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7 주일낮예배<창37:18-24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
열명의 형들이 요셉을 더 미워하고 시기하게 된 건 그 꿈 이야기였습니다. 현재 당하는 편애에도 화가 났지만 미래에는 더욱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니 모두들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찌 동생에게 절하며 살아간단 말인가? 형들은 화가 났지만 그래도 장남 르우벤은 요셉을 죽이자는 동생들을 말리고 그냥 구덩이에 던지자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 유다는 구덩이에 던진 요셉을 차라리 낙타상인들에게 팔자고 합니다(26-28). 그렇게 요셉은 애굽에 팔려서 들어갑니다. 17살 어린 요셉의 수난은 이렇게 채색 옷으로 시작해 꿈꾸는 자의 험난한 여정, 미래 애굽총리의 젊은 시절이 시작됩니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요셉의 인생은 역시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근거한 것이며 언약의 실현이라는 사실입니다.
젊을 때 고생은 돈주고 사서 한다는 우리격언이 있는데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 얻는 귀한 말씀의 교훈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먼저 18-20절을 함께 읽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1. 거대한 강국의 총리가 되는 첫 관문은 마른 물구덩이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의 편애로 인한 서자들의 골깊은 상처와 꿈 얘기로 인한 열등감에 요셉의 꿈을 조롱합니다. 그 꿈이 어찌되는지 우리가 봐야겠다는 것은 그 꿈이 아무런 의미없는 개꿈일 것이라는 조롱과 스스로의 위로가 섞인 말입니다. 그런데 훗날 요셉의 꿈은 정확하게 실현되었습니다.
그 꿈,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고 해와 달과 열한개의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영몽은 그만 현실이 되고 만 것입니다. 즉 11명의 형제들과 아버지가 애굽의 총리가 된 아들 요셉을 찾아와 요셉인줄 모르고 왕에게 절하듯 두려워 절을 합니다. 안 그러면 앉아서 온 식구가 모두 굶어죽을 판입니다. 애굽에 가서 총리를 뵙고 사정을 아뢰면 식량을 다소 구해올 수가 있다니 다행입니다. 요셉은 식량이란 절대무기로 주변 모든 민족들의 생명을 거머쥐고 있었습니다. 그를 찾아 절을 하는 것은 지극한 상식이고 나아가 영광입니다. 열한 곡식단이 한 곡식단에게 절을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 구덩이에 던져졌고 다시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털끝 하나 상하지 않았고 도리어 왕에게 높임을 받고 그들을 모함했던 고관들은 모두 처형을 당합니다.
열차를 타고 터널을 들어갈 때 이대로 끝이 없는 어두운 굴속을 계속 간다고 생각하거나 이 터널이 갑자기 무너져 돌과 흙더미에 묻혀 깜깜한 데서 죽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지나가는 불행과 고통 앞에서는 마치 그것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신음하고 절망하고 심지어 자살도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열차는 편안히 앉아서 가고 불행은 그 아픔이 참기 어렵다는 것이 큰 차이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터널이나 불행이나 결코 우리 곁에 영원하지 못하고 모두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잠시 스쳐가는 가운데 붙잡아야 할 영원한 우리의 꿈은 예수그리스도가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어린 요셉이 절망과 사망의 음침한 구덩이에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영몽을 영몽으로 받을만한 믿음이 아직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한 구덩이는 그대로 절망입니다.
오직예수,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간구하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작고 큰 어떤 모양의 구덩이라도 그건 사망의 구덩이는 아닌 것입니다. 비온 후에 길을 가다가 진창을 밟아 구두가 젖은 겁니다. 잠시 불편하고 칙칙하긴 해도 그건 지나가는 것인데 인생의 모든 구덩이도 양태와 크기가 좀 다를 뿐 다 지나가는 것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멀리는 우리 한 평생이 구덩이고 가깝게는 육체의 길목마다 구덩이입니다. 구덩이에선 사방이 깜깜합니다. 하늘 밖에 안 뵙니다. 그나마 뚜껑 닫힌 구덩이도 있습니다. 기억합니까? 다윗의 정보요원이 압살롬의 정세를 파악하고 돌아오던 길에 뒤따라오던 추격자들을 피해 우물 속에 내려가 뚜껑을 닫고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뚜껑이 닫혀 완전 흑암속에서 그들의 눈에 뵈는 것은 하나, 다윗이 복귀해 다스리는 회복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늘문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우리들 믿음의 눈엔 하나님의 성소가 늘 소망 중 아른거리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22절에서 르우벤은 동생 요셉을 죽이지 못하게 하고 대신 구덩이에 던져버리자고 장남다운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후에 다시 요셉을 구해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26-28절에선 이미 밝혔듯이 유다가 다시 요셉을 죽이지 말고 지나는 상인들에게 파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미디안 낙타상인들에게 은 20개에 팔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요셉을 사용하여 이스라엘민족을 향한 언약을 성취하시기로 하였고 그 일은 이제 요셉의 생명을 르우벤과 유다를 통하여 거듭 보호하신 것입습니다. 살고 죽는 것과 복된 것과 재앙이 다 하나님 손에서 주장되는 것을 믿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린 모두 그분이 만든 항아리들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고자질쟁이 요셉이 그대로 성장해 과연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만드신 분이 더 나은 계획과 디자인이 있다면 다시 가져다 빻아 가루로 만들어 전혀 새로운 예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믿습니까? 뭉개져 가루되는 아픔보다 새로 태어나 멋진 자태를 뽐내며 주의 영광 가운데 영원히 살아갈 저와 여러분을 우리주님 오늘도 다스리십니다.
본문에서 요셉의 생명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은 이중의 안전장치를 하셨습니다. 하나는 르우벤을 통해서 나중에 구덩이에서 끌어올려 아버지에게 데려다 주려했던 것이고 또 하나는 유다를 통해 낙타상인에게 팔기로 한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데려가든지 낙타상인에게 팔려가든지 요셉의 생명은 보존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스라엘민족구원은 요셉의 안일보다는 험한 훈련을 통해 하나님임재와 동행을 경험하면서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편애의 실수도, 마른 우물구덩이도, 낯선 이방의 종살이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비껴갈 수 없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손발을 묶인 채로 로마로 간 것은 복음이 거기까지 전해져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가장 안전하게 호송되었고 군사들의 보호가운데 마음놓고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낙타상인들에게 팔려 정든 고향 아버지 곁을 떠나 난생처음 험한 길을 떠납니다. 상상할 수 없는 환경변화에 어린 요셉이 얼마나 두려웠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편애받던 나약하고 편협한 요셉을 총리로 만드는 고급관료수업의 시작이었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훈련의 시작이었습니다. 애굽 시위대장 보디발의 관사는 그러니까 요셉의 총리훈련학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배인 여러분. 우리가 실수하고 연약해 무너져도 하나님의 계획은 흔들리지도 않고 변함도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인간의 불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연약하고 비굴하고 악한 자료들을 들어서 귀한 일의 시작과 최고의 훈련자료로 사용하십니다. 사람들은 선한 것도 악하게 쓰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귀하고 아름답게 바꾸어 사용하십니다.
야곱의 편애, 그 편애로 잘못 자라나던 요셉의 부족과 형들의 악한 시기심,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민족과 야곱의 일가와 개인들을 구원하시는 데에 빼놓지 않고 다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것, 주의 언약가운데 소망을 버리지 않고 굳센 믿음 붙잡으면 하나님의 소원과 꿈이 우리들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반드시 이뤄짐을 믿으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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