중요한 일로 여깁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으로서 예수그리스도 외 어떤 소망의 대상과 진리와 영생을 찾을 수 없음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이들, 좁은 문의 길을 결단한 사람들은 특별히 영생,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신앙으로 인하여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이들은 주의 명령을 생명처럼 여겨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피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유익과 기쁨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 그리고 교회의 부흥과 나라확장을 위하여 한 몸을 아낌없이 바쳐서 그것만이 자신의 평생 삶의 목적이요, 소원입니다. 세상과 사람들 보기엔 어리석고 무능해보이고 때론 지독해보이고 때론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어여쁜 축복의 사람인지 모릅니다. 선택받은 복의 길, 좁은 길의 사람은 세상에 묶였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 오직 주께만 묶이게 됩니다. 그러한 저와 여러분이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2. 가기 쉬운 넓은 멸망 길과 가기 힘든 좁은 생명길입니다.

 

1) 가기 쉬운 길입니다.

멸망과 죄악의 길은 첫째 특징이, 누구나 다 쉽게 편안히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하게 노력을 하지 않아도 가는 길입니다. 이는 마치 죽은 물고기가 내려가는 물길 따라 아래로 떠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점점 오염되는 아랫물을 따라 결국 사망의 바다에 이릅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고기는 거센 물살을 헤치고 윗줄기로 계속 힘들지만 차고 올라가 맑은 상류에 다다릅니다. 거긴 일급생명수 복음이 우릴 기다립니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푸른 초장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이 죽어있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죄짓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일에는 이미 익숙해있습니다. 하나님 간섭을 받지 않아서 뭐든지 내 뜻대로 합니다. 자유를 외치며 육체의 기쁜 쾌락을 향하여 가장 편한 길, 모두 가는 길을 택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인생은 얼마든지 즐길 권한이 있다.” 마니교가 뭔지도 모르면서 마니교의 중요교리를 말합니다.

 

교인 중에도 쉽게 믿으려는 사람들이 제법 됩니다. 세상 즐거움 적당히 취하고 꽉 조여드는 훈련보다는 너그러운 종교인이 되어 많은 숫자 가운에 살짝 숨어서 희생과 사역보다는 이력서 종교란에 기독교로 기록된 것이 스펙이 된 사람입니다. 이들은 주일 하루 가까스로 성전 뜰 한번 밟고는 일찌감치 낚시터로, 볼링장으로, 골프장으로 주일을 휴일과 레저로 즐기며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길을 가는 그들은 교회 일에 관심도 없습니다. 알지도 못하지만 알고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이런 교인을 보통 하숙생교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냥 쉽게 종교생활을 하면서 누가 물어보면 **교회 집사 **장로라고 하며 금테명함을 내밀어 자신의 처세에 활용합니다.

그에겐 기독교가 구원의 신앙. 부활의 신앙. 십자가의 도가 아니라 자신을 치장하는 여러 개의 중요한 스펙 중 하나입니다.

 

2) 결코 쉽지 않은 길, 생명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 길은 하나님의 통치와 간섭, 그리고 섭리 속에 가는 쉽지 않은 길입니다.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어려운 길을 굳이 택한 사람은 그 택함이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려운 길을 택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모든 자신의 생애를 확실하게 책임져주신다는 것도 분명하게 믿고 외로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놀라운 깨달음 역시 위로부터 주신 선물임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이 볼 때 쉬운 길을 뒤로 하고 어려운 길로 접어드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가운데 믿고 깨닫고 쟁취한 자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굳이 어려운 좁은 길을 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어려운 십자가의 길은 외롭고 아파도 반드시 주를 찬미하는 부활의 길이요, 복된 생명길이 되는 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우리도 믿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 생명의 길,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된 길, 헌신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육체가 고단합니다. 시간을 드리니 자신의 시간이 없습니다. 기도의 중압감이 항상 있습니다. 전도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육체는 강하여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게을러서 영은 늘 지치게 마련입니다. 말씀을 통한 영을 공급받아야 할 때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도여러분. 주의해야 합니다. 영혼이 지치면 눈이 감기게 되고 졸리면 자게 됩니다. 그렇게 영혼이 지쳐 가면 믿음이 떨어져서 하나님의 동행이 마치 불편한 간섭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좁은 길, 어려운 길, 생명 길을 주님 손 놓치지 말고 힘 있게 믿음의 길을 가시기 축복합니다.

 

3. 많은 사람들이 가는 멸망 길과 적은 무리가 가는 헌신의 생명길입니다.

 

1)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고 쉬운 길은 언제나 초만원을 이룹니다. 대부분 모두가 선호하는 길입니다. 좁고 어려운 길을 택해야 할 이유,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택함 받지 못해 깨닫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북적이는 큰 길, 쉬운 길을 남들 따라서 특별한 의미와 가치, 방향과 목적도 모르고 그냥 다 가니까 더불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깨닫게 해주시지 않는 한, 이 넓은 길이 멸망길인지는 지식인도, 지혜자도, 신사도 노인도 명망가도 높은 자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죄인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의 대세, 큰 힘은 보통 넓고 쉬운 길에 있습니다. 그렇게 넓은 멸망의 길에 어리석은 다수의 군중들이 옳은 사상을 알지 못해 더불어 대세를 만들어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간다고 꼭 그것이 진리라는 보장이 없음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골고다 길은 제자들조차 함께 하기를 두려워 피했던 어려운 고난의 길(Via dolorosa)입니다.

 

2) 의로운 길, 좁은 길, 어려운 길에는 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넓은 길은 별 노력 없이 남하는 대로 떠밀리듯 가면 됩니다. 뭐 특별히 결단하고 약속할 것도 없이 그냥 서있기만 해도 단체로 어딘가 가게 됩니다. 거기가 좀 잘못돼도 다 같이 가는 데 뭐 어쩌겠나?

분명한 목적도 없이 세월 따라 가는 겁니다. 그러나 적은 소수의 무리는 가는 길이 대세에 밀려 외로운 길이요, 눈총 받는 길이요, 때론 불편한 길일 수 있습니다. 적은 숫자가 모여 가는 길은 그러므로 누군가 분명한 길잡이가 있어야 합니다. 외롭고 고단한 나그네 길, 결국은 승리의 길이요, 풍성한 나눔이요, 주님과 함께 가는 외롭지 않은 진리의 길입니다. 이 시간 주님 이름으로 권합니다. 제한된 숫자가 가는 이 길, 외로운 길, 좁은 길, 어려운 길에 주님향한 여러분의 선택과 결단으로 비전교회 믿음의 특공대 안에 들기를 예수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글로리아 신디사이저 연주 >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잠시 주님 앞에 눈을 감기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아버지 이제 주의 영 우리를 감동하옵소서. 내 영혼아. 어느 길을 가려는가? 지극히 제한된 거룩한 무리가운데 순교의 믿음으로 주를 따르겠는가? 내 길은 좁고 불편하나 끝내 영광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나는 곧 생명이요, 길과 진리이니 진정 나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기쁨이 삶의 목적이 된 자여, 좁은 문을 향할지어다. 거기 시온의 대로가 있나니 여호와 우리하나님은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시며 능치 못한 것이 없으시도다. 육체를 쳐서 좁을 길 택했더니 더 좋은 육신주시고 그 육신 쳐서 주의 계획에 순종했더니 영생과 교회를 주시는 도다.”

 

이 청구에 자원하는 헌신자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악한 세력 앞에 그리고 공산세력과 각종 이단 앞에 몸 바쳐 싸울 여러분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가 축복하고 접수합니다. 종이 축복기도 합니다.

 

주여. 참으로 외롭고 아팠던 날들이었지만 이제는 어딜 가도 주님 함께 하시니 거기가 거룩한 주님의 나라인줄 믿나이다. 오직 주님의 기쁨만이 우리의 길이오니 주님위하여 좁은 길, 어려운 길, 제한 된 소수의 무리가 가는 외로운 길이 영광과 풍성과 생명과 언약으로 열린 줄 믿나이다. 주여, 변개치 않으시는 주님 당부를 따라 오늘 우리가 주님향하여 서원합니다. 우리의 여생을 받으소서. 받으셔서 제단 등불 삼으사 육신을 쳐서 거룩한 영의 빛난 도구되면 교회운동 위하여 주님 강건하고 아름답게 고치셔서 사용하실 줄 믿사옵고 예수님이름으로 아멘할렐루야.”

그대로 자리에 앉으십니다. 계속 종이 기도합니다

이 땅과 저 하늘의 모든 선한 권세를 다 받아 주의 귀한 일군 되어 교회를 섬길 때 남은 삶이 하나님의 기쁨 될지어다. 교회를 통해 주님을 섬기면서 필요한 모든 것, 건강, 관계, 물질, 지혜, 주님이 풍성하게 채우실 줄 믿고 감사할지어다.”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병사 된 자는 자기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맡긴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아버지 지금 주 앞에 결단하는 하나님의 귀한 헌신자 위에 군사의 영을 나리소서. 세상 흔한 것 따라 넓은 길 편하게 즐기며 가는 천한 길이 아니라 고상하고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영광과 생명 길을 택하여 주의 뜻을 따르기로 한 영혼위에 지금 놀라운 헌신의 결단을 새롭게 하소서.

룻의 절개선택과 에스더의 순교자적 결단이 있게 하옵시며 평생 종들의 삶을 우리주님께서 친히 주장하셔서 사역과 예배에 필요한 믿음과 환경과 관계와 물질과 건강, 그 모든 것 넉넉히 부어주옵소서. 특별히 하늘의 신령한 은사와 땅의 기름진 풍성으로 우리주님을 세상만방에 자랑하고 선포할 때에 부족이 없게 하옵시고 저들의 자녀위에 크신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