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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5.06.21.주일예배<민22:31-41(34-35). 나귀의 입을 여신 하나님-2>

by 설렘심목 2015. 6. 21.

2015.06.21.주일예배<22:31-41(34-35). 나귀의 입을 여신 하나님-2>

말못하는 짐승, 나귀의 입을 열어 발람의 인격을 하대하여 나무라신 하나님께서 발람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열린 발람의 눈에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서 있는 게 보입니다. 발람은 즉시 잘못을 시인하고 발락에게 가지 않겠노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사자는 가던 길을 그대로 가되 내가 지시하는 말만 하라고 합니다. 발락에게 도착한 발람은 귀족들과 함께 발람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산당에 올랐는데 이번에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진영이 그 끝까지 보이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본문 31절에서 41절까지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듣고 발람을 통한 교훈을 나누기로 합니다. 먼저 31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1.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인간의 힘과 생각으로는 감히 하나님을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 알 수도 없으니 믿을 수도 없습니다. 구원과 믿음은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들의 인격과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인간과 구원의 과정을 살펴 조절해 가십니다. 발람은 이미 본문 12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발락의 이스라엘저주부탁을 듣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압왕 발락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말을 타고 발락에게 가는 도중 나귀의 입을 여신 하나님의 간섭으로 눈을 열어 여호와의 사자를 본 것입니다. 말로 했지만 순종치 않자 하나님께선 사자를 보내어 말의 입을 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발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사자를 보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66권 성경의 말씀을 자세히는 몰라도 평생을 들어가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깨닫고 내 양식으로 삼아 요긴한 삶의 방편이 되기까지는 퍽 많은 시간과 의지적인 결단 그리고 무엇보다 영적인 성장이 절실합니다. 여기에 기도라는 하나님과의 교제 찬넬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늘 강조됩니다.

기도의 분량과 깊이는 믿음으로 결정되고 믿음의 분량과 깊이만큼 하나님은 자신의 가슴과 모습을 열어보여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의 문제는 사실 위로부터 계시의 영인 성령이 임재함으로 가능한 것들입니다. 즉 인간내부에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어떠한 능력도 방법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 결코 남다른 데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잘나서 그런 것은 더욱 아닙니다. 믿음은 자랑할 게 아닙니다. 다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감사하되 너무 감사하여 주님의 명령 앞에 날마다 떨면서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발람의 눈을 열어주시지 않았다면 발람은 끝내 나귀와 옥신각신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부리는 짐승과 옥신각신한다는 게 주인된 인간으로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우리가 누리고 다스려야 할 환경에 눌려서 짐승만도 못한 사건과 인생들 앞에 구구절절 해명하고 사정하는 것은 또 얼마나 딱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시면 우리는 대화의 대상이 달라집니다. 사람과 간단히 매듭이 지어지려면 하나님과 많은 시간 대화해야 합니다. 늘 주의 영과 교통하는 저와 여러분의 영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 하나님이 발람의 의견을 참고하셨습니다.

 

본문 34절에서 발람은 발람의 길을 막으려고 나온 여호와의 사자에게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않으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라며 가던 길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35절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발람의 길을 막기 위해 나섰던 하나님의 사자가 발람이 가지 않으려 하자 다시 그대로 갈 길을 가게 합니다. 그러나 가긴 가되 내가 시키는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행사에 언제나 인간의 몫을 남겨 두시는 동참의 배려입니다. 하나님은 혼자 다 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서 인생의 참여를 바라십니다. 화목한 가운데 함께 일하시길 원하십니다. 그 분은 형상을 취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누군가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정직하지 못한 발람도 사용하시고 말 못하는 나귀의 입도 열어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천한 한 인간도 하나님께는 매우 소중한 존재입니다. 낮은 자를 들어 높은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41절입니다.“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영의 끝까지 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의 시작과 끝은 매우 길고 백성은 많아서 누가 봐도 큰 민족입니다. 얕잡아 보고 저주하기엔 너무나 많은 백성의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발락은 비스가 산 한쪽으로 발람을 데려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자락만 살짝 보이는 곳에 가서 발람에게 저주를 당부하려는 것입니다. 발락왕은 발람의 눈을 가려서 이스라엘의 실상을 매우 작게 보이도록 유도합니다. 행여 그렇게 하면 발람의 눈에 약소민족으로 보인 이스라엘을 마음놓고 저주하리라는 얄팍한 기대를 한 발락왕입니다. 이러한 모압왕의 계략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축복토록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는 정반대입니다. 금방 읽은 41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간 거기에선 발람의 눈에 이스라엘백성의 진이 끝까지 다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발람의 눈에 이스라엘진영이 일부 보인 것과 전체가 다 보인 것으로 축복과 저주가 결정되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사물 앞에 그 전체를 다 보도로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와 사람의 눈을 가려서 바른 판단을 흐리게 하는 간악한 인간의 계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의 지각, 지혜와 눈과 귀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바랍니다.

전체를 보는 사람과 한 부분만 보는 사람은 결코 같은 뜻을 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인도는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좁은 시야에 사로잡히면 주관적인 요소와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서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에서 보고 해석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늘 붙잡혀 사는 사람과 자신 안에 갇힌 자는 그 생각에서부터 모든 삶에 이르기까지 매우 큰 차이를 나타내게 됩니다. 이미 전했듯이 성도란 뿌리를 찾는 이들이요, 사과 씨를 손에 들고 사과농장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전체를 보는 이들이 성도입니다. 불신세상은 육체의 한평생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허둥댈 때 성도는 육체가 끝난 후 시작되는 천국 영생까지 한 영혼의 전 여정을 모두 봅니다. 그래서 잠시 지나는 여기서 비굴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억울한 손실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눈이 처음과 끝 전체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 눈은 마땅히 볼 것을 본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시니 남이 못 보는 영적인 현상을 보게 됐고 스스로 판단해 따라오게 하시되 끝까지 배려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판단을 존중해 주십니다.

 

4년 전 우리교회에서 교역자회 예배 때 제가 전한 설교말씀 중에 예화를 기억합니다.

김재규의 총에 서거한 고 박정희전대통령의 10.26사건을 보고 중학생은 김재규를 배신자로 봅니다.

고등학생은 김재규를 그렇게 만든 차지철이 사실상의 범죄자라고 합니다. 대학생은 두사람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그때까지 좌우측근으로 데리고 간 박정희대통령에게 근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데 현 대통령인 장녀 박근혜는 당시 무슨 말을 했습니까? “휴전선은 안전합니까?”였습니다. 이미 대통령의 자질을 품고 있던 정치거목의 안목을 갖고 있었다고 모든 평론가들은 극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발람은 자신의 유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하는 바람에 영적 눈이 닫혀 버렸습니다. 우리의 눈과 관심은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발람처럼 눈이 닫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영의 눈으로 세계를 향하여 주님 손을 꼭 붙잡고 주저하지 말고 가시기 바랍니다.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여기 이 땅만 아니라 저 천국과 영원한 세계까지 보는 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렇게 멀리 전체를 보며 믿음의 굳센 행보로 모든 선한 것들을 쟁취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풍성을 평강가운데 증거하게 되길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