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4. 주일설교<민22:21-30. 나귀의 입을 여신 하나님-1>
잠17:23절에서는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한다.”고 했습니다. 발람은 두둑한 뇌물로 인해 판단이 흐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주를 막으시고 축복을 명령하셨지만 발람의 마음은 뇌물에 잡혀서 모압귀족들과 함께 발락왕에게 갑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使者를 통해 나귀의 앞을 가로막고 나귀의 입을 열어서 반항하게 하는 장면이 오늘 주시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나귀의 반항을 통하여 배우는 하나님의 교훈은 무엇인지 알아가며 은혜를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1. 짐승도 말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12:50절입니다.“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영생의 명령입니다.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메시지도 영생하는 복음입니다. 복음이 불신세상의 입을 통해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듣고 받는 자들이 반면교사를 삼아서 징계받는 자들의 증거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나귀를 사용하셔서 발람에게 직접 경고하는 장면을 소개함으로서 하나님의 진노가 전달되는 방법에 있어서 우리들의 예상을 남김없이 부숴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면서 사람같은 사람의 말만 들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물질에 어두워진 발람은 축복의 민족인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는 모압왕 발락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발길을 옮기다가 결국 짐승으로부터 말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입을 통해 말씀을 할 수도 있고 꼭 같은 사람의 입으로 인간이하인 짐승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발람이 평생 부리던 나귀로부터 반항하는 말을 들었다는 것은 실로 발람의 명예에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짐승이 주인에게 “주인님. 전 억울합니다. 어찌 내가 맞아야 합니까.”라고 호소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라고 한 것은 발람의 인격을 극도로 하대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발람에게 짐승의 눈높이에서 다루고 계신 것 외엔 다른 의미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쉽지 않지만 바라기는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말만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간혹 아랫사람이 대들어서 황당해지는 어른들의 경우를 봅니다.
전에 뉴스에서 어떤 어른에게 담뱃불 좀 빌려달라는 교복입은 고등학생에게 충고하다가 도리어 폭행을 당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불량학생들은 대뜸 욕설과 함께 달려들어 어른을 때렸다는 것입니다. 이 때 학생들의 욕설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짐승의 말입니다. 짐승이 입을 열어 사람의 기술로 말할 뿐 그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인생이 예수를 떠나면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온통 죄악의 온상으로 악용됩니다. 비싼 돈으로 고급건물을 지어 학교나 집을 만들어도 거기서 인본주의를 가르치고 하나님을 등진 채 열심을 내면 비록 일부이지만 거긴 편리하고 근사한 악의 훈련장일 뿐입니다.
발람이 모압의 귀족들과 멋진 말을 타고 행차를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한낱 미물인 나귀가 대드는데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30절 끝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나귀가 대드는데 발람은 주인이 되어 한다는 소리가 “없었느니라.”입니다. 어딜 감히 대들고 있냐고 호령한번 못하는 발람입니다. 나귀가 입을 여니 그만 놀라고 기가 죽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평생에 나귀가 우리 앞에서 입을 열어 대드는 일이 없을 줄 믿습니다.
2. 가까운 도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충성된 나귀의 반항은 이례적입니다. 물흐르듯 나아가지 않는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리심과 또 이유가 깊은 간섭을 봐야합니다. 발람의 나귀는 말그대로 “그동안 그 같은 반항”이 없었습니다. 평생 한번 대꾸도 없이 충직하게 일한 나귀는 평생에 처음 주인 발람의 명령에 불복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셔서 주인에게 왜 때리냐고 대든 것은 발람의 행위와 인격을 짐승과 같은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것과 아울러 말씀은 언제나 가까이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신30:14절에“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은 항상 쉬지않고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말씀하십니까?
1) 주변 관계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발람에게 나귀를 통해서도 말씀하셨지만 하나님께선 보통 가장 가까운 이들과 또는 그 관계를 통하여 늘 말씀하며 교훈하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잘 듣고 행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진실로 복된 사람은 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어떤 사람사이에서도 귀를 기울여 주의 음성을 잘 듣는 사람은 귀한 것을 배우게 됩니다.
좋으면 좋은대로, 힘들면 힘든대로 거기엔 주님주시는 교훈과 말씀이 있습니다. 그냥 어쩌다 만나게 된 관계가 아닙니다.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엔 들을만한 교훈이 있습니다. 관계에는 칭찬받을 만한 일도 있지만 착오로 인해 받아야 할 교훈도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사람은 비슷비슷한 사람끼리 만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내가 허락하고 원해서 만난 관계들입니다.
혹 뜻하지 않은 악연도 그 시간 그 장소에 간 것은 역시 나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2)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환경을 떠나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세상에 없습니다. 생사화복과 모든 환경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환경은 우릴 복되게 하시려고 베풀어주신 은총 중에 한 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환경을 감당치 못해 불행하며 늘 한숨쉬며 살아갑니다. 지금까지 열악한 환경에서 간신히 버티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좋은 환경보다는 힘든 환경에서 벅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환경에 눌리며 살아가는 인생은 이미 창세기에서 예고된 범죄로 인한 가시덤불과 엉겅퀴의 사막길 인생입니다.
창3:17절 하단과 18절에선 범죄한 아담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죽을 때가지 수고한 그 결과로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앞에 범죄한 인류는 노력한만큼 소득이 쥐어지지 않는 것이 성경에 의하면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렇게 주어진 힘든 환경을 통해 하나님은 타락한 땅의 증거를 보이시는 한편 하나님께 의지하고 회개하여 돌아서는 인생들에겐 환경조차 이기고 다스릴 권세를 주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당신의 통치와 권능을 증거하시는 겁니다.
세상에 우연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偶然이란 蓋然性있는 허구라고 했습니다. 즉 아마 그럴 것이라고 추측되는 것들의 허상이 우연이라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에도 우연이란 인과없이 일어난 일들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원인과 결과에 있어서 그 설명이 한없이 어리석다는 것이 한자풀이로 본 우연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원인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때지 않은 굴뚝에 연기나지 않고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무덤에 가서 물어봐도 죽은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과없는 우연이란 말은 근거자체가 없는 말입니다. 따라서 어떤 환경도 그 이유가 있는데 거기서 주님은 지속적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내 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의 몸은 하나님작품 중에서도 참으로 신묘한 명품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많은 부분이 하나님의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은 흙으로 지어 그 안에 여러 가지를 담아 한 인격체가 구현되도록 하셨는데 몸과 정신은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고 몸이 건강하면 비교적 신경정신계도 안정되고 건강한 것이 그것입니다.
요즘 병원에서 원인이 잘 밝혀지지 않으면 보통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병의 원인이 심인성이기 때문에 환자의 마음자세 여하게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몸의 병가운데 많은 부분이 이렇게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심인성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에이즈에 걸려서 23년이 되도록 건강하게 살고 있는 어느 부인이 기자들에게 환하게 미소지면서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에이즈의 약은 다름아닌 하나님께 늘 감사하면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면서 그녀는 예수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녀의 건강한 정신과 믿음은 불치의 병인 에이즈도 이겨내고 있는 것입니다.
2차대전 당시 이런 실험이 있었습니다. 시험대상자가 보지 못하도록 칸을 막아 손만 내밀게 한 뒤 “지금 당신의 사형집행은 손목의 동맥을 끊어 출혈로 죽게 하는 방법으로서 다른 방법에 비해서 고통이 훨씬 감소된 것이니 감사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민 손목의 동맥을 끊어 떨어지는 피를 양동이에 받는 일이 시작됐습니다. 동맥은 정맥과 달라서 압이 강해 지혈이 안 됩니다. 양동이에는 피 떨어지는 소리가 수도꼭지 열어 논 것처럼 들립니다. 시간이 지나자 피 떨어지는 소리가 점차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시험대상자는 얼굴이 점점 하얗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제법 시간이 지나서 소리는 매우 약해졌습니다. 몸안의 피가 거의 다 나왔다는 증거입니다. 이 사람은 이제 몸을 지탱하기도 어려운 듯 비틀거리기 시작합니다. 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서서히 작아지자 끝내 시험대상자는 자리에 쓸어지면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손목은 상처만 조금 났을 뿐, 피는 1cc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돗물을 옆에 틀어놓아 양동이에 피 떨어지듯 소리가 들리게 했을 뿐입니다. 자신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한 이 사람이 실제로 죽은 것은 더러는 정신이 몸을 지배할 때 그것이 절대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 몸이 정신을 지배해 마음이 몸의 말을 100%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몸과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쉬지 않고 말씀하시는 줄 믿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나귀의 반항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릴 사랑하신다는 내용들입니다.
짐승같은 악한 사건에서는 짐승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부족한 가운데서도 순종하고자 애쓰는 자녀들에겐 자비로우신 어버이처럼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변의 환경과 관계와 몸의 삶을 통하여 늘 말씀하고 계시는 이 하나님 앞에 깨어 기도함으로 귀가 열려있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의 음성만 제대로 듣는다면 우리들의 삶은 보다 탁월해 질 것입니다. 주님음성에 귀기울이셔서 날마다 들려주시는 문제의 답과 지혜의 음성을 듣고 손실없이 풍성하고 복된 삶을 살아 주께 영광돌리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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