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29. 주일예배<삼상 1:10-11.25-28. 자녀를 위한 최고의 투자>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 할 수 있고 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은 사랑함으로서 비로소 살아있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끊임없는 헌신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사랑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은 세상 어느 것보다 위대한 행복이며 투자입니다. 오늘 가정의 달 마지막 주 예배를 통해 주님은 한나의 기도를 우리 모두가 닮기 원하십니다. 한나가 자녀를 얻기 위해 드린 헌신의 투자는 어떤 것이었는가? 삼상1:14절입니다.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1. 기도의 투자입니다.
미친 듯 울부짖는 어머니 한나의 기도는 기어코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로 보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모니카의 집념어린 기도로 방탕하는 아들을 성자 어거스틴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드디어 만난 겁니다. 카파도키아 유명한 교부 나지안젠의 위대한 사역 뒤엔 어머니 한나의 기도를 동참시킨 하나님의 손이 있습니다. 모세의 출애굽에는 어머니 요게벳의 눈물로 드리는 기도와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귀하신 역사 뒤엔 언제나 이렇게 어머니들의 기도가 먼저 있었듯이 역사를 바꾼 위대한 세계 지도자 뒤엔 그렇게 예외없이 피눈물을 흘리는 위대한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주님 사랑하시는 몽돌비전의 어머니 아버지 여러분. 그리고 머지않아 곧 엄마아빠가 될 청년여러분.
세계의 역사는 승리한 남자들이 기록해 갑니다. 그리고 그 남자들은 어머니의 품속에서 성장하면서 그 엄마와 아내의 기도로 영글어갑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뒤안길에 언제나 여자가 있습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맞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훌륭한 교사여야 합니다. 훌륭한 교사는 먼저 자신의 일상과 언행으로 자녀 앞에 교과서가 되기 위해 날마다 주님 앞에 눈물뿌려 단을 쌓아가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잔이 차지 않으면 우리들의 비천한 인격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순간마다 한계를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부모로서의 절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날마다 좌절하지만 그 때 주님은 우리들의 유일한 소망으로 옆에 계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한나의 기도는 한나의 평생에 더할 수 없는 귀한 투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외롭고 서러운 시절을 끝내고 세 아들과 두 딸을 기도의 열매로 얻습니다. 기도하는 우리되기 바랍니다. 22-24절을 함께 읽습니다.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 그를 젖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떼기까지 기다리다가.”
2. 신앙교육의 투자입니다.
젖을 떼고 한창 방긋방긋할 때에 아기를 품에서 멀리 보내는 일 엄마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한나는 그러나 아들을 위해 대단한 결단을 했습니다. 여호와의 전에서 엘리제사장에게 서원한 그 약속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한나의 위대한 신앙교육의 투자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사사로운 정을 뒤로하고 주의 뜻을 이루려는 결단은 아들을 위대한 지도자로 출발시키는 첫 시작이었습니다. 어미의 정을 이기지 못하면 자녀를 반듯하게 키우지 못합니다. 교육과 훈련은 안 되는 걸 바로 잡기 위해 쉬지 않고 연습시키는 것입니다. 구부러진 것을 쳐서 바로 잡는 일입니다. 불에 달궈 치면 효과적입니다. 자녀를 무능하고 유약하게 만들어가는 대부분의 바보엄마들로 인해 세상은 이미 많은 부분 불행의 함정이 됐습니다. 자녀를 단호하게 키우지 못해 결국 그들의 복을 가로막고 그 어둔 그늘아래 늙어가는 부모들이 보통 세상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끊임없는 소망은 우리의 무능과 무지와 교만을 부수는 복음과 믿음의 능력입니다. 우리로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부모의 역할, 주께서 감당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한나는 그래서 아예 서원대로 하나님의 집에 맡겨버립니다.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한평생 살면서 우리는 많은 교육을 받습니다. 가정교육, 초중대학부를 거치는 공교육, 사회교육 외에도 또래에서 자연스럽게 물들어가는 관계교육과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교회교육이 있습니다. 세상 어떤 교육에서도 우리들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이 아니고선 희망이 없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정대로 바른 교육이 쉽질 않고 사회를 통해서는 부조리만 배웁니다. 공교육장인 학교에선 진화론을 가르치고 단군신화를 말하는데 이젠 전교조가 아이들 다 버려놨습니다. 6.25전쟁 때 미군만 없었다면 민족통일이 됐을 거라고 말하는 자들이 교단에서 위대한 김일성을 은연 중 전파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기껏 키워 대학보냈더니 신입생MT가서 술먹다 죽거나 몸이 만신창이 돼 평생 상처를 입습니다. 또래집단에서는 아이들이 또 뭘 배웁니까? 중학교만 가면 끼리끼리 모여서 인터넷에서 쓸데없는 것 보아서 사고치는 것만 배웁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또래들에게서 알 수 없고 놓쳐버린 것들 어디서 채웁니까? 하나님의 완전하신 손입니다.
하나님의 집, 여호와의 전에 맡긴 사무엘의 교육, 하나님의 앞에서 양육받는 것만큼 확실한 자녀양육법은 세상에 없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은 실로 매우 중차대한 사명입니다. 인간을 전인격적으로 바로 세우는 일은 세상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교회지도자들과 목회자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24절입니다.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3. 헌신의 투자입니다.
지금도 적잖은 감이 있지만 당시 황소 세 마리는 대단한 봉헌이었습니다. 아울러 황소보다 더한 봉헌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사랑하는 귀여운 아들을 하나님께 평생 드리는 것입니다.
28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한 인간의 평생을 바친다는 것은 놀라운 결단이요, 회심입니다. 엘가나 부부는 부모로서 가장 위대한 결단과 투자를 하나님 앞에 올렸습니다. 황소 세 마리로 표현된 봉헌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재산의 한 허리를 베어내어 아낌없이 아들과 함께 하늘 천국곡간에 올린 것입니다. 도둑 없고 부도날 일 없고 물이나 불이 쓸어갈 염려가 없고 완전하시고 신실하신 주님이 다스리는 곳에 기꺼이 드렸습니다.
28절의 봉헌이 이뤄진 이유를 아기 사무엘의 아비 엘가나는 28절 첫머리에 “그러므로 나도”라는 말로 밝히고 있습니다. 즉 27절에서 밝혔듯이 “이 아이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거저 주신 아들이니 그러므로 나도”라는 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주님이 주셨으니 다시 주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의 자녀, 우리들의 소유물이나 분신이 아니라 내 신앙과 삶과 인격의 반향적 증거자인 줄 믿기 바랍니다. 내 전인격이 자녀를 통해 메아리쳐 내게 돌아와 다시 세상과 내가 본다는 말씀입니다. 내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늘에서는 하나님이, 땅에서는 세상과 주변이, 가정에서는 본 대로 하고 들은 대로 그대로 따라하며 성장하는 자녀들이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린 누구나 엄마아빠를 거쳐 늙은 뒤 소망하는 그 나라에 갑니다. 세상에서 여러분을 뭐라고 평가해도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가문과 나라의 장래를 맡겨주셨습니다. 우리가 살펴 키운 후대들이 머지않아 가문과 나라를 책임지게 됩니다. 믿고 맡길 데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마지막 교육의 청지기 되어 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세상은 소망 없는 어두운 곳이 됩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 세상을 어둡게도 할 수 있고 밝게도 할 수 있는 권세와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립니다. 이제 우리가 자녀는 물론 주님께서 만나게 하신 영적후대들을 잘 살펴 키우고 가르치면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위에 크신 복과 은혜를 충만히 부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결단하며 아멘하신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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