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0. 수요예배<민10:1-2(1-10)>. 복음의 나팔수>
오늘 주시는 본문은 나팔을 불어 보내는 신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팔은 은으로 만들어 기존의 뿔 고동과는 소리에 큰 차이가 있어서 신호의 효과가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나팔은 두개를 만들도록 했으며 각각 부는 규정이 있어서 그 신호에 따라 백성들이 움직였습니다.
두 나팔은 온 회중이, 하나만 불면 천부장된 각 지파 족장들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본문에 “크게 불 때”와 “크게 내지 않을 때”로 구별해 큰 소리로 멀리까지 들리게 부는 것과 보통 급하지 않거나 일반적인 신호에는 크지 않게 부는 것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회중을 모을 때는 크게 불지 않고 진들이 진행하거나 전쟁을 하러 나갈 때엔 크게 퍼지도록 고음으로 불어야 합니다. 또한 절기와 월삭, 번제물이나 화목제물 위에 나팔을 불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팔은 제사장들이 불도록 돼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그 시대 택한 하나님의 백성을 움직였던 은 나팔과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복음의 나팔을 대비하며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은나팔의 사용과 용도를 따라 살펴봅니다. 누가 불어야 합니까? 8절입니다.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1. 제사장이 부는 나팔입니다.
제사장은 백성의 모임과 전쟁신호를 위해서 나팔을 부는 임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팔을 불어야 할 때 나팔을 불지 않는 제사장은 제사장이 아닙니다. 제사장이 불어야 하는 나팔소리는 적어도 백성들에겐 공동체 생활과 민족의 존폐에 대한 중요한 정보전달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나팔이 죽어 있다면 개인과 민족전체에 치명적인 일이 되고 맙니다.
성도 여러분. 소리를 내야할 때 소리를 내고 침묵할 때 침묵할 수 있다면 그는 상당히 신뢰할만한 사람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다물어야 할 때 다물지 못하고 말해야 할 때 말하지 못하며 나서야 할 때 나서지 못하고 나서선 안 될 때 함부로 나선다는 겁니다. 나팔수는 정확한 시점에서 정확한 신호규정을 따라 나팔을 불어야 모두가 안전하게 제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 부는 나팔”이란 작은 제목은 “교회가 외쳐댈 복음의 확성기”라고 바꿔 말하면 좋을 듯합니다. 교회는 시대가 절실하게 요구하는 소리를 내야 합니다. 어떻게 외칩니까? 먼저 기도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는 적군의 침입을 방지하는 나팔입니다. 기도는 회중을 모아 교회를 이뤄 주님나라 깨우고 일으키는 나팔입니다. 모이기에 힘쓰라고 불어대는 전도의 나팔이 여러분 손에 들려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이렇게 미력하고 미련해서 무슨 일을 하나님과 함께 합니까? 먼저 우리들의 무능을 고백하며 의탁하는 기도로 동역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선한 언약들을 붙잡고 내 소원 그 안에서 이루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변언약이 이뤄질 때 내가 증인된 도구가 되는 일, 즉 기도는 하나님의 소원이 내 안에서 속히 완전히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무너진 에덴이 자신의 내면, 영으로부터 복구되어 죽었던 생령이 일어서서 찬송하기를 간곡히 아뢰는 것 이게 기도입니다.
2. 전쟁에 임할 때 부는 나팔입니다.
고전14:18절을 함께 찾아 읽겠습니다.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돈은 쓸 때까지 돈이 아니고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사랑은 고백할 때까지 사랑이 아닙니다. 나팔은 불때까지 나팔이 아닌 줄 압니다. 본문 9절을 함께 읽습니다.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압제자를 치러 갈 때에 나팔을 크게 울려 불면 그 소리를 하나님이 듣고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에서 가장 큰 기쁨의 말씀은 압제자를 치러가는 것도 아니요, 나팔을 크게 부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에서 가장 큰 복음은 하나님이 나팔소리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들어줄 사람 없는 노래나 설교는 얼마나 비참합니까? 가르쳐야 할 자손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학문에 무슨 보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기도할 때 들어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린 그 기도 들어주시는 분이 영원한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이시라는데 우리의 감동과 놀라움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나팔 불어야 할 제사장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나팔수들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나팔을 울려 불면 누가 먼저 들으신다고요?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전하는 복음과 전하는 전도의 고백, 그 나팔소리를 사람보다 주님이 먼저 들으시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듣고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나팔소리를 듣고 대적에게서 구해내신다고 하십니다.
대적의 압제로부터 구출 받는 것은 소리 높여 불어대는 나팔소리입니다.
죄많고 한많은 한평생 얼마나 많은 대적들에게 눌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가난이라는 대적, 무지라는 대적, 질병이라는 대적, 배신이라는 대적, 상실과 거절이라는 대적, 그래서 생겨 끊임없이 아프게 드러나 이웃을 곤혹스럽게 하는 상처라는 대적,..등등 헤아릴 수 없는 삶의 가시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물리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선 대적 앞에서 나팔을 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팔의 의미를 정리하고 말씀을 듣기로 합니다. 나팔이란..방금 들으신 것처럼 기도입니다. 또한 나팔이란 진실된 전도로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나팔이란 찬송으로 주를 기뻐하며 감사하는 worship, 곧 경배입니다. 정리해봅니다. 제사장이 불어야 할 나팔은 기도입니다. 전도로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찬양과 경배입니다. 이 나팔소리가 저와 여러분 가정에 끊이지 않기 축복합니다.
끝으로 3-4절을 함께 읽습니다.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3. 모이라고 부는 나팔입니다.
소집나팔입니다. 행2:46절을 찾아 함께 읽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교회사가운데 가장 순수했던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모이기에 힘썼던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가진 자나 없는 자가 하나가 돼 유무상통의 덕을 쌓으며 기쁨으로 나누던 교제, 그 교통이 우리가운데도 실현될 줄 믿습니다. 히10:25절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러분. 우리교회 잘 아시다시피 모든 제직이나 임직자선임에 출석점수를 최고로 칩니다. 전세계 모든 교회가 일꾼뽑기에 가장 기초적으로 삼는 기준은 성수주일과 십일조생활입니다.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생활은 그 개인과 가정의 미래를 충분히 볼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성도의 믿음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표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시간과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가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정확한 목표를 말해주고 그 목표가 그 사람입니다.
모이라고 부는 이 세 번째 나팔은 몸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몸이 예배당으로 옮겨져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많은 다른 이들이 보고 모이기에 힘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불참하면서 어떻게 지체들에게 잘 모이라고 합니까? 먼저 자신이 몸을 움직여 예배에 모이는 것을 삶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늘 제가 말씀드리는 예배승리-인생승리는 얼마나 정확한 인생표어인지 모릅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주님은 잊지 않고 현실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힘든 가운데서도 하나님우선주의로 예배를 소중히 생각해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중심적 삶을 살면 어느 새 여러 가지 일들을 주님께서 친히 주장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배드림이 기쁨이 되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더욱 더 예배에 성실하게 출석합니다.
진실로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합니까? 예배에 생명을 거시고 이 단순한 진리를 영원히 기억하셔요. 끝으로 민10:2-3을 함께 읽기 원합니다.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4. 고난의 잔을 마셔 본 성도가 능력의 나팔수가 됩니다.
주물로 부어 만든 그릇이나 나팔은 저가품입니다. 방짜방식으로 불에 달궈 두드려 펴서 다시 접어 또 달궈 두드리기를 거듭하면 최상의 제품자료를 얻어냅니다. 사람도 매한가지입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양 끝 저주와 축복을 담은 외침, 양심을 쳐서 깨우고 바른 방향을 일러주어 인생에 개혁을 가져다주는 복음선포는 고난의 불을 거친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편안한 아랫묵에서 밖에 나가보지 않으면 살인적인 추위가 어떤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진리 아닌 것에 삶을 탕진해 본 사람, 반듯한 말씀에 사로잡히기를 목마르게 구하던 자, 결국 오늘 이 귀한 생명의 말씀에 붙잡혀 많은 이들 옳은 데로 돌아오는데 귀히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함께 기도합니다. 주님이 우릴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구해주시고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나팔은 불어야 할 때 반드시 불라고 주신 것이니 주여! 남은 세월 오직 주 앞에 바칩니다. 기도라는 나팔과 전도라는 나팔과 찬양과 경배라는 나팔을 손에 들고 오직 주님영광위하여 분연히 일어서는 우리 각사람 각 사람이길 원합니다. 오늘 우리 손에 쥐어주신 영적 은사의 나팔을 불 때 각종 거추장스럽고 악한 가시와 대적의 무리들이 놀라 달아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 잘 붙잡고 승리의 나팔을 마음껏 울리며 능력의 주님 손잡고 기쁜 삶을 살게 하시는 주님 우릴 받으옵소서. 주님을 한없이 찬미하오며 우리구주 예수님이름으로 축복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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