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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5.06.07.부임12주년기념주일예배<말4:2.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by 설렘심목 2015. 6. 8.

2015.06.07.부임12주년기념주일예배<4:2.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사실은 지난 주일이 평택내려와 부임설교한지 만 12년이 된 날이었습니다. 이제 13년차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주님은 복작대는 기념행사대신 종의 마음을 충동하셔서 계단과 광택작업으로 며칠 간 참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깔끔하게 다시 태어나는 계단과 바닥을 보면서 몸은 힘들어도 얼마나 즐겁고 감동의 연속이었던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홀로 계단에 앉아 있노라면 그간 계단의 얼룩진 접착제 자국처럼 쌓여있던 울화와 상처가 씻은 듯이 사라지면서 마음은 뛸 듯이 기쁨이 밀려옵니다. 울화통이 치미는 분노에서 억울함에서 드디어 제가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2460년 전 포로에서 돌아와 자리를 잡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귀환 후 70년이 지난 때입니다. 백성들은 학개 선지자에게 하신 언약이 속히 이뤄지지 않자, 하나님을 불신하기 시작합니다. 율례를 등한시하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등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을 때 말라기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교회 13년 출발을 맞아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그리스도를 만나 보며 은혜를 나누기 바랍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입니까?

 

1. 예수그리스도는 의로운 빛, 의로운 해입니다.

 

사전적의미의 의는 옳고 공평하고 선한 것 등 좋은 것을 말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모두 의로우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전폭적인 신뢰로 인해 생긴 모든 것들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본래 땅위엔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롬3:10절에서 구약(53:3.14:1-3)을 인용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없는 세상에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의가 되는 것은 그 믿음을 높이 평가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는 어디까지나 의롭다고 불러주는 稱義이지 본질적인 의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 의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 결과를 통틀어 말합니다.

 

본문 말라기 선지자는 믿음이 식어가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장차 일어날 소망인 의로운 해, 태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의로운 해는 극렬한 풀무불 심판권을 가지셨다고 본문 직전의 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의로운 해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뜨거운 풀무불의 심판이 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치료하는 광선이 되어 비출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로운 해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의로운 해는 공평한 해이며 의로운 해는 풍성한 사랑을 비추는 따스한 해입니다. 그리고 의로운 해는 모든 이에게 새생명을 공급하는 에너지, 능력의 빛입니다. 이 의로운 해는 그러나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에겐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만 보일 뿐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등 따듯하여 편하게 살면서도 등 뒤의 태양을 한 번도 바라보지 않고 그에 대한 감사조차 까맣게 잊고 사는 불신세상에서 우리가 이 큰 복을 받아 예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의로운 해가 떠올랐습니다. 이제 그 해를 등지고 자기그림자를 보는 게 아니라 그 빛 예수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소망을 두는 사람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먼저 치유하는 광선을 비춘다고 했습니다. 의로운 빛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지 이제 2015년째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의로운 해를 바라보고 그 빛을 받아서 어두움이 물러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2. 예수그리스도는 치료하는 광선입니다.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한다고 한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은 이미 초대교회 이후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어서 누구든지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 주님의 공생애 3년간의 3대 사역은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신 일입니다. 주님은 치료하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주님의 사역 중에 고치셨다는 것은 뭘 뜻합니까? 그것은 우리네 인생이 죄로 인하여 심성이 비뚤어져서 하나님을 피하고 죄인의 신분으로 태어나 이유없이 건강치 못하며 몹쓸 병에 묶여서 치료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15:26절 하단에도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라파"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육신의 옷을 입고 인간의 몸으로 오신 이유도 인간의 질고를 대신 그 몸에 짊어지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든 죄악과 질고와 허물과 눈물을 십자가에서 짊어지고 혹독한 고통 속에서 그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다시는 동굴 같은 어두운 밤의 인생이 아니라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대낮 같은 밝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구체적으로 공의로운 태양 우리 주님 예수께서 하시는 치유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1) 먼저 마음의 병을 고치십니다.

 

잘못된 가치관과 생각과 습관조차 고치십니다. 엉뚱한 현대의 망조들린 사상과 식견에서 깨닫게 하십니다. 귀신들린 정신병을 고쳐주십니다. 자라면서 잘못 보고 듣고 형성된 인격체를 총체적으로 고쳐 가십니다. 뭐든지 자신의 명예를 앞세우고 자신의 이름이 앞서는 자기우상, 무덤까지 가져갈 은밀한 수치, 범죄의 비밀과 그로 인한 양심의 통증, 열등감과 우월감,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많은 일들, 도저히 끊어내지 못하는 악습으로 나도 내가 싫은 자학감, 비교해서 처절하게 느끼는 상실감, 수많은 마음의 병은 우리 주님이 깨끗하게 치료하시되 그 상처의 흔적이 도리어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데 귀하게 사용되도록 변화시켜 주심을 믿기 바랍니다.

 

2) 육체의 질병을 고치십니다.

 

잘못 학습된 생활양식으로 얻어진 모든 육신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는 천형과도 같은 불치병도 고쳐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믿은 그대로 될지어다.

 

3) 잘못된 관계를 고치십니다.

 

인생은 소유여하로 행불행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그야말로 있고 없고는 좀 편리하고 불편한 정도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행불행은 관계에 있습니다. 한번 잘못 만난 관계가 평생을 눈물지며 살게 합니다. 이 관계에 의로운 태양이 떠올라서 새롭게 하시는 역사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리하여 정녕 복되고 아름다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만나선 안될 사람을 못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와 우리들 자녀에게 넘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가 오래 전 가정사역을 할 때 수료식에서 부부들의 공통된 고백을 기억합니다. "저는 이 훈련 끝에 제 아내가(남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뀔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바뀌어야 할 사람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이제 성령이 도우셔서 부족하고 악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한없이 가여운 제 아내(남편)에게 다시한번 이 자리를 빌려 미안하단 말을 전합니다."

 

끝으로 주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마음이 새롭게 되고 육신이 고쳐지고 관계가 거듭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복이 눈에 뵈는 물질세계의 새로움입니다. 가난한 살림이 변화합니다. "가난할 때 우리를 부요케 하신 나의 주, 감사" 이 노래는 매우 보편적인 기독교의 결과를 고백하는 성도들의 애송시입니다. 아직 젊어 힘겨울 때 이 노래를 자주 부르셔서 노래처럼 마지막엔 살림살이가 풍성해지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버는 것도 도와주시지만 나가는 것 막아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이 말씀 듣는 가운데 주의 영이 여러분가슴에 임하십니다. 믿기 바랍니다.

아멘하신 모든 것들이 이뤄질지어다.

그러면 과연 누구에게 이 의로운 태양은 떠오른다고 성경은 선포합니까?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떠오르는 의로운 태양입니다.

 

이미 말씀했듯이 밤이 되어 어둡다고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등을 돌려서 안보일 뿐입니다. 태양은 변함없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은혜의 비가 여전히 내리는데 믿음의 그릇을 엎어놓아 한 방울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서러움의 밤과 고통의 밤과 안타깝고 부끄러운 밤을 물리치고 밝은 태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해 마음 문을 열고 얼굴을 드는 사람들입니다. “문들아 머리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도록.”"하나님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할렐루야.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일까?

 

1) 하루 24시간 삶 중에 늘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모신다고 했습니까? 존귀히 높여드려서 그 앞에 떨리는 마음으로 서 있는 것이 경외입니다. 경외의 한 방법으로 늘 그분을 삶속에 모시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말로 한다면 언제 무슨 일이든지 "지금 주님 여기 계시다."는 것을 의식하는 삶을 말합니다. "지금 이일을 주님 어떻게 보십니까?"라며 질문하는 습관이 몸이 배어 있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근본 하나님중심사상을 가진 사람이 갖는 특성적인 헌신은 자신을 송두리째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전적인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헌신이란 몸을 드렸다는 뜻입니다. 몸은 삶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삶의 중요한 몇가지를 살핍니다. 먼저 시간입니다. 우리는 시간이란 레일 위를 벗어날 수 없는 생명들입니다. 시간은 곧 생명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더 많은 시간, 더 중요한 시간을 드려서 주의 기쁨이 되고자 하는 것이 주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의로운 태양을 떠올리셔서 마귀의 어둠권세를 물리쳐 빛된 영광을 보게 하신다고 본문은 증거합니다.

시간 다음으로는 중심을 드립니다. 금방 말씀드렸듯이 모든 생각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물질마져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 예배에 헌신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설교된 모든 헌신은 예배라는 마지막 주님과의 교제와 화목을 통하여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예배는 헌신이 화목의 축제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 화목으로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치료가 되시고 온전케 된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아침에 잠에서 깰 때 내 안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부터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녁 자리에 들 때에도 종일 지켜주신 주님을 찬양하기 바랍니다. 평소의 마음이 예배에서 설교듣고 찬양하듯 늘 말씀으로 힘을 내며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믿음으로 새로운 마음이 되어 즐거워지기 바랍니다.

예배는 성도의 특권이고 특혜이고 거룩한 의무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거저 구원받고 예배를 선물로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이 본문의 말씀처럼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는 기쁨"이 있음을 믿기 축원합니다.

 

4. 구원받아 치유받은 인생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기뻐 뜁니다.

 

외양간을 나온 송아지는 갇혀 있는 동안에 묶인 모든 것이 풀리는 기쁨으로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자유입니다. 자유란 우리말로 하면 엿장수마음대로입니다. 가위질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몇 번 치든 엿장수의 절대권한이라는 것입니다. 송아지가 어느 쪽으로 몇 바퀴를 뛰던지 돌던지 송아지 마음입니다. 주 예수께 치유의 광선을 받아 깨끗함을 받은 영혼과 육체마다 송아지처럼 자유롭게 뛰는 기쁨이 넘칩니다.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설교 중에 이러한 해방과 자유와 치료하심이 넘치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따라 믿으시는 대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영접하시고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갇혔던 외양간을 뛰쳐나와 그렇게도 원했던 자유, freedom을 마음껏 외치기 바랍니다. 서러웠던 날을 뒤로 하고 억눌렸던 꿈과 환상을 현실로 쟁취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앞길을 환히 비추시는 햇살이 되어 밝고 따사로운 길이 돼 주실 것입니다.

예배하는 모든 무리들에게 예수그리스도, 의로운 해가 밝게 떠오름으로 어떠한 어두움의 역사도 다 사라질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