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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6.05.15. 주일설교<요12:44-50. 영생은 하나님의 명령>

by 설렘심목 2016. 5. 15.

2016.05.15. 주일설교<12:44-50. 영생은 하나님의 명령>

 

예수그리스도는 누굽니까? 온갖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 땅의 마지막 소망이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답이 없는 꽉 막힌 곳에서 길과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우리주님 예수그리스도십니다.

다 제 잘난 맛에 산다는 혼미한 세상에서 오직 예수만이 진리 되시고 밝은 빛이 되십니다. 왜 그러냐고 혹 누가 묻거든 본래 그렇다고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법이 어디있냐고 하면 성경에 있으면 있는 거고 성경에 없으면 없는 거라고 담대히 그리고 단순히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진리는 이유를 대거나 핑계하거나 변론하지 않습니다. 참 이치, 진리이신 예수께서는 창조주시며 선포자십니다. 모든 세상에 수많은 변론과 논거와 변증들이 있지만 그것들의 마지막 결산은 성경말씀의 진리여야 합니다. 진리는 그 모든 것들을 일순간에 정돈, 잠잠하게 합니다.

다툼이라는 것은 늘 어설픈 질문과 곁가지 보충설명이 얽히면서 일어나는 법입니다.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외쳐 말씀하셨습니다. 44-45절을 함께 읽습니다.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1.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분명한 사실을 말할 때. 그리고 그 말을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증거를 보여줘도 믿지 못할 때 말하는 이는 참으로 곤혹스럽고 안타깝게 됩니다. 본문은 주님이 외쳐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이는 매우 강력하게 안타깝게 소리치며 말씀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안타까이 외치신 내용인즉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게 아니라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는 참으로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고서는 결단코 하지 못하는 말입니다. 나를 믿고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고 보는 자라는 말씀은 곧 내가 나를 보낸 하나님이라는 권세와 능력의 선포입니다. 한마디로 줄인다면 내가 곧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도 이와 같은 말씀은 여러 번 등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멀리서 바라보려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친근히 찾아오신 구원의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주님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과 로마인들과 헬라인들이 성육화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했습니다. 곁에서 주님을 가까이 본 자들이 다 믿은 게 아닙니다. 특별히 고향에서 주님은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믿음은 보는데서 나지 않고 들음에서 난다는 성경말씀의 정확한 증거들입니다. 4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의 뜻을 따라 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그렇습니다. 본문에서는 어두움에 살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1:2-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주님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어두움을 품고 살아가는 많은 세상에 빛되신 우리 주님만이 유일한 소망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누군가를 사용하셔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시기 원합니다. 어두운 곳에 당신의 빛을 받은 자녀들을 파송하여 이 세상을 밝게 하기 원합니다. 어두움이란 괴물은 아주 단순하고도 힘없는 존재입니다. 어두움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쫓겨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빛을 비추면 끝입니다. 그래서 어둠에 묶인 영혼은 빛이신 예수님과 그 몸 된 교회들을 싫어합니다. 더러운 자신의 죄들이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거긴 드디어 인생에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억지로 견디어야 했던 것들이 드디어 누리며 즐기며 나누며 함께 하는 기쁨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집니다. 어두운 마음에 환한 주님의 빛이 들어온 것입니다. 모든 생각과 관점이 바뀐 것입니다. 주님의 빛이 쪼이면 어두움에 묻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밝히 드러나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밀려나갑니다. 숨죽이고 외면당하던 진리가 호흡을 시작합니다. 예수의 영은 진리의 영이요, 빛의 영입니다.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서 진실을 알게 합니다. 정직한 영들에게는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주는 기쁨의 빛이요, 더러운 영들 앞엔 심판하는 두려움의 빛, 예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내세와 현세의 모든 삶에 있어서 이 빛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앞서가야 할 최고의 가치요, 기쁨이요, 목표입니다. 잠시라도 우리가 주님과 멀어지면 우리는 즉시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등이 켜있을 때는 등의 가치를 모르다가 불이 꺼져 암흑이 되면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얼마 전 TV에서 누가 시각장애인을 이해하기 위해 몇 시간동안 눈에 안대를 하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는 것을 중계해서 많은 이들이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눈을 한번 감아보세요. 뜨지 마세요. 그대로 들으세요. 그리고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심각한 일입니다. 직업에서 관계와 장래까지 모두 달라질 것입니다. 눈을 뜨면 너무나 환한 세상에서 눈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던 것을 느끼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심령에 이렇게 어두움이 있으면 총체적으로 그 삶이 답답하게 된다는 겁니다. 뭐가 중요한지 뭐가 그냥 지나쳐도 되는지 구별 못합니다. 먼저 할 일과 나중해도 될 일, 만나야 할 사람과 피해야 할 사람이 바뀌어서 낭패를 당하고 후회를 반복합니다. 육안에 의존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갑니다. 육안은 1.2 양호한데 영안은 거의 장애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대부분 인생전반이 술에 취한 것처럼 휘청거립니다. 하는 일마다 뚜렷한 결론과 보람이 없는 것이 이러한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빛이신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한 순간도 그분의 손을 붙잡고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1) 성경읽기를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분량에 눌리지 말고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2) 기도시간을 정해놓고 잘 지키는 것입니다.

3) 모든 예배를 빠지지 않아 주님과의 교제에 열심을 갖습니다.

4)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섬김을 실현합니다.

5) 생명은 물론, 모든 소유와 자녀까지도 다 주의 것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청지기의 정신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늘 주님을 묵상하고 사모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주의 손을 꼭 붙잡고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47-48절을 함께 읽습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을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2. 예수의 말씀은 마지막 날의 심판주.

 

40년 광야길이 사형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향한 길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심판의 목적이 심판에 있지 않고 구원에 있다는 겁니다. 죽음가운데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심판의 목적도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양쪽 팔을 주신 하나님은 사랑의 손과 공의로 심판하시는 또다른 한쪽 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서슬퍼런 공의의 철권이 있다는 것은 그 목적이 공의실현이 아니라 사랑의 권면입니다. 그릇행하여 하나님께 떨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의는 다른 형태의 사랑입니다.

다시말해 심판은 지금 이 시간 여기서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머지않아 있을 마지막 날에 반드시 이뤄질 때 그 심판주는 다름 아닌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말씀이 심판주라 함은 심판이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고 끝날에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되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로 하십니다.

 

3. 영생은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명령이 곧 영생이라고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영생의 비밀을 성경말씀 중에서 가장 간단하게 밝히는 대목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명령안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이 곧 그대로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명령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영원히 사는 사람들입니다. 명령은 권면이나 부탁이나 격려차원의 말과 전혀 다릅니다. 명령은 공적권위가 있습니다. 명령은 복종치 않는 자들을 복종하도록 취할 모든 조치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명령은 복종해서 목표를 이루는 사람에게 상급까지 계획합니다. 명령과 복종은 크고 작은 모든 조직사회를 이뤄가는 지극히 기초적인 질서유지의 행위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명령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복종할 때 영생이 동시에 열린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명령은 언제 듣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명령과 당부와 나무람과 위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극히 풍족한 주의 말씀가운데 명령을 듣고 책망과 위로를 넉넉히 받아 좋은 신앙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세계기독교사에 일찍이 이러한 평화의 긴 시대가 흔하지 않았습니다. 이 평화는 성도와 교회들의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의 배려하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겸손하게 자신의 말씀이 스스로 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주신 말씀을 하신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 명령이 영생인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뤄지고 그 말씀은 곧 영생의 말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죄로 인해 죽은 영혼들, 어둡고 추한 인생가운데 빛으로 찾아오셔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잠잠히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의 삶과 믿음을 지켜보시고 여러분의 신앙고백을 귀 기울여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곧 명령이며 영원한 생명, 영생입니다. 위로입니다. 소망입니다. 능력이십니다. 주님께서 여기까지 불러주신 저와 여러분. 하나님명령안에서 영원한 생명, 영생을 기쁨으로 소유하시기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