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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5.07.12. 주일 설교<사43:21.찬양하기 위해 태어난 인생들>

by 설렘심목 2015. 7. 17.

2015.07.12. 주일 설교<43:21.찬양하기 위해 태어난 인생들>

세상에 참 잘난 사람도 많고 재주좋은 사람도 많습니다. 머리좋은 사람 어디가면 많습니까? 국내의 두뇌들은 카이스트 연구단지에 가면 거기 있습니다. 그러면 머리는 좋은데 바르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 다 있습니까? 형무소로 다 모입니다. 인들은 어디에 다 모여있습니까? 영등포로타리 캬바레 황금마차에 가면 거기 다 있습니까? 그래요. 평택에 있습니다. 평택 비전장로교회에 다 모였습니다. 돈많은 사람, 학력좋은 사람, 능력있는 사람은 세상에 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영원한 생명, 영생입니다.

혹 그런 능력자 가운데 예수가 계셔도 기도와 찬송이 뜨겁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찬송은 고난 속에서 영글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 13년을 향해 소걸음으로 가는데 기억하세요. 오직예수, 오직성경, 오직 은혜로만, 오직 교회중심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교회입니다.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가치는 크고 작음에 있지 않습니다. 진짜냐? 가짜냐는 겁니다.

누가 바다가 보인다는 넓은 땅을 사고 대금을 큰돈 치렀는데 확인결과 밀물이 들어오면 사라지는 해변가여서 보니 텃밭 100평보다 못한 거라고 푸념합니다. 아무리 크고 넓어도 쓸모없습니다. 우리교회 아담해도 붙들어야 할 약속이 선명하고 생명을 일으키는 말씀과 찬송이 살아있다면 아무 것도 부러울 게 없습니다. 기억합니까? 우리교회 춤추며 노래하며 선교하는 교회가 목표라는 사실.

992년생 이탈리아 베네딕트수도원 출신인 구이도 데레쵸에 의해 창안된 구이도의 손이라는 계명창법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5선악보, 7음계의 전신인 4선악보와 6음계를 만들어 근대음악사에 서양악보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이 7음계 음표의 라틴어 발음은 UT,RE.MI,FA,SOL,LA,SI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요한의 기도 당신의 종들이 당신의 탁월하심을 마음껏 노래할 수 있도록 입술에서 더럽혀진 모든 죄악들을 씻어 주소서. 오 거룩하신 라보니여.”의 첫글자들을 따서 된 것입니다. 후에 첫 시작음의 UTDO로 바뀌어 첫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여 7음계가 되는데 DO는 우리말의 주님, 구원자를 뜻하는 domine의 앞자입니다. 종교를 초월해 세계적으로 음악계명의 첫이름이 하나님을 노래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아시다시피 노래란 분노로 마음이 힘들거나 상황이 심각하면 부를 수 없는 것이 그겁니다. 노래한다는 거 주변이 평온하고 이상이 없다는 걸 말합니다. 또 그러길 소원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찬송은 일반적인 노래와는 다릅니다. 찬송이란 예수를 믿는 자가 하나님을 높이는 가락있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의 노래를 한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과 통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쁜 일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지난주처럼 오후예배에서 설교 듣기 전 하나님 앞에 우리들의 신앙을 노래와 음률로 고백합니다. 왜 우리가 찬송부르기를 즐거워하는가? 본문 사43:21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며 노래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있는 존재의 근본목적입니다.

 

인생이 왜 살고 있느냐는 물음에 성경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노래하기 위해 산다고 합니다. 거듭 일러드리지만 모든 존재는 그 존재의 목적에 맞게 살면 행복합니다. 예컨대 집을 지키라고 키우는 강아지가 목적과 관계없이 도둑이 들어와도 꼬리를 치면 복날에 팔아 치웁니다. 고객을 맞아 물건 잘 팔라고 채용한 판매직원이 상품이나 판매대금을 가로채면 형무소갑니다.

얼마 전 주인집 애기를 물어 죽인 개가 그 자리에서 주인의 총에 죽었습니다. 생명이나 물건이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면 거기 맞는 처벌을 받는 게 상식입니다. 제 역할을 못하니 자리를 옮깁니다. 직장에서 집으로, 집에서 형무소로, 대궐에서 하숙집으로, 하숙집에서 길거리로 옮겨 가는 겁니다.

인생들은 너나없이 모두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 지으셨고 그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노래하는 게 목적이라는 성경말씀, 1,500여 년간 40명이 축자영감으로 기록한 하나님의 엄숙한 말씀입니다.

이제 짧은 주일설교 두 가지만 짚고 일찍 마칩니다.

 

첫째 인간은 누가 지었는가라는 것입니다.

 

세상만유가 모두 지은 이가 있습니다. 불지피지 않은 굴뚝에 연기나지 않습니다. 원인없는 결과없고 설명하기 힘들면 그냥 그건 본래부터 그런 거라고 말하는 무지무식한 자가 세상에 많지만 우린 그런 바보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그 본래가 언제부터인가? 최초에 누가 그렇게 지었냐는 겁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 지으셨습니다.

 

둘째, 지으신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선한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혜없으면 망합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지혜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혜가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니라.”아멘.

그리고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이들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두 성경말씀을 이어봅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 하신 일이고 그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인데 찬송은 여호와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일어나는 생명의 신앙고백이다.”

 

얼마 전 제가 여러분과 공유하기 원하는 가훈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바른 신앙, 바른 생각, 바른 행동, 심고 가꾼 대로 거둔다.”기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찬송하는 삶은 반드시 그 찬송의 고백대로 우리 좋으신 주님, 살아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인도하실 줄 확신합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계획하고 노력해서 일궈가는 인생인 줄 압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약속 붙잡은 성도의 모든 행보와 고백을 들으셔서 친히 주장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저는 제가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깨닫게 하시는데 모든 제 꿈은 제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께서 원하셨고 부족한 종을 통해서 그 환상을 현실로 일궈 가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66권을 통해 계시되었고 약속가운데 들어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내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신앙동지 여러분. 우리 왜 일합니까? 왜 공부합니까? 왜 겸손과 온유로 선한 승리를 해야 합니까? 왜 그렇게 열심히 사십니까? 그렇지요. 찬송 부르려고 그러는 겁니다. 누구믿고 그렇게 험악하고 외로운 가운데서도 여전히 노래를 부릅니까? 예수님 살아계신 것 하나 믿고 어디서든 노래부르며 갑니다. 어둔 길에서도, 그리고 넘어져도 우린 예수님을 노래하며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전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부족하고 미천한 인생들이지요. 그러니 존귀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 가는 길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아픔과 애환이 그치질 않습니다. 이미 경험으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우리들의 인생살이는 피곤하고 고달파지기 시작합니다. 멀리 떠나 있는 동안 곤고함을 못 이겨서 입술에선 노래가 사라집니다. 12:13절에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비전가족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인생,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씀에 순종하고 잘 섬기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길은 조금씩 달라도 갈 곳은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즉 우리들의 종착역은 결국 천국이라는 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한결같은 우리들의 소망은 짧은 한 평생 어찌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길까 애쓰며 힘을 다하는 찬송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그렇습니다. 기쁨의 찬송자로 살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찬송자로 살아가려면 먼저 하나님과 형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형통하다는 것은 평생 무리수가 없고 상식적인 삶이 먼저 이뤄져야만 합니다. 무리없는 삶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운데 열려지는 귀한 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예배를 통해서 죄 씻음과 정결의 역사가 이뤄지면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늘 입술에 기쁜 노래가 그치질 않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가 있는 가정과 개인은 악한 마귀가 틈탈 사이가 없습니다. 기본적이나마 믿음생활을 제대로 한다면 여러분에겐 세상의 다른 유혹에 빠질 시간조차 나질 않게 됩니다. 엉뚱한 사람과 만날 시간이 없습니다. 승리하신 주님만 만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리고 성은 칼과 창을 쓰지 않았습니다. 찬양을 부를 때 한번에 무너졌습니다.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할 때 옥터가 무너지고 매인 것이 다 풀어졌습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찬송부를 때에 여기모인 성도님들 근심과 염려의 여리고성이 무너질 줄 믿습니다. 병으로 묶인 육신이라는 감옥 터가 흔들려 악한 병마로부터 자유할 줄 믿습니다. 가난과 분노와 수치로 묶인 환경의 감옥이 무너져 매인 것이 풀어질 줄 우리가 믿습니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대로 될지어다. 기도합니다.

주여. 찬양받기 합당하신 거룩한 이름이여. 우리가 평생 부족한 중에도 모여 주를 노래함으로 높여드리기를 소원하나이다. 주님을 노래하기 원하는 이마다 주님이 노래할 신앙과 마음과 평강조차 인도하실 줄 믿나이다. 노래를 통한 우리고백 늘 기쁨으로 받으소서. 우리의 노래, 우리의 생명되시는 주님의 마음을 늘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 되기 원합니다. 이어지는 주잉오후예배에서는 노래로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아름답고 복된 회복의 남은 생애 되게 하옵소서. 골라뽑아 훈련하시는 찬양반주 딸들과 팀을 받으시고 말할 수 없는 복과 찬송부르는 모든 성도들에게 필요한 기쁨으로 채우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