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4. 주일예배<눅15:8-10. 되찾아야 할 드라크마 한 개>
예수님당시 이스라엘 결혼식에는 신랑이 선물한 10개의 드라크마를 꿰어서 신부의 머리장식에 걸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한 드라크마는 보통 노동자 하루 인건비지만 오늘 본문에 나온 잃어버린 드라크마 한 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돈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널리 알려진 영혼구원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말씀은 영혼구원은 물론 전도해야 할 자신의 신앙인격가운데 반드시 되찾아야 할 한 드라크마가 무엇인지까지 말씀을 살피며 우릴 향한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아가기 원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1. 등불을 켰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가옥구조는 문이 많지 않아 낮에도 환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어두움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모른 채 소망없이 살아가는 영혼을 잃어버린 드라크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먼저 “등불을 켰다.”고 말씀하십니다. 잃어버린 뭔가를 찾을 때 당연히 주변을 환하게 밝힙니다. 어두움은 모든 것을 가려서 진실을 숨깁니다. 원인도, 결과도, 생명도, 죽음도 다 베일에 싸이게 합니다. 그렇게 눈을 가려 멸망에 이르게 하는 악한 영 사단은 어두움의 영입니다. 반면 예수의 영은 생명을 살리는 빛이십니다. 요1:2-3절을 찾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아담이 에덴에서 타락한 후 세상은 하나님을 아는 영이 죽어 어둠에 갇혔습니다. 눈은 떴으나 육신의 눈은 보이는 것만 인정하는 죽은 영의 눈입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고후4:18절은 밝힙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영혼, 구원받은 영혼은 등불이신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확신하는 영안을 갖게 됩니다. 즉 보이는 것만 본다면 육안이요,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본다면 영안입니다. 영안이 열릴지어다.
본문에서 나오는 기름은 감람유, 즉 올리브유입니다. 기름이 되기 위해 으깨지고 빛을 비추기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기름은 출생과정부터 아픔입니다. 기름은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기름은 내가 과거에 누구였노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라지면서 주변을 밝게 합니다. 심령과 관계가 녹슬어 부딪치며 갈등하는 곳을 매끄럽게 합니다. 기름같은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타락한 인류를 위해 골고다언덕에서 등불이 돼 높이 들리셨습니다. 그것은 온 세상의 소망이었니다. 가장 기쁜 소식, 복음이 되신 겁니다. 큰 고통이 큰 영광이 되는 순간, 인류역사상 최대의 사건입니다. 전후무후한 가장 아름다운 사건입니다. 이 후로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생들을 향하여 끝없는 사랑으로 고통하신다는 산 증거요 표증이 됐습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 한 개를 찾으려 먼저 등불을 켠 것처럼 어두워진 우리들의 심령위에 복음의 등을 높이 드는 이 시간이기 축복합니다. 8절 다시 읽겠습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나하겠느냐?”
2. 쓸며 찾습니다.
쓸며 찾는 모습은 반드시 찾고야 말겠다는 모습입니다. 잃은 것에 대한 애통입니다. 큰돈 잃은 것보다 비싸지 않은 약속반지 잃은 것이 더 힘듭니다. 본문의 드라크마의 가치는 한 드라크마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언약과 거기 담긴 사랑의 증표라는 귀중한 의미 자체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이어서 주님은 우리를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잊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한 영혼을 찾으실 때에 구석구석을 쓸듯이 찾으신다는 겁니다. 찾으신 다음 다시 우리 몸과 영혼 구석구석 살피셔서 깔끔하게 고치십니다. 고치시되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바꿔주시는 줄 믿기 바랍니다. 주님은 내면은 물론 외부 성형까지 하십니다. 얼굴이 아니라 표정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온 집안을 쓸듯이 찾았다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매우 소중한 곳에 사용할 소중한 인격체라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 일러드리지만 하나님께 부족한 게 있습니까? 없는 게 있습니까? 문제가 있나요? 문제는 세상도 아니고 환경도 아닙니다. 문제는 믿음 부족한 우리들의 변화받지 못한 속사람입니다. 오늘 말씀 듣는 중 하늘로부터 신령한 은사, 곧 믿음의 은사가 임할 것입니다. 바르게 제대로만 믿는다면 우리들을 쓸며 찾아 붙드신 주님의 소원은 생각보다 속히 이루실 것입니다. 본문 끝부분입니다.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않겠느냐?”
3. 부지런히 찾습니다.
여인이 등불을 켭니다. 빗자루로 쓸듯, 걸레로 훔치듯 구석구석 찾되 쉬지 않고 부지런히 찾습니다. 잃은 영혼을 찾되 멈춤 없이 활동을 하시는 구원의 주를 찬미합니다. 우리들의 전도열정도 이와 같기 바랍니다. 시121:3-4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주무시지고 않으신다고 노래합니다.
뜨거운 사랑, 깊은 사랑은 그와 하나 되기까지 쉴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생명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며 생명주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선물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존귀하며 신기합니까? 지금 내 옆에 누군가 내가 전도해서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야베스가 넓혀달라는 지경은 관계지경입니다. 관계는 살아가는 활동구역입니다. 믿음의 관계지경이 넓어지면 모든 가능성의 문들이 열리기 시작하고 새로운 일들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한 가정만 새로 들어와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그런 구역이 수십 개가 된다고 생각하면 우린 그 영혼구원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예배란 귀 기울여 뿌리를 찾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통당하는 이웃의 음성을 들어 간절한 마음으로 그 영혼을 찾는 마음, 잃은 영혼을 향한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꺾인 내시의 귀, 그것은 우리 자신의 성숙하고도 풍성한 믿음생활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여인이 드라크마를 찾는 열렬한 활동은 드라크마를 선물한 신랑에 대한 애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릴 찾으시는 열정은 자신이 일구어 놓으신 창조활동에 대한 애정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사랑으로 매듭짓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시고 기다리시는 인간들에 대한 애정과 꿈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9-10절을 함께 읽습니다.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4. 되찾은 한 영혼은 천국의 잔치거리입니다.
여인은 되찾은 드라크마 한 개로 이웃을 초청해서 잔치를 벌입니다. 잔치비용은 드라크마의 몇 배가 될 수 있지만 여인의 즐거움은 비용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성도여러분. 진정 좋아하는 것은 아무리 시간이 없고 피곤해도 밤을 새워 할 수 있습니다. 진정 좋아한다면 돈이 아깝질 않습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게 사랑입니다. 되찾은 드라크마 한 개는 잔치비용을 훨씬 넘어선 곳에서 오는 기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와의 관계, 그건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귀하고 아름다운 행복입니다. 우리주변에서 한 영혼이 전도받아 구원받으면 천국에서는 물론이요, 이 땅에서도, 무한한 영광과 기쁨이 됩니다. 여러분이 목회자에게 뭔가 선물하고 싶다면 전도해서 영혼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잃은 영혼 하나 찾는 일은 천하를 얻는 기쁨입니다. 전도는 결코 교세확장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전도하는 사람의 믿음과 삶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의 종에게 가장 큰 선물이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입니다. 우리는 늘 노래합니다. “♬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주님의 기쁨은 정직하고 충성된 믿음으로 전도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저는 이시간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우리모두의 삶이 그 목표를 전도로 삼기 원합니다. 자신의 삶이 진정 안팎으로 풍성해지기 원하신다면 예수를 전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기 바랍니다.
전도는 생명을 얻는 일이요. 여러분이 늘 원하는 모든 행복의 근원이 생명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것들을 생명과 그 관계 속에서 무릎으로 열어가는 우리이길 원합니다. 전도는 그렇게 무릎으로 시작합니다. 태신자의 이름을 심령 깊은 곳에 담고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영혼구원의 잉태도 기도의 시간과 잔이 차야 출산을 보게 됩니다. 전도는 급하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잉태된 영혼은 간절한 눈물의 기도를 먹고 심령 속에서 자라는 겁니다.
고전9:16절을 함께 찾아 읽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5. 전도는 거룩하고 기쁜 의무입니다.
전도는 하면 좋고 안하면 덜 좋은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겁니다. 전도가 내 믿음과 삶을 위해서 절실한 것은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20:25-27절입니다.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바닥을 쓸듯이 찾아 구원받은 우리들이 우리주변에게 그 구원의 도를 전달해서 함께 구원의 방주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 의무소홀로 인해 지옥에서 저주의 심판을 받는 영혼이 있다면 그 멸망받는 영혼이 흘리는 피가 내 게으른 손에 묻는다는 것입니다. 즉 한 영혼이 구원받지 못해 지옥에서 영벌에 처해질 때 누구누구가 내게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었는데 전도하지 않아서 내가 구원받지 못했다고 원망한다는 것입니다. 그 원망의 대상자가 되지 않기 바랍니다. 바울사도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빼놓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로마당국의 압박이나 산헤드린공회의 눈치를 안보고 용감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전도는 생명을 건 행위였기 때문에 복음전도는 순교를 각오한 것이었다는 사실 오늘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6. 내 안에 있고 머리장식에 달려있는 드라크마입니다.
사랑하는 개척동지 여러분. 하나님이 한 영혼을 찾으실 때 온 방을 빗자루로 쓸듯이 샅샅이 뒤져서 찾으십니다. 빛이신 그리스도로 복음의 등을 밝히고 간절하게 찾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십니다. 순종하는 당신의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그 일을 하십니다. 전도와 찬송은 우리가 태어난 목적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우리 안으로 모셔옵니다. 혼례식 날 신랑이 준 열 개의 드라크마 . 주의 신부된 백성들이 받은 드라크마는 돈의 가치가 아닌 혼인서약의 귀한 의미가 있어 잃어버려선 안 될 생명 같은 것입니다. 우리에겐 열 개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드라크마가 머리에 장식돼 있는 줄 믿습니다. 영원한 생명, 구원, 약속, 맹세하신 동행, 믿음, 구별, 인도하심, 고쳐주심, 깨닫게 하심, 채워주심,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은혜의 드라크마가 우리 머리에 띠처럼 달려 영롱한 소리를 냅니다. 황량한 세상바람 불 때 더욱 소리를 냅니다.. 주께서 우리를 신부삼으셔서 천국혼인잔치에서 영원한 약조의 증표로 삼으신 수많은 드라크마 중 단 한 개도 잃어서는 안 됩니다. 혹 잃었으면 어찌합니까? 불을 켜고 쓸면서 부지런히 찾고, 찾았으면 그 기쁨에 이웃을 불러 예배라는 잔치를 합니다. 그래서 예배는 생명을 즐거워하는 노래가 있고 감동과 감사의 고백이 있습니다.
기도합니다. 불을 밝히고 구석구석 부지런히 쉬지 않고 찾아서 가까스로 손에 쥔 한 개의 드라크마,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우릴 찾으셔서 결국 주님 손에서 애지중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 한 영혼 한 영혼들이 그렇게 소중하고 귀한 하나님의 소유인 것을 잠시도 잊지 않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남은 날들은 부디 주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계율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시며 전도는 물론 우리 자신이 행여 주님 손에서 떠나 신랑되신 주님의 마음을 힘들게 하지 않게 하옵소서. 도리어 잃은 영혼 찾아 주님 손에 올려드려 우리 밝게 빛나는 드라크마 한 개라도 주 앞에 기꺼이 드림으로 큰 잔치로 모두 기뻐하는 교회와 가정과 직장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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