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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단

2015.04.26. 주일낮예배설교<민21:4-9.불뱀의 독을 해독시킴 놋뱀.>

by 설렘심목 2015. 4. 26.

2015.04.26. 주일낮예배설교<21:4-9.불뱀의 독을 해독시킴 놋뱀.>

 

젖과 꿀이 흐른다는 약속의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해 가던 모세는 수많은 난관에 부딪힙니다. 직선거리로 가면 일주일이면 가는 가나안땅입니다. 에돔을 통과하면 시간을 많이 절약하는데 에돔왕이 길을 내주지 않아 먼 길을 불편하게 가는 백성들이 다시 모세에게 원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원망이 하나님 앞에 악해서 불뱀으로 죽어가는 백성들과 그 현장에서 모세의 기도로 놋뱀을 통한 구원이 오늘 우리가 듣는 복음의 주제입니다.

5절을 함께 읽습니다.“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챦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원망의 내용은 늘 같은 것입니다. 일전 므리바반석에서 물을 내기 전에 백성들이 하던 불평은 20:5절에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기로 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오늘은 원망의 내용과 놋뱀의 의미를 살피며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먼저 원망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1. 끝없는 욕심으로 인생들은 언제나 불평하고 원망하는 존재입니다.

 

1) 없다는 것입니다. 씨뿌릴 곳도,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마실 물도, 식물도 없다는 것입니다. 5:12절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는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지금 이들은 인류역사상 더없는 하나님의 작품, 만나를 먹고 광야길을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만나는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인류역사상 초유 최상의 완전식품입니다. 먹을 것이 충분한데 파종할 곳을 찾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무화과, 포도, 석류, 마실 물 등이 없다고 원망하는 것은 생존을 말함이 아니라 충족되지 못하는 욕구와 기호를 말하는 것입니다. 굶지는 않았어도 뭔가 입이 심심해 좀 맛진 걸 먹고 싶다는 겁니다. 이는 믿음부족하고 어리석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들의 위치와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데서 나온 욕심입니다. 지금 이들이 어딜 가고 있습니까?

대대로 이어온 노예에서 해방되어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삶을 살려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길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자신들의 신분을 까맣게 잊고 입맛타령을 합니다. 출애굽기 어디에도 굶어죽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만나는 비록 매일 싫증나게 먹지만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먹는 것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게 하셨습니다. 지금 백성들의 불평은 그래서 전혀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악한 곳으로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그 종 모세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패역한 말입니다. 이 말 뒤에는 애굽을 그리워하는 참을 수 없는 배신이 있습니다. 선한 이는 선한 곳으로 인도하고 악한 자는 악한 곳으로 인도합니다. 기껏 비참한 노예에서 해방시켰더니 입맛타령에 하나님을 악한 하나님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 불신앙입니다.

불신앙의 마음과 소견은 전혀 엉뚱한 해석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바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우리는 믿음으로 압니다. 가는 길이 좀 불편하다고 그 길이 악한 곳이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잘못된 말입니까? 시골사람이 서울가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설날을 맞이하여 고급자동차에 귀한 선물을 가득 싣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길이 많이 막혀 너무나도 고통스럽습니다. 먹는 것, 긴시간, 화장실 모든 것이 짜증거리입니다. 깜깜한 밤중에 폭설로 인해 더욱 곤란한 지경에 이릅니다. 자동차연료가 서서히 바닥이 나서 불안합니다. 이 사람은 지금 자신의 성공보단 당장의 불편이 크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나쁜 곳에 가고 있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자신을 이렇게 키워주신 부모님들과 후원해준 친지들에게 영광과 자랑을 돌리고 싶어서 이러한 고통쯤은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들의 긴 여정의 의미보다 당장의 불편에 모든 판단의 무게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곧 도착할 기름진 땅은 안중에도 없고 지금 당하고 있는 불편한 환경에 하나님과 모세의 구원사역에 함부로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는가?”지혜롭고 큰 자는 멀리 보고 결론에 마음을 두고 과정을 이기지만 어리석은 자는 힘든 과정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 불평하고 관계를 파괴하며 결국 배신을 주고받게 됩니다.

2. 원망은 불신앙의 결과이고 불신앙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1) 불뱀을 보내셔서 징계하십니다. 원망하는 백성들의 불신앙은 징계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선 사막 한가운데 불뱀 떼를 보내셔서 백성들을 벌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죽어가기 시작하자 백성들은 그제야 모세에게 불평대신 살려달라고 매달립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한 방법을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놋뱀을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2)놋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살아납니다. 불뱀의 독소가 놋뱀을 바라봄으로서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분명 황당한 비상식입니다. 상식은 인간이 늘 하던 방식과 그렇게 알게 된 지식들이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이 다 헤아릴 수 없는 깊고도 깊은 사랑과 배려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놋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치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1) 놋뱀은 불뱀의 죽은 형상입니다. 놋뱀은 불뱀이 죽었다는 것을 말하는, 말하자면 불뱀을 통한 징계의 종료를 선포한 것입니다. 너희를 물던 불뱀이 이처럼 이젠 죽었다는 뜻입니다. 불뱀의 능력을 쇳조각처럼 굳혀서 치켜든 것은 오직 믿는 이를 찾아 고치시는 하나님만의 방법이었습니다.

(2) 놋뱀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상식이나 방법을 뒤로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마다 살려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놋뱀의 사건은 오늘도 여전히 계속 유효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14절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놋뱀이 높이 들린 것은 범죄로 인한 징계의 상징이 끝나 용서가 시작된 것이었고 십자가에 인자가 높이 들린 것은 인류의 저주, 죄와 사망권세가 죽어서 높이 들려 선포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선 그와 같이 모든 죄와 사망을 한 몸에 안고 십자가에 오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이 저주아래 놓여 죽으실 때 주님을 바라보면서 소망하는 모든 인류의 온갖 죄악이 사망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내 아들 예수를 보는가? 이처럼 너희 죄가 죽어가노라. 예수의 부활을 믿는가? 그처럼 너희도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살리로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자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사단에게 종 됐던 자 가운데 십자가를 쳐다보며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그 영혼이 살아나고 영생을 받게 됩니다.

이제 이 말씀 듣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더 이상 참혹한 고통이 아니라 뱀에게 물린 자, 사단에게 그 영혼이 포로된 자, 사단의 독이 삶에 잔뜩 퍼져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든 자에게 최고의 복음과 능력과 치료가 된 줄 믿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이 말씀으로만 살아가는 의인의 노래가 우리 교회에,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 넘쳐나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