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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6.07.03. 주일예배<행23:10-11. 끝내 이루시는 하나님계획>

by 설렘심목 2016. 7. 3.

 

2016.07.03. 주일예배<23:10-11. 끝내 이루시는 하나님계획>

아브라함, 노아, 모세, 요셉, 사무엘, 다윗, 솔로몬, 바울사도 등 수많은 믿음의 선지들이 성경에 소개됩니다. 그들은 모두 서로 다른 모양의 믿음으로 신앙의 실패와 승리를 거듭하면서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무한한 주님의 경책과 교훈과 위로를,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잡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모든 것들을 충분하게 일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바울은 자신을 구원하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예수그리스도를 거침없이 전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성전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한참 매를 맞을 때 천부장이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급히 군사를 보내 정황을 파악하는 바람에 바울은 위기를 면하는데 이것이 사도행전 21장의 내용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천부장이 입회한 가운데 자기변론의 기회를 얻어 본격적인 복음선포를 하게 됩니다.

자신이 유대교에서 충성하다가 개종하게 된 다메섹 길에서의 초자연적사건을 소개한 뒤(22:21) 자신은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로 파송됐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모두 바울을 치려고 달려듭니다. 당시 바울이 언급한 이방인은 유대교 또는 유대민족과 연계되는 어떤 것에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성난 유대교 군중이 더 이상 참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는 겁니다.

흥분했던 민중이 잠잠해지자 바울은 다시 병사들에게 끌려 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바울은 묶인 채 옆에 있던 백부장에게 자신은 로마시민이라고 밝히며 항의합니다. 로마인을 절차없이 때리거나 결박하면 위법입니다. 관계자들이 놀라 움찔했다고 성경은 밝힙니다. 그래서 후에 산헤드린 공회에서 결박을 푼 채 자신을 변론할 기회를 제공받게 됩니다.

이렇게 산헤드린 공회에서 변론하는 바울에게 또다시 분노한 유대교인들이 달려들자 다시 무리들과 격리해 성 안에 가둡니다. 몇 번이나 맞아 죽을 뻔했던 바울에게 그날 밤 주님이 바울 곁에 서서 하신 말씀과 하나님의 계획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본문을 살피면서 각자모두에게 주신 주의 뜻과 계획을 속히 알아 뜻 깊고 기쁜 헌신이 이뤄지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먼저 성전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몇 번이나 죽기 직전까지 갔던 바울에게 주께서 친히 찾아주셔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11절입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1. “담대하라.” 아직 할 일이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다음의 12절에는 바울을 죽이기로 모인 바울처형결사대가 40명인데 그들은 바울을 없애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동맹까지 했습니다. 정황상 바울은 전혀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일을 치르겠다는 결사대라면 보통 하루 안에 결판이 납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 말씀대로 결국 로마에 군대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들어갑니다. 결사대는 더 이상 어찌 됐는지 성경은 다루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바울에게 하신 주님말씀입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내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해야 하리라.”

 

사랑하는 개척동지 여러분.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입니다.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들이요,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며 부딪치는 많은 일 가운데 늘 두려워하고 초조하며 환경과 주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사실 극도의 불안이나 두려움은 믿음이 제법 있다는 사람들에게도 종종 피할 수 없는 나약함으로 드러나는 일입니다. 지금 바울의 상황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위기중 위기입니다.

14:8을 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미 바울은 생사를 주님께 맡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본문에선 담대하라고 격려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은 바울이 담대해야 할 이유가 있고 그건 아직 바울에게 두려움이 있었다는 두 가지를 뜻합니다. 이어 주님 말씀하십니다. “네가 예루살렘에서 내 일을 증거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거해야 하리라.” 바울 안에 두려움을 보신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함으로 잘 이겨서 로마까지 가리라고 하신 본문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온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계획은 아무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이른 바, 하나님의 절대주권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안전과 생명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바울을 사용하셔서 누구나 믿음으로 받는 구원의 길을 열기로 하신 주님께 있다는 것, 아멘입니다. 계획을 세우신 분이 어찌 계획을 이루시기 위한 도구들을 보호하지 않겠습니까? 일꾼이 어찌 연장을 팽개치겠습니까?

  

사랑하는 몽돌가족여러분. 주님께서 유대정통교의 열심청년당원인 사울을 불러 당신 소유삼고 이방인의 사도, 바울로 계획하셨습니다. 바울을 택하실 때 계획을 따라 하셨고 저와 여러분을 택하셨을 때 여전히 계획대로 하고 계십니다. 더욱 놀랄 것은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시며 영원하시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오늘 받는 말씀, “담대하라.” 그 이유가 예루살렘에서 주를 증거하듯 로마에서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곧 죽을 것 같은 위기에서도 바울이 담대해야 하고 또 담대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의 단순한 인간적인 용기나 소신에서 출발해야 할 게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담대할 이유가 그 담대함이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임을 본문은 밝힙니다. 사람의 계획은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영원불변의 계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동안 많은 크고 작은 두려움과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바울이 죽음의 위기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건 주님이 친히 하신 본문11절의 말씀 때문이었음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11절 다시 함께 읽습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네가 그날 거기서 기뻐했던 그 증거, 여기 몽돌비젼에서도 해야 하리니 담대하라. 내가 이루리라.”사명이 있는 자는 주님이 그 사명 다할 때까지 좌절하거나 쓰러지지 못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불러주시고 믿음주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다 다른 계획을 하셨고 거기 따른 사명과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몰라도 그 계획은 지금 진행되고 있습니다. 속도가 늦어지는 건 우리들의 연약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증거하듯 중요한 것은 언제나 주님의 계획과 그 성취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에만 관심을 갖지만 전체를 보시고 모두를 사랑하시고 또 개인을 챙기시는 동시다발적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이 한 번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2. 죽기까지 허락받은 사명, 증거자의 삶입니다.

  

네가 예루살렘에서 내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해야 하리라.” 결국 주님이 계획하고 바울에게 주신 사명이란 그가 만나고 경험한 예수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명은 인류가 존재하는 마지막순간까지, 영원한 교회와 성도의 사명(mission)인줄 믿습니다.

전할 내용은 단 하나, “그가 살아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이게게 상을 주시는예수그리스도의 실존이요,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입니다. 즉 우리 입술에 붙이고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실존과 행하는 믿음으로 가는 천국과 거기 영생의 큰 복락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핑계할 수 없는 많은 증거와 은혜를 맛보았고 지금도 감사함으로 거저 주신 것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사명이란 무엇입니까? 사명은 내가 경험하고 믿음으로 보고 알게 된 것들, 신묘한 하나님의 세계와 구원의 그 감격을 전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믿고 기도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증거한다면 그 증인에겐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먼저는 전하는 자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풍성한 영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정의와 공평의 하나님, 우릴 불쌍히 여기시는 자비로운 하나님, 구원과 영생의 하나님은 풍성하고 신실하신 당신을 증거할 때 하나님자신의 그러한 사랑의 성품이 우리 삶을 통해 증거되길 원하십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찾으셔서 그 풍성한 증거를 드러내실 때 책임있는 생애는 책임있는 증거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보장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교회를 통해 함께 받은 크고 귀한 사명들이 있습니다. 사명 없는 이는 없습니다. 그 사명이 어떤 것이라 해도 그 것이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정체성을 피해서 주어지진 않습니다. 복음 증거자로서의 사명이 교회의 기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개인적, 가정직장 등 집합체적인 사명역시 증거하는 방법이 다를 뿐, 결국 주의 기쁨, 주의 소원은 주님나라확장이요, 복음의 확산입니다. 노래처럼 온 땅이 주를 찬양하고 높일 때까지 쉬지 않으시는 우리 좋으신 주님 찬미입니다. 우리는 각자 세워진 그곳, 파송된 거기서 세상 모든 민족이 모든 육체가 주의 영광 볼 때까지 온 세상 가득 여호와를 인정하는 기쁜 함성이 온 땅을 덮을 때까지 증거자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할 줄 압니다. <찬미예수육백곡집 중에서 396번곡 물이 바다 덮음같이>

 

사랑하는 몽돌비전동지 여러분. 오늘 말씀 통해 우리들의 부족을 풍성하게 채우신 줄 믿습니다. , 그릇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땅을 향해 엎어져 있으면 안 됩니다. 119:24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3. 하나님과 그 아들을 증거하는 삶은 최고의 인생, 가장 위대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이 위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증거 되는 분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시고 가장 신실하신 분, 순간적이었다가 언젠간 사라지는 그런 세상의 모든 것과는 다르신 분, 그것들을 만드신 영원하신 단 한분, 하나님을 소개하고 증거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가치있는 삶이 아닙니까?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 허탄한 일들을 증거하고 열심을 내본들 증거한 모든 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테니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영원을 소망하고 거기 목표를 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자는 인생근본이 크게 다릅니다. 세상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 살아가지만 성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을 따라 자신을 강제합니다. 그리고 그분과의 교제 즉 전도와 경배와 찬송과 베품과 희생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모든 삶의 방향과 기준을 거기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인격이 정녕 바로 세워진다면 우린 순간적인 것에서 얻는 기쁨에 비유조차 할 수없는 영원을 노래할 수 있는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들로, 진정한 기쁨을 삼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그 아들 그리스도예수 우리 주님의 존재자체를 먼저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께 모든 삶을 세세히 고하고, 코람데오, 살아계신 그분 앞에서 살며 그분만을 높이고자하는 최선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조금씩 열리는 놀라운 영적비밀의 기쁜 세계인 것입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종종 삶은 죽을 맛입니다. 그렇다고 죽기를 바래선 안 됩니다. 우리들의 소원은 단하나 주님의 기쁨이 되는 바로 그것입니다. 죽어버리고 싶은 현장에서도 담대하라, 해야 할 일이 있느니라. 죽기까지 네 사명은 널 창조하신 분을 증거하며 높이는 이것이니라. 죽기까지 허락받은 증인의 삶, 그것은 진정 인생 최대의 기쁨이요, 보람이요, 목적입니다. 우린 죽을 수 없고 쓰러질 수도 없습니다. 잠시 쓰러지는 것 같아도 주님이 일으키십니다. 그분의 손을 잡으세요.

주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살리라.” 사람 보지 마세요. 환경을 두려워하는 자신을 꾸짖고 위로하세요. 내가 바라는 것이 주님이 먼저 원하셨던 것인지 확인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봅시다. 그것들은 영원을 한손에 쥐신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의 손 안에 다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그리고 저 하늘에서도 영원히 하나님을 향한 노래, 찬송 부르며 기쁨으로 증인된 삶을 살아가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