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6. 주일예배<출31:12-18. 온전한 주일성수>
만고에 영원불변하는 삶의 척도, 곧 진리의 잣대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바른 기준은 바른 삶을 이끌어갑니다. 하나님의 모든 법도와 규례는 세상의 그것들과 근본부터 크게 다릅니다. 세상의 법은 인생들을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좀 더 편리하게 양심적으로 공평하게 잘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인생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모든 기준을 하나님께 둡니다.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과 그 절대하신 주권에서 기초를 시작합니다. 호13:3절 말씀처럼 사람은 잠시 보였다가 사라지는 풀잎의 이슬 같고 약4:14절 말씀처럼 부는 바람에 안개처럼 떠나갑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히7:3>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천지 어디에도 그런 존재가 없으니 하나님을 다 소개하지 못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은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 안식일에 관한 것인데 결국 한 평생과 생명에 직결된다는 결론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문화문명 발전해도 진리는 단 하나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요즘 시대가 伶俐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성경은 성경 그대로 해석하되 성경이 성경을 열어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옳습니다. 언덕 무너져 길 되는데 시대흐름 따라 타협을 시작한 성경해석이 나중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성경을 왜곡하게 됩니다. 본문이 가르치는 안식일의 모본도 그래서 성경이 이른 대로 조금도 희석하거나 바꿔 전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켜야 합니다. 먼저 안식일의 의미부터 살핍니다. 13절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1. 안식일은 하나님과 우리사이에서 관계의 표징입니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일손을 내려놓고 쉬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세상일을 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공휴일에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세상 모든 일손을 놓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날입니다.
이 안식은 그러므로 교제를 통한 회복이며 充塡충전이며 화목으로 인한 기쁨의 생명잔치입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일곱째 날의 안식일이 예수님께로 와서 주님 부활하신 오늘날의 일요일이 주님의 날이 됐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과 주일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주님이십니다. 돌잔치에 주인공인 돌배기 아기는 그날 거의 가족들 행사와 교제에 희생물입니다. 주일도 주일의 주인이신 주님은 아랑곳없이 예배자의 만족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일은 본래의 목적과 의미를 잃을 때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간 계속 들었던 제자리운동 샬롬은 본질의 회복운동입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하나님은 분명히 안식일을 내 안식일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건 하나님과 교회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안식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본질적의미 중요한 세 가지는,
1) 하나님을 위한 안식일 즉 예수님을 위한 주일이며, 2) 대대에 이어질 관계의 표징이고,
3)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는 날이라는 것 기억하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에게 베푸시는 “거룩(tip갸륵)함으로의 회복”입니다.
그럼으로 예배는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tip 사람에겐 거룩함이란 말 사용금지)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어떻게 나타나십니까?
여러분 중심에 감동으로 나타나시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 집중하되 살아계신 말씀에 먼저 집중하고 찬송할 때에도 다른 생각 모두 지우고 가능한 한 주님께 깊이 빠지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주님의 날에 주님께 깊이 집중하는 것은 예배의 기초입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을 하나님보다 더 고려해서는 안 됩니다. 내 입장보다 더 중요한 건 하나님이 지금 날 원하시며 내 고백과 모든 것으로 기뻐하실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주일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로 우리 가운데 가득차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주일성수가 예배 외적인 요소로 관계의 표징이라는 데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즉 주일은 예배를 통해 중요한 또 하나의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교회 사이에 변개하지 못할 언약으로 신실한 관계임을 만방에 알리는 선포입니다. 인생가운데 관계의 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와 만나 무슨 일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이 됩니다. 만나는 대상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악한 영과 만나고 마귀의 하수가 되면 말로 다 못할 비참한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런 류의 사람이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영혼은 이미 멸망을 향해 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물질은 불행을 더 신속 확실하게 기름질 할 것입니다. 돈을 잔뜩 쥔 채 인생은 허망한 거라고 말하며 죽어갑니다.
하나님이 본문에서 밝히듯 영존하시는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는 주종의 관계를 지나 아빠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분신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예수피로 맺어진 혈연관계입니다. 이 관계의 표징이 주일 바르게 지키기를 통해 대대로 이어지면서 우릴 통해 선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음은 안식일에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인 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실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력으로는 거룩해질 수 없는 절대무능의 존재입니다.
에덴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을 닮은 인간의 모든 거룩함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선포합니다. 안식일의 제사, 즉 주일예배를 제대로 지킴으로 우리의 거룩함이 회복되게 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 믿을 때 이미 거룩함이 시작된 것입니다. 다음엔 생명입니다. 14-15절입니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2. 주일을 지키는 것은 생명을 보존하는 일입니다.
민15:32-36절에는 안식일 날 나무하러 갔다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모세와 회중 앞에서 돌에 맞아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이라는 명령이 지켜진 것입니다. 엄위하고 두려운 구약시대를 지나 이젠 은혜의 인격적 신약시대입니다. 맞아야 순종하던 구약은 지나고 이젠 말 한마디에 알아듣고 몸 둘 바를 모르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주일성수는 어디까지 우리가 지켜야 하는가? 민28장과 레23장에선 각종 제사와 절기에“성회로 모이되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또 출35:2-3절에서도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죽이고 모든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라고 합니다. 이번엔 사58:13,14절을 함께 읽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성경말씀은 한결같이 주일 잘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깨웁니다. 주일을 지키는 방법으로 먼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에선 불도 피우지 못해 음식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일을 엄격하게 즐겨 지키는 자에게는 주안에서 즐거움, 곧 행복할 것이고 야곱의 기업으로 키우되 땅의 높은 곳에 올려 주신다고 이사야서는 약속합니다. 그렇다면 눈부시게 발전한 문명과 호흡을 함께 하는 온전한 성수주일은?
첫 째, 한 주간 엿새 동안 주일을 준비하며 생활하는 것입니다. 보통 6일간 열심히 살며 쫓기다 보면 주일을 까맣게 잊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삼일예배와 금요예배와 새벽기도회와 금요기도회라는 징검다리 장치가 있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주일 한번 지키기도 버거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요즘 주 5일근무제가 확산돼 마음만 먹으면 주일이 얼마든지 더 풍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 세태는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밖으로 나가 주일 은혜풍성이 아니라 여가와 오락풍성으로 가고 있어 주일예배인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풍요가 빚어주는 부패의 떡이요, 영혼의 함정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엿새가 주일 하루를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주일이 주일되기 위해서 우리는 엿새를 힘껏 주님 앞에서 하듯, 성실히 살아야 하는 코람데오, 주님 앞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주일을 위해 토요일을 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일에 가장 많이 실패하기 때문에 주일을 온전히 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오늘 주의 이름으로 진지하게 권면합니다.
토요일을 드리세요. 주 5일제가 세상사람들에겐 하나밖에 없는 육신을 더 즐기고 더 타락할 기회를 주지만 성도에게 토요일은 주일을 잘 드리라고 주신 줄 믿습니다. 토요일 일찍 잠자리에 드세요. 넋 놓고 엉뚱한 일에 시간 뺏기면 정작 주일은 주님 위해 써야 할 힘과 체력이 남아 있질 않습니다. 체력이 부치면 모든 게 짜증납니다. 예배드리는 걸 보면 토요일을 누가 제대로 헌신됐는지 압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받은 몸을 자신을 위해서 낭비하고 통제하지 못하니 주일 주시는 생명을 절감해도 받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청소년들은 바르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토요문화를 결코 본받아선 안 됩니다. <시11:9절>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뿐입다.” 순간을 위해 영원을 낭비하는 일, 서서히 무너지는 길을 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온전한 주일 하루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교단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해석하기로 소문난 교단입니다. 성경에 관한 한 어느 누구와도 타협치 못합니다. 우리교단 성수주일은 그래서 남다른 지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심지어 주일날 음식을 사먹지 않는 것으로 시작해서 유흥업소는 물론 어딜 놀러가는 것을 극구 말리고 있습니다. 복받을만한 지극히 당연한 교훈이요, 교단입니다.
신6:2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은 우리들에게 복된 삶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에선 결코 어려운 것을 명령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성경에서 너무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힘들게 느껴지는 것뿐입니다. 신30:1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14절입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 그리고 이어지는 15절 말씀은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입니다. 예배 일찌감치 드리고 놀러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경건은 주의 명령을 조건없이 받아들이고 순종함으로 시작되는 거룩함입니다. 경건성이 결여되면 영력이 떨어지고 영력이 떨어지면 모든 신앙생활이 뒤처지게 됩니다. 앞에서 이끄는 자가 아니라 늘 뒤에서 간신히 따라가며 피곤한 성도가 되는 겁니다. 따라가면 불평 나옵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주일 하루는 어떻게 보내야합니까?
1) 모든 공예배와 각종 모임에 적극 참여합니다. 어차피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주 위해 하루를 온전히 사용하려면 어떤 일보다 예배가 우선돼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관계된 모임에 적극 참여해서 활동해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느 모임의 리더가 돼보면 모이기에 힘쓰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됩니다. 뒤집어 말한다면 출석률이 낮은 사람 정말 부서장을 힘들게 하는 곤란한 사람 1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적순이 아니라 출석순입니다.
2) 말과 행동에 경건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약1:26절에 경건한 자는 혀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믿음은 행함까지를 말합니다. 말과 행함에 있어서 특별히 주일 하루만이라도 말조심, 행동조심하는 것이 하나님의 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아니겠습니까? 금방 읽은 사58:13절 뒷부분에는 “네 오락을 구하지 않으며”에 이어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으면”이란 말씀으로 입술의 금식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혀의 경건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주일을 매우 단순하게 쉬면서 행동반경을 최소화하여 고요하게 지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만나는 사람이 많지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어딜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안식과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보내는 주님의 날 내 볼일 다 보고 바쁘다면 그건 주님의 날 그 피로 값 주고 산 시간을 가로채는 게 됩니다. 가로채는 것은 도둑질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횡령, 자기 원하는 대로 움직여 가고 싶은 곳 다가고 보고 싶은 것 다 본다면 이는 주님하고는 무관한 날입니다. 주일날 일손을 놓게 하신 주님의 뜻을 제대로 지켜내십시다. 주일은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며 묵상하며 기리기 위해 다른 일을 일체 하지 못하게 명령하신 날, 사람의 시간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종일 그리스도의 구원을 생각할 때 놀라운 감동이 밀려오는 영적인 날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세상적인 모든 일정을 멈춥니다. 부득이한 경우를 빼고는 가능한 한 모든 일손을 놓고 주일 하루는 온전히 하나님과 십자가의 구원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양의 울타리 안에서 만난 교우들과 기도와 그들과의 교제를 위해 이외의 모든 것을 멈추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우리를 볼 때 주일날엔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 전화 통화조차 안 되는 사람으로 알려지기 바랍니다.
주일은 정녕 주님으로 인하여 오랜만에 편한 시간을 갖고 주를 생각하는 귀한 날 되기 원합니다. 그렇게 주님을 묵상하며 평강의 사간을 가지라고 주신 주일입니다.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면서 오전예배는 까맣게 잊은 오후 되라고 주신 날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일은 오히려 고요한 가운데 영적으로는 제법 바쁜 날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읽지 못한 성경, 다하지 못한 기도하기 등은 제법 많은 시간을 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릴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베푸셨습니까? 우리 주님 십자가에서 우릴 위해 얼마나 큰 고통으로 우릴 구하셨습니까?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 차라리 나를 드리겠다고 서원한 저와 여러분 아닙니까? 신앙양심으로 생각하면 사실 하루 종일도 부족한 주일입니다.
사랑하는 개척동지 여러분. 주님의 날 주님위해 온전히 드리십시다. 토요일 오후 엉뚱한 곳에 주님의 시간과 힘을 낭비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주일하루를 피로한 몸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감동과 환희의 주일을 위해 정녕 주 앞에서 토요일과 주일을 고요하게 지냅시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채워짐과 회복을 맛보는 귀한 저와 여러분, 주일은 정말 만나기 힘들고 전화조차 안되는 할례받은 사람들, 구별된 사람들, 복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길 예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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