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12. 주일예배<요2:1-11. 항아리에 채워진 물
고대근동의 잔치문화가운데 그들의 음식문화는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잔치하면 의례히 국수와 부침개, 잡채랑 막걸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소개하는 가나의 잔치음식은 먼저 포도주를 꼽습니다. 시104:15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주셨다고 노래합니다. 그러니 본문에서 나오는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잔치에서 신랑신부 다음으로 중요한 게 부족하게 됐다는 것인데 이는 잔치 중에 적잖은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은 특별히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며 첫 번째 시작한 기적이라는 데서 그 의미를 더합니다. 한절한절 살피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3a절 :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듯 우리네 인생에서는 이렇게 가장 절실한 것이 없어서 고통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요즘 너무나 풍요로워서 가난이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 신세대들은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풍성해도 영안으로 본다면 현대인의 진정한 고민은 물질의 풍성으로 인한 영생에 대한 절실함과 위기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잔치 집에서 국수가 떨어진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일이지만 아무 감각없이 살고 있는 것이 복음없는 현대인의 삶입니다. 마치 본문에 나오는 텅빈 돌항아리같은 인생입니다.
3b-4절 : 모친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 누가 어떤 기도를 해도 응답에는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친을 여자라고 표현한 것은 당시 정중하고 진지한 표현방법 중에 하나였습니다. 왕이 왕후를 많은 대신들 앞에서 부를 때 “여인이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반문은 퍽 의아한 부분입니다. 이는 일반적 당시 언어문화의 하나인데 보통 즉시응답을 피할 때 사용하는 반문법입니다. 즉 주님은 모든 일을 다 하실 수 있지만 그 모든 일에는 다 정한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아시는 이 시점으로 인하여 우린 언제나 기도 후 감사해야 합니다.
5-6절 언제일지 모르는 하나님의 역사 앞에 인생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개인이나 민족이나 세계인류역사를 통해 만사는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께서 우릴 기다려주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신뢰한다면 그분의 때에 그분이 일하시는 것을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신뢰입니다. 아울러 기다리되 성실하게 준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주께 간절히 구한 기도가 있다면 우리는 기도가 응답받을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건강을 기도했다면 건강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건강을 기도하고 건강을 해치는 생활을 하거나 게으르다면 이는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불신앙이자 하나님과 불화하는 것입니다. 기도한 내용 앞에 스스로 몸을 움직여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시기 바랍니다.
7-9절 : 포도주가 돌항아리 여섯 개라면 잔치하고도 남을만한 넉넉한 분량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된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더구나 그 맛이 좋았습니다. 즉 주님의 채우심은 최상의 것이요. 풍족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자신을 신뢰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최상의 것으로 넉넉하게 채우시기 원하십니다. 문제는 여섯 개의 돌항아리를 물로 채우는 믿음과 노력입니다. 주님을 신뢰하지 못했다면 거기에 물을 채울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을 지금 명령하셨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라는데 웬 물을 채웁니까? 신앙의 기적은 인간의 상식과 과학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손으로 행해지는 것들입니다. 포도주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하인들이나 명령하는 예수님이나 믿고 하인들을 지휘하는 마리아에게 사람들은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할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 믿고 예수의 도를 따라 밤잠을 설치며 기도하는 우리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힘겨운 가운데 기뻐하고 감사하는 성도의 신실한 믿음을 알지 못합니다. 마리아의 믿음과 하인들의 순종은 물이 포도주 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렇게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변화시켜 가십니다.
10절 : 본문의 포도주는 세상의 포도주가 아닙니다. 맹물이 변화되자 질 좋은 포도주가 됐습니다. 본문처럼 보통 처음엔 좋은 걸 대접하다가 준비한 게 다 떨어지면 질 낮은 것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오늘 우리가 보는 포도주는 처음 내놓은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나중에 내놓아 연회장을 놀라게 합니다. 욥8:7절을 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성도의 길은 점진적인 성화요, 성숙이요, 발전입니다. 처음에 그럴싸했다가 점점 실망을 주는 그런 길이 아니라 처음엔 보잘것없는 열두제자가 열두 사도가 된 것처럼 한 초라한 인생이 은혜로 인해 점점 감동적인 말씀의 사람이 되어가는 겁니다. 우리주변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부류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엔 정말 기대할 만한 사람으로 다가왔다가 결국 허탈하게 하는 사람과 처음엔 별로 눈에 띄지도 않고 변변치 않게 보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 매력이 드러나고 숨은 아름다움이 빛을 더해가는 그런 사람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에 그런 분이 많습니다. 또 그렇게 되기 바랍니다.
11절 : 표적의 목표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빼앗긴 주님나라의 회복이요, 확장입니다. 본문의 표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그리스도께서 최초의 표적을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원리 몇 개를 구하게 됩니다.
1. 세상은 뭔가 항상 부족한 상태입니다.
3절의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우리의 부족을 누가 채워주겠습니까? 여기저기 다 둘러봐도 내 생명의 한계성을 파하고 영생으로 채워줄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 안에 능력과 좋은 게 아무리 많아도 생명은 한번뿐 반드시 사라집니다. 물을 채워 포도주를 만드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으로 채우시고 믿음으로 풍성하게 하셔서 이 몸을 버린 후 시작되는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2. 질좋은 포도주로 여섯 돌항아리가 채워지려면 먼저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물로 채우라는 황당하고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말씀을 사람생각으로 분석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냥 생명의 법으로 알고 따르면 주님이 고품격의 포도주로 채우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준비하며 묵묵히 기다리는 것, 이는 주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우리가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절대 신뢰의 믿음까지 이르지 못하는 부족은 어떠한 부족보다 심각한 부족입니다. 이런 믿음부족이 우리 일상의 삶에 있어서 모든 부족을 만들어갑니다. 저와 여러분. 진정으로 주님을 신뢰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주님은 현실로 말씀하십니다.
3. 하나님의 손은 영광의 손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표적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요. 그 살아계심은 끝까지 인생을 사랑하시고 회복시키시며 온전하게 하시는 살아계신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은 여러 가지 표적을 얼마든지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보이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시듯이 출7-11장에 이르는 출애굽의 열 가지 재앙은 애굽왕 파라오의 완악한 마음에 그 원인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하게 하셨고 그를 통해 열 번이나 약속을 어기게 하여 결국 열 번의 재앙을 만나게 한 것입니다. 출10:1절을 제가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열 번의 재앙을 당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하나님여호와의 정체를 백성들에게 드러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동시 만민이 여호와께서는 세상에 한분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려는 것(출8:8)이었습니다. 1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표적으로 증거하셔서 제자들이 자신을 믿어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의 목적도 결국 이스라엘로 일컬어지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실 분이 결국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자신임을 증거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은 첫 표적의 역사를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명령으로 시작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 포도주는 포도가 부서지고 으깨져서 생긴 포도즙이 다시 잘 삭아서 생긴 고급음료입니다. 빈항아리같이 의미없고 내용없는 우리에게 주님은 십자가에서 으깨지고 부서져서 생명수가 되셨습니다. 이제 가치없고 돌같이 굳은 항아리에 말씀의 생명수를 채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생명수 맑은 말씀의 물이 골고다의 어린양 보혈로 덮였습니다. 우리에게 채워진 말씀의 단비는 이제 골고다의 붉은 보혈의 능력으로 변화받아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시인하는 모든 자들이 마땅히 사모하고 받아야 할 거룩한 변화, 중생의 기쁨입니다. 성령의 충만하심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임재가 있으면, 돌처럼 굳은 빈항아리 심령에 채워진 말씀이, 영원한 생명이 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 넘칠 줄 믿습니다.
우리 잠시 눈을 감고 주님을 향합니다.
자신의 영과 몸이 포도주가 떨어진 빈항아리처럼 아무 쓸모없는 가운데 오직 주님이 물과 피로 거듭나게 하신 줄 믿고 이 말씀가운데 새로운 포도주로 채우시는 주님 앞에 온 몸과 영을 드리기로 결단하시는 분은 손을 들거나 조용히 그 자리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종이 위해서 기도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크신 주여. 주는 만유의 주재시오, 창조주 하나님 우리들의 아빠되시고 신랑되신 예수시오니 주님 이름으로 이제 간절하게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아파 신음조차 내지 못할 때 거기 계셔서 더욱 아파하셨고 우리가 치졸하고 못나 수모를 당할 때 거기 계셔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나이다. 수치와 서러움과 외로움으로 주의 나라 사모하는 거기서도 주님은 우릴 위해 계획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셨나이다. 주님의 뜻은 우리와 달라 그 뜻과 계획을 변개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인내와 믿음을 원하셔서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를 찾으셨나이다. 주여! 우리에게 크고 깊은 믿음 더하여 주옵소서. 여기 이제 주님만 위해 살겠다고 서원 헌신하는 몸들을 받으시고 이들 영 가운데 임하여 주옵소서. 만나는 관계에서 거치는 과정에서 이 여행길 주님으로 인해 복되도다. 복되도다. 기쁜 고백이 끊이지 않는 존귀한 자들 주의 기쁨되게 하옵소서. 자손과 육체를 받으신 주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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