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26. 주일예배<슥6:9-15. 싹이라 부르는 예수그리스도>
바사, 곧 페르샤 왕 고레스의 원년에 총독 스룹바벨의 인도로 1차 포로귀환이 이뤄집니다. 후에 에스라를 통해 2차 귀환이 이뤄지고 그 때 세운 성전이 후에 퇴락하자 아닥사스다 왕 밑에서 술관원장으로 있던 느혜미아에 의해 고향 예루살렘의 성전들이 개축, 수리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대의 왕손인 스룹바벨이 고레스의 명을 받아 현지총독으로 대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유대민족이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의 일입니다. 이 때는 성전 건축이 반 정도 된 12년 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2년에 걸친 성전건축에 지쳐서 신앙이 느슨해진 백성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지자 스가랴를 통해 미래를 예언하심으로 위로하고 나무라시는 말씀이 오늘의 말씀내용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랬듯이 시공을 초월하여 강력한 효력을 지님으로서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게 현실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믿어지는 복이 임하기 축원합니다.
본문 스가랴서의 스가랴란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믿는 자녀들을 결코 잊지 않고 계셔서 그 약속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극진한 사랑으로 그 백성들을 한없이 불쌍히 여기십니다. 힘들어하고 더러는 타락하는 백성들을 보시고 하나님께선 스가랴선지자를 통해 여덟 개의 환상을 보여주심으로 장차 회복될 예루살렘 성전과 택하신 민족의 부흥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중에 마지막 환상 중 대제사장 예수아의 머리에 관을 씌우라는 내용입니다. 말씀을 받을 때에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복음이 어떤 것인지 은혜 넘치기 바랍니다. 본문이 밝히는 예루살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됩니까?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믿음과 미래는 어떻게 열려간다고 말씀하시는지 듣겠습니다.
10-11절을 함께 읽습니다. “사로잡힌 자 가운데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었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받되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1. 백성들의 충성과 헌신으로 씌워지는 대제사장 머리의 면류관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는 바벨론에서 귀환한 백성가운데 대표적인 성격을 갖는 출중한 인물들입니다. 하나님께선 스가랴선지자의 입을 통해 대제사장의 면류관이 이들의 은과 금으로 만들어지고 머리에 올려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백성들의 충성과 헌신이 대제사장의 권위와 임무와 명예를 온전케 한다는 것입니다. 면류관은 명예와 권위와 능력을 말합니다. 대제사장의 면류관이 백성들의 은과 금으로 머리에 올려진다는 것은 오늘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사역과 교회운동에 있어서 저와 여러분의 온전한 헌신과 충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국민없는 대통령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교회없는 그리스도, 양없는 목자에게 무슨 존재의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섬길수록 기뻐하시며 우리 안에 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헌신과 기도와 충성으로 더욱 빛나는 영광이 우리가운데 임하십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이미 우리의 충성과 온전한 헌신을 받으실만한 생명의 구원자이십니다.
유다백성들도 대제사장의 면류관을 만들 때 모든 은과 금을 다 드려서 결코 억울하거나 아까울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손대대로 노예로 살 것을 하나님이 구하시고 그 하나님 앞에 백성들의 대표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의 면류관을 만드는 일은 얼마나 당연한 일이며 기쁜 일입니까?
함께 14절을 더 읽겠습니다. “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디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그리스도의 면류관을 위한 우리의 헌신을 결국 어디에 두라고 하십니까? 여호와의 전에 보관하여 길이 기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헌신이 끝내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하늘의 상급과 이 땅의 풍성한 공급으로 이어짐을 뜻합니다. 그 헌신이 기념되고 보관되는 여호와의 전은 녹슬어 삭거나 도둑도 없고 물이나 불이 해치지 못하는 영원히 보장되는 하늘의 곳간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의 온전한 헌신이 우리 주께 면류관 되어 올려집니다. 우리의 헌신이 목회자를 목회자위치에 올려놓습니다. 복받은 성도는 복받은 교회에서 나오며 복받은 교회는 복받은 목사의 헌신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본문 12절을 함께 읽습니다.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2. 싹을 내어 주의 성전을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이십니다.
새 싹은 생명의 출발입니다. 본문은 대제사장을 싹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 대제사장과 왕위를 함께 소유할 수 없는 시대상황을 고려할 때 싹이 될 예루살렘의 해방자와 구원주는 시대를 넘어선 온 인류의 메시야이자 영적 예루살렘 성전건축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예언한 사53:2절입니다. “그는 주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예수님이 세우신 것은 눈에 보이는 건축물 예배당이 아닙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찬송하며 말씀으로 무장하여 땅끝까지 복음들고 싸우는 주의 군대를 이룬 것입니다. 불러낸 자들의 모임. 곧 택자들의 성회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선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세운 이 주님의 몸된 교회는 실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하게 빛나는 무리들입니다. 험한 고난 앞에서도 주를 부인하지 않고 죽기를 서슴치 않았던 순교의 역사는 교회가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위대하고 찬란한 교회가 그 시작은 매우 여린 작은 순으로 시작한다고 본문은 증거합니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의 초토화로 인하여 다윗왕조는 도끼에 찍혀 잘려나간 나무둥치처럼 되었습니다. 이 때 잘린 둥치아래 극히 미약해 보이는 한 순을 싹트게 하신 하나님의 위로가 오늘 힘겨운 우리에게도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3. 새싹이라 부르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1) 새싹은 유약합니다. 때가 되어 추위가 물러가고 따스한 볕이 쪼이면 예외없이 어떤 거친 식물도 아주 연한 순을 냅니다. 매우 여린 순이 돋아납니다. 그런데 그 순에는 어미식물의 아름다움이나 멋진 자태나 웅장함이 엿보이질 않습니다. 이는 겨자씨가 매우 작아 보이질 않을 정도이지만 3m가 넘는 큰 나무로 크듯이 모든 씨앗과 싹은 유약해보이지만 장성한 후에 놀라운 자태를 드러냅니다. 방금 읽은 사53:2절에서처럼 고운 모양도, 풍채도, 흠모할만한 아무 것도 없는 예수님의 모습은 훗날 세상을 변화시킬 위대한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2) 싹은 순결하고 온유합니다. 장미나 선인장의 가시는 만지는 이의 손을 찔러 피가 나게 합니다. 그러나 처음 올라온 순은 부드럽고 연해서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사42:3절에선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주님은 죄인들을 품으셨고 소외받은 자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자신을 배신하여 죽음에 내어준 가룟유다를 사랑하셨고 침을 뱉으며 자신의 몸에 대못을 박고 창으로 찔러 사형을 집행하는 군사들의 조롱과 핍박에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3) 여린 싹은 미래에 그 본질이 있습니다. 이렇듯 싹의 현재 모습은 허약이요, 한없는 무능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유약한 새순에서 아름다운 꽃과 열매나 씨앗을 볼 수도 없습니다. 향내를 맡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순은 반드시 꽃망울을 터뜨리고 향기로 감동시킬 것이며 열매로 기쁨을 선사하고 그 씨앗으로 장래를 보장할 것입니다. 순의 본질은 미래에 있는 소망입니다. 지금은 보이질 않아도 우린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확신하고 소유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예수믿는 사람은 언제나 약자처럼 보이지만 주님은 능력과 권세의 선한 오른 손으로 성도를 붙드십니다. 교회와 성도의 미래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언약은 재림과 거기 따른 주의 나라가 임재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예수그리스도시라면 우리 주님의 미래는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의 미래는 우리를 영원히 눈물없는 곳에서 기쁨으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그의 통치아래 뛰며 찬양하며 영원히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싹이라 불려진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과 그 권능이 우리에게 곧 임할 그날 성숙한 믿음이 만날 주의 나라를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순이신 예수를 믿는 우리의 현재 모습은 순처럼 나약해 보이고 불행 앞에 맥을 추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계신 주님은 지금도 우릴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며 강한 훈련 속에서 상을 받는 주의 군사되기까지 이끌어 가시는 줄 믿기를 축원합니다.
4. 싹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내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현재 유약해 보이는 순의 지체들로서 드러난 교회와 그 백성들을 통해서 여호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반드시 놀라운 당신의 모습을 영광 중 드러내십니다. 분명한 증거와 확신가운데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8:18”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계시록은 줄곧 싹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보여주실 주의 영광을 극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있을 주의 영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의 영광입니다. 사람의 인식체계를 벗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 안에서 연상이 불가능한 현상들입니다. 많은 물소리와도 같은 큰 소리, 예수님음성이 그것이고 하늘이 종이 말리듯 말리는 모습과 땅과 바다가 통째로 던져지는 현상은 우리의 상상을 불허하는 것들입니다. 거기 마귀의 영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아래 영원한 지옥 불에 불신영혼들과 함께 갇혀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잘 믿고 주님 곁에 세워지는 성도들에겐 그의 권능과 영광과 보좌 옆에서 기쁨의 수종을 들며 찬양하는 삶을 영원하게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비전성도 여러분.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다시 무너질 예루살렘성전을 건축했지만 우리주님 예수께선 손으로 짓지 않아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도성을 세우셨습니다. 주께서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 몸이 되었습니다. 이 성전이 하나님의 처소가 됐고 이젠 세상 어떤 추악한 것도 주께서 친히 물리치시며 다시는 악귀의 소굴이 되지 않게 하십니다. 이미 결론이 난 승리의 싸움에서 우리의 체질이 천국시민의 체질이 되도록 도우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도 다 이루지 못한 이 땅의 전투교회들을 통해 우리를 키워가고 계시니 오직 감사와 순종만이 최선의 길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속히 우리들 몸 가운데서 이루어져, 세우실 아름다운 성전이 만국열방에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소리쳐 외치며 기뻐하는 감동의 삶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우리교회, 청년부에 3개의 순이 세워졌습니다. 순의 이름이 멋집니다. 하나는 오순도순이고 또 하나는 coming soon이고 또 하나는 새순이라고 합니다. 세 개의 순이 비록 지금은 미약하지만 장차 이 교회를 질머질 귀한 일꾼들이 많이 배출될 줄 믿습니다. 여전도회도 더욱 부흥하면 여러개의 순으로 개편할 것입니다. 남전도회에도 아름다운 새싹, 순이 돋아나길 축원합니다.
'주일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8.09. 주일낮예배<롬10:4-15 믿는 모든 자에게 허락된 구원> (0) | 2015.08.16 |
---|---|
2015.08.02. 주일설교<마10:1-15. 열두제자의 파송> (0) | 2015.08.04 |
2015.07.19. 주일낮설교<빌3:12-14. 푯대를 향하는 비전방주> (0) | 2015.07.20 |
2015.07.12. 주일 설교<사43:21.찬양하기 위해 태어난 인생들> (0) | 2015.07.17 |
2015.07.05주일예배<민23:5-12.나귀의 입을 여신 하나님-3.시리즈끝> (0) | 2015.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